신의 기원 l (8)

신의 기원 l (8)
놈의 앞발이 쓰러진 자의 등을 밟고 있다.
저 괴물은 먹으려는 목적이 아닌 인간의 살상이 목적인 듯, 쓰러진 사람을 앞에 두고도 다시 다른 사람을 노리고 있었다.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로체스터가 콘라드를 바라봤다. 콘라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소총에 적외선 망원경을 붙였다.
무리 안에서 날뛰고 있는 놈을 노리면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사람이 다친다. 원시인도 사람은 사람이다.
로체스터는 바깥에서 어슬렁 거리는 놈을 조준했다. 적외선 망원경은 적중률 100%다.
천둥치는 것 같은 폭음과 함께 검치 호랑이가 공중으로 펄쩍 뛰었다. 그리고, 그대로 땅에 내팽개쳐졌다.
즉사다. 총알에 정통으로 맞은 머리가 반이나 부서져 나갔다. 원시인 무리 속에서 날뛰던 검치 호랑이도 일순 동작을 멈췄다.
그러더니 상황을 파악했는지 '크아앙' 하는 포효와 함께 콘라드와 로체스터 쪽으로 달려왔다.
위험하다. 콘라드는 반사적으로 권총을 뽑았다. 그리고 그대로 연사를 했다.
권총의 적중률은 나쁘다. 그러나, 연사중 한발이 맞았는지 놈의 앞다리가 휘청했다.
로체스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을 정조준해서 갈겼다. 달려오던 놈이 그대로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벼락치는 소리에 혼이 나갔던 원시인들은 검치 호랑이가 죽어 자빠진 것을 보았다. 벼락치는 소리 끝에 이 무서운 마물이 죽어 자빠졌다.
이 괴물을 죽인 사람은 바로, 저 아래 위로 흰옷을 입고, 빛나고 하얀 것을 머리에 둘러쓴 사람들이다.
자기들 수십 명이 죽었어도 검치 호랑이를 잡은 예는 없다.
검치 호랑이가 나타나면 당연히 몇 사람은 희생되어야 한다. 일행이 달아날 시간을 벌어주는 먹이감으로다.
그런데, 저들은 하늘의 벼락으로 저 마물을 죽였다. 그리고, 우리들을 살렸다. 여태껏 보아온 어떤 존재도 이들보다 더 강한 존재는 없었다.
그들의 몸과 마음은 저기 벼락봉을 들고 서 있는 자들에게 자연스럽게 굴복되었다.
하늘에서 내려와 벼락으로 자신들을 구한 존재. 그들은 무릎 걸음으로 저 위대한 존재에게 기어갔다.
* * *
원시인들이 슬금슬금 다가와 계속 몸으로 무슨 신호를 보내는데 도대체 알아 먹지를 못하겠다.
현대인끼리라면 말이 안 통해도 웬만한 바디 랭귀지는 서로 알아 먹는다.
그러나, 이들의 몸짓은 짐작도 하지 못하겠다. 수만 년전 사람이니 문화의 공통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연속해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켰다가 다시 허리를 굽히고, 두 손으로 무엇을 나르는 시늉을 했다.
계속 이들의 행동을 보던 콘라드가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이들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 가려고 하는 것 같아. 저 손짓은 무엇을 모신다는 뜻으로 볼 수 밖에 없어. 행동도 공손하고 말야"
"그런 것 같은데요. 계속 하늘을 가리키는 것을 보아, 우리가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라 여기는 것 같은데요"
"그래. 우리가 계속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 먼저 온 두 사람도 찾아야 하고 말야. 저 원시인들에게서 이제는 적대감이 느껴지지 않으아. 어쩌면 그들에게서 어떤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몰라"
그들은 원시인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콘라드는 손짓으로 자신들을 가리키고 또 그들을 가리켰다.
로체스터의 손을 잡고 앞 뒤로 흔드는 시늉을 하니, 그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다. 기쁨의 소리를 지르는 녀석도 있었다.
무기와 이머전시 팩을 챙겼다. 헬기는 워낙이 강한 방탄 소재로 되어있어 이들의 무기로는 흠집도 안 난다.
제대로 시건 장치만 해두면 이들의 능력으로는 들어갈 수도 없다.
창을 든 자 세 명이 앞장섰다. 일종의 의장대였다.
창은 저번에 콘라드들에게 던졌던 것을 다시 회수한 것이다. 이들에게는 이것이 귀중한 자산이다.
창날을 보니 역시, 돌을 쪼개서 모서리가 날카롭게 떨어져 나간 흑요석이다. 용도에 맞게 갈아서 만든 것이 아니다.
마제 석기가 아니라, 타제 석기다. 지금은 구석기 시대가 분명했다.
선두의 안내자는 저번에 보았던, 얼굴에 빨갛고 하얀 색깔을 칠한 자다.
자꾸만 자기를 가리키며 '우버, 우버' 하고 반복적으로 말했다. 아마 그의 이름이 '우버'인 것 같았다.
콘라드 대령도 자기를 가리키며 '콘' 이라고 반복적으로 말했다. 이들의 혀 능력으로는 '콘라드'라는 정식 이름은 발음 하기 힘들 것이다.
"콘? 콘?"
우버는 몇 번 따라해 보더니, 그것이 콘라드를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것을 안 것 같았다. 그는 '콘, 콘' 하며 콘라드를 가리켰다.
그들은 네 명이 한 조로 죽어 자빠진 검치 호랑이 두 마리를 운반했다.
나무 껍질을 이은 줄로 호랑이의 앞 뒤 다리를 묶고 그 사이에 긴 나뭇가지를 끼었다. 그리고는 긴 장대를 앞 뒤에서 메었다.
아까 다친 동료도 역시 두 사람이 앞뒤로 들었다.
그들은 이상한 곡조가 붙은 소리를 고래 고래 지르며 빠른 속도로 걸었다. 아마 나름대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걷다가 한 다리로 빙글빙글 돌며 한 손을 들어 흔들었다. 아마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호랑이를 멘 자들도 어깨를 들썩였다.
헬기로 돌아가는 길을 기억하며 걸었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탈출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숲을 지나고 바위를 돌아서 나무가 성깃한 곳을 골라 가는 것 같았다. 계속 다니면 그것이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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