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기원 l (9)

신의 기원 l (9)
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숲을 지나고 바위를 돌아서 나무가 성깃한 곳을 골라 가는 것 같았다. 계속 다니면 그것이 길이 될 것이다.
두어 시간을 가자, 저 멀리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 아래 흙과 나무로 이어진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사람들이 달려왔다. 아마 미리 간 사람이 연락했으리라. 마을에 사는 원시인들은 200 명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남자들이 메고온 검치 호랑이 두 마리를 보더니 일견 놀라고, 일견 흥분했다. 이 호랑이를 잡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한 여자가 달려 나오더니 높은 소리로 외치며 죽어 있는 검치 호랑이에게 침을 뱉았다.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을 보니 아마 가까운 사람이 호랑이에게 해를 당한 것 같았다. 다른 여자 몇도 같은 행동을 했다.
한참 시끌벅적한 가운데, 두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 줄 몰라 총을 꼭 잡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들을 따라 마을에 오긴 왔지만 이들의 수준과 자신들의 그것은 하늘처럼 높은 격차가 존재한다. 둘 사이에 어떤 오해가 생길지 모른다.
이들은 미개한 야만 종족이다. 그들의 행동 패턴도 모르겠고, 어떻게 나올 지도 모르겠다. 그런 자들과는 바디 랭귀지도 안 통한다.
1800 년대 몽고 지방에서는, 그들이 천막에 들여보낸 여자와 자지 않았다고 살해당한 외부인도 있다 한다.
이자들은 자신들이 상상치도 못한 기상천외한 생활 방식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바깥에서야 자신들에게 쩔쩔 맸지만, 마을에 들어와서는 이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자신들을 마을로 데리고 온 의도도 거의 모르겠다.
여차하면 가슴에 매달고 온 신호탄의 연기를 터뜨리고 탈출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싸이면 탈출 성공 여부도 확실치 않다. 그들은 총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더 이상 인원이 늘지 않는 걸 보니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 듯했다. 모두 그들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얼굴에 하얗고 빨간 칠을 한 자가 앞으로 나섰다.
콘라드에게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던 자이고, 여태껏 자신들을 안내했던 자였다. 리더로 추정되는 우버, 바로 그 자다.
그의 뒤에는 허리가 꼬부라져 두 팔이 땅에 닿을듯한 노파가 서 있었다.
쪼글쪼글한 얼굴은 온갖 색깔로 칠해져 있었고, 굵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모두 그녀에게 서너 발 이상씩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노파는 이 마을의 큰 실력자 같았다. 그녀의 그림자가 있는 쪽도 사람들이 비켜서 있었다.
그녀의 한 발 뒤에는 얼굴에 희고, 붉고, 빨간, 세가지 색을 칠한 늙은이가 서있었다.
그 역시 창을 들고 서 있었는데 색깔 한 가지가 더 많은 것으로 보아, 우버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데, 할멈의 눈이 심상치 않다. 그녀는 마치 콘라드 일행을 잡아 먹을 것같이 세모꼴로 눈을 뜨고 있었다.
덩달아서, 삼색의 늙은이도 곱지 않은 눈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우버는 그들에게 여태까지의 일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자꾸만 죽은 검치 호랑이 쪽을 가리키고 또 콘라드들을 가리킨다.
그때마다 할멈의 입에서는 '킁,킁' 하며 비웃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도저히 믿지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이 하얀 인간 단 둘이서 무서운 검치 호랑이를 잡았겠는가? 할멈의 눈길이 그들을 훑고 지나갔다.
할멈은 손을 들어 저 뒤쪽을 가리켰다. 그 손을 따라가 시선을 돌려 보니, 얕은 바위산 언덕 중턱에 동굴이 뚫려있는 것이 보였다.
위에서 나무 줄기와 식물의 덩굴이 내려와 입구를 잔뜩 덮고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겨우 동굴 입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보가 당황한 듯 무어라 떠들며 그녀에게 계속 고개를 숙였지만, 그녀의 손은 내려지지 않았다.
할멈은 콘라드 일행을 한 번 더 노려 보더니 몸을 돌렸다.
그녀가 겨우 겨우 지팡이를 짚고 가고 있는 곳은 아까 호랑이에게 부상을 당했던 남자에게였다. 그는 땅에 쓰러져 있었다.
과다한 출혈과 호랑이 발톱에서 침투한 파상풍균으로 온몸이 불덩이였다. 식은 땀이 온 몸을 적시고 있었다.
할멈은 그에게 '떼똑떼똑' 다가갔다.
그를 한참 들여다 보던 할멈은 우버와 그 삼색 늙은이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역시 그 동굴을 가리켰다.
할멈의 쪼그라진 입은 단호히 닫혀 있었다.
그러자, 쓰러져 있는 부상자 주위의 몇몇 사람의 입에서 울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마 부상자와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았다.
콘라드와 로체스터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할멈이 가리키는 저 동굴은 무엇인가?
그리고, 부상자를 비롯한 몇몇 자들은 할멈이 동굴을 가리키자, 왜 그리 우는 소리를 내고 있는가?
할멈이 저 동굴을 가리키는 것은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로체스터가 작은 소리로 콘라드에게 말했다.
"단장님. 이 원숭이를 닮은 노파가 이 마을의 제사장 정도일 것 같습니다. 아주 위세가 대단한데요. 모든 의사 결정을 이 할멈이 다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짐작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콘라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멈과 얘기할 때, '키리'라는 소리가 자주 나오는 것을 보니 할멈의 이름이 키리인 것 같았다.
돌연, 검치 호랑이의 시체와 부상자를 둘러멘 사람들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우버가 그 앞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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