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기원 l (13)

신의 기원 l (13)
키리할멈은 경이와 질투심을 동시에 느꼈다. 이 마을의 모든 의사결정과 사람들의 생사존망은 자기 손으로 결정한다.
이 환자들을 죽음의 동굴에 집어넣으라고 결정했던 것도 자신이다.
이들은 자신의 권위를 비웃듯 이렇게 멀쩡히 살아 나왔다.
사실, 이들은 어떠한 방법을 써도 죽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저 정체 모를 이방인들이 살린 것이다.
족장의 얼굴을 봐도 역시 그렇다. 저 두 이방인들에게 존경과 흠모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잘못 하면 자신이 설 땅이 없다. 자칫, 제사장 자리를 뺏길 수도 있다.
어떻게 해서든 이들을 처치해야 한다. 키리 할멈의 눈매가 세모꼴로 변하고 있었다.
키리 할멈의 얼굴을 계속 주시하던 콘라드가 로체스터의 옷깃을 잡아 당겼다.
지금 저들은 굉장한 혼란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 원인을 제공한 두 사람은 일단 모습을 감추어야 한다.
동굴 안으로 들어와서 콘라드가 로체스터에게 말했다.
"이 동굴의 정체를 일면이나마 알게 되었네"
"여기는 식량 창고가 아닙니까?"
"그 말은 맞아. 하지만, 보통 식량 창고가 아니라는 뜻이지. 부디 내 짐작이 틀리기를 바래"
"? ? ? ?"
"지금 여기를 봐. 저 검치 호랑이와 우리에게 죽은 원시인들의 시체가 여기 보관되어 있어. 식량과 함께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주위를 가리켰다. 곡물과 함께 동물의 시체와 사람의 시체가 같이 나열되어 있었다. 콘라드의 말이 계속 됐다.
"그런데, 곧 죽을 사람도 여기에 넣어 두었어. 이것이 무얼 뜻하는 거지?"
곰곰히 생각해 보던 로체스터가 돌연 펄쩍 뛰었다. 그의 팔뚝에는 일제히 소름이 돋아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식인종?"
"그래. 그럴지도 몰라. 이들은 인권이나 윤리 개념 같은 것은 아직 생기기도 전인, 원시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말야. 우리의 상식이나 사고로 이들을 판단해선 안 돼"
로체스터가 하얗게 질려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여기에 가뒀다는 것은, 그럼 우리까지도?"
그 말에 콘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들어오기 전에 우버의 미안한 눈길을 보지 않았나? 십중팔구 내 추측이 맞을 거야"
"이 모든 것을 결정한 것은 저 마귀 할멈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예측대로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아 나왔으니, 내심 엄청나게 노여워 하고 있겠군요"
"그래. 아까 할멈의 눈빛을 보니 바로 그런 살기가 느껴졌어"
두 사람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그래. 인간의 가장 원초적 감정이 분노와 미움이라고 하지 않든가? 물론 질투도 있겠지"
"그러한 일을 한 우리를 죽이고 싶겠지요. 우리를 그대로 두면, 자신의 권위가 계속 손상되리라 생각할 겁니다. 아마 단장님과 저를 그냥 두지 않으려 하겠는데요"
"그래.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지금 우리 목숨이 위험해. 시급히 무슨 방책을 세워야 해"
* * *
한참을 그렇게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밖에서 커다란 북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북이라기 보다는, 속이 빈 큰 통나무를 두들기는 소리 같았다. 이어서 여러 사람들의 소리를 합친 함성 소리도 들려왔다.
여기는 마을과 가까워서 웬만한 소리는 다 들린다.
이렇게 큰 소리로 신호를 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난 듯 했다. 두 사람은 사방을 살피며 동굴 밖으로 나왔다.
동굴 근처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환자, 마귀할멈, 심지어 동굴을 지키던 자조차 모두 사라져 버렸다. 큰 소리가 들리는 곳은 마을의 중심부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모든 남자들이 마을 중심부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돌무기로 전부 무장을 하고 있었다. 여자와 아이들은 어딘가로 피신했는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저 건너편 산에서 일군의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들과는 몸색깔도 조금 틀리고, 덩치도 더 큰 것 같았다. 이른바 다른 종족이다.
이들도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다. 얼굴에는 회색, 한 가지로 색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로 통일된 소리를 지르며 건너편 언덕을 넘어오고 있었다.
전투다. 종족간의 전투다. 원시인들의 전투가 눈 앞에서 벌어지려 하고 있다. 로체스터가 말했다.
"단장님. 이렇게 혼란한 틈을 이용해서 탈출하는 게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그 마귀 할멈이 우리를 가만 두지 않을 것 같은데요"
콘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지금 우리가 사라져 주는 게 맞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사이, 이쪽 마을의 입구 조금 높은 바위 위에 키리할멈이 올라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는 족장으로 보이는 늙은이가 창을 들고 서 있었다.
저 바위 위에 올라선 두 사람은 역할이 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족장은 실제 전투를 지휘하려는 것 같았고, 저 키리 할멈은 이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할멈이 잎이 달린 작은 나뭇가지를 휘둘러 전사들의 몸에 물방울을 뿌리고 있었다. 축복 의식으로 보였다.
한 방울이라도 그 물을 더 맞으려는 듯 전사들이 노파 쪽에 모여들고 있었다.
족장이 창을 들고 큰 소리로 외치자, 모두가 무기를 흔들며 이에 호응했다. 사기를 높이려는 수작이다.
저 건너의 침략자들도 역시 있는 힘껏 함성을 질렀다.
한 종족이 다른 종족을 침략한 것이다. 식량 부족이든, 사냥터 분쟁이든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건, 이들은 이제 곧 삶과 죽음이 걸려 있는 전쟁을 치를 것이다.
콘라드가 건너편 침략자를 잠시 바라 보다가 막 시선을 돌리려 할 때였다.
그의 목이 '휙' 소리가 날 정도로 급하게 꺾였다. 무엇을 본 것이다. 동시에 로체스터도 그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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