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기원 l (14)

신의 기원 l (14)
콘라드가 건너편 침략자를 잠시 바라 보다가 막 시선을 돌리려 할 때였다.
그의 목이 '휙' 소리가 날 정도로 급하게 꺾였다. 무엇을 본 것이다. 동시에 로체스터도 그것을 보았다.
"단장님. 저것, 저것..."
로체스터가 지금 막 언덕의 구릉을 넘어오는 자를 가리켰다. 그 둘의 눈은 동시에 한 곳에 못박혔다.
어슬렁거리며 구릉에 막 모습을 보인 자는 현대인에 못지 않게 몸집이 큰 자였다.
윌리엄 소령이었다. 한 발 먼저 이 세상으로 끌려 들어온 경호헬기 LCH의 조종사, 윌리엄 소령이었다.
아니다. 윌리엄 소령이 아니다. 옷만 그렇다. 그 정체는 윌리엄 소령의 상의를 양팔에 꿰고 있는 원시인이었다.
- 그렇다면 윌리엄 소령과 제임스 대위는?
불길한 예감에 그들의 가슴이 밑으로 '쿵' 떨어졌다. 그러나, 불행한 예감은 항상 맞는다 했던가?
그 다음에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온몸이 벌벌 떨렸다. 그들은 동시에 쌍안경을 꺼냈다.
해골이다. 꼬챙이에 꿴 해골이다. 오래된 해골이 아니다. 아직도 흰 두개골에 피와 살점이 그대로 묻어 있다.
하루 이내에 죽인 새로운 해골이다. 두 사람의 입에서는 동시에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본 것이다. 두개골의 이빨은 군데 군데가 금니로 되어 있었다. 그들이 알고 있고, 웃을 때마다 보았던 윌리엄 소령의 모습이었다.
꼬챙이에 꿰어져 다시 또 하나 올라오는 해골은? 더 물을 것도 없다. 제임스 대위다. 이놈들은 천인공노할 식인종들이다.
저놈들은 자신들의 동료 두 사람을 잡아 먹은 것이다. 그리고, 머리에서 가죽과 살을 벗겨내어, 저렇게 전장의 노리개감으로 만든 것이다.
그들은 동시에 쌍안경에서 눈을 떼었다. 그들의 눈은 놀라움에서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제어할 수 없는 분노의 불꽃이 그들의 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놈들을 용서할 수 없다.
그들은 급히 동굴에 들어가 이머전시 팩과 탄약통을 챙겨 메었다. 콘라드 대령이 소총을 들었다. 로체스터 대위는 권총을 두 자루 찼다.
그들은 뛰듯이 급히 마을로 내려갔다. 아직도 서로간에 마주보며 기세를 올릴 뿐, 본격적인 전투는 아직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 허공에 공포를 한 발 쐈다. 우버네 마을 남자들은 이 벼락통을 본 자들이 많다. 처음 만났던 헬기 앞에서다.
원시인들은 낮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바위 앞에서 공포를 한 발 더 쐈다. 벼락치는 소리가 들리자 족장과 키리 할멈의 눈이 동그래졌다.
두 사람이 바위 위로 올라가자 우버가 달려와 그들 옆에 섰다.
이제 바위 위에는 족장을 포함해 다섯 사람이 서 있게 되었다. 콘라드는 이들을 무시하고 서서히 거총 자세를 취했다.
콘라드들에게서 발산되는 무한대의 분노가 느껴지자 할멈과 족장은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저 회색 놈들 중에서도 괴수를 쏘아야 한다. 윌리엄 소령의 비행복을 어깨에 걸치고 우쭐거리는 바로 저놈이 우선 타겟이다.
맨 처음이 비행복을 걸친 놈이다. 두 번, 세 번째는 꼬챙이에 해골을 꽂은 놈들 차례다.
'타앙, 타앙'
총성이 한 발씩 울릴 때마다 한 놈씩 쓰러졌다. 조준경을 거치하고 확실하게 한 발씩 쏘았다.
'우르릉 탕'
총구에서 불이 번쩍일 때마다 벼락치는 소리가 난다. 아니, 실제 벼락이 친다. 한 번 쏠 때마다 귀청이 떨어져 나간다.
그 때마다 적들은 한 놈씩 머리가 폭발해 피를 뿌리며 쓰러진다.
우버 마을 모든 사람들은 보았다. 이 하얀 존재들이 하늘의 벼락을 내리치고 있다.
- 오오, 이 형언할 수 없는 힘이여. 감히 우러러 볼 수조차 없는 이 무시무시한 하늘의 분노여.
하늘에서 내려온 이분들은 도적질과 약탈을 일삼는 저 짐승 같은 무리들을 심판하고 계신다.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목숨은 이 분들의 의지에 달렸다.
키리 할멈과 족장을 비롯한 우버 마을의 원시인들은 어느 사이엔가 모두 고개를 땅에 처박고 있었다.
콘라드와 로체스터를 향해서였다. 절대 복종과 절대 경건의 표시다. 벼락치는 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회색 원시인들이 괴멸 되어가고 있다. 벼락치는 소리가 한 번 들릴 때마다 놈들의 머리가 터진다.
1/3 가량이 죽고 나서야,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일제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산등성이를 다 넘을 때까지 그들의 죽음은 계속되었다.
산등성이에는 회색 원시인들의 시체가 즐비하다. 사망자가 50여 명은 되는 듯하다.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으랴 싶었지만, 놈들은 인간이 아니다. 동료를 잡아먹은 괴물들이다.
그냥 놔둘 수는 없다. 그는 계속해서 남은 목표물을 겨냥했다.
* * *
콘라드의 마음은 점점 부서지고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그는 울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그의 영혼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저 언덕에는 회색 원시인의 시체가 무더기로 쌓여가고 있었다.
- 저 존재들은 식인종이다. 그러나, 사람이다. 자신은 지금 살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월한 과학 무기를 이용해서 반항할 수 없는 인간들을 도살하고 있는 것이다.
터질 듯한 분노로 적을 궤멸시키고 있지만, 동시에 살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량 살인에 대한 자기 혐오로 그의 정신은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로체스터도 마찬가지였다. 언덕 위의 회색 부족은 콘라드가 소총으로 처리하고, 가까이 돌진해오는 회색 부족들은 그가 권총으로 처리했다.
콘라드의 마음은 용암처럼 끓어 올랐다가 차가운 명왕성처럼 얼어 붙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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