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 있어요?

당당하게 모험가 길드의 문을 열고 들어간 승리를 맞아주는 건.
시비충 빡빡머리 근육맨도 아니었고, 주인공의 옆에 있는 히로인을 보고 껄렁대는 눈이 찢어진 양아치도 아닌, 평범한 모험가들이었다.
..사실 평범하지는 않았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여자였으니까. 지금 이 공간에 있는 남성이라곤 오직 승리 한 명 뿐이었기에.
'아마.. 이 게임은 남녀역전 세계관이면서 여성향 게임이었겠지.'
그렇다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여자밖에 없는 게 설명이 된다.
남녀역전 세계, 원래 세계에서는 보편적으로 남성이 성(性)적인 것에 더 관심이 많고, 그것에 미쳐있는 사람이 많았다면, 남녀역전 세계에서는 그것이 역전되어 여성이 성적인 것에 집착하고, 남성은 원래 세계의 여성처럼 그렇게까지 관심이 많지 않게 된, 그런 세계관을 말한다.
그녀들도 그가 이곳에 있는 유일한 남자라는 사실을 눈치챈 것일까. 승리 쪽으로 향하는 시선은 줄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를 쳐다보고선 서로 뭔가를 속닥이기 시작한 그녀들.
그들은 나름 조용하게 말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무리 능력의 대부분이 봉인 당했다고 할지언정 승리의 육신은 마스터에 달한 육신이었기에 그녀들의 대화를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
먼저 왼쪽 테이블에 앉은 3인조의 경우는
"야, 티 내지 말고 문 쪽 봐 봐."
"시발, 저거 뭐냐...? 귀족인가?"
"아니, 내가 알기론 빨간 머리 귀족은 없는데. 옷 입은 것도 평민, 대장장이..?처럼 보이고."
"여친 있냐고 물어볼까?"
"저 얼굴에 여친이 없겠냐? 넘볼 걸 넘봐라."
"시발... 하긴 저 얼굴에 여자친구가 없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어떤 년인지는 몰라도 밤마다 좋아죽겠네. 부럽다 시발."
승리의 외모를 칭송했고.
오른쪽 테이블에 앉아 회의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험가 파티는
"와.."
"어..?"
"세상에.."
"허어..."
그를 보고 말문이 막힌 듯 감탄사만 내뱉을 뿐이었으며,
그의 맞은편에서 게시판을 보고 있던 금발에 태닝한 양아치 여자와, 빼빼 마르고 어딘가 음침해 보이는 여자, 살짝 뚱뚱한 여자, 그리고 보기만 해도 3대 중량이 얼마일지 궁금해지는, 근육이 엄청난 여자로 이루어진 4인조는 갑자기 나타난 절세미남을 보며,
"시발 나 아랫입에 홍수 터진 거 같다."
"너도 그러냐? 나도. 가서 여친 있냐고 물어봐."
"있으면 그냥 술 마시는 건데 뭐 어떠냐고 하면서 약 먹이고 재우고, 그러면 되는 거지?"
"뭘 시발 당연한 걸 물어. 넌 저걸 그냥 보낼 거냐?"
..그를 따먹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시발 잘 보니까 저 새끼들 NTR 4형제, 아니 4자매잖아? 이 게임 되게 오래된 거 아니었어? 저놈들이 왜 여기에?
-NTR은 오래된 전통이며 이는 통일신라시대 처용가에도 나와 있다.
..생각해보니 없을 이유도 없네.
승리는 노벨유토피아의 한 독자가 달았던 댓글이 진실이었던 것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시발 NTR도 여자를 뺏어야 웃으면서 보는거지.. 남자를, 그것도 내가 먹히면 웃지도 못한다고!!'
지금 내 몸이 대장장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흰 피부에, 눈에 띄는 붉은 머리이긴 한데, 그게 그렇게 인기 많을 일인가? 라고 생각한 승리는 지금 그의 모습을 원래 세계의 여성으로 환원시켜 봤다.
붉은 머리에, 흰 피부, 노동으로 다져진 잔근육에, 군살 없는 글래머, 대장장이 특유의 쾌활한 성격까지.
..인기 많을만하네.
역시 남녀역전 세계관은 여러모로 생각하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세계관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4인조는 아직도 계획을 짜고 있었다.
'설마 진지하게 날 따먹을 계획 세우고 있는 거니..?'
원래 있었던 세계에서 여자들이 다가온 거라면 승리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받아들였겠지만, 이 세계의 여자라는 것들은 정신상태가 원래 세계의 남자 놈들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몸이 여자라고는 해도 속이 남자인데 그걸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먹을 수 있는 것은 가능충들밖에 없을 것이다!! 난 가능충이 아니야...!
그녀들은 살짝 얼어붙은 승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금발 태닝의 여자가 말했다.
"...평범한 놈들 따먹었을 때는 아무리 오래 따먹어도 한 달이면 질렸는데... 저런 애면 평생 안 질리겠다. 애들아, 나 사랑을 찾은 거 같다."
"미친놈. 그런다고 양보 안 한다. 그게 룰이었잖아? 다 같이 발견한 애는 다 같이 가지기로 한 거."
"시발. 쟤 하나만 양보해주면 안 되냐? 앞으로 내가 먼저 발견한 애들 다 양보할게."
"지랄. 우리는 눈이 없냐? 평범한 놈들 몇천, 몇백명을 데려와도 쟤 하나만 못할 거 같은데. 닥치고 작업이나 시작해라. 에밀리, 오늘은 네 차례야."
'에밀리? 누구지?'
그러자 에밀리, 그러니까 근육녀가 기마자세를 유지하며 대답했다.
"후욱, 아 근데 너무 잘생겨서 좀 쫄리는데. 다음에 평범한 놈 꼬실 때 내가 세 번 할 테니까 오늘 나 대신 해줄 년 없냐?"
시발 저 흉측한 몸에 에밀리라는 이름을 달고 산다고...? 순박한 시골 처녀 같은 이름을 달고선 몸은 스테로이드를 물 마시듯 마신 것 같은 몸을 가진 미친 여자였다!! 전 세계의 에밀리한테 사과해...!!
그러자 금태양녀가 답했다.
"어휴 쫄보년, 그냥 자궁 떼라 이년아. 비켜봐 내가 해볼게."
금태양녀는 그녀의 동료들과 말을 끝내고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승리에게 다가왔다. 나름 미인이긴 했으나..
'속은 남자다. 속은 남자다.'
승리는 이미 그들을 여장남자 집단으로 보고 있었기에 흥분 따위는 하지 않았다.
"저기요, 빨간 머리 오빠."
"나, 나 말하는 거요?"
당연히 금태양녀가 연상이라고 생각했던 승리는 그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금태양녀의 발언에 좀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고 말았다.
"네 맞아요. 혹시 여자친구 있어요?" 그녀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시발...! 넘어가면 안 된다...! 저 새끼는 남자라고!!
"여, 여자친구 있소... 이곳에 온 것도 여자친구 찾으러 온 거요. 그럼 나는 이만.."
-터업.
그가 급히 자리를 뜨려고 하니까 그녀가 손목을 낚아챘다.
"여자친구 있다고요? 와, 누군진 몰라도 되게 부럽네. 여자친구가 누군데요? 모험가 길드 관계자라면서요? 여기 있어요?"
승리는 그녀의 질문에 주위를 둘러보며 용사를 찾아봤지만, 용사는 이곳에도 없는 듯 했다.
"저기 오빠? 여자친구가 누구냐니까요."
"용.."
'사'라고 얘기하려 했지만 그녀는 아직 용사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 그가 용사라고 말하면 정신 나간 놈 취급받겠지.
그래서 승리는 그녀의 이름을 대려 했는데, 그제서야 한가지 문제점을 깨달았다.
'용사... 이름이 뭐지?'
여태까지 용사의 이름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여기서 더 우물쭈물했다간 그냥 강제로 끌려가 강제착정엔딩이 될 것이 틀림없어..!
"그, 그대가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큰 대검을 메고 다니고, 가죽조끼를 입고 다니며,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지고 있소."
승리는 용사의 외모를 묘사했다. 이 정도면 대충 누군지 알아듣겠지.
용사의 생김새를 훌륭하게 묘사해서 조금 뿌듯해하고 있는 승리와 반대로 그가 말한 용사의 용모를 듣고 그녀의 얼굴에 냉기가 서렸다.
"하, 또 아이리스 그년이야?"
'아이리스? 그게 용사의 이름인 건가?'
그보다 또라니, 무슨 말일까.
금태양녀는 승리가 앞에 있다는 사실도 잊은 듯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시발 그년이 나보다 잘난 게 뭔데... 모험가 등급도 내가 높은데 왜, 왜 다들 어렸을 때부터 그 고아년만 주목하는 거야? 왜?"
아무래도 금태양녀는 용사에게 큰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인 것 같았다.
이런 애들이랑 엮여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승리가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야." 그녀가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너 내가 아이리스 그년 생각도 안날만큼 기분 좋게 해줄게. 따라와."
그녀는 승리의 손목을 쥔 힘을 더 강하게 하며 그의 몸을 자신의 쪽으로 끌고 오기 시작했다.
"이, 이거 놓으시오!! 나는 애인이 있다니까! 누가, 누가 좀 도와주시오!"
시발 이대로 정신이 남자 놈들인 가짜 여자들한테 먹히긴 싫다고!!!
그러나 모험가 길드의 사람들은 그저 분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눈을 피할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이 도움을 못 본 척하며 속닥이는 내용이 승리의 귀에 들어왔다.
"쯔쯔... 남자 한 명 인생 또 망가지겠구먼. 아무리 마을 치안에 혁혁한 공을 세우는 인재들이라지만 저 패악질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런 변방에 기사 나리들이 순찰 도는 일이 적으니."
"그래도 저 얼굴이면 더렵혀져도 좋다는 년들 많을걸?"
"그럼 뭐하냐 저 4인조한테 한번 돌려진 남자들은 어떻게 됐는지 알잖아."
"복상사했거나, 자살했거나였지 아마?"
'...그런건 듣고 싶지 않았는데.'
대체 얼마나 쥐어짜이면 복상사라는 게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인가. 그의 온몸에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벌컥!
그때, 모험가 길드의 문이 열렸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은 용사, 아이리스였다. 용사 아이리스가 문을 열고 처음 뱉은 한마디는-
"시발... 임무도 실패해서 빡치는데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였다.
'..세상 사람들, 저년이 용사랍니다. 진짜 쟤한테 세상의 운명을 맡겨도 괜찮은 거에요?'
저딴 게 용사라는 허망함이 든 승리였지만, 감독이자 영화배우로 활동하여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동시에 받았던 경력을 살려 혼신의 연기를 시작했다.
"아,아이리스...!"
눈물을 글썽이며 비운의 히로인을 연기하는 승리, 그의 신들린 표정 연기에 그 자리에 있던 모험가들 모두가 홀딱 넘어가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심지어 몇몇은 당장이라도 구하려는 듯 벌떡 일어섰으나..
"어? 대장장이 씨? 여기는 왜 왔어요? 그보다 제가 이름을 알려드렸었나요?"
눈치가 없는 상대배역이 분위기 파악을 못해 그의 연기를 받아주지 못했고... 그런 아이리스의 반응에 주변의 사람들의 표정은 안타까워하는 표정에서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바뀌기까지 5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남자친구를 대장장이 씨라고 부르는 여자친구가 어디 있겠나 아오 저 폐급...
..아 맞다. 내가 이름을 안 알려줬지. 이건 내 잘못이었네.
그녀의 호칭에 사람들이 승리를 약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그런 건 무시하기로 한 승리가 연기를 이어갔다.
"흐윽, 그날, 우리가 의견충돌로 싸우고 나서 그렇게 보낸 다음에 네가 자꾸만 생각나서... 네가 일하는 곳에 찾아왔는데, 이 사람들이 너 같은 허접한, 여자보단 자기들이 더 즐겁게 해주겠다고, 순순히 따라오지 않으면 이곳에서 옷을 찢고 강간하겠다면서 막, 끌고 가려고..흐어어어."
쟤네가 그렇게까지 심하게 말한 적은 없지 않냐고?
에이.
착한 사람 귀에는 다 들렸다 이 말이야.
그러자 순식간에 강간미수범이 되어버린 금태양녀가 당황하며 그의 머리끄댕이를 쥐고 잡아당겼다.
"시, 시발. 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우리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는 순간 당황하여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 금태양녀를 보며 속으로 씨익 웃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악역 연기까지 다 해주고 있네? 고맙다..!!!'
승리는 무서워하는 연기를 하며 용사 후보생에게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했다.
"꺄악! 아이리스! 도와줘!!"
자 아이리스, 미녀, 아니지. 미남 히로인이 위기에 빠지면 각성하는 게 용사잖냐. 내가 판은 다 깔아줬다...! 4인조 너네 다 뒤졌어!!!!
그렇게 생각한 승리가 마주한 것은.
4인조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멸치녀에게 맞고 뻗어버리는 용사의 추한 모습이었다.
아오 저 폐급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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