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끼 웃는데?
고블린 무리를 토벌해달라는 임무를 수락하고,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마물들이 나오는 숲으로 향한 나는 결국 임무에 실패하고 말았다.
몸보다도 커다란 대검은 나무가 빽빽한 숲속에서 휘두르기엔 너무나 커다랬고, 나무와 함께 마물을 베어버리는 전설 속의 용사님 같은 무위는, 내 근력으로는 불가능했다.
나무가 빽빽한 숲에서 벗어나 어쩌다가 넓은 공터로 나오게 됐는데, 그것마저 녀석들의 노림수대로였더라
. 빽빽한 나무들만 아니라면 베어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휘두르는 대검은 고블린조차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무겁고, 느렸다.
그들은 내가 넓은 공간에 나가도 공격할 수 없다는 그 사실을 깨닫고 다 같이 공격할 수 있는 공터로 나를 유인한 것이었다.
수가 적기라도 했으면 맨손으로라도 처리했을 텐데, 의뢰인이 말한 7마리는 알고 보니 그들 중 극히 일부이더라.
결국 나는 그 상황에서 고블린을, 내가 그토록 무시했던, 겨우 그 고블린을 상대로 뒤를 돌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선 정말 그 대장장이 씨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거였네. 정말 무기를 롱소드나 숏소드로 바꿔야 하나... 그건 멋이 없는데.'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터벅터벅 모험가 길드로 복귀했다. 임무를 실패한 데다가 잠수까지 타면 진짜 모험가 신분을 박탈당할 수도 있기에 실패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
그런데 어째서인지 평소에는 늘 칙칙하고 조용했던 모험가 길드가 어째서인지 어수선했다.
"시발... 임무도 실패해서 빡치는데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나는 작지 않은 목소리로 모험가 길드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고, 그런 날 마주하는 건 며칠 전에 본 대장장이 씨와, 그의 손목을 잡고 있는 '애인 빼앗기 4자매' 중 리더인 클로에였다.
'헉, 설마 내가 임무에 실패했다고 욕지거리하는걸 들은 건 아니겠지.'
그는 흔치 않은 미남이었다. 나만 알고 있길 바랐는데 그가 모험가 길드에 와버린 이상 유명해지는 건 순식간이겠지. 그렇다면 수많은 여자가 그에게 접근할 텐데, 뭣도 없는 내가 인성까지 더러운 걸 그가 알게 된다면? 그는 나를 여자로 봐주지도 않으리라.
그런데...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대장장이 씨는 왜인지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자 그가 입을 열었다.
"아, 아이리스...!"
내가 그에게 이름을 알려준 적이 있었나?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저런 미남이 내 이름을 친근하게 불러줬다는 것만으로 어깨가 들썩이고 광대가 올라오기 시작했기에.
나는 자꾸만 올라오려는 광대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어? 대장장이 씨? 여기는 왜 왔어요?"
아오, 대장장이 씨 이름만 알았으면 이름을 불러서 나 이런 미남과 알고 지낸다. 라고 자랑하고 다니는 건데.
뭐 어때, 이름이야 앞으로 알아가면 되는 거고, 서로 이름을 아는 사이에서 발전해나가 자식 이름을 같이 정할 사이가 될 텐데!!
내가 자식뿐만 아니라 손자의 이름까지 생각하려 하니까, 그가 살짝 울먹이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날, 우리가 의견충돌로 싸우고 나서 그렇게 보낸 다음에 네가 자꾸만 생각나서..."
말도 안 돼. 지금 저 정도 되는 미남이, 나를 잊지 못해서 이 먼 길을 찾아왔다고 하는 건가? 뭐지? 손주 이름은 뭐로 해야 하지?
다시금 손주의 이름을 생각하려고 했으나 그가 할 말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
"이 사람들이 너 같은 허접한 여자보단 자기들이 더 즐겁게 해주겠다고, 순순히 따라오지 않으면 이곳에서 강간하겠다면서 끌고 가려고..흐어어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이성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저 새끼들이 지금 [내 남편]을, 강간하겠다고 했다는 건가? 심지어 [내 남편]을 울려?
우는 모습마저 잘생기고 오히려 울고 있기에 어딘가 야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나는 기분이 나빴다.
[내 남편]을 울릴 수 있는 건 나뿐이고, 나 또한 [내 남편]을 울릴 수 있는 장소가 침대 위가 아니면 허락되지 않는 것을, 외간 여자가 [내 남자]를 울려...? 용서할 수 없는 년들이었다!!
클로에는 자기 잘못을 폭로한 대장장이 씨의 말을 막으려는 듯, 그의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고 뭔가를 외쳤다. 그러나 클로에가 하는 말은 이해 할 수 없었다.
"꺄악! 아이리스! 도와줘!"
-뚝.
그의 비명과 함께 내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아무것도 들리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은 단 두 가지 뿐이었다.
저 녀석들을 때려눕힌다.
그리고..
'[내 남편]과의 농밀농후찐득밀착...후후후.'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에게 호감이 있는지 없는지 얘기를 듣지도 않았지만, 일단 저 애처롭게 내 이름을 부르며 구해달라는 그의 모습을 보라.
내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간신히 참아낸 거지, 다른 년들이었다면 벌써 애를 5명은 만들었을 정도의 야함을 풍기는 유혹과 다름없었다. 저 정도의 유혹을 하는데, 당연히 나한테 호감이 있는 거겠지? 그치?
만에 하나 그가 내게 호감이 없는데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유혹을 한 것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남자는 강한 여자에게 끌리기 마련이니까. 내가 눈앞의 4인조를 멋있게 처리하면 그대로 반해버리리라.
내가 클로에의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을 무시하며 앞으로 한발짝 씩 다가가자, 4인조에서 가장 약한 멸치녀, 에일린이 날 가로막았다.
나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어 보이곤 말했다.
"꺼져."
그러자, 에일린은 분하다는 듯 얼굴이 빨개진 채 내게 주먹을 날렸다. 이런이런, 주먹을 날리는 동작이 너무 크잖아. 눈을 감고도 피할 수 있겠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피한 뒤, 그녀의 복부에 강한 펀치를 날렸다.
-콰앙!!
모험가 길드 내부가 울릴 정도의 강렬한 펀치. 에일린은 그대로 기절했다. 모험가 길드의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목도했다.
"이, 이런 시발!! 뭐해 아이리스 저년 안 막고!!" 클로에가 외치자, 4인조의 근육녀 에밀리와, 뚱녀 메리가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소위 덩치만 믿고 나대는 놈들. 그런 녀석들의 상대는 평범한 녀석들의 그것보다 더 쉽고 간단했다.
나는 더 빨리 내게 근접한 메리의 디딤발에 로우킥을 날렸다!! 로우킥은 상대의 다리에 무게가 많이 실려있을수록 더 강한 위력을 보이는 기술. 체중이 많이 나가는 메리에게는 아주 치명적이지. 역시 그녀는 로우킥 한 대를 맞고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리타이어했다.
"잡았다 이 년!!" 근육녀 에밀리가 내 망토를 붙잡은 채 말했다. '그것이 내가 일부러 잡혀준 것이라는 것도 모른 채.'
나는 빠르게 망토를 벗어 에밀리의 얼굴을 감쌌다.
시야가 가려진 에밀리가 발버둥을 쳤지만, 시야가 가려진 병신의 공격은 아무리 빨라도 맞지 않는 법이다.
나는 에밀리의 복부를 강하게 강타했다.
-콰앙-!쾅!콰아앙!!
그러나 역시 4인조에서 가장 뛰어난 신체 스펙을 갖고 있는 그녀였기에,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마치 바위를 때리는 느낌이었다.
에밀리를 한 번에 쓰러트릴 수 있는, 약점을 공략할 필요가 있었다.
목? 아니야, 얼굴이 가려진 지금도 그녀는 자신을 쉽게 기절시킬 수 있는 방법인 초크를 대비하여 목만큼은 열심히 지키고 있었다.
얼굴을 노리자니, 저 무식하게 휘두르는 공격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아. 생각났다.
여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약점이.
나는 에밀리의 젖가슴을 매우 강하게 쳤다.
-뻐어엉!!
주변의 모험가들이 흠칫하며 본능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보호하듯 가렸다.
비겁한 짓인 거 아니냐고? 이곳은 냉철하고 피튀기는 모험가들의 세계, 그런 걸 따지는 년은 살아남지 못한다.
마침내 에밀리도 가슴을 부여잡으며 쓰러지자, 클로에가 허벅지에서 단검을 꺼내 달려들었다.
'후, 클로에. 넌 날 마지막까지 실망하게 하는구나.'
나는 그녀를 한번 비웃어준 뒤, 그녀의 손목을 왼속으로, 멱살을 오른손으로 잡고 몸을 틀어 오른쪽 팔꿈치를 그녀의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운 뒤, 상체를 확 숙이며 팔을 앞으로 당겼다.
그야말로 완벽한 업어치기.
클로에는 호흡곤란이 온 듯 꺼억꺼억 거리다가 마침내 기절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험가들이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최하급 모험가인 내가 상위 모험가인 4인조를 꺾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나는 몸을 살짝 떨고 있는 대장장이 씨에게 다가간 뒤 말했다.
"가자 애기야!"
그러자 그는 얼굴을 붉히며,
"네에... 여보..."
라고 답했다. 역시, 방금 내가 보여준 여성적인 모습에 그의 '이 여자에게 보호받고 싶다.' 라는 남성적인 본능이 깨어난 게 틀림없다.
나는 대장장이 씨를 '왕자님 안기'로 안은 다음 모험가 길드를 나왔다.
대장장이 씨는 어딜 가도 눈에 띄는 빨간 머리와 그와 대비되는 흰 피부를 가진 미남이었기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것이 내 여자의 자존심을 더 세워줬다.
'나 이런 남자랑 사귀는 여자다.' 라는 느낌이랄까?
그는 그게 부끄러웠는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빨리 집으로 가주세요오...' 라고 하더라. 허억! 너무 귀여워서 길바닥에서 덮칠 뻔했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인큐버스..!
마침내 내 숙소에 도착한 우리 둘 사이엔 야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입술을 거칠게 탐한 뒤 말했다.
"후우..그러고 보니까 우리 애기, 아직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이름이 뭐야?"
"하아..하아..제 이름.. OO이라고 해요.."
어째서인지 대장장이 씨의 이름을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름이야 거사를 치르고 난 뒤에 다시 물어도 되니까.
"좋아, 그러면... 이제 불 끌까?" 나는 그에게 신호를 보냈고,
"아이 차암... 그런 거 묻지 마세요.." 그는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아, 자꾸만 웃음이 나오네. 하하하하하!!! 이거 설마 꿈은 아니겠지? 음, 이렇게 현실 같은데 꿈일 리가!!!
***
"으흐흐.."
"야, 이 새끼 웃는데?"
"냅둬, 야한 꿈이라도 꾸고 있겠지."
'... 시발 저 폐급 용사 새끼. 기절할 거면 얌전히 기절만 하지 왜 처웃고 난리야. 나 놀리냐?'
멸치녀에게 간단히 뻗어버린 용사와 승리를 끌고 깊은 산중의 산장으로 온 4인조.
4인조는 모험가 길드 내부에서 악명 높은 년들이었지만, 그런 그녀들이 안 잡히는 이유 또한 있었다.
1000명 중 한명 나온다는 마나 각성자가 무려 3명이나 있는 모험가 파티. 그녀들은 이 마을 모험가 길드에서 가장 강한 모험가 파티라더라.
좀 반반한 평민 남자 몇 명 강간했다고 그들을 내치기엔 너무나 큰 손해인 것.
결국 승리와 아이리스를 끌고 가는 4인조를 막아서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4인조 중 멸치녀가 승리의 볼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이야... 진짜 잘생기긴 했네. 왕자님 초상화보다 잘생긴 거 같은데? 그냥 지금 먹으면 안 되냐?"
"그거 인정."
뚱녀가 멸치녀의 말을 받아주며 킬킬거렸다. 그러자 금태양녀가 말했다.
"안돼. 보니까 얘네 둘 사귄 지 얼마 안 돼서 둘 다 아다인거 같은데, 첫 아다는 아이리스 저년이 깨고 나서 저년 앞에서 먹어 줘야 한다고. 그 다음부터 너희 마음대로 하던가."
참으로 금태양 다운 년이로다. 이 와중에도 NTR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았구나.
-번뜩!
순간 승리는 금태양녀의 말을 곱씹던 중 깨닫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깨닫고 말았다.
...잠깐만?
'아이리스 저년이 나 아는 척 안 했으면 대충 몇 번 하고 그냥 멀쩡하게 보내주는 거 아니냐..?'
복상사 할 때까지 시키니 뭐니 해도, 그건 '약한 남자'들 기준이고, 그는 약화되긴 했어도 마스터이기에 복상사할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
이 세계 남자들처럼 멘탈이 약하지도 않으니까 자살은 더더욱 할 일이 없고...
'..아오!!!진짜 도움이라곤 하나도 안되는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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