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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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 년은 대체 언제 일어나?" 4인조의 뚱녀가 입을 삐쭉 내밀곤 헤실헤실 웃으며 처 자고있는 폐급 용사를 툭툭 건들곤 말했다.
"에일린 너, 대체 얼마나 세게 후려 갈긴 거야?"
근육녀가 멸치녀에게 말했다. 에일린은 멸치녀의 이름인 모양.
"아니이!! 나 진짜 억울해, 보통 저항 거센 남자들 뺨 때릴 때 보다 약간 센 정도로만 힘 조절해서 쳤다니까?"
멸치녀, 에일린은 자신의 빈약한 가슴을 두드리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제발 그만해. 니들이 그런 말 할수록 쟤한테 세계의 미래가 달려있는걸 아는 나는 엄청나게 죽고 싶어진다고.
그때 금태양녀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상위 모험가니까 에일린이 센 것도 맞긴 한데, 그렇다고 에일린이 힘 조절을 하는데 실수를 할 정도의 초보는 아니지. 에일린은 남자를 상대로 많이 해봤으니까. 그냥 저년이 뒤지게 약한 거야."
'애들아 제발.'
제발 그만해...!!
그 뒤지게 약한 년이 없으면 세상이 망해... 걔 없으면 우리 다 죽어!!
"응... 으응..."
그때 , 폐급용사가 잠시 흐르던 정적을 깨고 의식을 되찾았다.
"우리 애기 이름은..헛, 너, 너네들 뭐야!!"
얼마나 꿀잠을 잔 건지, 자기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져있는지도 모르는 그녀.
한참을 빼액빼액 소리를 지르던 폐급 용사는, 자신의 묶여있는 몸과, 마찬가지로 손목이 묶여있는 날 뒤늦게서야 눈치채곤 '어...?' 하더니, 드디어 상황 파악을 한 듯 했다.
잘 잤니? 나는 내 정조가 위험해서 한숨도 못 잤단다.
소설로만 읽을 때는 몰랐지... 남녀역전 세계에 빙의한 남자가 얼마나 무서울지를.
뭐?
여자들이랑 쉽게 할 수 있으니까 좋은 거 아니냐고?
이 세계에서 남자가 그런 얘기 하면 바로 걸레 취급당함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매장당해도 여자랑 할 수 있으면 괜찮다는 놈도 속이 시커멓고 사고회로가 남자 같은 여자를 본다면 바로 뒤돌아서 도망칠 것이다!!
뭐든 정도가 있는 법이지. 쟤네는 그냥 남자라니까? 여장남자나 다름없다고!!
한승리가 역전 세계의 여자들에 대한 한(?)을 속으로 풀고 있으니 용사, 아이리스가 4인조에게 또다시 빼액거리기 시작했다.
"이, 이거 안 풀어? 너네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그녀가 시끄럽게 빼액빼액 소리를 질러대자 금태양녀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야... 당연히...
...무사하겠지 병신아. 너 뭐 돼?" 라고.
뭐, 그렇겠지. 폐급 모험가 하나 구하자고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모험가 파티와 적대하는 호구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심지어 모험가 파티의 과반수가 1000명 중에 한 명밖에 없다는 마나 각성자라면 더더욱.
현대인이 보기에는 천 명 중 한 명이라는 게 꽤 많아 보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 게임의 배경인 중세 시대로 간다면?
흑사병 유행 전의 중세유럽대륙의 인구수가 약 7000만, 대도시의 인구수가 10만 정도인 걸 생각하면 마나 각성자는 나름 큰 도시에서도 100명 정도밖에 없는 초고급 인력인 것이다.
그 초고급 인력 중 한 명인 금태양녀가 용사의 이마를 툭툭 밀며 말했다.
"야, 너 네가 용사랑 닮았다는 이유로 주목받으니까 뭐 되는 줄 알고 있나 본데, 너 현실은 마나도 없는, 몇 달째 최하위 모험가 인생이잖아? 병신, 나였으면 자살했다."
금태양이 말을 마치자 나머지 3명이 킬킬 웃으며 동의한다는둥의 말을 했다.
용사는 수치스러운 건지, 모닥불 앞에 묶여있기 때문인 건지,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쯧..폐급이면 폐급답게 지 주제도 모르고 나대기만 할 것이지 왜 풀죽어하고 그러냐. 보는 사람 안쓰럽게.'
승리가 보다 못한 나머지 그들에게 말했다.
"야 이 쓰레기 새끼들아. 너네 그렇게 사는 거 너희 아버지들도 아시니? 아... 너네 같은 놈들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겠구나? 친엄마가 창남촌 단골고객이라 막 뽑아 재껴서 누가 진짜 아빠인지도 모르지?"
이게 남녀역전 패드립이다 새끼들아. 얼얼하지?
"흐윽.."
"이 개자식...!! 에밀리의 가정사는 어떻게 알아낸 거야!!"
"남의 가정사로 그렇게 조롱하다니!! 잘생기면 다냐!!"
어... 진짜 있었다고? 근육녀, 아니 에밀리야 왜 울고 그래...
너 그냥 제일 근육 많은 남자 찾으면 그게 너네 아빠일 거 같은데?
아. 이 세계에서는 엄마의 피가 더 진한 경우가 많으려나.
아무 말이나 막 뱉어서 나온 패드립이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듯 제대로 약점을 찌르게 되어 도리어 당황한 승리였지만.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도발을 이어 나갔다.
"괜히 상관없는 애 건들지 말고 나만 건드려. 막상 납치하고 보니까 쫄리냐? 가슴이 작으면 담력도 없다는데, 맞는 말이었나 봐? 우리 아이리스는 늘 대범했는데."
이어지는 그의 도발에 얼굴을 구기며 소리치는 4인조.
"뭐라는 거야!! 네가 내 가슴 본 적 있어!!!"
"크기만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 테크닉이랑 부드러움이 중요한 거거든!!!!"
"나 정도면 딱 평균이거든!!!"
"내 대흉근을 무시하는 거냐!!!!!"
‘...마지막 한명은 이상한데?’
아무튼 그들의 시선을 내 쪽으로 돌리는 건 성공했다. 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도발하는 승리.
'아니 뭐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얼굴이라도 아는 사람이기도 하고... 용사가 될 테니까 빚을 만들어놔도 나쁠 건 없겠지.'
절대 그녀에게 호감이 있다던가 그런 건 아니다!! 절대로!
"딱 보니까 거기도 엄청 헐렁헐렁해서 남자는 아무것도 못 느끼고 너네들 혼자만 기분 좋아서 뻗어버린 건데 쪽팔려서 그 사실 숨기려고 복상사니 뭐니 스스로 소문낸 거지? 그렇게 살면 안 쪽팔려?"
"풉."
반대편에서 아이리스가 웃었다. 넌 제발 어그로 좀 끌지 말고 가만히 있어...!
묵묵히 승리의 도발을 다 듣고 있던 금태양녀가 입을 열며 말했다.
"야 쌍놈아... 난 남자라고 안 봐준다. 적당히 해... 지금도 많이 참아주고 있는 거다..?"
금태양의 얼굴이 파들파들 떨렸다. 이마에 핏줄까지 올라온 것을 보아 아무래도 진짜 열받은 모양.
그렇다면 아주 쐐기를 박아 줘야지. 여기서 멈춰버리면 죽도 밥도 안된다!!
"얘 썡냄애~ 는 늠즈르그 은브즌드~ 즉등희흐..."
K-말싸움 필살기, 발음 뭉개 놀리기. 이 기술은 상대가 이미 빡쳐있는 상태라면 무려 5배의 위력을 주지. 저 녀석 아마 지금쯤 열깨나 받았으리라.
"이 새끼가!!"
-짜악!!
금태양녀의 손바닥이 내 뺨을 치고 지나갔다. 그 모습에 재빨리 다가와 그녀를 말리는 4인조의 나머지 세 명.
"야야 참아!!"
"지금 저놈이 한 말을 듣고 참으라고? 이거 놔!!"
"아오 진짜. 너가 이러는 게 쟤가 노리는 거라니까! 딱 보면 모르냐? 지금 자기 여자친구 지켜주겠다고 자기가 다 떠안고 있는 거잖아."
근육녀가 말했다.
‘..예리한데?’
뇌까지 근육으로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머리가 잘 굴러가는 모양. 몸도 좋고 머리도 똑똑하고...?
마! 니가 용사해라.
"후우... 그래 이제부터 거사를 치를 건데 얼굴을 다치면 할 맛도 떨어지겠지."
'그딴 이유로 화 참지 말라고 새끼야..'
금태양녀가 용사의 배를 발로 툭툭 건들며 말했다.
"이야~ 넌 좋겠다? 너 위해서 뺨 맞아주는 남자친구도 있고? 남자친구한테 보호받는 기분은 어때? 진짜 어떻게 이런 한심한 년이 저런 좋은 남자를 만난 거지?"
또다시 갈굼이 시작되었지만, 용사의 표정은 더 이상 수치스러울 때 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뺨을 맞은 승리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이내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분노.
그녀의 얼굴에 담긴 감정이었다.
분노[憤怒]
몹시 분개하여 내는 성.
오장육부가 뒤틀릴 듯한 느낌과 함께 몸의 근육이 떨리며 예열되고, 목덜미가 뻣뻣해진다.
교감신경이 자극되어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고 이는 신체의 모든 에너지를 전투 시 근육에 사용할 수 있게 소화 운동을 늦춤과 동시에 신체가 본래 능력을 100퍼센트 다 사용할 수 있게끔 심박수를 높이고, 폐가 더 많은 공기를 담을 수 있게끔 호흡은 거칠어진다.
혹자는 말한다. 싸움에 있어 분노하여 평정심을 잃으면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라고.
현실이라면 그 말도 맞는 말이겠지만, 게임이나 만화에서 주인공의 분노는 곧 각성을 부른다고.
용사의 몸에서 황금빛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넘실대는 기운을 본 4인조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서린다.
멸치녀가 소리쳤다.
"시, 시발 저년 최하급 모험가잖아!! 어떻게 저렇게나 많은 마나를 다루는 건데!!"
마나, 매체에서는 이 힘으로 마법 같은 걸 사용하거나, 스킬을 쓰거나, 신체를 강화하거나 하는 신비한 힘이다.
'게임 속 세계관이라 해서 개나 소나 다들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지.'
마나를 다룰 수만 있다면 별다른 능력이 없어도 중급모험가 이상은 될 수 있고 원한다면 기사단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기사는 모험가에 비해 제약이 많아 대부분 모험가를 선택한다고 하지만.
마나로 신체를 강화하면 10살짜리 꼬마가 건장한 20대 남성을 이길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까. 어지간해서는 비(非)마나각성자가 마나 각성자를 따라잡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하리라.
‘그렇게 사기적인 힘인데 왜 나는 안 쓰고 있냐고?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거든. 스킬이야 스킬명을 외쳐서 발동시키는 방식인 거 같은데 지금 이 대장장이 몸의 기능 대부분이 봉인돼서 스킬도 함께 봉인됐고, 그러면 스킬 대신 마나로 신체를 강화해야 하는데..
그거 대체 어떻게 하는 건데.
마치 '위장을 컨트롤해서 음식물을 더 빨리 소화해라.' 같은 느낌이랄까.
눈을 감고 집중하면 뭔가 몸속에 흐르고 있는 게 느껴지긴 하는데, 느껴지기만 하고 이걸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거나 그럴 수는 없더라. 할 수 있었으면 진작에 이 새끼들 다 죽였지.‘
아무튼, 비각성자와 각성자의 격차는 그만큼 큰 것이다. 검성이라고 불리는 자들 중에서는 간혹 마나를 쓰지 못함에도 마나 각성자들을 압도하는 이들도 있었다곤 하는데, 그건 검성 정도 되니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모험가 길드에서도 개인이 상위모험가가 되려면 마나를 각성해야 한다는 필수 조항이 있을 정도라고.
그런 사기적인 힘을, 지금 용사가 각성한 것이다. 비 마나 각성자였던 적이 마나를 각성했다는 것은 더 이상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는 장담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멸치녀와 근육녀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듯, 서로의 무기를 들어 아이리스에게 돌진했다.
"자, 잠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금태양녀가 그들을 말리려 했으나 너무 늦었다는 듯 굉음이 들려왔다.
-콰앙!!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육편이 되어 날아가는 멸치녀의 머리통과, 마나로 신체를 강화해 몸을 보호했음에도 팔이 부러져 왼쪽 팔이 덜렁거리는 근육녀의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한명이 죽어버린 4인조, 아니 이제 3인조가 된 그들은 눈앞에 있는 황금빛 기운을 내뿜는 여자가 자신의 몸을 묶은 사슬을 나뭇가지 부러뜨리듯 끊어내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조금만 방심하거나 섣불리 행동하면 죽는다.' 라고.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사슬을 다 끊어낸 아이리스가 복싱의 가드와 유사한 그것을 천천히 취하며 차갑게 선언했다.
"너희들은 오늘."
"내 남자를 건든 걸 후회하면서 죽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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