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버릴거야
-띠링
얼핏 듣기에는 듣기 좋은 높은 음으로 밝고 상쾌하게 울리는 효과음이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승리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마나가 부족합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용사가 '빨리 안 하고 뭐 하냐.' 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니...아무리 능력치가 봉인됐다 해도 마스터인데 기본 스킬 몇 초 썼다고 마나가 바닥났다고?
스킬이 안 써지는 건 둘째치고,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냐..?
'스킬을 써본 게 이번이 처음이라 마나계산을 못 했어요 헤헤!'
..물론 지금 승리의 미모라면 이 역전세계에서는 덜렁이 타입이라며 좋아할 것도 같긴 한데.. 지금은 서로 칼을 주고 받는 전투 상황. 덜렁거렸다간 목이 덜렁거릴 상황이기에 그런 모습을 좋아해 주는 미친년은 없을 것이다.
..없겠지?
뭣보다 지금까지 용사보고 폐급이니 뭐니 욕했는데, 지금은 그가 완전히 폐급중에서도 상폐급이 되어 버린 상황!! 물론 용사보고 대놓고 폐급이라 말한 적은 없지만, 한승리 그 자신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만약 용사가 마나가 다 떨어져서 스킬을 못 쓴다는 말을 듣고 경멸의 눈빛으로라도 쳐다본다면...
'...그냥 이대로 금태양녀의 나이프에 목을 갖다 대서 자살해 버리고 말지 그 꼴은 못 본다...!'
자살하기 싫어서 살 길을 찾다가 이 세계에 떨어졌는데 이 세계에서도 자살할 사유가 생긴다고..? 그건 절대 안될 일이었다.
'애초에 마나가 없어서 실패했다고 꼼수를 부렸다는 말을 금태양녀가 듣는 순간 그녀가 날 찌르겠지'
'생각해내 한승리.. 다른 세계까지 와서 자살할 수는 없잖냐...'
승리는 생각, 또 생각하기 시작했다.
***
'...왜 가만히 있지?'
아이리스는 생각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건가?'
그렇다기엔 점점 클로에가 자신과의 거리를 조금씩 벌리고 있었다.
'여기서 더 많이 벌어지면 아무리 칼을 쓸모없게 만들더라도 위험해질텐데.'
어째서인지 붉은 머리색의 대장장이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의문의 힘으로 강화된 아이리스의 눈에 대장장이의 표정이 선명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은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마나가 다 떨어졌구나!!'
[위대한 모험가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신체 강화뿐만 아니라 스킬을 사용할 때도 마나가 소모된다고.
소모된 마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적으로 회복되지만 마나가 부족하면 스킬이 시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리스는 모험가 길드에서의 일을 회상했다.
분명 아이리스 자신은 모험가 길드에서 이제는 에/일린이 되어 버린 멸치녀에게 뻗어 버렸다.
그런데도 자신이 이렇게 멀쩡한 까닭은 필시 그가 자신을 위해서 연약한 남자의 몸으로 저들과 싸워줬다는 얘기겠지.
세간에는 흔치 않은 마나 각성자, 그것도 남성 각성자는 여성 각성자보다 더 강하다는 속설이 있지만 그것도 직접 전투를 하는 전투직의 얘기일뿐, 그의 직업과 아까 전에 본 스킬을 보아 그는 오로지 생산과 관련된 스킬만 다룰 줄 아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4인조를 막는 과정에서 스킬이 아닌 익숙하지 않은 신체 강화를 사용했을 테고 자연스레 소비되는 마나의 양도 많아졌을 터,
그는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마나를 소비했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 마나 부족 상태에 처한 것이 틀림없다!
'아마 마나를 각성한 것도 최근이라 계산을 미처 하지 못했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그가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는 모르겠지만, 그를 꽤 오랫동안 '관찰 해 온' 그녀였기에 대장장이가 꼼꼼한 성격이라는 건 모를 수가 없었다.
남자가 목숨 바쳐가며 싸우고 있는데 자신은 야한 꿈이나 꾸고 있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기 시작한 아이리스.
'으으..아이리스 이 한심한년아...저렇게 잘생기고 연약한 남자를 보호해주지 못할망정 보호 받아 버리냐..여자답지 못하게.'
스승님이 지금 자신의 모습을 봤다면 당장 자궁 떼라고 했을 것이다.
'스승님. 강한 힘을 얻었는데도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하고 있어요. 어쩌죠?'
아이리스가 마음속으로 멀리 떨어져 계신 스승님께 묻자 그녀의 스승님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어쩌긴 뭘 어째, 자궁 떼라 이년아!! 내가 널 그리 가르쳤어?!아오오!!!왜 내가 젊었을 때는 저런 남자가 없었는지!!>
...지금은 멀리 떠나버린 스승님이지만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려왔..
<누구 죽은 사람 만들지 마!!! 네가 성공해서 돈만 잘 벌면 목걸이에 들어 있는 내 영혼을 옮길 생체 인형도 만들 수 있다고 하지 않았니?!!>
..그녀의 스승 아이린은 아이리스에게 격투술과 검술을 가르쳤지만 사실 그녀는 위대한 마법사였다고 한다.
왜 마법이 아닌 격투술과 검술을 가르쳤냐고 묻자 '아이리스 네 지능이 낮아서 가르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라는 말을 들었을때는 화를 참지 못하고 스승이고 뭐고 도망쳐 버릴까 했지만... 가끔 괴팍하게 말하는 것만 빼면 훌륭한 스승이었다.
아이리스와 실제 나이는 크게 차이 나지 않았으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 시한부가 되었고, 그녀는 죽기 전 자신의 모든 걸 건 도박을 했다.
아이리스의 목걸이에 자신의 영혼을 옮겨 영혼을 안전하게 보관 한 뒤, 아이리스가 모험가로서 성공하게 되어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마탑에 의뢰하여 자신이 깃들 몸을 제작하는 것.
그것이 그녀의 스승, 아이린이 마지막으로 실행한 도박이었다.
영혼을 옮기는것까진 성공한 그녀는 예상치 못한 벽을 마주하였는데..
<아니 이년아!! 조금 전 거리였으면 지금 네 몸 상태라면 저 남자아이가 찔리기 전에 제압할 수 있었는데!!! 그걸 왜 거리를 벌릴때까지 기다려주냐고오!!!>
'아니..그랬다가 제가 못 구하기라도 하면..'
<크아아아악!!!!>
..그녀의 제자가 모험가로서 생활하기엔 상당한 폐급이라는 것.
단순한 신체 능력이나 전투 능력만 보자면 자신의 제자는 뛰어난 편에 속했다. 당연하지 누구 제자인데!!!
그러나 그녀는 제자에게 옳바르게 판단하는 법과 옳바르게 생각하는 법을 전수해주지는 못했다.
그 때문일까, 아이리스는 고집을 부리지 말아야 하는 곳에서 이상한 자신감이 솟아나 고집을 부렸고, 고집을 부려야 하는 곳에서 자신감을 잃고 망설였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
자신이 처음으로 반하게 된 남자가 끌려가는데도, 그 남자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이고 있었다.
분명 아이린 그녀의 스승님이 소심한 제자들을 가르칠때 써먹는 방법이...
<휴..아이리스 네 첫사랑이 저렇게 납치되면, 만약 살아 돌아오더라도 저 아이가 널 사랑하게 되는 일은 없을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스승님?'
(좋아, 미끼를 물었구나 아이리스.)
<저 남자아이를 끌고가는 저 피부가 까만 금발아이가, 저 잘생긴 아이를 끌고가서 그냥 가만히 두겠느냐? 분명 하루내내, 아니, 나였다면 일주일 내내 그를 탐했을것이다. 저 아이는 그럴 정도로 잘생겼으니까, 너도 그리 생각하지 않느냐?>
'..대장장이씨가 잘생기긴 했죠. 그래서 하고 싶으신 말씀이 뭔데요?'
그것은 바로 소심한 제자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었다. 화를 처음내기가 힘들지 두번째 부터는 쉽다는게 아이린의 스승의 방식이었다.
그런식으로 화를 내다보면 어느순간 소심한 성격이 고쳐진다는것.
<보아하니 저 금발아이는 아이리스 너와 달리 남성을 품은 경험이 꽤 많다는거 같던데, 그러면 남성을 만족 시키는 기술도 저 아이가 더 위가 아니겠느냐?>
-뿌득..
스승의 앞에서 이까지 갈다니, 생각보다 도발의 효과가 좋은듯 했다.
<저 금발아이의 아랫입에 몇번이고 몇번이고 탐해진 저 대장장이 아이가, 겨우 너의 순진한 아랫구멍으로 만족을 할 수 있겠느냐? 내가 봤을때는 영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구나.>
'...'
아이리스는 이를 가는것도 멈춘채 고개를 푹 떨구고 몸을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아이린은 그런 제자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채, 말을 이어갔다.
<만약 저 아이가 복상사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돌아왔다고 하자. 그리고 네 운이 좋아서 너와 맺어질수도 있겠지.>
<하지만 저 아이는 너와 밤을 보내는 날이 늘어갈수록 자신의 머릿속에서 '아아, 그때 금발여자의 구멍이 더 좋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결국 그 스스로 금발아이에게 돌아가게..>
'그만.'
아이린이 계속해서 아이리스를 자극하는 도중, 아이리스가 아이린의 말을 끊었다.
[으,응..?]
'그만하시라고요.대장장이씨는그럴사람이아니에요그는내가쓰러졌을때도날지켜주기위해그연약한몸으로저사악한4명을막아주기까지했는걸요그뿐만이아니에요내가잘못된무기를선택하려했을때는제가다칠까봐염려되어다른무기를추천해주기까지했어요그런대장장이씨가저를배신할리가없잖아요?아니없어야만해요안그러면모두다...'
"죽여버릴거야"
-파지직!!
아이리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한층 더 강해짐과 동시에 주변에 있는 모든것들이 그 기운에 눌려 움직임을 제한 당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마저도.
그녀의 기운에서 자유로운건 오직 한 사람, 붉은머리의 대장장이였다.
<각성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 정도의 공간을 제어 할수 있다니..!!역시 내 제자..가 아니지 제, 제자야? 아니, 아이리스!! 정신차리렴!!이 스승이 잘못했다!!>
생각보다 너무 강력한 효과를 보이는 도발을 철회하려고 하는 아이린이었으나.
'스승님 감사해요.'
<으응..?정신을 차린거니? 정말 무서웠..>
'덕분에, 대장장이씨를 향한 마음이 더 확고해졌어요.후후, 이제 저분을 방해하는년들은 모두 젖가슴을 잘라내어 두 눈에 붙여줄거에요. 겸사겸사 자궁도 떼버리는건 어떨까요? 후후훗♡'
<그,그러니이? 우리 아이리스는 현모양처가 되어 남편을 내조하는것이 꿈이구나아 하,하하..!! 뭐 요즘은 가정적인 여성들의 인기 또한 늘어났다고 하니, 나쁘지 않겠구나! 음. 꼭 현부양부 일 필요는 없지. 현모양처도 좋지.>
그렇게 애써 자신의 제자가 이상해졌다는것을 외면하려고 하는 아이린이었으나.
'어머, 스승님도 차암, 그런 과분한일을 제가 맡을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저는 그저 저분의 옆에서 짖으라면 짖고, 다리를 벌리라면 벌리고, 죽이라면 죽이고 죽으라면 죽는, 그런 노예가 되는거에요..♡ 그렇게 저분을 보살피다가..그저 저분의 마지막을 지키는게 저라면, 저는 그걸로도 충분할것 같네요. 후후♡'
이미 그녀의 제자는 더 이상 그녀가 알던 순수한 제자가 아니었다.
(내가 대체 뭘 만들어버린것인가...!!! 미안하구나 대장장이 아이야..!내가 미안해..!!)
아이린은 자신이 만들어버린 괴물이 들러붙을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그녀의 진심 어린 사과가 그에게 닿는 일 따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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