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잘못했는데?
빅토르는 정신이 혼미해진 용사를 질질 끌며 광기에 휩싸인 모험가들을 뒤로하며 재빨리 탈출했다!
"인큐버스 킹이시여어!!!"
...저 인큐버스충 새끼는 진짜 뭐 하는 새끼일까. 그냥 무시하고 가자.
.
.
"인큐버스 신공을 제게도!!!!"
"아 인큐버스 아니라고!!!!"
쪽팔리게 뭐라는 거야!!
***
소진된 마나가 아직도 회복되지 않아서 용사를 업고 대장간까지 간다는 것은 무리였기에 빅토르는 근처 여관에 들어갔다.
남자가 여자를 업고 왔기 때문인 건지, 그의 얼굴이 범상치 않기 때문인 건지. 여관 내의 사람들이 빅토르와 그의 등에 업힌 용사를 쳐다보았지만, 지금 그딴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얘 왜 이렇게 무겁냐아...'
아무래도 용사는 큰 가슴을 얻은 대신, 가벼운 몸을 잃은 모양이었거든.
사실 용사의 키가 대충 170센치 정도 되는 여자치곤 큰 키였으니 몸무게도 많이 나가는 게 당연한것이고, 용사를 업고 먼 길을 걸어와 지쳤기 때문에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거겠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 따위 없었다.
빅토르는 일 초라도 더 빨리 그녀를 내려놓기 위해 카운터에 앉아있는 주인장에게 말을 걸었다.
"사장님, 여기 방 남는 거 있어요?"
"어이쿠, 어찌 된 게 남자가 더 적극적이네~ 젊은 게 좋긴 좋나 봐? 이 대낮부터 아주 후끈후끈해~"
"아니, 방 있냐고요."
"아이고. 젊은 청년이 급하기도 하지. 여자친구는 아주 좋겠어? 하하하하!!!"
시발... 빨리 방이나 내놓으라고....
"피임 마법 스크롤은 있나? 없으면 아주 '배부르게' 될 텐데~"
'이 개 같은 년이?'
내놓으라는 방은 안 내놓고 자꾸만 내게 성희롱하며 즐기고 있었다!!!
빅토르는 용사의 허리춤에 꽂혀있던 휴대용 나이프를 꺼내 데스크에 내리꽂았다.
-탕!!
"야. 개소리하지 말고 방 내놓으라고. 그리고 한 번만 더 성희롱해봐. 자궁을 적출 시켜줄 테니까."
그의 살기 어린 협박에, 특히 협박의 뒷부분에 반응한 여자들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아랫배를 감쌌다.
"아, 알겠습니다!! 여기 열쇠, 방은 3층으로 올라가셔서 바로 오른쪽 방입니다!!!"
'씨발 하필이면 또 3층이야.'
그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랐다.
아래에서 "어후... 남자가 완전 얼굴값을 하는구먼. 여자는 오늘 완전 쪽쪽 빨리겠어. 남자를 얼마나 굶겼으면..." 같은 소리가 들려왔지만, 또다시 드잡이질할 기운도 없었기에 그냥 무시하고 올라갔다.
***
"하아... 여우짓이 그렇게까지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는데."
그래. 이쯤 되면 빅토르 자신이 이 세계에서 상당히 잘생긴 편이라는 건 알겠다.
그런데 정신을 잃고 광기에 휩싸일 정도로 위력이 대단하다고?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내가 무슨 마이클 잭슨도 아니고.'
"그리고 거기서 너까지 정신을 잃으면 어떡하냐..."
빅토르가 용사의 볼을 콕콕 찌르며 한숨을 쉬었다.
"아 맞다. 아이린. 아이린은 지금 얘기할 수 있어요?"
<...>
아무래도 용사가 의식을 잃으면 아이린과의 연결도 끊어지는 모양, 아이린의 목소리 또한 들리지 않았다.
"아 모르겠다. 일단 살았으면 된 거지."
까딱 잘못했으면 히토미 네토라레물의 여주인공이 될 뻔했는데 지금 뭐가 그리 중요하겠나. 그냥 멀쩡하면 됐지.
그렇게 생각하기를 포기하자, 아까전까지 신경 쓰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 그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던 것.
4인조와 용사의 전투 중에 자꾸 굴러서 이곳저곳이 흙투성이에, 땀까지 흘러 머리는 떡졌고, 옷에서는 땀 냄새가 나고 있었다.
"이걸 어쩌지... 샤워 시설이 있을 리가... 있네?"
그가 잡은 객실에만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샤워 시설이 있었다!
..설마 사장 놈이 또 이상한 생각을 하고 샤워 시설이 있는 방을 빌려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이상한 생각마저 고마웠다.
이 세계의 남자가 아닌 그에겐 그깟 성희롱보다 샤워가 더 중요했거든.
샤워 시설의 품질은 생각보다 뛰어났다. 과학기술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을 이 세계에서 온수와 냉수 조절이 가능할 정도였으니까.
"이거 어떻게 만든 거지? 되게 신기하네."
-띠링!
때마침 들리는 상태창 알림 소리. 빅토르는 바로 상태 창을 열어보았다.
[스킬이 해금되었습니다.]
"오."
스킬: 구조 분석(최하급) [패시브]
간단한 구조물이나 제작물의 원리 및 구조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구조/원리를 알고 싶다'는 사용자의 염원에 반응하여 시전됩니다.
생각보다 심플한 기능의 스킬이었지만, 그야말로 대장장이를 위한 스킬이었다.
심지어 마나가 소모되지 않는 패시브 스킬!! 마나가 부족한 지금의 그에게는 액티브보단 패시브 스킬이 좋으리라.
스킬을 개화함과 동시에 샤워 시설의 구조 및 원리를 알 수 있었다. 예상외로 단순한 구조였던 모양.
"아하... 기술 대신 마법을 써서 물을 데우는 방식인 거구나.. 발열 마법이 담긴 마법석으로 물을 데우고, 냉기 마법이 담긴 마법석으로 물을 차갑게 한다. 이거 완전 대박인데?"
천재들이라는 족속들은 어느 세계를 가더라도 있는 듯 했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아쉽지만, 지금은 그의 호기심을 채울 때가 아니었다. 그는 건조 마법이 내장된 건조기에서 세탁된 옷을 들고 샤워실에서 나왔..
"...!!!!!!!!!!!!!!!!!!!!!!!!"
<세상에..다리 사이에 저 흉물스러운 것이 정녕 사람의 것이 맞는..?꼬르륵>
-풀썩.
"아."
...용사가 깨어있을 줄은 몰랐는데. 깨어있을 줄 알았으면 안에서 옷 입고 나왔지.
빅토르의 벗은 모습을 두 눈에 담은 용사가 또다시 쓰러졌다.
'그래. 될 대로 되라.'
그는 당황하지 않고 속옷부터 입기 시작했다.
그가 옷을 다 입어 갈 무렵, 용사가 다시 눈을 떴다.
"헛, 스승님!!! 꿈에서 빅토르 님의 구렁이처럼 생긴 세 번째 다리를 영접했어요!!!"
<나, 나도 같은 꿈을 꾼 거 같아!! 세상에..그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거의 말의 그것 같았는데..>
"뭐래."
"비비빅토르님?!?!"
용사가 상의 단추를 채우며 자연스레 대화에 태클을 걸고 있는 빅토르를 보면서 소리쳤다.
'또 나왔네. 저 아이스크림 같은 호칭.'
"비비빅 아니고 그냥 빅."
"아 예.. 빅토르님.. 아니, 그거보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까 전에 본 빅토르 님의 나체는 어떻게 된 거죠?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설명을 해다오!>
빅토르는 업혀 온 주제에 뻔뻔하게 질문하는 용사에게 불만을 느꼈고 불만은 이내 장난기로 변질 되었다.
여우짓 ON.
"..저, 정말 기억 안 나는 거야..?"
빅토르는 얼굴을 붉히기 위해 초등학교 시절 전교 2등을 한 수치스러운 기억을 떠올렸다.
'완벽한 장난을 위한 감정이입이라지만 대가가 너무 크군.'
얼굴까지 붉히며 말을 더듬는 그의 모습에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스승 쪽이었다.
<네, 네 이년!!!!!!! 아이리스!!! 설마 목걸이를 빼고 나 몰래 선을 넘은 거냐!!! 이 도둑년!암캐!암퇘지!!발정 난 년!!!!!!>
"아, 아니에요!!! 저도 아무 기억이 없다고요!!! 빅,빅토르님? 장난치지 마세요. 네?"
'싫어.'
속으로 답한 빅토르는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어젯밤은... 굉장했어...♡"
<끼에에에에엑!!!!!!!!!>
"왜, 왜 나는 아무 기억도 없는 거야?왜나는아무기억도없는거야?왜나는아무기억도없는거야?"
아. 또 맛이 가버렸네. 여우짓 이거 효과가 너무 과한데?
<끼우우우욱!!!> ..이젠 아예 갈매기가 되어버린 아이린과,
"어떻게 하면 어제의 저를 죽일 수 있을까요? 마탑으로 가야 할까요? 마탑주는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소문이 있던데. 응. 그래야겠어요. 감히 빅토르 님의 처남(處男)을 제깟년이...!"
빅토르의 처녀, 아니 처남을 앗아간 어제의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아이리스.
'아이리스?? 그게 너라니까? 칼을 왜 빼 드니? 설마 진짜 죽이게..?'
이대로 가다간 진짜 아이리스가 과거로 갈 방법을 찾아낼 기세였기에 그는 황급히 사실을 고했다.
"아니!! 농담이야!! 아무 일도 없었어!! 아직 우리가 4인조한테 잡혀간 지 하루도 안 지났다고!!!"
그의 말을 들은 아이리스의 얼굴이 그제야 웃음을 띠더니.
"헤헤헤. 그럴 줄 알았어요오~"
<음. 나도 알고 있었단다.>
라고하더라.
...니들이 알긴 뭘 알아.
"그래서, 저희는 왜 여기 있는 건가요?"
용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딱히 얄미운 짓을 한게 아닌데 한대만, 진짜 딱 한 대만 때리고 싶다고 생각한 빅토르였다.
"..어디까지 기억나는지 말해봐. 그 다음부터 알려줄 테니까."
"어... 제가 이상한 힘을 각성하고, 4인조 애들 다 처리한 다음에, 내려오는 길에 모험가들이 저보고 절륜하다고.. 으헤헤..."
<응. 나도 거기까지 기억이 나는구나.>
"뭐야 두 사람 다 거의 다 기억하고 있네요. 그 다음에 내가 빨리 가자고 했던 거 기억 안 나?"
"...아."
<오..?>
"끼야아아아악!!!!"
<끼얏호오오오옷!!!!!>
하하. 스승과 제자가 쌍으로 지랄을 하는구나.
"진정 안하면 저 그냥 버리고 갑니다."
"진정했어요!!!"
<진정했단다!!!>
"그래..아무튼 그 이후로 너가 기절해버려서 너 업고 여기까지 온거야."
"아 그랬군요...무겁지는 않으셨어요?"
"그냥 그럭저럭 업을만했어."
"으으.. 남성분을 업어주는것도 아니고 업히다니...너무 수치스러워요.."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냐. 기절하면 업힐수도 있지. 그것보다, 내가 여우짓, 그러니까 애교 부리는게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인가?"
빅토르는 아까전부터 궁금했던것을 물었다.
"...네?"
<빅토르..혹시 집에 거울이 없는거니?>
"아니, 제가 조금 잘생긴 편인건 알겠는데. 그게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일인가 해서요."
"빅토르님이...조금..? 빅토르님이 조금 잘생긴거면 왕국제일미남이라고 불리는 왕자님은 오크새끼라고요!!"
너 그거 불경죄야 아이리스...!
"그, 그래 내가 말 실수 했네..아니 그래도, 보통 애교는 많이들 하지 않나? 아까전에 모험가들은 거의 면역이 없는급이던데."
"빅토르님은 다른 세계에서라도 오신건가요? 다 큰 남자가 애교라뇨...! 보통 10살 이상이 되면 애교를 안부린답니다? 부리더라도 애인한테 하지, 남한테 하는 남자가 어딨어욧!!"
..너무 맞는말이었다. 생각해보면 원래 세계에서도 애교는 연인한테 했었지.
아무한테나 애교부리는 여자들은 4차원인척 하며 어그로를 끌고 다니는 여자던가 수치라는 감정이 마모 된 연예인 비슷한 여자밖에 없었다.
'게다가 여긴 텔레비전 같은것도 없을테니까.. 매체로도 이성의 애교를 접할 기회가 당연히 적을거고.'
그렇다면 애교에 면역이 덜한게 어느정도 이해를 해볼수도 있을것 같긴한데..
빅토르가 그래도 아직 완전히 이해를 하지 못한것을 눈치챈듯 아이리스가 말을 덧붙였다.
"음..그리고 이건 제 얘기이기도 해서 좀 부끄럽지만... 보통 모험가인 여자들은 애인을 잘 못 사귀어요."
"엥? 왜?"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모험가는 직업 특성상 멀리 나갈일도 많고... 그리고 모험가는 언제 어떻게 불의의 사고를 당할 지 모르는 직업이니까요. 아무래도 결혼이나 연애 상대로서는 좀.."
"아."
이제야 이해가 갔다.
'이거 완전 모험가=군인 이잖아? 몸이 떨어지니까 마음도 멀어지고, 언제돌아올지 기다리기만하니까 지치고. 애인이 사고도 날 수 있고!!'
..그러니까 대충 아까전의 상황을 원래 세계로 환원시켜서 생각하면...
국내에서 가장 예쁜 여자 톱스타가, 군부대에 위문공연을 가서, 일병한명을 지목해서 나오라고 한 다음에 걔한테 애교를 부린건가?
...군부대가 뒤집어질만 했네.
"이제 좀 본인이 어떤짓을 하신건지 감이 오시나요? 앞으로는 남들앞에서 애교부리는거 금지!! 제 앞에서만 하세욧!!!"
<나도 있단다!!>
"두 사람 다 양심이 어디로.. 아무튼, 밖에서 애교는 자제할게. 근데, 이 세계..아니 이 나라에는 남자 음유시인이라던가 그런건 없는거야? 아까 네가 말한 거 들어보면 그런 직종의 남자들은 모험가들한테 인기 많을거 같은데."
빅토르의 질문에 용사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남자 음유시인이요.. 예전에는 인기 많았죠."
" '예전에는'? 지금은 아니야?"
"네에..음유시인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던 알레한드로 라는 음유시인이 있었는데요, 팬 서비스도 최악이고 노래실력도 그닥이었는데 사람들은 그저 남자 음유시인이 적으니까 어쩔수 없다는 듯이 그 음유시인을 좋아했었죠."
"그런데?"
"그런데.. 그렇게 팬들의 불만이 나날이 쌓여만 갈때, 고등 마법을 다룰줄 아는 모험가 팬이 그의 일상을 몰래 도청/녹음을 했는데, 그 녹음에 알레한드로가 팬들을 쓰레기 취급하는 내용이 담겨있어서 그만.. 예,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남자 음유시인들을 믿지 못하는 풍조가 들기 시작해서 망해버렸다. 이거지?"
"예..정확해요..." 한숨을 푸욱 내쉬며 말하는 아이리스.
필시 그녀 또한 그 음유시인의 팬 이었으리라고 판단한 빅토르는 왜인지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흐응~너도 엄청 좋아했었나 보네?"
그녀를 살짝 째려보며 말하는 빅토르.
..아니 잠깐, 내가 왜 화를 내는거지? 질투할 이유도 없는애잖아! 정신차려!!!
"예?아,아아아,아닌데요?"
-째릿!
"...네..사실 엄청 좋아했습니다. 얼마 안되는 생활비까지 다 쏟아가면서..알레한드로가 그려진 포스터도 사들이고.."
<음. 확실히 그때의 아이리스는 어딘가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지.>
"그, 그래도!! 지금은 빅토르님밖에 안보여요!! 빅토르님 최고!!!"
"하, 몰라. 나 갈래."
"죄,죄송해요 빅토르님!! 제가 다 잘못했어요!! 지금은 정말 빅토르님밖에 없어요!!"
그 말을 들은 빅토르의 광대가 살짝 올라가려 했지만, 그는 여기서 아이리스와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을 필요가 있었..
'아니 주도권을 잡을 이유가 뭐가 있는데. 애초에 내가 고용주잖아?? 휴 선넘지마라 내 심장아..쟤는 여장남자야..여장남자!!'
자꾸만 아이리스에게 질투를 하는 빅토르. 속으로 그녀는 자신이 아는 여성과는 다르다고 자기암시를 걸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생각과는 달랐다.
"뭘 잘못했는데?"
"예,예에??"
<제자야. 내가 봤을땐 너 봊된거 같구나.>
낌새를 눈치챈 아이린이었지만, 아이리스는 스승의 말 따위는 듣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뿐이었다.
"뭘 잘못했냐고. 설마 잘못한것도 없으면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한거야? 됐어, 넌 항상 그런식이지."
"항상 그랬다기엔 우리가 이름을 안지 하루도 안됐.."
-째릿!
빅토르는 살벌하게 째려보는것으로 아이리스의 말대꾸를 끊었다.
"지금 말대꾸 하는거야? 하 진짜 어이없어. 나 진짜 갈거야."
"미,미안해요 빅토르님!!" 용사가 재빨리 자세를 바꿔 무릎을 꿇었다.
"뭐가 미안한데?"
여우짓 제 2식, [개미지옥]이. 빅토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시전된것이다!!
'나도 내 자신을 멈출 수 없엇..!'
'아니지. 이렇게 주도권을 잡아놔야 저번처럼 폭주할때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거잖아? 응. 정말 그 이유뿐이다. 컨트롤 이외의 이유는 없고말고.'
빅토르가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을때 아이리스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었다.
"그냥..제가 다 미안해요.."
"하, 끝까지 뭐가 미안한지는 얘기 안하네? 정말 미안한거 맞아? 너는 내가 왜 화났는지도 모르지?"
<아이리스, 제발, 제발 목걸이를 벗어다오...뭐?죽을땐 같이 죽..>
"제,제가 앞으로 더 잘할게요!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아이린이 방금전에 무슨 말을 하지 않았나?'
용사는 스승의 말을 끊으며 머리를 땅에 박은채 사죄했다.
이쯤되면 좀 불쌍한데.라고 생각하는 빅토르였지만, 그의 몸은 또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였다.
"하아..됐어, 나 갈래. 나 잡지마."
그는 뒤를 돌아 문을 향해 조금, 아니 꽤 천천히 걸었다.
안잡으면 죽는다는것을 암시하는 걸음걸이. 그러나 용사는 그의 손이 문 손잡이에 닿을때까지도 잡지 않았다.
빅토르는 설마 진짜 안잡을줄은 몰랐기에 당황했으나, 애써 그런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
"하!! 가는데 붙잡지도 않네?"
"아니..아까는 잡지 말라고..."
<아이리스!!!제발!!제발 부탁이다!! 목걸이를 벗어!!!!!!>
"됐어. 당분간 찾아오지마."
그렇게 말한 그가 문을 천천히 열기 시작했다.
아무리 용사가 눈치 없는 호구라도 지금쯤은 학습했겠..
<뭐하느냐 아이리스!!! 빨리 잡거라!!!!>
"예?그치만 연락하지말라고.."
<아오!!!잡으라면 잡아아악!!!!!!!>
"네,넵!!!"
..감사합니다 아이린. 당신 아니었으면 그냥 아예 끝나버릴뻔 했어요.
"빅,빅토르님..제발 가지마세요!!!흐윽.."
어?
울어??
빅토르의 생각보다 더 아이리스는 순정파였던 모양.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면서 다리에 매달리는 그녀였다.
'내가 이런 애한테 무슨 짓을...! 개미지옥은 봉인이다!!'
"아,아니.. 뭘 또 울고 그래..뚝!" 순식간에 마음이 약해진 빅토르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흑..빅토르님 화 풀렸어요...?" 글썽이며 그를 올려다보는 아이리스.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진짜와는 비교가 안되는구나.
말도 안되게 귀여웠다. 그리고 어딘가 야했다. 여기서 어떻게 더 화를 내겠니, 이미 내 광대가 올라갔는데.
"그래그래, 화풀렸어."
"그럼, 저 조,좋아하시는거에요..?"
그게 왜 그렇게 되니.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니라고 하면 울거에요.'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기에 우회해서 말했다.
"응 사람으로서 좋아하지~ 아이리스 착하고, 좋은 애니까. 자 그러면 이제 슬슬 퇴실할 시간이니까 일어날.."
-쿠웅!!
아이리스가 그의 몸을 살짝 밀치며 소위 말하는 벽쿵자세를 취했다.
'..팔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저거 마력아니냐?'
만약 그의 얼굴이 조금만 왼쪽에 있었어도 유압 프레스기계에 들어간 수박꼴이 되었으리라. 이런데에 마력쓰지말라고 미친년아..!!!
깜짝 놀라게 해서 심장이 빨리 뛰게하는 흔들다리 효과를 노린것이라면 아주 성공적으로 해냈다.
거칠게 목걸이를 벗어던지는 아이리스. 지금부터 하는건 스승님인 아이린한테도 보여줄수 없다는거겠지. 최소 키스..!
'안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아! 심장아 넌 또 왜 나대니...!!!'
빅토르가 당황해하고 있자, 아이리스가 그런 빅토르의 볼을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
"빅토르님."
"으,응?"
"도망가지 말아요."
"아니.. 내가 어딜 도망간다고.."
고개를 돌리며 웅얼거리듯 답하는 그였으나, 아이리스가 그의 턱을 살짝 잡고 자신의 눈과 그의 눈이 마주치게 했다.
"빅토르님.."
점점 가까워지는 아이리스의 얼굴.
"아,안되는데에.."
머릿속으로는 안된다는걸 아는데, 어째서인지 눈이 감기고, 입술은 그녀의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끼익..!
"저기...퇴실시간인데, 어이쿠야!! 미안. 하던일들 마저 해~"
"..."
"..."
아 아줌마!!!!노크는 하고 들어와야할거 아니야!!
'헛..내가 왜 아쉬워하고 있지?'
빅토르는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자신의 위에 올라탄 상태로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용사에게 말했다.
"저..저기, 좀 나와줄래? 퇴실해야한다고 하니까."
"...................네에..."
얼마나 싫으면 저렇게 대답이 느릴까.
물론 여기서 더 있었다간 더 이상 그가 자기 자신이 아닌 무언가가 되어버릴것 같았기에 그런걸 신경쓰지 않..
-턱.
귓가의 둔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용사가 주저앉은채 벽에 머리를 살짝 박으며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죽고싶다..죽고싶다..죽고싶다..죽고싶다.."
그런걸 신경쓰지...
-턱.
"나 차인건가? 그런건가? 그런거겠지? 내가 너무 성급했나? 왜지? 왜 그랬지?"
그런걸 신경..
-턱.
"아까 그 년 죽여버릴까? 죽여버릴까? 죽여버릴까?"
신경...
-턱.
"아까전의 그년, 죽인다."
..시발.
키스한번 실패했다고 사람 죽이려는게 용사가 맞나?
'저거저거!! 또또 칼에 손올라가는것봐라!!'
빅토르는 황급히 그녀의 뒤에서 허그했다. 포옹은 살인도 막는법!!
..맞겠지?
"헷?! 빅토르님?"
"뒤 돌지 말고, 가만히 들어."
"네? 넵! 얌전히 들을게요!!"
빅토르는 그녀의 뒷통수에 그의 이마를 맞댄채, 진심을 고백했다. 연기가 섞이지 않은, 진짜 그의 진심을.
"있잖아.. 나는 다른 남자들에 비해 취향이 좀 독특해. 남성적,이 아니지. 여성적인 여자는 내 취향이 아니거든."
"헤에~확실히 특이하시긴하네요. 헉, 그러면 저도 안좋아하시는건가요? 으으..그,그건 안되는데..?"
"..가만히 들으라고, 한마디만 더하면 나 이제 말 안할거야."
"네,네!!조용히 할게요!!흡!!"
'..귀엽네.'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내 취향이 그래서. 너도 원래는 내 취향이 아니었는데, 자꾸 네가 나 좋다고 하는거보니까, 좀 흔들리고 그런다. 으으,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으니까 확실하게 말할수 있는건 여기까지야."
"읍읍읍읍읍읍읍읍읍읍?"
"...말해도 돼."
"그럼 제가 좋으신건가요?"
"..나도 잘모르겠다고!! 아아악!! 쓸데없는말을 너무 많이 했어. 그냥 잊어!!"
빅토르는 툴툴거리며 허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그제서야 뒤를 돌아 그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어라아? 빅토르님!! 빅토르님의 얼굴 색이 머리색과 비슷해졌어요!!!!".
"조용히 해!!"
"넹!!!!!!!"
"아니. 조용히 하라고."
"넹!"
.
.
.
"아 맞다. 스승님."
..스승한테 그래도 되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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