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2화
네크로맨서.
망자의 몸을 일으키고 음산한 저주를 흩뿌리는 이 직업은, 사이버펑크처럼 마법과 첨단기술이 난무하는 이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었다.
이것이 바로 류가 이 직업을 고른 이유 중 하나였다.
흑마법사로 분류되는 탓에 마탑이나 아카데미에서의 취급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초기 능력의 성장이 힘들다.
소환 가능한 해골의 수,
유지 가능한 해골의 시간,
조종 가능한 해골의 수,
흡수 가능한 해골의 능력 등등...
초반에는 이 스켈레톤을 일일이 관리하고, 데리고 다니고, 써먹을 수 있는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꽤 머리 아픈 일이었으니까.
그것뿐이 아니다.
사기死氣.
네크로맨서의 능력은 죽은 자의 뼈에서 빼낸 이 기운으로 향상된다.
사체에서 빼낸 시독을 모으고, 남은 뼈는 해골 병사로 활용하는 것. 초반엔 그 성장속도가 너무 느려서 엄청난 지루함과 조바심을 감내해야 했다.
비 그친 새벽.
후드 차림의 류가, 이 이른 시각부터 정크타운의 뒤편을 누비는 것도 다 여기서 나온 습관이었다.
참방-
빗물 고인 웅덩이를 밟으며 골목 사이 어딘가로 향한다.
정크타운 9번가와 10번가 사이.
[ 급전 필요하신 분 (XX-XO ]
[ 장기 고가 매입 (XXX-XX) ]
호출 번호 적힌 흉흉한 쪽지들이 붙은 골목들을 익숙하게 가로지르니, 폐건물이 즐비한 구역이 펼쳐진다.
공사 중단된 폐건물 사이사이로 몸을 이끈 류.
여긴 근방에서 분위기 잡고 싸울만한 몇몇 포인트 중 하나다.
어제처럼 서로 시비 붙은 양아치들이 친구들까지 데리고 와서 패싸움을 벌이기 딱 좋은.
그가, 어제 내린 비에 씻겨가지 않은 피 냄새를 맡는다.
"운이 좋구만."
휘파람을 분 류는 곧 볼 수 있었다.
옆에 폐자재가 쌓인 1층 입구쪽에서부터 널브러진 시체들을.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아직 기둥만 올라간 폐건물 2층 곳곳에 어지러이 얽힌 시체가 있다.
과열되어 터진 사이버 안구와 총열 터진 샷건 하나. 이를 중심으로 죽은 이들의 몰골을 보니, 딱 봐도 어젯밤 길거리 총기 구매 건으로 시비 붙었던 이들과 그들의 친구들이다.
"삼대삼 패싸움이라, 나름 쪽수는 맞춰서 싸웠네."
시체 여섯.
그 각각의 시체에 손을 댄 류가 눈 감고 내부의 마나 회로에 집중한다.
조금씩, 조금씩, 기운이 모여든다.
네크로맨서로서 흡수할 수 있는 사기는 하루만 지나도 죄 빠지니, 지금 빠르게 흡수를 마쳐야 한다.
"시체 여섯구, 오케이."
폐건물의 황량한 기둥 너머를 흘낏 바라본 류.
슬슬 동이 터온다.
곧, 시에서 고용한 청소부가 구역을 훑을 시간이다.
훑는다는 말처럼, 간혹 탐욕스럽고 양심 없는 청소부가 걸리면 이 시체들은 스마일 교단이 운영하는 몇몇 기관에 팔려갈 것이다. 밤 동안 슬럼가의 버려진 시체들은 청소부의 판단에 맡긴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으니까.
"...됐다."
사기를 전부 빼낸 류가, 천천히 손을 움직인다.
순간 여섯구의 뼈를 둘러싼 신체에서 아지랑이가 나나 싶더니, 얼마 뒤엔 남아있는 건 하얀 뼛골이었다.
절그럭.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러모은 백골을 바라보는 류.
졸지에 청소부들의 시체를 몰래 빼돌린 이가 되었으나 상관없었다. 애초에 그것들 입장에서도 떳떳한 부수입은 아닐뿐더러, 이미 그는 이 짓거리를 한 지 몇개월이 지났으니까.
네크로맨서의 느린 성장속도에 이미 적응한 그는, 이런 지루한 작업도 묵묵히 수행할 정도로 익숙해졌다는 애기.
하지만, 그것도 어제까지의 얘기다.
이 세계에 온 첫 날이었다면 이 백골 대부분을 우선 옮기기 위해 손수레라도 이용해야했겠지만, 지금은...
'!'
순간 신호가 느껴진다.
아래층으로 주의를 기울이니, 누군가 계단 밟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를 느낀 류가, 쌓아놓은 백골 위에 손을 올려 잠시 뭔가를 중얼거린 그때.
"스캐빈져?"
어느새 2층 입구에 올라온 중년의 남자가 묻더니.
들고 있던 더블배럴 샷건을 이쪽으로 조준한다.
"아니군."
"잠깐, 혹시 담당 청소부십니까?!"
"좋아. 시체 한 구 더."
"잠까-"
말할 틈도 없이 발사된 청소부의 총탄은, 이내 류의 몸 앞에서 와사삭 부서진 뼛가루들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뭐야. 흑마법?"
"따지자면 애매하긴 한데."
"너냐? 그 동안 내 돈줄 뺏어간 십새끼가."
"원칙적으로 시체는 청소부만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조까."
비웃으며 다시 샷건을 장전한 청소부.
손잡이 쪽의 버튼을 하나 누르니, 이번엔 총구 앞에 묘한 기운이 모이기 시작하는데.
"마법이건 흑마법이건, 어차피 디스펠 주문 한방이면-"
그는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깡! 털썩!
아까부터 문 뒤에서 대기 중이었던 류의 스켈레톤이 놈의 뒤통수에 쇠파이프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주문이고 나발이고, 어차피 쇠파이프 한방이네."
한숨 쉬며 쓰러진 청소부 쪽으로 걸어가는 류.
세레모니처럼 허공에 붕붕 쇠파이프를 휘둘러대는 그의 스켈레톤을 못 본 척 하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놈에게 한번의 기회를 줬던 건, 자신을 죽이려 들지 않고 대화로 해결하는 타입의 인간이길 원했던 것.
"죽이려 했으니까 이쪽도 정당방위지."
중얼거린 그가 청소부가 쓰던 총을 집어들었다.
주문 각인 새겨진 더블배럴 샷건.
뒤편에 널브러진 놈들의 거래가 이걸로 시작됐다면, 놈들도 목숨을 아낄 수 있었을까?
"그딴 거 알 게 뭐야."
하긴,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제부로 모든 게 바뀌었으니까. 하이에나처럼 청소부의 눈치를 보며 몰래몰래 성장해오던 지난 6개월과 달리, 이제 그는 그의 성장과 생존에 박차를 가할 새로운 기술의 연마를 마쳤다.
"저놈까지 일곱구... 가능하겠지?"
한손에 샷건을 쥔 채 잠시 고민에 잠긴 류.
시험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가 폐건물 바닥에 널브러진 백골들을 향해 크게 손을 휘둘렀을 때.
화르륵!
문득 일렁인 검은 장막이 감쌌고.
'드디어.'
류의 입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 * *
해피타워 지하 상가.
아직도 싱글벙글한 류가, 벽과 통로를 따라 다닥다닥 붙은 수십개의 지하 점포를 지나치고 있다.
잡화점, 무허가 주문시술소, 식당, 불법 사이버웨어 수리점, VR 유흥소 등의 가게를 지나.
그는 한 점포 앞에 우뚝 선다.
이 지하에 널린 점포 가운데, 창구에 철창 쳐진 가게는 여기 하나뿐이다.
물론, 그 앞에 이렇게 위압적인 외모의 덩치를 세워놓은 기게도 여기 하나뿐이고.
"어?"
얼굴 문신이 인상적인 거한이 류를 노려보며 말한다.
"뭐야."
"못 보던 얼굴인데."
"세상 면상 다 알아?"
"....."
"뭐냐고. 그 신문 쪼가리 팔러 온 거냐?"
"싸우러 온 거 아니야. 잠깐 루나 좀 불러줘."
"씨발아, 사장님이 니 친구냐?"
"나 단골이야. 마리!"
"손 떼, 이 새끼야!"
철창에 노크를 한 류의 뒷목을, 연신 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한 거한이 잡은 그때.
철컥.
걸쇠 열리는 소리와 함께 창구로 한 여성의 얼굴이 드러난다.
"류 아냐? 놔 줘."
거한이 놔준 뒷목을 문지른 류가 한숨 쉬며 인상을 찌푸리자.
"아, 미안."
금발의 여성, 마리가 느물느물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당연히 류가 온 걸 알았음에도 일부러 늦게 나타난 것이다.
마리는 장물아비다.
정크타운 10번가에서 6개월 정도 구르다 보면, 친분 있는 장물아비 하나쯤은 만들 수 있기 마련.
하지만, 이런 걸 친분이라 볼 수 있을진 모를 일이다.
"이번에 새로 고용했어. 이제부터 영업방침을 바꾸기로 했거든. 싸구려 동네에서 일한다고 싸구려 인생들이 자꾸 싸구려 일감만 가져오잖아."
"나 들으라고 한 소리야?"
"뭐, 딱히...헉."
마리의 눈빛이 달라졌다.
류가 신문지로 감싸고 온 주문각인 샷건의 총열을 보여주자, 바로 돈 냄새를 맡은 것이다.
딱 봐도 장물인 게 분명할 그 샷건을 두고 흥정을 시작하려하지만.
"4만 5천."
"팔려고 온 거 아냐."
"하! 좀 늘었네? 오케이, 딱 5만칩으로 맞춰줄테니까 내놔."
"진짜 아니라니까."
"주문각인은 일련번호 붙는 거 몰라? 딱 봐도 '듀잉&파인' 작품인데, 이 장물 팔려면-"
"마리. 할 얘기 있다."
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분위기 잡은 그의 얼굴을 잠시 쳐다본 마리가, 피식 웃으며 고갤 젓는다.
"데이트라면 곤란해. 난 거지 안 만나거든."
"야. 꺼-"
"의뢰 받고 싶어."
"의뢰?"
"마리 너 청부 중개도 하잖아. 나도 슬슬 돈 좀 벌어봐야겠어."
으르렁거리는 가드를 제지하며 재밌다는 표정을 짓는 마리.
"해결사가 되겠다는 얘기야?"
뒷세계의 의뢰를 받는 해결사.
류 같이 뒷배 없는 밑바닥 출신이, 가장 빠르게 돈 벌며 성장할 수 있는 직업이다. 현상금 사냥을 하기도, 기업이나 갱단 사이의 일을 해결하기도, 심지어는 저 바다나 사막 어딘가에 있는 키메라나 마수를 사냥하기도 하면서 돈을 긁어모으는 이들도 있으니까.
"못할 거 없지."
"류, 네가 성실한 건 알겠어. 근데 해결사로 먹고사는 건 다른 문제야."
힐끗 류가 든 샷건을 내려다본 마리.
"괜찮은 총 한 자루 주웠다고, 좀도둑이 거물될 수 있는 건 아니거든."
"못 믿겠으면 시험해보던가."
"시험?"
그녀의 시선이 아까부터 뜨거운 콧김을 뿜는 가드 쪽을 향한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그녀가 피식 웃더니 고갤 끄덕인다.
"뭐, 좋아.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시험 정도야 해줄 수 있지."
철창을 드르륵 연다.
"들어와. 너도 같이."
올라간 철창 아래로 드러난 전당포의 출입문.
열고 들어가니, 밖에서 봤을 때와는 달리 널찍한 공간이 펼쳐진다.
"얘 싸워서 이겨봐."
들어가자마자 류 뒤편에 선 가드를 가리킨 마리가 뱉은 말이다.
그 말에 아까부터 분노 조절 장애라도 있는지, 연신 화를 내던 가드가 곧바로 목과 손목을 풀며 위협적인 소리를 낸다.
"류 네가 지면 그 샷건, 나한테 넘기고 가는 걸로. 콜?"
"내기하자고?"
"뭐?"
"시험에 내기까지 할 거면 너도 뭔가 걸어야지."
적대적인 가드의 시선을 마주한 류가 여유롭게 대꾸했다.
드디어 해결사로서 첫발을 떼겠구나.
스켈레톤은 물론, 추가 기술을 개화하기 위해 개고생했던 지난 6개월을 떠올린 류가 자신감 있게 제안한 그때.
"내가 이겼을 때는 이 자리에서 바로 10만칩짜리 의뢰 받아간다. 콜?"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은 마리가 고갤 끄덕이며 답했다.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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