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4화.
"그건 왜."
"핫드림 출신인 우리 의뢰인 씨가 정크타운의 갱단한테 죽을지도 모르거든."
인구 1억의 크림슨 시티.
이 메가 시티의 상징은 업무 지구에 있는 거대한 마천루의 숲이다. 여기서도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하늪 높이 솟구친 그 위용이 이를 증거한다. 이 정크타운 따위, 하루가 뭐야 30분 동안 오가는 돈으로도 살 수 있다는 금융의 중심가.
거기서도 우뚝 솟은 50대 기업 중 한 군데의 이름이 방금 여기서 나왔다.
"......핫드림."
엔터 쪽으로 덩치를 부풀린 대기업, 핫드림 엔터.
연예, 방송, 쇼 비즈니스 등.
안 그래도 정신 나간 이 시티의 문화산업을 이끄는 기업이다.
"맞아, 거기 재무팀에서 일했던 인간이지."
"회계사?"
"자료 좀 보지? 핫드림 회계사가 왜 정크타운에 기웃거려?"
"첫 의뢴데 무작정 믿을 수 있나."
"하아-"
한숨 쉰 마리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뢰인의 정체를 밝혔다.
"회계사는 아니고 재무팀에서 근무했던 일반 사원. 넷에서 조금만 서칭해도 나오는 수준의 정보야."
톡톡- 신경질적으로 파일을 두드리는 마리.
"하지만 핫드림 엔터가 아날로그 방식으로 따로 관리하는 장부들이 있다는 건, 나름 이 세계의 네트워크가 있어야 알 수 있는 정보지."
"흠."
"못 믿겠으면 딴 데서 교차검증해보던가."
그럴 필요는 없다.
범죄 온상인 이 도시 대기업들이 불법 로비용 장부를 따로 관리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니까. 게다가 핫드림 엔터는 음지에도 줄이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도는 대기업이고.
하지만.
"일반 사원이 비밀 장부를 다룰 일은 없을텐데."
파일철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탐문하듯 묻는 류의 시선에, 마리의 눈썹이 꿈틀한다.
잠시 불쾌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들어. 첫 의뢰기도 하고, 내기로 약속한 것도 있으니 입 아프게 설명해주는 거야."
"....."
"다음부터, 내 파일을 못 믿는다면 다음 의뢰는 없어."
"알았다."
다짐이라도 하듯 말을 뱉어낸 마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는 프론지, 아무튼-이란 말로 그녀는 설명을 이어갔다.
"2주 전. 그 비밀 장부들을 보관하는 건물 외벽이 터졌어. 대외적으로는 군수 물품을 싣고 가던 AI 트럭의 오작동이 있었다 발표했는데, 개소리지."
"누군가 노렸군."
"당연하지."
"핫드림의 비밀 장부를 노릴 정도면 시의회나 경쟁 기업, 적어도 카르텔 정도는 되야겠는데."
"안타깝지만 이번 의뢰에 그 정도 거물은 없어."
마리가 준 의뢰의 수준은 그보다는 낮았다.
첫 의뢰 아닌가.
그 정도 사이즈의 비밀 장부를 실제로 볼 수 있는 의뢰라면, 당연히 검증된 해결사를 쓰겠지.
이 정도는 류 역시 예상한 바.
"중요한 건, 핫드림이 다루는 비밀 장부들이 '어딘가 노출됐다'는 사실이 뒷세계에 퍼졌다는 거지. 우리 의뢰인, 미스터 '일반 사원'은 여기서 등장해."
다만 이어진 의뢰 전말은 꽤 신박했다.
"이 미친놈이, 그 소문만 가지고 여기 정크타운의 한 갱단이랑 딜을 친 거야."
"뭐라고."
"자기가 그때 잠시 노출된 비밀 장부를 봤다고. 거기 적혔던 불법 로비 명단에 대한 정보를 팔겠다고."
"진짜 봤을 리는."
"당연히 없지. 알아보니까 그 미친놈, 장부 털릴 당시에 자기 집에 있었어."
"그러니까."
헛웃음을 지은 류가 상황을 정리했고.
"핫드림 엔터 소속의 일반 사원이, 자기도 모르는 회사 비밀 정보를 갱단에게 팔겠다고 뻥카치는 상황?"
"맞아."
"미친 새끼네?"
"그 미친 새끼가, 며칠 뒤 정크타운 갱단이랑 가짜 정보와 돈을 교환하는 자리를 만들었어."
마리는 파일에 적힌 '보디가드' 의뢰의 핵심을 정리했다.
"네 의뢰는, 그 거래 자리를 지키는 거야."
***
펠릭스 무어.
정크타운까지 기어들어와 갱단에게 가짜 정보를 팔고, 그 거래 자리의 보디가드를 고용하는데 적지 않은 돈을 생각한 남자.
직접 마주한 그의 첫 인상은, 솔직히 놀라웠다.
"기, 길이, 너, 너무 불편한데요."
거북이처럼 잔뜩 어깨를 움츠린 채 운전대를 잡다가.
빠아아앙!
뒷차의 경적소리에도 깜짝 놀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고쳐쓰는 정장 차림의 이 남자.
조수석에 앉은 류, 그러니까 생전 처음으로 고용한 '뒷세계'의 인물을 연신 불안한 표정으로 힐끔거리는 이 남자에게 그런 간땡이는 없어 보였으니까.
"그, 그나저나 그 사람들, 마, 말은 통하겠죠?"
"갱단 말입니까."
"네, 네!"
"저보단 직접 얘기 나눠본 그쪽이 더 잘 아실텐데."
"시, 실제로 보는 건 이게 처음이라서요. 다, 다크 메신저로만 연락 주고 받은 게 다라...근데 저기 맞나요? 네, 네비에 잡힌 건 저긴데."
"본인이 잡은 네비 아닙니까."
"아, 아아! 그, 그렇지! 맞을 겁니다. 맞아, 맞겠지."
하지만 이젠 안다.
창백한 안색으로 중얼거리며 바싹바싹 마르는 입을 할짝이는 펠릭스.
이 소심한 남자가, 갱단에게 가짜 정보를 판다는 미친 계획을 세운 이유를.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네비와 함께 디스플레이를 분할한 저것 때문이겠지.
'...여기도 세상사는 건 똑같구만.'
류의 눈에, 척 봐도 파란 글씨로 점철한 주식창이 보인다.
띠링!
[ 예약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
[ 예약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
[ 예약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
마침 울린 알람에 휙 돌아간 펠릭스의 얼굴.
이내 화면에 찍힌 파란 음봉을 보자마자 악귀처럼 변한다.
[ 손익률 : - 82.4% ]
"......아니, 씨발?!! 나 이 종목 어제 예약 취소했는데?! 이딴 게 어딨어!! 어딨냐고!!"
눈깔 돌아간 그의 입에서 터지는 육두문자들.
땄으면 저런 말 안했겠지.
180도 변한 태도로 엑셀 밟으며 쌍욕을 퍼부어대는 게 영락 없는 시정잡배.
"왜 나만 못 따는데, 이 개좆같은 새끼들아! 저기요! 씨-팔, 연방 주식거래소 폭발시키려면 얼마 줘야 합니까?! 예?!"
대답할 가치도 없다.
크림슨 같은 메가 시티 10개가 묶인 연방이 직접 관리하는 그곳을 폭발시킨다는 건 나라 하나를 없애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니까.
"돈 존-나 많이 들겠죠? 어라?! 또 돈이네! 또 돈이야?! 맨날 돈이야, 씨-팔!!"
운전대를 탕탕 치며 혼잣말에 가까운 고함을 지껄이던 펠릭스.
한참을 그렇게 운전하다 제풀에 지쳤는지 헉헉대며 숨을 고른 그가, 문득 조수석에 앉은 류에게 고개 숙여 사과한다.
"죄, 죄송합니다. 처음 뵙는데 추태를. 그나저나 서, 선생께서도 주식 하십니까?"
"아뇨."
"하지 마십쇼. 사, 사람이 이 지경까지 오면..."
"왔네요."
"뭣! 선생도요?! 어떤 종목 합니까?"
"도착했다고요."
"앗."
차량 앞유리를 가리킨 류의 손가락을 따라 돌아간 펠렉스는, 볼 수 있었다.
정크타운 8번가.
중심 환락가에 비하면 그 밀도와 규모가 살짝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는 곳.
멀리 둘러보면 간간이 패스트푸드점이나 작은 바의 간판이 보이는 가운데.
철컥.
한 건물 앞으로 주차한 펠릭스의 손은 다시금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 그,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폭력과 싸움에 익숙한 편이십니까?"
"걱정 마시고 가시죠."
"호, 혹시라도 갱단 놈들이 겁을 주더라도, 도, 도망가시면 안 됩니다? 지, 직업소명 같은 거 지키셔야죠."
"안 가실 겁니까?"
"들어가야죠, 예, 드, 들어가야죠."
막상 갱단과의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처음처럼 겁에 질린 펠릭스를 바라본 류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돈 벌기 참 피곤하네. 내가 끌고 들어가야 하나.'
물론, 그럴 필요는 없었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이런저런 헛소리를 중얼대던 펠릭스.
그의 귀에 또 아까와 같은 알람 소리가 들린 순간.
띠링!
파랗게 질린 주식 수익률을 본 그의 얼굴엔 다시 광기가 물들었으니까.
"...갑시다, 씨-팔."
***
2층짜리 건물.
대낮이라 반짝이는 네온사인은 보이지 않지만, 창문마다 술잔 형태의 그림이 박힌 저 바(Bar)가 오늘의 약속 장소다.
"계속 이렇게 살 바에야 뒤져야지. 그래, 지금 한방 땡기는 게 맞아."
"진정하시고."
횡설수설하는 펠릭스와 함께 그리로 향하는 류.
그는 이미 저 2층의 바 창문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다.'
류 역시 그쪽을 쳐다본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까부터 그는 틈틈이 여기저기 검은 장막을 펼치며, 여기서 볼 수 없는 사각의 시야를 염탐하고 있는 중이다.
검은 장막을 빠르게 펼칠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해골 대가리. 그 푸른 안광에 잡힌 시야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류과 공유가 가능하다.
'밤이었으면 대놓고 썼을텐데...'
뭐, 이 정도도 좋았다.
생츄어리, 스켈레톤.
이 두 능력을 합친 위력은, 타이론이란 놈과의 대결에서 어느 정도 증명된 바.
'그때 아쉬웠던 거 이번엔 제대로 써먹을지도 모르겠구만.'
갱단과의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럼 류으로선 6개월 동안 만든 생츄어리와 해골병사의 궁합을, 저번과 같이 누굴 죽이지 않는다는 제한 없이 더 본격적으로 써먹을 수 있겠지.
떨리진 않는다.
오히려 설레기까지 한다.
네크로맨서의 강함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 아닌가.
여태까지 그가 모은 사기는, 마나회로처럼 그의 전신에 감돌며 의지에 반응한다. 특정 기술의 체계를 만드는 과정과 이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건, 심상화된 이미지와 일정량 이상의 사기.
'이제부턴 쭉쭉 성장하겠네.'
그는 이 세계로 오기 전, 이미 네크로맨서가 펼칠 수 있는 이런저런 기술들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생존을 건 전투에 가장 필요한 두 능력을 먼저 갖춘 이상 그는 환경만 받쳐주면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종말의 날까지 5년.'
그때까지 생존하면 그는 '소원'과 함께 원래 세상으로 돌아간다.
그 생존을 위해선 여기서 더 강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딱 두가지지.
돈과 시체.
이 목표를 다시 한번 되새김질한 류.
이 첫 의뢰만 잘 끝내면, 그는 오늘을 시작으로 의뢰와 보상을 무한궤도처럼 돌리며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이번에 받은 걸로 바로 물 탄다, 씨-팔."
"..."
"진짜 이번엔 다를 거야. 불장은 온다고. 가즈아!"
"자아."
눈깔 돈 주식쟁이를 진정시킨 류가, 그와 함께 갱단이 있을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오늘, 저만 믿으시면 별 일 없으실 겁니다."
오늘, 해결사 데뷔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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