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7화.
황금빛 샹들리에 아래.
달칵, 달칵.
기다란 식탁의 상석에 홀로 앉은 채,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누군가.
육즙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가면 아래 드러난 입으로 가져간 그때.
"보스. 코난이 연락이 안 됩니다."
뒤쪽에 선 정장 차림 여성의 보고가 들렸지만.
"레드팜의 두목 있잖습니까. 이번에 저희한테 블랙칩 대여해갔던."
보스라 불린 이는 피식거리더니 마저 고기를 입에 넣고 오물거릴 뿐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마저 이어지는 설명.
"핫엔터 회사 쪽 정보 캐낼 방법 있다고 저희 앞에서 브리핑했던 갱단 두목입니다. 로비 명단 얻을 때까지 저희 쪽에 정보 공유해주기로 약속했었던-"
그럼에도 대답 않는 보스는 지그시 눈을 감고 한참 동안 고기를 음미했다.
오물오물.
코 위로 가면을 쓴 모습이 인상적인 그 자의 입은, 부드럽게 고기를 삼킨 뒤 냅킨을 들어 입가까지 닦은 뒤에서야 다시 열렸다.
".....아아. 기억났다. 나처럼 되고 싶다던?"
"맞습니다. 연락 끊긴 걸 보아, 도망치거나 죽은 것 같아 일단 애들을 풀었습니다만-"
"그게."
다시 나이프를 든 그가 무심하게 물었다.
"내 식사를 방해할 정도의 일인가?"
"죄송합니다. 블랙칩 관련 일이라."
블랙칩.
다른 말로 전뇌 컨트롤칩이라 불리는 이 물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꽤 비싼 물건이다. 거기에 이걸 뒤에서 유통시킨 게 이쪽이란 사실이 연방 관리국에 알려지면 꽤 골치 아파지기도 하고.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애초에 정크타운의 갱단 따위를 믿지 않은 이쪽에서, 놈들에게 하청을 맡기며 그 블랙칩에 패밀리 특유의 '마법'을 걸어놓지 않았나.
"마나 흐름만 추적하면 바로 수거해올 수 있잖아."
한번 새기면 어디서건 그 위치를 알 수 있는 패밀리의 은혜를 새겨놨다.
그럼 그깟 정크타운 갱단 수장 따위의 행방이 뭐가 중요한가.
이 차원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언제든 추적 가능한 마법을 떠올린 보스가, 다시금 썬 고기를 입에 넣으려던 그때.
"그게...블랙칩에 새긴 마법의 신호도 끊겼습니다."
오늘, 처음 그의 포크가 허공에 멈췃다.
* * *
다음날.
그 너머로 명계가 있는 검은장막.
그러니까,
류가 아공간처럼 써먹는 이 생츄어리에 담아온 서류가방 안의 물건은... 생각보다 더 값어치가 있는 듯했다.
"이거...블랙칩이잖아!"
소리 죽여 말하는 마리의 얼굴이 꽤 볼만했으니까.
해피타워의 지하 전당포.
의뢰를 마치고 온 류가, 혹시 장물로 팔 수 있냐며 가져온 검은 칩을 본 마리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주웠어."
설명이 더 필요하다는 듯한 그녀의 눈빛에, 류는 한 문장으로 일축했다.
"레드팜 두목이 이걸 의뢰인한테 박으려 했었지."
"너, 이게 뭔지 알아?"
"알았으니까 팔아줄 수 있어, 없어. 그리고 일 처리했으니까 의뢰 보수 줘야지."
"하, 미치겠네."
"빨리."
"있어 봐."
손으로 이마를 탁 짚은 마리가 그녀가 어디선가 봉투 하나를 가져와 건넨다.
받자마자 그 입구를 훅 불어보는 류.
오케이, 숫자가 쓰인 지폐들이 보인다.
"현찰로 달라고 했지? 그보다 우리 얘기 좀 해."
"하나, 둘, 셋-"
"여기서 다 셀 거야?"
불만 가득한 표정을 한 마리 앞에서, 류는 여유롭게 첫 의뢰로 받은 보수를 세아리는데.
"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전당포의 철창을 걷은 마리가, 좌우를 살피더니 철컥 문을 연다.
"들어와. 여기 와서 얘기해."
"좋아. 첫 의뢰비 깔끔하네. 근데 저번에 본 덩어리는 그새 자른 거야?"
"오늘 외근 보냈어."
"아니, 가드가 자리를 비우면-"
"어차피 이 근처야. 그나저나 빨리 들어오라고!"
뿌듯한 표정으로 봉투를 두드린 류가 들어가자마자 바로 닫힌 문.
마리가 전당포 내부에서 한 버튼을 누르자, 전당포 앞에 다시금 철창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돈 좀 벌었다고 바로 데이트하는 거야, 우리?"
"헛소리하지 말고."
류의 농담을 받지 않은 마리가, 손가락으로 그가 가져온 서류가방을 가리키며 말한다.
"너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장물이잖아."
"이거, 무허가로 풀리면 절대 안 되는 물건이야."
"안 그런 장물이 있었나?"
"이건 '안 되는 품목 중에서도 더 안 되는 종류'에 포함된 물건이라고."
"네 힘으로 그거 처리하기 힘들어?"
"그런 게 아니라."
"능력에 벅차면 관둬. 다른 데 물어보지."
"이익!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
은근히 자존심을 긁는 류의 말에 타격을 받았는지, 순간 욱하는 표정을 지은 마리.
길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전당포 내부를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생각에 잠긴 뒤.
한참 후 다시 입을 뗐다.
"대신 수수료는 50%야."
"헛소리."
"너야말로 모르는 소리 마. 블랙칩은 연방 관리국에서 일련번호까지 주시하는 물건이야. 나도 감수해야 하는 위험부담이 장난 아니란 말이야."
"그렇다고 반이나 떼먹는다고?"
"정작 너한테 떨어지는 금액을 생각하면 나한테 절할지도 몰라."
"얼만데."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 돼."
"40%만 먹어."
"...그럼 나한테 맡기는 거야?"
"대신 다음 의뢰는 최소 50만칩 이상으로."
"하아."
알겠다는 듯 고갤 끄덕인 마리가,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싸고 입을 열었다.
"너, 여기 들어온 거 벌써 두번째야. 진짜 내가 알던 류 맞아?"
"안에 들어온 게 뭔 대수라고."
"원래라면 해결사라고 해도 창구로 의뢰 파일이랑 의뢰 보수 주고받는 게 다야. 처음에야 테스트였다고 해도....뭐야?"
마리의 눈이 살짝 커진다.
허공에 검은 장막을 일으킨 류가, 거기 방금 받은 의뢰 보수 봉투를 던진 것이다.
"저번에도 봤는데, 그거 아공간 마법이야? 흑마법에도 그런 게 있어?"
"뭐, 비슷해."
류는 말을 아꼈다.
스켈레톤을 만들 수 있는 뼈들을 보관하는 명계(冥界).
그곳으로 통하는 틈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궁금해?"
"아냐, 됐어. 복잡한 건 지금으로도 충분해. 오늘은 여기까지."
질렸다는 표정으로 바깥으로 손을 젓는 마리.
그런 그녀를 향해 류가 말을 이었고.
"내 다음 의뢰는-"
"50만칩짜리 의뢰?"
"최소."
"알았어. 며칠 안으로 준비해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아, 맞다."
"또 뭐."
"쓸만한 총포점 하나 추천해줘."
"총포점?"
"눈탱이 치는 가게면 블랙칩인가 뭔가는 다른데서 팔 거야."
마리는, 완전히 지쳤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 알겠어."
* * *
총포점은, 의외로 류의 맨션에서 가까이 보이는 곳에 있었다.
정크타운 9번가.
시티 외곽에선 꽤 규모 있는 유흥가.
슬럼가의 별천지라 불리는 이 환락 거리를, 류는 걷고 있었다.
분홍, 파랑, 빨강 등 자극적인 형광빛 네온사인이 층층이 박힌 건물들이 도로 좌우로 즐비한 가운데.
- 행님! 오늘 알코올에 잔뜩 절인 배양육 두 조각? 행님! 오늘 알코올에 잔뜩 절인 배양육 두 조각? 행님! 오늘 알코올에 잔뜩 절인 배양육 두 조각?
- 우리는 지킨다, 당신의 은밀한 취향! 우리는 지킨다, 당신의 은밀한 취향! 우리는 지킨다, 당신의 은밀한 취향!
- 와우! 뜨거운 느낌 너무 좋아! 와우! 뜨거운 느낌 너무 좋아! 와우! 뜨거운 느낌 너무 좋아! 와우! 뜨거운 느낌 너무 좋아!
가슴 쪽에 갖가지 영상이 재생되는 디스플레이 화면을 단 안드로이드들의 호객 행위를 피해, 좌측 중로로 접어든다.
"한잔 더 해."
"꺼져. 간 지금 썩어 가."
"웨어 교체하면 되잖아. 돈 벌어서 어따 쓰냐?"
"존나 취했다고."
"대가리 포트 시술은 장식으로 달았냐? 숙취 해소 칩 끼면 되잖아."
"피곤한데-"
해괴한 소릴 해대는 취객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반대편으로 향하니.
바닥에 널린 전단지와 담배 꽁초 좌우로 조그마한 클럽이며 소규모 바, 그리고 간간이 다양한 샵들이 있는 거리가 나온다.
'예전 홍대 골목 느낌인데.'
드문드문 가드를 배치한 업소들을 지나쳐 가던 류는, 곧 마리가 말해준 총포점을 찾을 수 있었다.
간판을 먼저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 너, 너 이씹!"
"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갤 돌리니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마리의 전당포 앞을 지키던 녀석.
"네, 네가 여길 왜 와!"
"너희 사장이 추천해 줬는데?"
"뭣."
타이론.
이놈이 여기 가드를 보고 있었다.
"아, 외근 나갔다는 게 여기 지키는 거였어?"
"사장님이 너한테 그런 얘기까지 하셨다고?"
험악한 표정을 짓는 타이론의 말에 대꾸 않고 고갤 올리는 류.
그림 하나 없는 단촐한 간판이 하나 보인다.
뱅 샵(Bang Shop).
일단 밖에서 봤을 때 특별해보일 것은 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건물 자체가 이 거리에 있는 그것들에 비해 좀 더 널찍해 보인다는 정도?
한데 가드를 공유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저번에는 부품에 적응을 못했다며, 다시 뜨자며, 조금만 기다리라며 계속 으르렁대는 타이론.
그를 흘낏 보며 이 총포점의 정체에 대한 이런저런 추측을 하는 류가었으나.
철컥!
"반가워요. 제인이에요."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저희 언니랑 일하신다고요."
* * *
총포점의 각 벽면을 장식한 각양각색의 무기들.
수십가지 총기류, 도검류, 심지어 폭탄까지.
이 뱅샵의 주인, 제인은 그 흉악한 무기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자매가 느낌이 완전히 다른데?'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잘 어울리는 생머리를 한.
눈망울이 크다는 점 말고는 마리와 패션이며 스타일이며 모든 게 정반대처럼 보이는 이였으나.
'뭐, 상관없지.'
그게 류에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자신과 스켈레톤 셋의 화력을 높일만한 화기였으니까.
"언니한테 들었어요. 무기가 필요하시다면서요?"
"네, 일단은."
"혹시 생각하고 있는 기종이 있으신가요?"
"흠."
일단 류가 가진 화기는 권총 두 정에 더블배럴 샷건 하나.
이 각각에 맞는 총탄을 구매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조금 더 나가도 되겠지.
"주문 각인된 총탄을 구매하고 싶은데요."
"아, 그러시군요?"
그가 가진 더블배럴 샷건은 총열에 특수 각인이 된 총. 이 총의 전 소유자가 보여줬듯 디스펠 같은 종류의 주문도 튀어나갈 수 있는 이 총에, 다른 마법이 각인된 총탄을 장전하면 그 위력이 배가 되겠지.
"실례가 안 된다면, 총탄을 넣을 총기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잠시 실례."
"아!"
제인은 류가 펼친 검은 장막에도 호들갑을 떨진 않았다.
언니인 마리와는 달리, 우아한 접객을 이어나가는 제인이었으나.
"이 총입니다."
"앗."
생츄어리에서 류가 꺼낸 샷건을 보자 조금 흥분하기 시작하더니.
"호, 혹시 제가 직접 살펴봐도."
"그러시죠."
"후후후후후."
"?"
건네받은 더블 배럴 샷건의 총열을 쓰다듬자마자.
"아아, 이 서늘한 감각! 이거이거, 대애단한 물건 납셨군요오호호."
갑자기... 눈깔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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