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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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꿍이
작품등록일 :
2024.11.0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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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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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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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와 특급배송

DUMMY

서부 수도 벨포로트의 어느 저택.


고요했던 실내에 그림자가 솟구치더니, 보랏빛 머리를 휘날리는 한 여성이 나타났다.


화려한 옷과 반짝이는 장신구를 걸친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실실 웃었다.


“왔군.”


안에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깔끔하게 올백으로 넘긴 금발이 그의 세련된 인상을 더했다.


날카롭고 차가운 푸른 눈동자가 반짝였고, 그 조각 같은 얼굴에는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황금연맹의 딸은 처리했나?”


라시엘은 당당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 한마디에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또 무슨 변덕이 들어서?”


라시엘은 실실 웃음을 흘리며, 약 올리듯 그의 앞에 다가섰다.


“이번엔 레지오, 네가 틀렸던데?”


레지오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뭐가 틀렸다는 거지?”


라시엘은 손가락을 튕기며 기분 좋게 대답했다.


“검 한 번 휘두르면 깔끔하게 끝날 거라며? 지켜주는 사람 없을 테니 손쉽게 처리될 거라고 했잖아.”


“그래서?”


레지오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라시엘은 천천히 얼굴을 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지켜주는 사람이 있던데?”


레지오는 고개를 갸웃하며 이마를 찌푸렸다.


“북부에서 그 정도로 강한 사람을 보내기 힘들 텐데... 누구지?”


그 말에 라시엘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아주 귀엽고 이쁜 자기!”


레지오는 순간 얼어붙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또 병이 도졌군...”


라시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뻗어 허공에 무언가를 쓰다듬는 듯한 동작을 취하며 중얼거렸다.


“둘만의 공간에서 백허그했을 때 그 기분이란... 정말 최고였는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달뜬 감정이 스며 있었고, 표정은 완전히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듯 황홀해 보였다.


레지오는 입술을 꽉 깨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됐고, 그딴 감정 얘기는 나중에 하자.”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환상을 깨트리려는 듯 이어졌다.


“지금 중요한 건 황금연맹의 딸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거야. 이렇게 되면 일이 지연된다고 분명 말했을 텐데.”


라시엘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뭐, 네가 직접 와서 해결하든가. 난 이미 충분히 재미 봤으니까~”


그녀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두 눈을 감으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널 신뢰하면 안 된다니까...”


라시엘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던 얼굴을 갑자기 굳히더니, 정색하며 레지오를 바라보았다.


“혹여나 암살자 같은 거 보낼 생각하지 마. 자기는 내 거니까.”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살짝 좁혀지며 위압감이 감돌았다.


“그년 지키다가 다치면... 나도 가만 안 있어.”


말을 마친 라시엘은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남겨진 레지오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저런 미친년이 제국 10강 중 3번째라니... 하아...”


***


멀리서 마그노르의 전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성벽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고, 성벽 너머로는 깔끔하게 정돈된 높은 건물들과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성문으로 들어서자 활기찬 시장과 교역으로 붐비는 거리의 소음이 일행을 반겼다.


사람들은 분주히 오가며 물건을 사고팔았고, 이따금씩 희귀한 물품들을 실은 마차가 지나갔다.


도시 한쪽에는 대형 마차에 적재된 물품들이 분류되는 창고가 있었고, 교역 물품을 지키는 경비병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일단 숙소부터 예약하죠.”


일레아나가 말을 멈추며 제안하자, 레이와 아르엔도 고개를 끄덕였다.


숙소를 예약한 후, 아르엔과 일레아나는 쉬겠다고 하며 각각 방으로 들어갔다.


“저는 조금 쉬고 올게요. 하루 종일 말을 타니 피곤하네요.”


아르엔이 말하며 방으로 향했고, 일레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잠깐 눈 좀 붙이고 나올게요.”


레이는 혼자 남겨진 채 잠시 숙소를 둘러보다가 방 밖으로 나섰다.


‘맥주 한 잔 하려고 했는데, 이런 도시에 왔으니 한번 돌아다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천천히 마그노르의 거리를 걸으며 도시의 분위기를 느꼈다.


상인들의 외침과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 속에서 몇 마디가 흘러들어왔다.


“곡물 값이 또 뛰었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충분하다더니 이젠 모자란다고 난리야.”


“그게 끝이냐? 철광석도 품질이 엉망이라는데.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


“그놈의 금화도 그렇지. 반은 잡금이라더라. 이러다 다 망하겠어.”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문제는 있는 법이다. 풍요롭다는 서부 상업국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었다.


사람들을 구경하며 걷다가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큰 건물 하나를 발견했다.


외벽에는 거대한 길드 마크와 함께 걸린 -무역인의 성소-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건물을 바라보며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큰 도시에는 대규모 길드가 필수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부는 활기차고 북적이는 소리가 가득했다.


곳곳에 길드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모여 앉아 음료를 마시거나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새로운 의뢰가 계속해서 접수되는 모습이 보였다.


길드 내부를 둘러보다가 두건을 쓴 무리들에게 시선이 멈췄다.


그들과 대화 중인 길드 안내인을 바라보며, 익숙한 기척에 걸음을 멈췄다.


‘이 기척... 자연과 동화되는 듯한 느낌. 인간이 아니네. 엘프인가?’


엘프라는 단어를 떠올린 순간, 머릿속에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대전쟁 때, 부상을 입고 쓰러졌던 자신을 치료해 주던 엘프들의 여왕, 엘루윈이었다.


그녀는 은빛 머리를 반짝이며 손에 마나를 집중시키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했다.


“진짜 대단하다, 레이.”


엘루윈은 치료를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들고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강하다면서 왜 맨날 이렇게 다쳐 오는 거야? 이럴 거면 차라리 강하다는 말을 하지 마.”


그녀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상처의 고통도 잠시 잊은 채 웃으며 대꾸했다.


“다친 만큼 적들을 쓸어버리고 온 거지.”


엘루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손짓으로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 너답다. 뭐든 이겨내기만 하면 다 된다는 생각, 참 한결같아.”


그녀는 한숨을 쉬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그를 반 걱정 반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매번 이렇게 너 자신을 갈아 넣어서 얻은 승리가 얼마나 오래갈 것 같아? 네 몸이 남아 있어야 적이든 뭐든 이기든지 말든지 하지 않겠어?”


레이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그녀의 기억에 잠시 멈춰 섰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회상에서 빠져나왔다.


시선을 다시 길드 안내인과 엘프 무리들에게로 돌렸다. 엘루윈이 떠올라서일까, 그들 사이의 대화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흥미가 생겨 자연스럽게 무리 가까이로 슬금슬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드러나 볼까.’


레이는 발소리를 죽이며 엘프 대표와 길드 안내인의 대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길드 안내인의 손에 작고 빛나는 잎사귀들이 전달되는 모습이 보였다.


'오호? 에델리안의 잎사귀. 세계수의 잎을 거래한다라?'


엘프 대표는 길드 안내인에게 잎사귀를 건네며 단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동부 마법국에서 요청한 물품이에요. 잎사귀는 변질 없이 완벽히 보존된 상태일 거예요.”


길드 안내인은 살짝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요, 최근 동부 마법국에서 문의가 왔는데, 에델리안의 잎사귀 대부분이 마나가 없는 상태로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혹시 잘못된 물품이 간 건 아닐까요?”


엘프 대표의 표정이 굳었다. 은은한 얼굴선에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럴 리 없어요. 에델리안의 잎사귀는 세계수에서 나는 잎이에요. 변질 같은 건 있을 수가 없어요. 확인해 보셔도 좋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묘한 단호함이 스며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레이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에델리안의 잎사귀는 엘프들에게 생명수라 불리는 세계수의 잎에서 나오는 거다. 변질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녀는 길드 안내인을 향해 다시 물었다. 목소리가 더 차분해졌지만,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동부 마법국으로 보내진 잎사귀를 취급한 곳이 어디죠? 직접 확인해 볼게요.”


길드 안내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상업처의 위치가 적힌 문서를 내밀었다.


“여깁니다. 최근 동부로 가는 물품을 관리하던 상업처입니다.”


문서를 빠르게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바로 가볼게요.”


그녀는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서둘러 길을 떠나려 했다. 그 순간, 레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혹시, 나도 같이 가도 될까?”


순간, 경계의 눈빛으로 돌아보며 레이를 노려봤다. 레이는 두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천천히 말했다.


“마침 나도 에델리안의 잎사귀를 살 생각이었거든. 변질됐다는 소리는 좀 신경 쓰이는 일이기도 하고.”


엘프 대표는 잠시 머뭇거리며 레이를 살피더니, 그가 진심임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같이 가시죠.”


레이는 미소를 살짝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변질된 잎사귀라... 직접 확인해 봐야겠는데. 어차피 저 녀석들만 믿기엔 좀 불안하지.’


그는 엘프 대표와 무리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엘프들은 강하면서도 묘하게 어리숙하다니까. 겉으로는 저렇게 당당하지만, 허술한 구석이 꼭 있으니.’


둘은 함께 길드 건물을 나서며 상업처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게에 도착하자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가게 주인에게 다가갔다.


“에델리안의 잎사귀, 여기서 직접 취급한 건가요?”


가게 주인은 당황한 듯 입을 열려했다. 하지만 레이가 가볍게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다.


“잠깐, 먼저 물건부터 확인해 보자고.”


그녀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레이는 신경 쓰지 않고 진열대를 훑었다.


손가락으로 박스 하나를 가리켰다.


“이거 주세요. 바로 확인해 볼게요.”


가게 주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기색을 띠며 박스를 조심스럽게 포장해 건넸다.


박스 크기를 본 레이는 눈썹을 살짝 추켜올렸다.


“작은 건데 가격은 또 왜 이렇게 비싼 거야...?”


돈을 지불하면서 작게 구시렁대었다.


“이래서 교역 물품은 믿을 게 못 돼.”


박스를 들고 그녀에게로 돌아가며 손짓했다.


“자, 뜯어보자. 진짜 문제없나 한 번 보자고.”


신중한 표정으로 박스를 열었다. 상단에는 빛나는 에델리안의 잎사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녀는 잎사귀를 하나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다행히 정상이네요.”


레이는 별말 없이 박스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손을 뻗어 상단에 놓인 잎사귀를 한 장씩 옆으로 치웠다.


손길이 박스 아래쪽에서 멈췄다.


겉보기엔 동일한 에델리안의 잎사귀였다.


특유의 빛까지 동일했으나 자세히 보니 마나는 느껴지지 않았고, 텅 비어 있었다.


한 장을 들어 올려 빛에 비춰보았다. 잎의 맥락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마치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속이 텅 비어 있었다.


“비어있네.”


레이가 차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굳어진 표정과 함께 그녀의 목소리에는 혼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레이는 잎사귀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문제가 있긴하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속은 텅 비었어. 위쪽은 그럴듯하게 꾸며놨으면서, 아래쪽은 제대로 비워둔 거지. 특유의 빛까지 똑같이 흉내 낸 걸 보면, 이거 전문적으로 털어먹는 놈들이 한 짓이야."


말을 멈추고 다시 엘프를 바라봤다.


“엘프는 이럴리가 없을거고...? 아니면 누가 너희 걸 손댄 건가?”


그녀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박스를 응시하다가 이를 악물었다.


“엘프가 세계수의 잎을 이런 식으로 다룰 리가 없습니다. 누군가 엉뚱한 짓을 한 거겠죠.”


레이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래, 엘프들이 허술한 구석이 많긴 하지만, 이런 짓까지 할 놈들은 아니겠지.”


그는 시선을 돌려 가게 주인을 바라보며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였다.


“그럼 이제 가게 주인한테 물어볼 차례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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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엘프의 숲 에델리안 24.12.27 20 0 12쪽
56 고슈안 사막(3) 24.12.26 27 0 12쪽
55 고슈안 사막(2) 24.12.25 23 0 13쪽
54 현 시점의 인간국가들 24.12.24 25 0 13쪽
53 고슈안 사막 24.12.23 26 1 15쪽
52 라이칸(2) 24.12.22 31 1 11쪽
51 라이칸 24.12.21 32 0 13쪽
50 적색 오크와 수인족 24.12.20 3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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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하급 괴수 24.12.16 35 0 13쪽
45 필로안 대초원(2) 24.12.15 40 0 13쪽
44 필로안 대초원 24.12.14 43 0 13쪽
43 다음 여정을 향해 24.12.13 50 0 13쪽
42 맥주 한잔의 여유 24.12.12 50 0 13쪽
41 지하도시(3) 24.12.11 58 0 15쪽
40 지하도시(2) 24.12.10 47 0 13쪽
39 지하도시 24.12.09 54 0 13쪽
38 드워프의 바위산 암페리온(2) 24.12.08 68 0 15쪽
37 드워프의 바위산 암페리온 24.12.07 62 1 14쪽
36 마법사 시엔(2) 24.12.06 66 0 13쪽
35 마법사 시엔 24.12.05 64 0 13쪽
34 회의 24.12.04 67 0 14쪽
33 제국 10강의 정점(3) 24.12.03 68 1 14쪽
32 제국 10강의 정점(2) 24.12.02 71 1 14쪽
31 제국 10강의 정점 24.12.01 82 1 12쪽
30 서부 수도 벨포로트(3) 24.11.30 7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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