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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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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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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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0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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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10강의 정점

DUMMY

실버블룸의 효과를 기록하던 아르엔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기존 영생의 꽃보다 최소 두 배는 효과가 있네요. 이 정도면 충분히 상업적인 가치가 있어요."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을 확인한 일레아나는 깊이 고개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꼭 갚도록 할게요."


아르엔은 손을 가볍게 내저으며 웃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일단 제가 정리할 게 좀 있으니, 이후에 또 이야기하죠."


아르엔이 실버블룸의 효능을 정리하며 황금연맹 내부를 구경하겠다고 하자, 일레아나는 흔쾌히 안내를 자청했다.


레이는 치료소를 나가며 말했다.


"나는 벨포로트 온 김에 시내나 좀 둘러보고 올게."


일레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구를 지키는 이들에게 미리 이야기해 두겠다고 약속했다.


"마음 편히 둘러보고 돌아오세요. 문제 없도록 말해둘게요."


레이는 벨포로트 시내로 나오자마자 마주친 광경에 잠시 발을 멈췄다.


시끌벅적한 상인들의 외침, 활기차게 오가는 사람들, 간간이 눈에 띄는 이종족들.


대전쟁의 황량함에 익숙했던 자신에게는 이 생동감 넘치는 평화가 오히려 낯설었다.


'내가 비정상적인 건가... 이런 평화가 어색하다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느긋하게 거리를 걸었다.


다양한 상점들이 늘어선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신선했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한 간판에 걸음을 멈췄다.


간판은 꾸밈없이 간결하고 직설적이었다.


- 드워프 공방 -


레이는 무심코 간판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문을 바라봤다. 머릿속에는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대전쟁 당시, 드워프들은 전선에 서지 않았다. 아니, 서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괴수왕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곳이 하필이면 드워프의 왕국, 암페리온이었다.


그날 이후, 드워프들은 그들의 자랑스러운 무기와 함께 사라져 갔다.


용왕 칼타와 엘프 여왕 엘루윈이 남은 드워프를 구하기 위해 싸우던 모습도 생생했다.


'그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사라졌는지···'


무엇 때문인지 검이 필요하지 않은 지금 발걸음이 자연스레 가게 문으로 향했다.


-딸랑-


문이 열리며 방울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짧은 정적이 흐르던 순간, 멀리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나갈 테니, 기다려."


레이는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인간으로 치면 1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드워프 소년이 머리에 두건을 쓰고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 망치를 들고 있는 손,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작업복에는 쇳가루가 잔뜩 묻어 있는 채 걸어나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레이는 무심코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드워프의 나이를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큰일 나지.'


소년 드워프는 다가오며 대뜸 물었다.


"무기 살려고?"


어린 얼굴에 전혀 거리낌 없이 자연스레 나오는 반말. 어찌 보면 당황할 법도 했지만, 레이는 익숙했다. 오히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음... 일단 구경 좀 해보려고요."


드워프는 레이를 한 번 훑어보더니 툭 내뱉었다.


"구경은 자유. 근데 아무거나 만지면 물어내야 할 줄 알아."


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열대를 둘러봤다. 반짝이는 무기들. 정교하면서도 투박한 드워프의 특유의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벨포로트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됐나요?"


드워프는 손에 들고 있던 도구를 내려놓고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건 왜?"


레이는 천천히 진열대 위 무기들을 훑어보며 대답했다.


"오래간만에 드워프를 봐서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정확히는 모른다는 식으로 말했다.


"인간 기준으로 치면 좀 됐지. 70년? 아니, 80년쯤 됐나?"


"서부에서 있었던 일들도 대략적으로는 알고 계시겠네요."


드워프는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인간들끼리 투닥거리는 거엔 관심 없어. 난 내 작품들에만 신경 쓰니까. 전쟁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해."


레이는 그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 대전쟁 때문인가요?"


드워프는 레이를 힐끔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요즘 인간들은 대전쟁 같은 거 잘 모를 텐데, 역사에 관심 많나 보네?"


레이는 억지로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음... 그렇죠? 하하..."


"그땐 나도 어렸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직도 각인된 건 있어. 전사들의 죽음, 기나긴 피난 생활, 그리고 우리 드워프들이 흘리던 눈물."


레이는 그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담담히 말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더 슬프게 느껴진다.


"침울한 이야기는 이제 됐고, 무기나 봐. 살 거 있으면 말하고. 작업해야 돼."


"어떤 작업인데요?"


드워프는 고개를 들더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레이를 쳐다봤다.


"궁금한 게 참 많은 인간이네."


레이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혹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요."


그는 그런 레이를 한동안 가만히 바라봤다. 눈빛이 날카롭고 깊어졌다.


마치 무언가를 꿰뚫어 보려는 듯한 시선. 이윽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드워프의 눈은 항상 본질을 꿰뚫어 봐. 넌 말에 거짓이 없구나."


"그 눈으로 이런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알고 있고요."


그 말에 순간 멈칫하더니, 곧 손을 내밀었다.


"두르만이야."


레이는 손을 맞잡으며 이름을 밝혔다.


"레이입니다."


두르만은 이름을 듣고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번 레이를 찬찬히 살폈다.


"전쟁으로 인해 슬픔이 각인된 건 맞지만, 감사함을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그 말과 함께 몸을 돌리며 말했다.


"따라와 봐."


공방의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두르만. 그곳에는 묘한 기운이 감도는 세 개의 무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범상치 않은 지팡이, 활, 그리고 거대한 도끼.


레이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두르만이 진열된 무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전쟁을 끝낸 영웅들을 떠올리며 만든 거야. 용왕 칼타, 엘프 여왕 엘루윈, 그리고 오크 대전사 그록타."


레이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무기를 응시했다. 두르만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무기 하나를 소중히 어루만지며 말했다.


"마지막 하나가 완성이 안 됐어. 재밌게도 너랑 이름이 같네. 검성 레이. 지금은 검성 레이의 무기를 만들고 있어. 그게 살아있는 자가 전쟁을 끝낸 영웅들에게 보낼 감사의 인사라고 생각하니까. 나만의 방식이지."


그리고는 검을 만드는 틀 앞에서 서더니 입을 열었다.


"검성의 무기는 기록도 뭔가 추상적이야. 각기 다른 느낌으로. 내 느낌만으로 완성했다가는 그 무기가 영혼 없는 껍데기로 끝날 거야."


레이는 무기들을 응시하던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이내 공간이 일렁이더니, 그의 손에 검이 소환되었다. 내면세계에서 나온 검이었다.


두르만은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이한 기운에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건..."


레이는 검을 두르만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걸 보고 영감을 잡아보는 게 어떤가요?"


그는 멍하니 검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레이를 쳐다봤다. 동공이 흔들리는게 보인다.


"너... 마나를 다루는 게 아니구나. 그 검... 마치 500년 전의..."


레이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제가 작업에 도움이 된 것 같나요?"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몹시. 레이라 했지?"


두르만은 공방 구석으로 가더니, 묘한 기구를 들고 왔다.


"팔."


레이는 잠시 당황하며 물었다.


"예?"


멍하게 있지말고 얼렁 올려 보라며 손짓했다.


"팔 올려봐."


레이는 멈칫거리다가 팔을 기구에 올렸다. 그러자 기구에서 마법진이 빛나며 팔뚝 위에 망치를 감싸는 불의 각인이 새겨졌다.


각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드워프 장로 두르만’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레이는 팔을 내려다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건...?"


"레이, 넌 이제 드워프의 친우다. 내가 보증하지."


"이렇게 갑자기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어. 그 정도면 충분해."


레이는 그런 두르만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영웅들을 잊지 않아 줘서 고마워요."


이제 볼일이 끝났다는듯 손짓을 하며 말했다.


"이제 나가."


"에? 저... 무기는?"


두르만은 뭔 헛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레이를 봤다.


"어떤 검보다 좋은 명검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기 타령이라니."


그러더니 레이의 허리를 번쩍 들어 올려 그대로 가게 밖으로 향했다.


공중에 뜬 채로 졸지에 끌려 나온 레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드워프들의 무식한 힘은 진짜 알아줘야 한다니까.'


두르만은 가게 밖에 레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당분간 가게 문 닫는다. 검 만들려면 꽤 오래 걸리겠지만, 방향을 잡은 것만으로도 감사한 거지. 완성되면 가장 먼저 너한테 보여주고 싶어."


레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음... 서부 일이 잘 풀리게 되면 황금연맹에 말하면 될 거예요. 아니면 북부 발칸 쪽으로?"


"알겠어. 그리고 다른 드워프를 만나면 팔뚝에 새겨진 각인을 보여줘. 그럼 다 해결될 테니까."


그는 짧게 웃으며 말했다.


"재밌었다, 레이."


그 말과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 문을 닫고 공방 안으로 사라졌다.


레이는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다 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진짜 한결같구나, 드워프들은."


다시 벨포로트의 길을 걷게 된 레이는 두르만과의 만남을 떠올리며 혼자 미소를 지었다.


‘서부에 와서 재밌는 인연들을 많이 만드는거 같네.’


그러다 자연스레 떠오른 엘프 소녀.


"루시는 잘 갔으려나."


시계탑 쪽을 향하던 레이는 배가 출출해졌음을 느끼고 눈에 띄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날씨가 좋아 밖에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자리였다. 간단히 음식을 주문한 후, 여유롭게 사람들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때,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황금연맹 본부로 향하는 한 남자가 보였다.


금발의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남자, 길고 우아한 걸음걸이, 사람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가르는 위압감.


남자는 본부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더니 방향을 꺾어 레이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레이는 그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비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재밌는 인연을 많이 만든단 말이지."


남자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와 레이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바쁠 텐데 여기서 밥 먹을 시간은 되나 보네요. 레지오?"


레지오는 의자를 당기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누구 덕분에 꽤나 바쁘긴 하지만, 밥 먹을 여유는 있지. 레이."


레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름을 알려준 기억은 없는데... 온 김에 같이 밥이나 먹죠?"


때마침 레이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레지오는 음식을 가져다준 종업원에게 같은 걸로 달라고 주문했다.


레이는 천천히 음식을 입에 넣으며 레지오를 바라봤다.


눈빛은 겉으로는 가볍지만, 그 안에는 예리하게 상대를 탐색하는 기운이 엿보였다.


레지오는 그런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제국으로 와라."


레이는 뜬금없는 제안에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갑자기?"


"널 유능하다고 생각하니까."


"미안하지만 난 원래 유능해."


레지오는 레이의 짧아진 말에도 흔들림 없이 쳐다보며 말했다.


"다시 말한다. 제국으로 와라."


"남자한테 이렇게 집요하게 구애받는 건 처음인데."


레지오는 그런 농담을 무시하며 차분하게 말했다.


"널 죽이기엔 아깝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레이는 농담을 멈추고,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럴 순 있고?"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주변의 소음마저 멀게 느껴지는 순간.


마침 종업원이 레지오의 음식을 가져다 놓았다.


레지오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여유롭게 고기를 썰어 한 입 크기로 자르더니, 천천히 입에 넣었다.


음식을 음미하며 씹는 동안, 새파란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가 레이를 가만히 응시했다.


차갑고 맑은 눈빛에는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묘한 압박감을 주었다.


음식을 삼킨 뒤, 레지오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당연하다는 듯 짧게 말했다.


"충분히."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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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고슈안 사막(2) 24.12.25 2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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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고슈안 사막 24.12.23 26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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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라이칸 24.12.21 3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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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하급 괴수 24.12.16 35 0 13쪽
45 필로안 대초원(2) 24.12.15 40 0 13쪽
44 필로안 대초원 24.12.14 43 0 13쪽
43 다음 여정을 향해 24.12.13 50 0 13쪽
42 맥주 한잔의 여유 24.12.12 50 0 13쪽
41 지하도시(3) 24.12.11 58 0 15쪽
40 지하도시(2) 24.12.10 47 0 13쪽
39 지하도시 24.12.09 54 0 13쪽
38 드워프의 바위산 암페리온(2) 24.12.08 68 0 15쪽
37 드워프의 바위산 암페리온 24.12.07 62 1 14쪽
36 마법사 시엔(2) 24.12.06 66 0 13쪽
35 마법사 시엔 24.12.05 64 0 13쪽
34 회의 24.12.04 67 0 14쪽
33 제국 10강의 정점(3) 24.12.03 68 1 14쪽
32 제국 10강의 정점(2) 24.12.02 71 1 14쪽
» 제국 10강의 정점 24.12.01 82 1 12쪽
30 서부 수도 벨포로트(3) 24.11.30 7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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