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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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꿍이
작품등록일 :
2024.11.0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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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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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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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안 대초원(2)

DUMMY

"오크에 대해 잘 아는 인간 전사군."


레이가 고개를 들어 그의 시선을 받았다.


"아주··· 친한 친구가 오크 중 하나였거든."


짧고 담담한 대답. 그록은 잠시 그를 쳐다보더니 다시 앞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이 초원은 생각보다 넓다. 회색 오크의 영토까지는 시간이 걸릴 거다."


그록이 말하자, 시엔이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끝이 안 보여. 괴수라도 나오면 골치 아프겠네."


레이가 그 말을 받아 물었다.


"최근에 이상한 괴수라도 나온 적 있어?"


그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래 자주 나왔다. 근육이 뒤틀린 괴수. 찢어버리니 재생하지 않고 죽더군."


"찢어버린다니···"


시엔의 얼굴이 헬쓱해졌다. 오크가 괴수를 손으로 찢는 상상이 머릿속을 스치자 작게 중얼거렸다.


"그냥 안 만났으면 좋겠다."


그록이 그녀를 흘깃 보며 물었다.


"드워프라면 암페리온인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거지?"


시엔이 고개를 들었다.


"인간 국가에서도 괴수들이 자주 나와. 그래서 조사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짧게 숨을 고르고 덧붙였다.


"바위산 근처에서 자주 나타난다고 해서 갔었고, 그게 암페리온과 연결된 이 대초원까지 이어졌어."


그록이 낮게 웃었다.


"멋지다. 너도 전사군."


그 말에 시엔은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말했다.


"그런가···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그록이 멈추지 않고 말했다.


"그래서 전사라는 거다."


짧은 대화가 끝난 후, 세 사람은 조용히 길을 걸었다. 대초원의 넓은 들판이 끝없이 펼쳐졌고, 발걸음이 풀을 밟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맴돌았다.



짙은 회색 바위와 드문드문 자란 풀밭이 섞인 언덕 아래로 회색 오크들의 영토가 모습을 드러냈다.


목책과 뼈로 세워진 기둥들이 경계를 이루고 있었고, 그 너머 언덕 위에는 족장의 집이 불빛을 흘리고 있었다.


등에 동족의 시체를 멘 그록이 목책을 지나자, 오크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강한 체구를 가진 이들이 하나둘 다가오며 동족의 죽음을 알아차렸다.


"우리 동족이 죽었단 말인가!"


앞장선 오크가 울분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거친 숨소리가 대초원의 바람에 섞여 퍼졌다.


그록은 묵묵히 시체를 붙든 손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그래. 하지만 이들의 손에서 마지막을 지킬 수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뒤쪽을 가리켰다. 레이와 시엔이 언덕 위에 서 있었다.


둘을 향한 오크들의 시선에 무거운 분노와 슬픔이 어렸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족장은 돌아왔나?"


오크 중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오셨다. 기다리고 계신다."


그록은 시체를 바로 세우며 말했다.


"족장께 가자. 직접 보고 드려야 한다."


그록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족장의 집을 향해 걸었다. 뒤이어 레이와 시엔이 그의 뒤를 따랐다.


족장의 집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거대한 건물이었다. 바위와 나무가 단단하게 엮여 있어 오랜 세월을 견뎌온 듯했다.


그록은 문 앞에 서서 잠시 시체를 내려다보다가 낮게 불렀다.


"타칸, 내가 돌아왔다."


문이 열리며 족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타칸은 회색 피부와 짧게 자른 머리를 지녔고, 어깨부터 가슴까지 가로지르는 깊은 흉터가 그의 생존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곧바로 시체로 향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우리도 결국 당했는가...."


타칸은 시체를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묻고 초원이 그를 받아들이게 하라."


시선을 올려 레이와 시엔을 바라봤다. 낯선 얼굴이었지만, 족장은 짧은 시간 안에 판단을 끝낸 듯했다.


레이는 두 팔을 교차한 후 손을 내밀었다. 타칸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동작으로 화답했다.


"들어와라. 이야기를 나누자."


집 안으로 들어온 후, 시엔이 손을 들어 장막을 펼쳤다. 외부의 소리가 사라지며 방 안에는 고요함이 찾아왔다.


"혹시 몰라서 소리가 나가지 않게 했어."


타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고, 시엔을 가만히 응시했다.


잠시 숨을 고른 시엔이 말을 이어갔다.


"바위산에서 변종 몬스터를 봤어요. 암페리온과 연결된 최하급 괴수들, 그리고 언데드와 본드이크의 흔적까지."


타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침묵 속에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초원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는 뜻이군."


침묵 속에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초원에서도 괴수들이 출몰하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몬스터가 흉포해졌다고 여겼다. 하지만 전사들이 죽어나가고, 동족의 시체가 회수되면서 부족의 족장들이 한 곳에 모였다."


타칸은 벽에 걸린 오래된 전사의 상징을 바라봤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족장들 사이에서 수인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컸다. 허나 대전사는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수인족의 특성과 동족들의 죽음의 방식은 결코 맞지 않았다."


타칸의 눈빛이 짧게 흔들렸다. 방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는 순간, 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되면 누군가는 터질 거다. 특히 적색 오크들."


타칸은 잠시 말을 멈추고 그록을 바라보았다.


"적색 오크들은 동족의 죽음을 단순히 죽음으로 보지 않는다. 형제를 잃었다고 여길 만큼 피를 중요시하지. 그런 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거다."


타칸의 말이 끝나자, 그록이 고개를 들었다. 무겁게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울렸다.


"타칸, 수인족을 의심하는가?"


타칸은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수인족은 겁쟁이다. 전쟁을 두려워하는 종족이 오크를 공격한다고?"


그는 짧게 비웃었다.


"만약 수인족이 우리를 공격한 게 사실이라면 난 적색 오크들과 함께 당장 그들을 말살하러 갈 거다."


방 안이 잠잠해졌다. 타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지만, 그의 말은 무겁게 머물러 있었다.


레이는 말을 잇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대전쟁 당시, 수인족 왕은 종족을 이끌고 싸우지 않았다. 그들은 대륙의 외곽으로 몸을 숨기며 피신을 선택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오크들은 여전히 수인족을 두려움에 정신이 먹혀버린 한심한 종족이라 여긴다.


그 겁쟁이라는 낙인은 오늘날까지도 지워지지 않았다.


'수인족은 겁쟁이라는 인식이 변함없구나.'


레이는 그 생각을 삼켰다.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었다.


타칸의 말이 끝나지 않은 긴장 속에서, 그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번엔 더 강했다.


"그럼 대체 어떤 녀석들이 우리를 죽이고 있는 건가."


타칸은 시선을 들며 그를 응시했다. 짧은 순간 고민한 듯 보였지만,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드넓은 대초원을 오크 부족 전체가 뒤지는 방법밖에 없다."


타칸이 방 안에 감도는 무거운 공기를 감지한 듯 짧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무거운 이야기는 내일 다시 하자."


그는 레이와 시엔을 바라보았다.


"동족의 죽음을 지켜줘서 고맙다."


짧은 감사를 전한 후, 그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여기가 인간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편히 쉬어라."


타칸이 말을 마치자. 그록은 타칸의 집에서 나오고 레이와 시엔도 조용히 뒤따랐다.


타칸의 집 밖으로 나온 두 사람 앞에 그록이 다가왔다. 그는 시체를 메고 있었던 때와 달리 가벼운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우선 허기질 테니 밥부터 먹자."


시엔은 그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고민에 빠졌다.


'오크들이 먹는 밥은 인간들과 얼마나 다를까?'


고민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그록이 시엔의 표정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의외로 먹을 만할 거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길을 안내했다.


"따라와라. 식당으로 데려가 줄 테니."


그록을 따라가는 길. 레이는 흥얼거리며 뒤를 따랐다. 시엔은 레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오크들은 사람들이랑 먹는 게 다르지 않을까? 뭔가 무섭거나 이상할지도 몰라."


레이는 고개를 살짝 돌려 짧게 대답했다.


"인간이든 이종족이든 사는 건 다 똑같아. 의외로 맛있을걸. 고기 요리를 엄청 잘하거든."


하지만 시엔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녀의 발걸음이 주저할 즈음, 어디선가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스쳤다.


시엔은 무심코 눈을 크게 뜨며 속도를 조금 더 냈다.


'이게 오크들이 먹는 음식 냄새야?'


식당에 들어서자, 넓은 테이블과 오크들이 쓰는 크고 단단한 식기가 눈에 들어왔다.


중앙에는 커다란 가마솥과 구운 고기가 놓여 있었고, 뜨거운 연기가 올라오며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록이 테이블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이건 고기, 감자, 당근, 양파 같은 간단한 재료로 만들었다. 양념도 소금과 후추 정도로 최소화해서 고기의 본래 맛을 살리는 게 특징이지."


레이는 별다른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손을 뻗어 고기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시엔은 여전히 망설이며 음식을 살폈다.


그록이 식사를 권하며 말했다.


"한입 먹어봐라. 생각보다 괜찮을 거다."


시엔이 조심스레 고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 촉촉한 육즙이 입안에 퍼지며 예상치 못한 풍미가 느껴졌다.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거··· 진짜 맛있네!"


시엔이 놀란 얼굴로 레이를 돌아보자, 그는 이미 허겁지겁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식탁 위의 음식이 사라지는 속도에 시엔은 서둘러 접시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록이 음식을 먹으며 여유롭게 말했다.


"많이 있으니 천천히 먹어라."


하지만 두 사람이 고기와 채소를 집어먹는 손길은 전혀 멈추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 그록이 테이블로 커다란 접시와 병을 가져왔다.


접시 위엔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요리와 맑은 술이 담긴 병이 놓여 있었다.


"간단한 간식거리와 술이다."


그록이 접시를 가리키며 설명을 덧붙였다.


"이건 고기와 채소를 넣은 반죽을 기름에 튀긴 거다. 바삭한 식감이 특징이고, 간식으로 인기가 많지. 간장이나 이 특제 소스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다."


그는 병을 들어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술은 말들의 젖을 발효시켜 만든 거다. 마유주라 부르지. 간식과 함께 먹으면 의외로 잘 어울릴 거다."


레이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오! 마유주! 간만인데?"


말을 끝내기 무섭게, 레이는 그록이 내민 튀김을 집어 소스에 찍어 한입에 넣었다. 이어 술을 한 모금 마시며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띠었다.


"역시, 이 맛이지!"


시엔은 조심스럽게 술잔을 들어 마유주를 입에 가져갔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예상보다 훨씬 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간식을 한입 베어 물었다.


"이거··· 엄청 잘 어울리네."


시엔은 처음에는 천천히 먹었지만, 점차 간식과 술을 번갈아가며 계속 손이 갔다.


어느새 술이 반쯤 비었을 때, 시엔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긴장이 풀린 듯 몸이 느슨해지며 그녀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레이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혹시 여기서 좀 재워도 될까?"


그록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넓은 초원을 처음 경험하면 피곤할 수밖에 없다. 내가 잠잘 곳을 안내해 주지."


레이는 졸고 있는 시엔을 가볍게 업었다. 그녀는 술기운에 푹 잠이 든 듯 미동도 없었다.


그록이 앞장서며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뒤돌아 레이를 보며 말을 꺼냈다.


"레이. 친우라던 오크와 정말 깊은 관계였나 보군."


"왜 그렇게 생각해?"


"오크의 문화에 너무 익숙하다. 대개 인간은 이런 걸 어색해하기 마련인데, 너는 마치 오크를 보는 것 같군."


레이가 짧게 웃었다.


"하하... 정말 친했으니까."


레이의 마음속에 오래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록타와 함께했던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처음으로 만났을 때 서로 의견이 안 맞다고 죽자 살자 싸웠던 날, 먹어보라며 만들어준 음식, 마유주를 찬양하며 마셔보라며 권했던 날, 전장에서 함께 싸웠던 날들, 그리고 그의 죽음.


그록은 레이가 잠시 말을 잇지 않는 것을 보며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숙소에 다 왔다. 여기서 쉬면 될 거다."


레이는 시엔을 조심스럽게 숙소 안으로 옮기며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그록."


그록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없이 돌아섰다. 문이 닫히며 조용해진 방 안에는 술기운에 평화롭게 잠든 시엔의 숨소리만이 은은히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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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엘프의 숲 에델리안(2) 24.12.28 17 0 13쪽
57 엘프의 숲 에델리안 24.12.27 24 0 12쪽
56 고슈안 사막(3) 24.12.26 31 0 12쪽
55 고슈안 사막(2) 24.12.25 27 0 13쪽
54 현 시점의 인간국가들 24.12.24 29 0 13쪽
53 고슈안 사막 24.12.23 29 1 15쪽
52 라이칸(2) 24.12.22 35 1 11쪽
51 라이칸 24.12.21 36 0 13쪽
50 적색 오크와 수인족 24.12.20 34 0 13쪽
49 괴수 24.12.19 32 0 12쪽
48 녹색 오크 영토 24.12.18 34 0 13쪽
47 하급 괴수 (2) 24.12.17 42 0 13쪽
46 하급 괴수 24.12.16 38 0 13쪽
» 필로안 대초원(2) 24.12.15 44 0 13쪽
44 필로안 대초원 24.12.14 46 0 13쪽
43 다음 여정을 향해 24.12.13 54 0 13쪽
42 맥주 한잔의 여유 24.12.12 54 0 13쪽
41 지하도시(3) 24.12.11 62 0 15쪽
40 지하도시(2) 24.12.10 51 0 13쪽
39 지하도시 24.12.09 58 0 13쪽
38 드워프의 바위산 암페리온(2) 24.12.08 72 0 15쪽
37 드워프의 바위산 암페리온 24.12.07 65 1 14쪽
36 마법사 시엔(2) 24.12.06 69 0 13쪽
35 마법사 시엔 24.12.05 68 0 13쪽
34 회의 24.12.04 70 0 14쪽
33 제국 10강의 정점(3) 24.12.03 71 1 14쪽
32 제국 10강의 정점(2) 24.12.02 75 1 14쪽
31 제국 10강의 정점 24.12.01 85 1 12쪽
30 서부 수도 벨포로트(3) 24.11.30 8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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