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검성이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글쓰는꿍이
작품등록일 :
2024.11.01 23:20
최근연재일 :
2024.12.28 14:10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6,827
추천수 :
57
글자수 :
345,107

작성
24.12.20 14:10
조회
34
추천
0
글자
13쪽

적색 오크와 수인족

DUMMY

필로안 대초원, 적색 오크 영토 끝자락.


붉게 물든 초원의 바닥에 피가 뿌려졌다.


"뭐··· 뭐냐··· 이 괴물은···"


적색 오크들은 연이은 동료들의 죽음으로 경계를 강화한 상태였다.


그때 멀리서 거대한 늑대 형상이 어렴풋이 보이자 그걸 본 오크는 모두에게 알리며, 본능적으로 무기를 움켜쥐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순식간에 돌진해 다가온 괴물의 실체를 본 순간, 그들의 몸이 움찔하며 굳었다.


가까이서 본 모습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기괴했다.


오로지 근육 가닥들로만 얽혀 늑대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괴물.


그러나 그들은 곧 정신을 다잡고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죽어라!"


괴물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그들의 무기가 닿기 직전, 근육 가닥들이 마치 숨을 쉬듯 벌어지더니, 공격을 모두 흘려보냈다.


"뭐···!"


첫 번째로 공격하던 오크의 배를 거대한 발톱이 관통했다.


이어서 발톱이 위로 그어지며 몸을 통째로 베어냈다.


“크아아악!”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오크들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괴물은 달려드는 오크들을 그 자리에 선 채 가만히 쳐다봤다.


오크들이 괴물을 둘러싸며 사방에서 공격을 가하자 근육 가닥들이 꿈틀거리며 상식적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기하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든 공격을 흘려낸 뒤, 둘러싼 오크들을 특유의 발톱을 휘두르며 쓸어버렸다.


피와 절규로 물든 초원.


필사적으로 버티다 결국 팔과 다리가 잘려나간 오크가 바닥에 쓰러졌다.


피를 흘리며 마지막 힘으로 중얼거렸다.


"넌··· 대체··· 뭐냐···"


그때, 괴물의 근육 가닥들이 진동하며 저음의 소리를 냈다.


오크는 그것이 비웃음처럼 들렸다.


"이··· 무슨···"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괴물의 발톱이 머리를 베자 말을 하는 표정 그대로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기하학 적으로 움직였던 근육 가닥들이 느리게 꿈틀거리며 원래의 형태를 되찾았다.


그 뒤, 괴물은 초원 위로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피로 물든 땅을 밟으며 천천히 사라지는 모습은 마치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는 듯, 한 점 흔들림도 없는 여유가 깃들어 있었다.


붉게 물든 초원에는 더 이상 살아 있는 것이 없었다.


그날 오후 적색 오크 영토, 족장 고르그의 집.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오크가 안으로 뛰어들었다.


"고르으으그으으!!!"


집 안에 있던 고르그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란인가, 고르안."


고르안은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고르그!! 당장 수인족들의 머리를 베러 갈 것이다!"


분노로 떨리는 입술, 끓어오르는 목소리. 고르그는 그의 표정을 가만히 바라봤다.


"고르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고르안이 주먹을 꽉 쥐며 이를 악물었다.


"대화합장에서 우리 동족의 시체를 보여주고도 돌아오는 대답은 기다려라였다! 고르그, 동족의 시체를 보았는가!"


"···뭐라고?"


'동족의 시체'라는 말에 고르그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곧 큰 외침이 터져 나왔다.


"또··· 또!!! 우리 동족이 죽었는가!!"


고르그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수많은 적색 오크들이 시체를 둘러싸며 분노에 차 있었다.


고르그는 천천히 그들 사이로 걸어갔다. 길을 열어주는 동족들 틈을 지나, 시체 앞에 멈춰 섰다.


피로 물든 몸, 찢겨진 육체. 머리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동족. 고르그의 눈동자가 점점 서늘해졌다.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차가운 얼굴과는 다르게 몸에서는 적색 오크 족장의 상징인 붉은 문양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피부를 뚫고 터져 나올 듯, 강렬하게 빛을 뿜어내며 맥박 쳤다.


고르그는 무겁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오늘, 수인족을 친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주변의 적색 오크들이 터질 듯한 괴성을 내질렀다.


"우오오오오오오오!!!"


분노로 불타오르는 함성이 초원에 울려 퍼졌다. 적색 오크들의 눈에는 피가 서려 있었고, 그들의 손엔 이미 무기가 움켜쥐어 있었다.


고르그는 시체를 내려다보며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다.


"피로 답하리라."


붉게 타오르는 문양과 함께 그는 수인족의 영토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


오후의 태양이 초원을 물들이던 때, 레이와 시엔은 흑색 오크 영토에 도착했다.


길고 빠른 여정 동안 하급 괴수 하나 마주치지 않았지만, 초원의 적막함이 오히려 불안감을 자아냈다.


영토에 가까워지자, 검은 갑옷을 두른 듯한 피부를 가진 흑색 오크가 경계하며 다가왔다.


"인간이 여기까지는 어쩐 일인가."


레이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회색과 녹색의 영토를 지나왔어."


이어 그는 하급 괴수의 이상한 움직임과 관련된 이야기를 간략히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대전사 크라가를 만나야 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끝맺었다.


오크는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침묵하더니, 자세를 고쳐 잡고 고개를 숙였다.


"전사들이군. 하지만 조금 늦었다. 대전사는 방금 고슈안 사막 쪽으로 떠났다."


레이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옆에서 시엔이 반응했다.


"고슈안 사막? 거긴 수인족 영토 아니야?"


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색 오크가 수인족을 향해 쳐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대전사가 홀로 움직였다."


그 말에 레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적색 오크가?"


오크는 고개를 들며 설명을 이었다.


"오늘 적색 오크들이 무더기로 죽임 당한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돌았다. 시체의 상흔을 보니 수인족의 발톱과 유사하다 했다."


레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도 바로 가자. 고슈안 사막 쪽은 어디야?"


오크는 잠시 망설이더니 동쪽을 가리켰다.


"대전사가 갔으니 큰일은 없을 거다. 그래도 간다면 동쪽으로 가면 된다."


레이는 단호하게 시엔을 돌아보며 말했다.


"업혀."


시엔이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뭐??"


"시간 없어. 최대한 빠르게 가야 해."


시엔은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 어..."


하지만 레이의 단호한 태도에 더 묻지 못하고 그의 등에 올라탔다. 얼굴이 이유 없이 붉어지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레이는 그런 시엔의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고 짧게 말했다.


"꽉 잡아."


"으응..."


"더 꽉."


"알겠어어어엌!"


시엔이 손에 힘을 주어 그의 어깨를 잡는 순간, 레이는 땅을 강하게 박차며 솟구치듯 뛰어올랐다.


초원의 풍경이 가로로 늘어지는 듯한 느낌에, 시엔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레이의 등에 바짝 달라붙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동안, 시엔은 자신도 모르게 더 세게 레이를 붙잡았다.


그 힘이 느껴지자 레이는 의념을 더욱 실어 속도를 높였다. 초원의 풍경이 쉴 새 없이 바뀌며 두 사람의 모습은 순식간에 먼 곳으로 사라졌다.


***


필로안 대초원과 고슈안 사막의 경계, 수인족의 영토.


푸른 초원의 끝자락과 황토빛 사막이 맞닿은 곳, 수인족의 영토는 자연과 어우러진 독특한 모습이었다.


나무 기둥을 세운 둥근 오두막들이 강을 따라 자리 잡고 있었고, 마을 중심에는 거대한 고목이 서 있었다.


나무 줄기에는 수인족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주위가 광장처럼 열려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 리아나가 한쪽 팔을 괴고 늘어져 있었다. 검은 늑대 귀가 살짝 움직였고, 꼬리가 가볍게 바닥을 스쳤다.


특유의 노란빛 눈동자가 여전히 졸린 듯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누군가가 다급히 달려와 외쳤다.


"리아나님!! 적색 오크가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한쪽에 누워있던 리아나는 고개를 돌렸다. 검은 늑대의 귀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적색 오크? 걔네들이 갑자기?"


뜬금없는 소식에 리아나는 손을 뻗어 느긋하게 귀를 긁으며 말했다.


"이상하네. 아무리 호전적인 적색 오크라도 갑자기 영토를 침범할 생각은 안 할 텐데... 선봉은 누구야?"


"적색 오크 족장 고르그입니다."


"고르그가 직접? 그럼 진심이라는 건데?"


리아나의 눈이 살짝 좁혀졌다.


"뭐지? 혹시 요즘 튀어나오는 이상한 괴물들 때문인가?"


보고를 전하던 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 이상한 녀석들이라면 오크들 선에서 쉽게 처리했을 겁니다."


리아나는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럼 뭐 때문에 저러는 거야?"


"적색 오크가 저렇게 나오는 건 동족의 죽음 말고는 이유가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왜 우리한테 오는 건데?"


리아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꼬리를 살짝 흔들었다.


"그건 저도..."


"흠..."


리아나는 귀를 쫑긋 세우며 바닥에 꼬리를 탁탁 두드렸다.


"크라가는 뭐하고 있는 거야. 대전사라는 녀석이."


말끝에 불만이 섞였다. 리아나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다시 한마디 덧붙였다.


"상황 보고 내가 나설게. 일단 경계 태세부터 준비해."


수인족 경계병 칼렌이 초원을 가로지르는 시선을 좁혔다.


독수리를 고유 짐승으로 한 눈동자가 빛나며, 멀리서 작게 흔들리는 움직임이 그의 시야에 잡혔다.


"···저기."


칼렌이 낮게 중얼거렸다.


옆에서 함께 경계 중이던 병사가 고개를 돌렸다.


"뭐가 보이냐?"


칼렌의 눈이 날카롭게 수축되며 한 점으로 좁혀졌다. 붉게 빛나는 형체들이 초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적색 오크들이다."


칼렌은 시선을 더 멀리 두며 형체를 세밀히 확인했다.


"최소 80. 아니, 100명은 된다."


그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선봉에 고르그가 있다. 족장 특유의 붉은 문양이 또렷해. 전투태세야."


병사들이 긴장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칼렌은 한 손으로 그들을 제지하며 말했다.


"빨리 여왕님께 전해. 적색 오크들이 곧 도착한다."


병사 중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급히 뛰어갔다. 칼렌은 초원을 바라보며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경고가 아니야."


적색 오크 무리가 경계선에 다다르자, 초원 위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수인족 전사들은 활을 겨누며 움직임을 멈췄다.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적색 오크 족장 고르그가 거대한 도끼를 땅에 내리찍으며 외쳤다.


"수인족! 우리 영토 가장자리에서 동족의 시체가 발견됐다! 발톱 같은 상흔이 남아 있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런 상처를 낼 수 있는 건 너희 말고 누가 있단 말이냐!"


수인족 전사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번졌다. 그때 나무 위에 있던 칼렌이 차갑게 외쳤다.


"흔들리지 마라! 여왕님께서 곧 오신다."


부드러운 발소리가 초원을 가로질렀다. 리아나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샛노란빛 눈동자가 고르그를 꿰뚫으며 빛났다.


검은 늑대 귀가 미세하게 흔들렸고, 꼬리가 한 번 휘청였다.


그녀는 고르그를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네 결론은 우리가 범인이라는 거냐?"


고르그가 붉은 눈을 빛내며 도끼를 움켜쥐었다.


"너희가 아니면 누가 그런 상처를 낼 수 있겠느냐!"


리아나는 짧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결론을 내리기엔 조금 빠른 것 같은데. 족장이라면 조금 더 신중해야 하지 않아?"


고르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붉은 문양이 그의 몸을 타고 더 강렬하게 빛났다.


"내 동족이 죽었다. 네가 지금 이 상황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면, 그 책임은 네 목으로 치르게 될 것이다."


리아나는 미소를 지우며 시선을 고르그와 맞췄다.


"가볍게? 아니, 난 네가 얼마나 단순하게 움직이는지 보고 있을 뿐이야."


고르그의 입에서 깊은 으르렁이 터져 나왔다.


"더는 말이 필요 없다! 지금 여기서 끝을 보자!"


그는 도끼를 높이 들어 올리고 전력으로 리아나를 향해 돌진했다.


거대한 몸이 땅을 울리며 앞장섰고, 뒤따른 적색 오크들이 함성을 지르며 경계선을 넘어왔다.


"전투 태세!"


칼렌의 목소리가 경계를 울렸다.


수인족 전사들이 활시위를 당겨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화살이 하늘을 가르며 적색 오크의 선두로 쏟아졌다.


리아나는 고르그의 돌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마지막 순간에 몸을 옆으로 비틀며 피했다.


도끼가 땅에 내리꽂히며 커다란 충격파가 초원에 퍼졌다. 리아나는 한 발짝 물러서며 고르그를 노려봤다.


"진심으로 수인족이 적색 오크를 죽였다 생각하는거야?"


고르그는 이를 갈며 다시 도끼를 휘두르려 했지만, 그 순간 리아나는 빠르게 그의 옆으로 비켜섰다.


"크라가 녀석 분명 이런일이 없도록 만들거라 했는데."


수인족 전사들의 화살과 적색 오크들의 돌진이 맞부딪치며, 초원 위에 전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가 검성이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8 엘프의 숲 에델리안(2) 24.12.28 18 0 13쪽
57 엘프의 숲 에델리안 24.12.27 24 0 12쪽
56 고슈안 사막(3) 24.12.26 31 0 12쪽
55 고슈안 사막(2) 24.12.25 27 0 13쪽
54 현 시점의 인간국가들 24.12.24 29 0 13쪽
53 고슈안 사막 24.12.23 30 1 15쪽
52 라이칸(2) 24.12.22 35 1 11쪽
51 라이칸 24.12.21 36 0 13쪽
» 적색 오크와 수인족 24.12.20 35 0 13쪽
49 괴수 24.12.19 32 0 12쪽
48 녹색 오크 영토 24.12.18 34 0 13쪽
47 하급 괴수 (2) 24.12.17 42 0 13쪽
46 하급 괴수 24.12.16 38 0 13쪽
45 필로안 대초원(2) 24.12.15 44 0 13쪽
44 필로안 대초원 24.12.14 46 0 13쪽
43 다음 여정을 향해 24.12.13 54 0 13쪽
42 맥주 한잔의 여유 24.12.12 54 0 13쪽
41 지하도시(3) 24.12.11 62 0 15쪽
40 지하도시(2) 24.12.10 51 0 13쪽
39 지하도시 24.12.09 58 0 13쪽
38 드워프의 바위산 암페리온(2) 24.12.08 72 0 15쪽
37 드워프의 바위산 암페리온 24.12.07 65 1 14쪽
36 마법사 시엔(2) 24.12.06 69 0 13쪽
35 마법사 시엔 24.12.05 68 0 13쪽
34 회의 24.12.04 70 0 14쪽
33 제국 10강의 정점(3) 24.12.03 71 1 14쪽
32 제국 10강의 정점(2) 24.12.02 75 1 14쪽
31 제국 10강의 정점 24.12.01 85 1 12쪽
30 서부 수도 벨포로트(3) 24.11.30 80 0 12쪽
29 서부 수도 벨포로트(2) 24.11.29 91 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