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자의 마을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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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드림
작품등록일 :
2024.11.03 18:12
최근연재일 :
2024.11.0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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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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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어디야, 여기.

DUMMY

파삭 하고, 코앞에서 몸뚱이가 찢겨지는 광경.

사방에 흩뿌려지는 검붉은 덩어리들.

평생 어여삐 여기려 한 ‘보물’이, 살갗 아래의 내용물들을 드러내고 말았다는 절망.


그렇기에 꿈꾼 복수.

가장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을 길이라 믿었기에 맺은 맹세.

결코 꺾이지 않으리라 확신한, 그들의 형제가 되겠다는 결심.


쿠웅 하는 묵직한 울림과, 손바닥부터 심장까지 저리게 만들곤 하는 진동.

그리 나쁘지 않게 다가왔던 힘과, 바깥 세상의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을 수많은 지식들.


······그리고, 모르는 새에 가슴에 품고 있었던 새로운 ‘보물’.

부드러운 미소가 사랑스러운 그녀.


이겨내지 못할 시련은 주지 않는 법이라며, 후들거리는 팔과 다리에 채찍질할 만큼 용감했고.

단념했던 행복을 다시금 꿈꾸려 한 나를 손수 붙잡아, 형제들에게 넘겨버렸을 만큼 냉혹했다.

배신감으로 나를 무너뜨려놓고, 형틀에 묶인 내 곁을 묵묵히 지켰을 만큼 잔인했다.


그 모든 것을 기억한다.

되새길 때마다 내장이 눋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또 다시 ‘보물’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심장을 쥐어뜯고 싶다.


필시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흐르건, 결코 치유되지 않을 상흔이 될 터.

그런 의미에선, 이 결말도 썩 괜찮은지도 모른다.


“눈을 감으십시오. 형제님.”


지시대로 순순히 눈을 감는다.


······아니, 역시 거지 같은 결말이야.

마지막의 마지막에, 그리 투덜거렸다.


·········.


············.


······얼굴을 내리비추는 햇살에 눈을 뜬다.


“······?”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뒤이어 자신이 딱딱한 바닥에 누워있음을 깨닫는다.


뭐지? 아무리 봐도 바깥인데 왜 바닥이 나무로 돼있어?

아니, 그보다 내가 어쩌다 이런 데 누워있는 거지?

몸은 또 왜 이렇게 무겁고?


“으윽······.”


잘 가지 않는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켜본다.

삐걱하는 소리가 불안하게 귀를 울린다.

내 몸에서 울리는 게 아님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내 시야에 펼쳐지는 것은, 돌로 된 벽과 아치형의 나무 문.

어깨와 무릎에 가죽을 덧댄, 두툼한 누비 갑옷을 입은 사람 두 명과,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누비 갑옷 둘은 마을의 경비일 거고, 붉은 옷은············.

·········모르겠어. 뭐 하는 사람이지?

몸집은 꽤 크고, 등에는 상당히 큰 망치를 지고 있다.

그럼······ 싸우는 사람인가?


하여간 주변을 둘러봐도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딱 하나.

말 한 필이 끄는 짐마차에 타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방향을 보아, 저 망치맨이 마차를 끌고 있던 게 분명하다.

나를 어디서 주운 걸까? 아니면 어디 데려다주는 길이었나?


으음······ 모르겠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말끔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머릿속이 텅 비어있다.

지금 막 세상에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되돌아볼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뭘 떠올려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아마 머릿속이 멍한 탓일 터.

기억하고 있는 게 일절 없다는 사실에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것 또한, 잠이 덜 깬 탓이리라.


머리가 좀 맑아지면 달라지겠지.

태평하게 생각하며 하품하던 중, 저벅저벅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깨어나셨습니까.”


딱딱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눈을 비비고서 정면을 보자, 말투보다도 훨씬 더 무감정한 얼굴이 보인다.


방금까지 경비병을 상대하고 있던 망치맨인데, 어째서일까?

눈을 마주치는 순간, 알 수 없는 위압감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남자는 내 반응 따위 전혀 관심 없는지, 별말 없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고를 덜었군요. 제 손을 잡고 내리십시오.”


내리라고······?

어, 여기가 내 목적지야? 왜 온 건데?


“저기······.”


“문답은 제 소관이 아닙니다.”


내가 질문하려는 걸 꿰뚫어본 모양이다.

망치맨은 차갑게까지 보이는 눈초리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질문은, 귀하를 맞이하러 올 자에게 하십시오.”


“······”


희한하다. 위협은 전혀 느껴지지 않은데.

알 수 없는 압박감에 말문이 그대로 막혀버렸다.


······누가 나를 맞이하러 온다고 했지?

그 사람은 좀 더 친절했으면 좋겠구만.

속으로 한숨을 쉬며, 남자의 도움을 받아 짐마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곧바로 나를 두 경비병에게 데려가더니, 한 마디 말도 없이 몸을 홱 돌렸다.

마차의 맨 앞자리에 훌쩍 오르곤, 고삐를 흔들어 마차를 몰고 떠나간 것이었다!


“······”


·········나 버려진 거야?

아니, 여기서 나 혼자 어쩌라고?


황당하긴 한데, 신기하게도 화가 나지는 않는다.

아직 정신이 덜 들었나 봐.

멍하니 몸을 돌려,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훑어보는 경비병들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건 걸 보면 확실해.


“저기, 좀 전에 그 사람과 이야기 나누셨죠? 제가 여기 왜 온 거라 하던가요?”


“······”


두 경비병의 눈에 경계심이 짙어지다 못해, 희미한 두려움까지 감도는 듯했다.


그리 이상한 질문은 아닐 텐데······.

아, 혹시 이해를 못했나? 발음이 꼬여서 이상하게 들렸던 건지도 몰라.


나는 목에 조금 힘을 주어, 최대한 또박또박하게 다시 물었다.

그러자 경비병의 이맛살이 더욱 구겨졌다.

내 머리와 입이 따로 놀아서, 끔찍한 욕을 해버렸나 의심이 들 즈음.


“······정말 몰라서 묻소?”


조심스러운 물음이 돌아왔다.

다행히 생각대로 말이 나갔던 모양이었다.


“예. 깨어나니 이 앞에 있었던지라······. 정말로 모릅니다.”


“허, 저런.”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이자, 두 경비병이 합을 맞추듯이 동시에 탄식했다.

조금 전의 그 남자처럼 무정한 사람들은 아닌 듯했다.

연민이 한껏 담긴 눈으로 나를 보면서,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알려주었으니까.


“뭐, 어디서 왔건 아무렴 어때. 앞으로 쭉 여기 있을 건데.”


“예······? 여기에 쭉 있을 거라니요?”


“이 마을의 일원이 된다는 뜻이오.

아까 그 양반이 그러던데? 당신, 여기 살러 왔다고.”


“······”


······

·········뭐?


안 그래도 텅 빈 머리가 새하얗게 비워졌다.


“·········제가요?”


그 한 마디만 겨우 꺼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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