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존심
견우의 손가락 끝에 걸린 것은 두 개의 굴이었다.
“저기에 뭐가 있는 겁니까?”
- 가서 보면 알지 뭘 그리 궁금해하나.
까칠하게 대답한 견우는 다시 직녀의 초상화 앞에 섰다.
‘저 정도면 직녀가 싫어할 수도 있겠는데···’
무언가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일그러진 욕망을 느낀 김 차장.
그는 찝찝한 기분으로 끝에 뚫린 굴로 걸어갔다.
- 아참. 들어갈 때 가져온 장갑도 챙겨 가라. 모종삽도.
뒤늦게 생각난 듯 견우의 조언이 이어졌고 김 차장은 언급된 준비물을 챙겼다.
지목한 방에 가까워지자 김 차장은 옷깃을 여몄다.
‘뭐지··· 추운 것 같은데?’
김 차장은 동굴이어서 신체의 온도가 낮아졌다고 생각했으나.
입구에 도착하자 자신의 감각이 착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아···”
김 차장의 입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진다.
저벅. 한 걸음을 방 안으로 내디뎠다.
“뭐여···”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동혈의 천장에는 김 차장보다 큰 고드름이 맺혀있었고.
벽은 얼음 결정으로 덮여 있었다.
동혈의 중앙에는 은백색의 꽃이 마치 방의 주인인 것처럼 고고하게 자리 잡았다.
“저거를 말하는 건가?”
딱딱딱. 저항할 수 없는 한기로 턱을 부딪치며 꽃을 향해 다가가는 중.
‘오지 마라.’
김 차장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너무 기품 있는 꽃을 본 나머지 환청을 들은 것이다.
고개를 흔들고 꽃잎에 손을 얹는 순간.
[천년설화]
- 종류 : 희귀 약초
- 속성 : 극음
- 개요 : 얼음 속에서 자란 식물. 만년빙정이 잉태하고 배속을 뚫고 자라난 잔혹한 식물. 염화도 얼릴 극음의 기운을 지녔다.
- 복용 : 준비 없이 복용 시에는 오장육부가 얼어 동사할 수 있음. 극양의 기운을 품은 기운과 동시 섭취 시 인체의 붕괴를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 요망.
“천년설화?”
김 차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단하게 언 땅을 모종삽으로 한참을 파내니 이윽고 뿌리가 보였다.
덥썩. 천년설화를 집은 용접 장갑에 성에가 끼기 시작했다.
‘빨리 들고 나가자. 동상 걸리겠다.’
김 차장은 손가락이 너무 아팠다.
“이거··· 이거 어디다 둡니까?”
- 저기 상자에 넣어라.
공동의 끄트머리에 있는 견고해 보이는 함에 즉시 집어넣었다.
“후우···”
- 뭘 호들갑이냐. 바로 다른 방에 들어가보거라. 장갑은 바꾸고.
김 차장의 장갑은 움직이기도 버거울 정도로 굳었기에 새 장갑을 착용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동혈로 향했다.
이번 방도 심상치 않았다.
입구에 도착한 김 차장은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후우···”
후끈한 열기. 들숨에 뜨거운 공기가 폐부를 채운다.
방에 입장을 하자 이마와 듬성듬성 헛헛한 정수리 머리칼에 땀방울이 맺혔다.
방의 끝에는 고풍스러운 적색의 꽃이 하늘하늘 나풀거렸다.
‘이리 오렴.’
김 차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매혹적인 자태. 고고한 열기.
저벅. 저도 모르게 발을 내밀었다.
홀린 듯 꽃잎을 어루만진 순간.
[천년지극혈화]
- 종류: 희귀 약초
- 속성: 극양
- 특성 : 용암을 먹으며 자생한 식물. 장백산의 끓는 화산 분화구에서 자랐다. 유황 가스를 좋아한다.
- 복용 : 보통은 먹지 않는다. 이를 무시하고 섭취한 이는 오장육부가 녹아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극음의 기운을 품은 기운과 동시 섭취 시 인체의 붕괴를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 요망.
마치 마약을 한 듯 김 차장의 눈동자가 풀렸다.
그는 이성을 상실한 듯 모종삽을 휘둘렀다.
마침내 그의 손에 천년지극혈화가 들렸다.
장갑이 불에 타는 듯 뜨겁다.
고통 속에서 정신이 번쩍인다.
‘제길. 요물이다.’
김 차장은 허겁지겁 천년지극혈화를 손에 쥔 채 밖으로 나왔다.
즉시 빈 옥함을 찾아 천년지극혈화를 던졌다.
“시펄. 디게 요사스럽네.”
견우는 김 차장의 품새를 보고는 낄낄댔다.
- 중원을 평정하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숨겨뒀던 것들이다.
“그런데 저것들은 어떻게 여기서 자생합니까?”
- 영약이 괜히 영약으로 불리지 않지. 초월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이야.
“서식지를 벗어나도 됩니까?”
- 저 녀석들도 일정 수준 세월이 흐르면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며 자생한다.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 환경을 변화시키는 존재들이지.
“허···”
꽃이 들어간 함은 식물의 의지를 받은 듯 각기 뜨겁고 차가웠다.
저 존재들은 함의 환경조차도 변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럼 이제 뭘 하면 됩니까?”
- 먹어라.
김 차장은 귀를 후볐다.
자신은 분명 허공에 뜬 홀로그램에서 주의 사항을 읽었다.
두 개를 같이 섭취할 경우 필연적으로 육체가 붕괴된다고 적혔던데.
“흠··· 두 개 같이 먹으면 죽는다던데요?”
- 난 무신이자 천마였다. 그런 내가 전수 해주는 무공이 평범하겠느냐?
치켜 들린 고개. 뻔뻔한 얼굴.
당당함과 오만함.
‘이게 보험 적용이 되나? 근데 여기서 죽으면 누가 알아? 그냥 실종이잖아.’
김 차장이 무언가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견우는 그의 믿음이 부족한 것을 눈치챘다.
- 이런··· 네놈이 그러니까 집안에서 무시를 당하는 거다. 눈앞의 기연을 보고도 벌벌 떨다니.
“흐음··· 그렇다면 제가 익힐 무공은 무엇입니까?”
- 이제야 좀 알고 싶어하는 구나. 중원에서는 천마심법이라 불렸으나 그건 그들이 나를 찬양해서 부른 명칭이었지. 그러나 정식 명칭은 다르다. 그건.
견우는 과거를 회상하는 듯 텅 빈 동공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몽환적인 표정은 김 차장으로 하여금 크나큰 비밀을 듣는 듯한 묘한 감정을 안겼다.
- 음양심법.
“제가 아는 음과 양이요?”
- 그래.
견우는 앉아 있는 김 차장을 중심으로 걷기 시작했다.
- 음과 양의 기운에는 특징이 있다. 음의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는 성질이 있지. 그리고 양의 기운은 위로 올라가려고 하지.
“저도 알고 있습니다.”
- 방정떨지 마라. 그냥 들어.
김 차장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 나는 고민했다. 이 두 가지의 특성을 이용해서 운공을 끊임없이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견우는 김 차장을 중심에 두고 빙글빙글 돌았다.
김 차장의 고개는 견우를 따라갔다.
- 그리고 찾았지. 두 개의 기운을 성질에 따라서 저절로 움직이게 하면 되는 거였어. 상단에는 음의 기운을 하단에는 양의 기운으로 나누는 거지.
- 간단히 말하면, 상단전은 음의 기운을 모으는 그릇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치에 맞게 흐르게 한다. 기운이 절로 아래를 향하지.
단전호흡의 지식이 있던 김 차장이 말을 받았다.
“그럼 양의 기운은 하단전에 모으나 보군요?”
- 좋은 발상이야. 나도 고려했던 사항이다. 하지만 나는 무신이다. 평범하지 않았지. 그릇의 위치를 바꾸었다. 한 마디로 단전을 하나 더 창조했다.
“그게 가능한 거예요?”
- 무신에게 불가능을 논하지 말아라. 나는 연구를 했고 마침내 적당한 위치를 찾았지.
견우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김 차장의 복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뻗어진 손가락이 살짝 아래로 내려간다.
- 바로 심단전. 그 중심은 회음혈이다.
김 차장의 허물이 오그라들었다.
“그런데··· 자연 상태의 기운에서 음과 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 아닙니까? 그걸 극단적으로 분리해서 축적하면 부작용이 없나요?”
- 좋은 지적이다. 머리가 아주 비어 있지는 않군.
견우는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 하지만 너의 옆에는 내가 있지. 괜찮다. 이제 시작하자. 두 개의 영약을 들고 가부좌를 틀어라.
무언가 미심쩍었다.
김 차장은 고민스러웠다.
두 개의 영약도 상극인데.
심법도 뭔가 안정성이 떨어져 보였다.
‘뭐··· 직녀를 향한 저 집착에 가까운 그리움을 볼 때 괜찮을 것 같고. 헌터로 활동하려면 무력이 있어야 하니까.’
김 차장에게는 직녀라는 인질 아닌 인질이 있었다.
설마 그에게 헤코지하지는 않으리라.
김 차장은 지시에 응했다.
“우선 이론적 이해부터 할 수 있을까요?”
- 그냥 내가 도인 해주는 게 빠를 텐데. 언제 듣고 공부하려고.
“교감 스킬을 쓰면 가능할 듯합니다.”
김 차장은 답변을 듣지 않고 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교감.”
‘정신적 교감’
김 차장의 의지에 따라 견우의 시야에도 창이 떴다.
- 오호. 신기하군. 그럼 음양심법의 구결을 너의 머리에 주입하듯 넣을 수 있는 것이군.
“예.”
견우는 손가락으로 창을 뒤적거리다 수락했다.
음양심법의 구결이 김 차장의 머릿속에 박힌다.
“음···”
- 어차피 주입식으로 익힌 것. 직접 몸으로 체득해야 할 것이야. 이제 신체 접촉이 가능하게 만들어라.
교감을 통해 육체 접촉을 허용했다.
견우의 장심이 그의 등에 닿는다.
- 이제 복용해라.
오른손에는 천년설화.
왼손에는 천년지극혈화.
상극의 영약들.
김 차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할 수 있다!’
우걱우걱. 김 차장은 동시에 두 개의 꽃을 뿌리까지 입에 넣고 씹었다.
콰앙! 입안에서 두 개의 상반된 기운이 폭발한다.
“우웁···”
그것은 대폭발.
아니. 빅뱅.
김 차장의 구강에서 우주가 탄생하는 폭발이 일어난다.
피눈물이 흐른다.
고막이 찢어지고 이명이 세상을 뒤덮는다.
- 먹어라! 삼켜라! 안 그럼 죽는다!
‘미친놈이. 그걸 지금 말하면 어쩌나.’
원망이 들었으나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목구멍에서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침을 넘기고 식도를 움직이니.
파앙! 목구멍에 상흔이 생기며 주르륵 피가 흐른다.
핏물을 타고 영약들이 배 속으로 움직인다.
영약이 신체의 어느 부위에 있는지 느껴진다.
스르륵. 천천히. 복부에 갈수록 크기가 작아진다.
점차 얼음처럼 녹아버린다.
어느 순간 절망스러운 고통이 사라진다.
- 천천히 호흡을 깊게 해라. 그 정도만 하면 나머지는 본좌가 인도해 주지.
김 차장은 정신을 다잡아가며 호흡을 깊게 했다.
한 호흡. 두 호흡. 세 호흡.
몇 차례의 호흡을 하자 머리에 구멍이 뚫리는 감각이 느껴진다.
기괴한 소리. 하지만 고통스럽다기보다는 시원한 감각.
서서히 기운이 고인다.
뇌 속에 물을 퍼붓는 듯하다.
딱딱딱. 시원함은 어느덧 차가움으로 바뀌었고 턱이 저절로 떨린다.
한기가 느껴지는 물은 점차 고이고 흘러 머리와 목을 헤집는다.
번쩍! 눈꺼풀이 빛을 막고 있건만 시야에 번개가 친다.
진득한 한기와 분리된 염화 같은 기운이 서서히 아래로 떨어진다.
염화가 지나간 자리는 펄펄 끓는다.
뜨겁다. 기운이 지나간 길 위의 피부가 저절로 떨린다.
가슴이 떨린다. 복부가 떨린다. 허물이 떨린다.
온몸에 지진을 일으킨 기운은 서서히 생식기와 항문의 사이에 고인다.
염화는 모이고 모여 용암이 된다.
펄펄 끓는다. 뜨겁다.
- 이제 혼자 운기 해봐라.
땀에 전 김 차장의 바지는 축축해진다.
반면 눈썹에는 서리가 낀다.
“끄으으···”
입에서는 절로 신음성이 흐른다.
시간이 지난다.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이 서서히 펴진다.
‘허허허.’
오묘한 조화에 김 차장은 속으로 웃었다.
김 차장은 이제 사십의 후반을 달리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며 술과 담배에 찌드니.
배가 나오고 머리가 헛헛해졌다.
허탈해진 머리를 달래고자 약을 먹었다.
그 약은 남성 호르몬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어 김 차장의 남성성은 거진 제거되었었다.
쥐톨만큼의 머리칼을 얻기 위해 그의 허물은 허물어졌다.
그와 함께 남자의 자존심도 허물어졌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정수리가 간질간질하며 회음혈에 용암의 열기가 자연스레 위로 솟는다.
이에 따라 허물도 솟는다.
아주 느릿하게 천천히 김 차장의 눈꺼풀이 올라간다.
한없이 차가운 눈동자.
한없이 뜨거운 하반신.
예로부터 심금을 울리는 경구가 있다.
‘머리는 차갑게, 하체는 뜨겁게.’
김 차장은 경구 그 자체가 되었다.
- 이제 너는 머리는 차갑고 하체는 뜨거운 남자로 다시 태어났다. 소감이 어떠냐?
김 차장의 날숨에 하얀 김이 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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