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후 (2)
지후는 당황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세상과의 결별이 코 앞이었다.
공개적으로 은유를 담은 선언도 했다.
그런데 자신을 시험이라도 하듯 희망 한줄기를 담은 문자가 도착했다.
무시할 수 없었다.
지후는 알림을 눌렀다.
중년 신사 : 서클 복원 영약있어욤. 지후 헌터님.
너무나 오랜만에 달린 댓글이었다.
그동안 숱하게 속아 왔다.
지후의 사정을 아는 사기꾼들 다수가 댓글을 남겼었다.
그러나 선의를 지닌 각성자들의 공격으로 커뮤니티를 통한 사기 댓글은 없어졌었다.
물론, 댓글만으로 포기할 사기꾼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올렸으나 어느 순간 뚝 끊겼다.
한 남자의 폭력은 모든 시도를 포기하게 했다.
지후의 진정한 팬이던 각성자.
버니셔(Burnisher).
그는 사기꾼으로 판명된 거래 상대방의 잘린 목을 게시했다.
사진 아래에 짧게 글을 남겼다.
- 향후 반도의 수호자님께 헛짓거리하려는 사람은 사진 보고 심사 숙고해라. 내가 너희 찾는 게 어렵지 않다.
법 위의 심판자로 유명한 사내였다.
몬스터보다 인간을 더 많이 죽인 자.
법망을 벗어나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의 단죄가 목표인 남자다.
실제로 그가 자체적으로 재판을 행한 인증글도 많이 올렸다. 그의 팬들은 넘쳤다.
그가 지후에게 신경을 쓴 이후로 사기꾼의 접근은 거의 전무해졌다.
그렇기에 중년 신사의 댓글은 진실을 담보할 확률이 높았다.
지후는 조심스럽게 글을 작성했다.
- 정말인가요?
- 당연하죠. 은인한테 제가 어찌 거짓말을 할까요. 저 반도의 수호자님께 구명의 은혜를 받았던 시민입니다.
울컥. 지후의 가슴에 뜨거운 것이 치고 올라왔다.
아직 자신을 기억해 주는 이가 있었다.
[거래에 응하시겠습니까?]
중년 신사는 즉시 거래를 요청했다.
각자의 교환 물품이 표시되는 창이 나타났다. 마치 예전의 디야불루의 거래창과 비슷한 느낌.
중년 신사의 거래창에 물건이 올라왔다.
구미호의 고환.
그것의 정보를 확인하던 지후의 손이 벌벌 떨린다.
- 화···. 확인했습니다. 잠시만요.
지후는 심호흡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죽기 직전까지 몰려서야 광명이 드리웠다.
-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 아니. 뭐··· 할아버지의 이름까지야. 괜찮아요. 반도의 수호자님이 시민들을 위해서 해주신 게 얼마인데요.
-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우선 유동자산을 빠르게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아니. 우선 받으시고.’라 쓰던 김 차장은 글을 지웠다.
지후다. 게이트 발발 초창기 헌터들의 수장격이었던 인물.
거기다 인품 역시 유명했다.
그런 사람이 무절제한 동정심을 받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김 차장은 동굴의 물건들을 정리하며 기다렸다.
주작의 내단. 에르사의 심장. 퇴마부. 망태기. 도깨비불 등잔, 꾸비꾸비의 샅바 등.
‘뭔 짓을 하고 돌아다닌 거지.’
김 차장은 기상천외한 유물들에 과거 견우의 행보가 궁금했다.
김 차장이 기물들을 차곡차곡 쌓고 있던 시각.
“접니다. 제가 현금을 송금해 드릴 테니 전액 마석으로 교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바로 거기로 갈 테니까 실물로 준비해 주세요.”
“오랜만에 연락해서 안부라도 묻지. 이 친구야. 무슨 일이야?”
“방법을 찾았어요.”
“··· 설마 내가 생각하는 거 맞아?”
“맞아요. 오 청장님. 마나 서클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각성자 관리청에 비상이 걸렸다.
지후의 귀환 가능성.
그게 무슨 의미인가.
관리청의 화려한 부활.
정부는 민간 길드에 비해서 헌터가 무척 부족한 상황이었다.
최고의 시절을 구가하던 때도 있었다.
지후가 활동하던 시기.
어느 날 지후 헌터가 마나 서클이 깨지며 능력을 잃고.
최고의 파트너이자 동료 최웅이 관리청을 배신하며 떠나기 전까지는.
전성기를 이끌었던 역전의 영웅이 돌아올 수 있다는 소식은 관리청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로 팀장! 지후 지정 계좌 확인해서 전량 마석으로 바꿔서 들고 오라 그래!”
지후는 즉시 차를 몰고 각성자 관리청으로 가고 있었다.
각성갤을 통한 거래는 보통 코인을 사용한다.
일종의 가상화폐.
그것은 마석으로 환전한다.
중년 신사와의 거래를 위해서는 자신이 축적한 마석을 코인으로 환전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일은 관리청에서 지정 마석 보관소에 요청하는 게 빠르다.
어차피 복용을 위해서 관리청으로 가야 하기도 했고.
관리청에 도착하니 오 청장은 입구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정말이야? 어떻게?”
지후의 등장에 오 청장은 인사도 없이 본론부터 꺼냈다.
“커뮤니티에서 확인한 각성자예요. 거래창을 통해서 물건은 확인했고요.”
오 청장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실물은 준비해 뒀으니 올라가세.”
관리청의 훈련실에는 마석이 가득했다.
지후는 그것들을 모조리 코인으로 환전을 한 후 커뮤니티를 켰다.
- 지금 거래 가능하실까요?
- 예.
동굴에서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는 물품을 정리한 김 차장.
곧장 거래에 응하니 상대편의 거래창에 코인이 무더기로 올라온다.
- 저··· 지후님?
- 예? 혹시 마음이 변하셨나요?
지후의 안색이 파리 해졌다.
김 차장의 글에 즉답하는 지후.
- 다름이 아니라 혹시 코인을 잘못 올리신 거 아니에요? 너무 많은데···
- 아니요. 이건 유동자산에 한정된 것이고 부동산이랑 채권 정리되면 추가로 송금하겠습니다.
“허어···”
김 차장의 입에서 경탄이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계산을 해봤다.
코인 하나의 시세는 만원.
거래창에 보이는 코인은 삼십만 개.
너무 많다. 삼 십억 이라니.
물론, 김 차장도 바보는 아니기에 구미호의 고환의 가치가 이보다 높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의 거래는 은혜를 갚는 것이라 여겼다.
지후가 아니었으면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일 것이었으니까.
- 이것만 받을게요. 더 이상은 필요 없습니다.
수락 버튼을 누르자 거래는 성립됐다.
- 쿨 거래 감사합니다.
김 차장이 글을 남겼으나 지후는 묵묵부답이었다.
‘뭐지? 거래할 때만 반짝 대화하는 거야?’
김 차장이 의문을 가지는 순간.
관리청 훈련실의 입구는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고 있었다.
“모든 헌터들은 지금부터 개미 새끼 한 마리도 훈련실로 통과하지 못하게 해요.”
중앙에는 지후가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앞에는 구미호의 고환이 접시에 담겼다.
그것은 고환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영롱한 자태를 뽐냈다.
“후우···”
덥썩. 지후가 두 개의 고환을 집는다.
뽁! 뽁! 으적! 으적!
고운 자태의 고환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터진다.
고환에 가득 찬 모종의 액체가 그의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스팟! 다 내려가기도 전에 기화가 된 듯 사라진 내용물.
“끄으으···”
지후의 이마가 내천자를 그리며 구겨진다.
폐쇄된 공간이 달궈진다.
한편 그 모습을 진지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오 청장.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
그가 먹는 것도 아니 건만 속이 더부룩하다.
지후의 신음이 그의 귀를 스친다.
그도 눈을 감았다.
‘그럴 리는 없다만. 만에 하나라도 안 된다면 어떡하지.’
청장도 지후의 사정을 안다.
절친 최웅과 아내 로사의 배신.
잃어버린 나날들과 상실감.
각성자 관리청에서도 신경을 써줬으나 그의 상실감을 보듬어 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지후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기도 했다.
지은 죄도 없건만 오 청장은 지후에게 부채감을 느꼈다.
‘잘돼야 할 텐데···’
응원의 말을 한 순간.
눈이 부시다.
지후의 몸에서 옅은 빛이 나온다.
빛무리는 모이고 모여 지후의 꼬리뼈에 달라붙는다.
점차 덩어리를 이루며 길어진다.
복슬복슬한 털. 유연한 움직임.
“구미호의 꼬리···”
그것은 꼬리였다.
오 청장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광채가 줄기줄기 엮인다.
하나. 둘. 셋···. 아홉.
“아홉 개···”
“리··· 린주력!?”
그것을 목도한 이들의 혼잣말.
아홉 개의 꼬리는 지후의 몸을 타고 꿀렁꿀렁 가슴으로 모인다.
그리고 마치 가슴에 블랙홀이라도 달린 듯 꼬리가 흡수되기 시작했다.
*
귀가하던 김 차장은 얻게 된 일확천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남들은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김 차장은 이런 믿을 수 없는 규모의 돈이 두려웠다.
그건 절친했던 친구 배만복 때문이다.
배만복은 평범했던 삶을 살았다.
적당한 직장에 사랑하는 아내를 얻고 금쪽같은 딸내미를 얻었다.
자신의 분수에 만족하면서 살았다.
“행복한 인생이다.”
남들이 보기에 특별하지 않았지만 그는 항상 행복을 입에 담았다.
만복에게 전화가 온 날이었다.
“친구야. 진짜 미쳤다.”
“무슨 일이야?”
“나 로또에 당첨됐어.”
몬스터와 각성 범죄자로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금과 은 또는 마석 같은 실물경제로 돈이 몰렸다.
화폐의 가치하락을 염려해서였다.
그와 동시에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도 늘었다.
로또의 판매액은 사상최 고점을 찍었고 그 당첨금은 매번 최고가를 경신했다.
만복은 평생 쓸 수 없는 거금을 거머쥐었다.
김 차장은 만복이 정말로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갑자기 얻은 일확천금은 복이 아니었다.
만복은 돈을 물 쓰듯이 썼다.
그러면서 주변에 오물 같은 이들이 꼬였다.
평생을 그런 이들과 엮일 일 없었던 만복에게 향수로 포장된 악취를 구별할 능력이 없었다.
고작 몇 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친구야. 나 이혼하게 됐어.”
다시 만난 만복의 품새와 주변의 인물이 달라져 있었다.
고풍스럽게 걸친 의복.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법한 미녀. 기름기 좔좔 흐르는 미남.
그의 주변에 새로 생긴 친구들이었다.
“돈이 넘치니 여자들이 달라붙더라. 어느 날 집에 들어갔는데 아내가 오징어로 보이는 거야.”
화려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녀석의 눈 밑은 거뭇했다.
그날 만복이는 강남에서 제일 비싸다고 할 수 있는 식당을 통째로 빌렸다.
“이거 한 대 할래?”
만복이는 종이를 돌돌 말은 시가 같은 것을 쥐고 있었다.
너무나 변해버린 만복이의 모습에 김 차장은 일찍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친구를 잊고 지냈다.
만복이도 김 차장을 찾지 않았기에.
아무 연락도 없던 만복이는 갑자기 김차장을 찾아왔다.
“내가 취했었나 봐. 분수에 넘치는 돈에는 악마가 도사리고 있었어. 나는 그것을 몰랐어.”
김 차장은 친구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만복이는 뉴스에도 나왔다.
그때 옆에 있던 뺀질거리던 놈은 희대의 사기꾼이 되어있었다.
만복이의 얼굴은 피폐했으며 옷은 누더기처럼 변했다.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는 만복이의 뒤를 외로움과 고독감이 뒤따랐다.
김차장이 다시 만복과 재회했을 때 친구는 웃고 있었다.
빈소에 올려진 사진 속 만복이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기억은 강렬했다.
돈이 행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었고.
자신이 통제하지 못할 거액은 오히려 해악이었다.
‘그래··· 천천히. 조금씩 집의 문제를 해결하자. 급할 것 없잖아.’
잊었던 친구를 반추하며 걷다 보니 문 앞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식탁에서 홀로 저녁을 먹던 아내를 보았다.
“출장 잘 갔다 왔어?”
“어. 여보. 할 말이 있어.”
김 차장은 아내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시선을 한번 주고는 식사를 이어갔다.
말하라는 제스처다.
“대출금 다 갚을 것 같아.”
“푸훕!!!”
아내의 입에서 분수처럼 뿜어 나온 밥알이 김 차장의 얼굴에 흩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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