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 (1)
“이런 젠장!”
한 사내가 위스키 잔을 벽에 던진다.
얼핏 보기에도 호화로운 벽면에 노란 위스키의 얼룩이 그림을 그린다.
“이 개자식들이 확실히 능력을 없앨 수 있다며!?”
사내는 씩씩대며 화면 속 지후의 인터뷰를 보고 있었다.
산처럼 삐쭉삐쭉 솟은 머리.
적당히 그을린 옅은 갈색의 피부.
음습한 눈동자를 가리는 실눈.
사내의 이름은 최웅.
한국 최대의 길드를 이끄는 ‘최웅 더 해모수’의 수장이다.
그는 분노에 찬 듯 콧김을 뿜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나요. 인터뷰는 봤겠지?”
“봤소.”
“마나 서클의 복구는 불가능하다며?”
“세상사 다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요.”
“돈을 얼마나 받아 처먹었으면서 그런 말을 하나! 고객한테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야!?”
최웅의 격정에 찬 노성.
“어차피 우리의 일차적 목표는 같지 않소. 추가로 준비한 것이 있으니 그걸로 마음 푸시구려.”
쇠를 가는 듯한 음성의 남자는 최웅의 호통을 여유롭게 받아쳤다.
“준비?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민 건가?”
“곧 알게 될 것이요. 내 선물이니 마음껏 즐기시길.”
“그래? 기대해도 되는 거요?”
“아무렴. 며칠만 기다리시구려.”
뚝. 통화를 종료한 최웅.
새로운 잔에 위스키를 채운다.
도시의 전경이 보이는 창가 앞에 섰다.
“관리청과 한지후. 발악들 해봐라. 대세는 길드로 기울었으니.”
그의 욕망으로 일그러진 눈동자가 아래에 펼쳐진 도시를 오시했다.
그 시각 인천의 어느 야산.
한 사내가 눅눅한 공기가 가득한 산속을 은밀하게 이동하고 있다.
신속하게 이동 중이건만 낙엽을 밟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마치 그림자의 파편이 꿀렁거리는 듯한 움직임.
밤눈에 밝은 야생 동물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암흑과 구분할 수 없는 로브를 걸친 남자는 이윽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공터에 당도했다.
그는 잠시간 수색하듯 주변의 요모조모를 살폈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괴하게 비틀린 손가락을 허공에 올렸다.
“생성.”
손끝에서 불길한 힘이 흘러나왔다.
메케한 매연 같은 기운이 허공에 빨려 들어가자.
쩌저적. 공간이 비틀리며 귀기 어린 비명이 들린다.
피를 흘리는 듯 붉은 안개가 벌려진 틈에서 줄기줄기 흐른다.
그것은 균열이었다.
인류의 번영과 평화를 위협하는 악마의 출입구.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그 발생 원인과 구조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한 명의 손끝에 창조되었다.
지금까지 균열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별것도 없다.
최소한 인간이 집단화를 이룬 장소의 인근 혹은 그 속에서 발발한다는 것 정도.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는 인류가 연구한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체불명의 남자는 균열을 창조했다.
균열이 안정화되자 남자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생성 완료했습니다.”
보고를 마친 남자는 자리를 떠났고.
균열은 서서히 그 틈새를 넓혔다.
그로부터 며칠 뒤 각성자 관리청에는 비상이 걸렸다.
“새로 감지한 균열 위치는 파악했어?”
“그게 아직 대략적인 위치만 감지됩니다.”
“한솔 헌터는 인천으로 출동한 거 맞지?”
“예.”
오 청장은 밀어닥치는 사건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균열 동시 발생이라니.’
최초 게이트가 발생한 사건인 대격변 이후 한국에서 균열이 동시에 공존하는 일은 손에 꼽았다.
그 희귀한 사건이 오늘 터진 것이다.
다행히 서울 인근이라 게이트 탐지 능력을 갖춘 강한솔 헌터의 탐지망에 걸렸기 망정이지.
지방이었다면 알지도 못하고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발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인력이 문제였다.
현재 관리청 소속 헌터들은 거진 게이트 진화 예정 현장인 부산에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
‘B급 이상 헌터 한 명만 더 있었으면.’
인천에서 감지된 게이트의 기운은 C 등급으로 예측.
관리청에 잔류한 헌터들은 대부분 D등급이다.
B등급이 보스만 처리해 주면 무난히 공략할 수 있는 수준.
그런데 보스를 처리해 줄 B등급 헌터가 없었다.
“해모수는 뭐래?”
“그··· 자신들은 계약 맺은 고객들이 더 중요하다고.”
“미친 자식들.”
“저번에 요구한 조건을 수용하면 바로 파견하겠답니다.”
“개자식들. 인류가 위험한데 그딴 게 중요해?”
오옹효 청장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최웅 더 해모수.’
작금 대한민국 헌터를 흡수하고 있는 블랙홀.
유일한 S+등급의 헌터 최웅이 이끄는 민간 길드다.
각성자 관리청과는 앙숙 관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후 헌터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 관리청 헌터들도 대거 이탈했다.
그 주동자가 최웅이었다.
그리고 관리청을 경계하고 호시탐탐 모략을 꾸미는 것도 그다.
“우선 인천시에 방송 내보내고 시민들 대피시켜!”
오 청장의 목을 긁는 듯한 노성이 관리청에 울려 퍼졌다.
관리청이 난리가 난 때.
인천의 해솔 고등학교는 평화로웠다.
“어머! 시아야. 그 립스틱 나 써봐도 돼?”
“물론이야.”
수업 사이의 공백 쉬는 시간.
김 차장의 장녀 시아는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사춘기 소녀인 그들의 주제는 화장품.
성인이 되는 시기의 소녀들은 언제나 어른의 전유물인 화장을 동경했다.
“어때?”
시아가 준 립스틱을 바르고는 입을 뻐끔뻐끔 거리는 친구.
“괜찮네! 나보다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에이~ 어찌 해솔 여중 얼짱 출신이신 시아만 할까.”
절친의 소담스러운 담소.
그들을 아니꼽게 보는 시선이 있었다.
“퉤! 저건 반지하가 또 어디서 립스틱을 구한 거야?”
“훔치기라도 한 거겠지.”
“씨팔. 반지하 사는 애가 립스틱은 무슨. 향수도 뿌린 것 같던데?”
으레 그렇듯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란다.
부모들의 사소한 말씨와 행동이 아이들의 이정표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가진 계급의 시선 역시 학생들에게 전염된다.
그런 시선에서 시야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야. 다음 시간 체육 시간이지?”
“그냥 쨀까?”
“아니야. 내가 계획이 있어.”
드르륵. 의자를 끌며 시아와 친구가 일어난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가자.”
시아와 친구는 체육복으로 환복하러 나갔고.
그를 지켜보던 학생들은 시아의 자리로 움직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의 공통된 의견처럼 체육 시간은 순식간이다.
시아는 땀에 젖어 반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은 시아는 자신의 보물 상자를 찾기 위해 가방을 뒤졌다.
“어?”
없다.
자신의 보물 상자가.
“어디 갔지?”
가방에 있던 모든 물건을 털었다.
그러나 상자는 없었다.
보물은 엄마의 화장품을 훔친 것.
영롱한 빛깔의 에수튀로터 비비크림.
고혹적인 적색의 입쉥료량 립스틱.
완숙의 향을 지닌 디다크 오류페옹 향수.
사춘기 소녀인 시아의 소중한 보물이었다.
‘오늘 고이 집에다 갖다 두려 했는데.’
엄마의 화난 얼굴이 뇌리를 스친다.
그리고 마주하는 가열찬 고함.
찾아야 한다. 반드시.
“야! 이거 봐봐!”
자리에 앉은 한 학생이 스마트폰의 음량을 키운다.
“인천시에서 큰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방송을 시청하신 시민분들은 즉시 안전한 장소로 대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야! 우리도 도망쳐야 하는 것 아니야?”
학생들의 웅성임이 점점 커진다.
벌컥. 문이 열렸다.
“모두 소식 들었지? 수업이고 뭐고 대피해야 한다. 평소 배운 것처럼 질서 있게 나와!"
몬스터가 나오는 시대다.
대피 훈련은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실시되는 교육이 되었다.
하나, 둘 학생들이 교실을 벗어난다.
“시아야. 나가자.”
“잠깐만. 먼저 나가 있어.”
시야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가며 교실을 헤집었다.
사물함, 책상 서랍, 쓰레기통 등 다 조사를 해봤으나 보물 상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어딨는 거야!’
시야의 손길이 교탁의 서랍 안에 미쳤을 때.
“찾았다!”
서랍에는 그녀의 소중한 보물이 있었다.
‘아니.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지?’
시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화장품 상자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몇몇의 같은 반 아이들이 뇌리를 스친다.
‘설마···’
의심스러운 애들이 있지만 여지껏 이런 적은 없었다.
‘나중에 생각하자. 시간이 없어.’
이제 자신도 대피해야 한다.
“꺄아악!”
끔찍한 비명.
시아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즉시 창문으로 달려가서 상황을 확인했다.
잔혹한 광경에 말문이 막힌다.
육중한 몸집. 두 개의 머리. 거대한 날개와 날카로운 발톱.
인터넷에서 본 적 있는 몬스터였다.
‘바실리스크!’
바실리스크뿐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뱀과 닭을 닮은 몬스터.
그것들은 운동자에 모인 학생들과 선생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수··· 숨어야 해.’
도주로는 막혔다.
괜히 용감하게 밖으로 나가려다가는 부리에 목이 꿰뚫릴 수 있다.
교실의 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불을 끄고. 교실 구석에 있는 거대한 TV 뒤편의 공간으로 숨었다.
커튼 틈으로 운동장의 상황을 살핀다.
핏물과 육편이 낭자했다.
온몸이 떨리고 입술이 바짝 마른다.
쿵! 쿵! 웅장한 걸음 소리.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교실이 울린다.
점점 울림과 소리가 가까워진다.
시아는 눈을 감았다.
눈물과 콧물이 얼굴을 적신다.
소녀의 어두워진 시야에 떠오른 건 보물 상자도 친구도 아니었다.
‘아빠!’
며칠 전 아빠에게 말한 불평이 떠오른다.
그날도 야자를 마치고 집에 들어갔을 때였다.
거실에서 이불에 누워있던 아빠는 자신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시아야. 화장이 너무 진한 거 아닐까?’
그게 아니꼬웠다.
시아도 종종 질이 나쁜 아이들이 뒤에서 자신을 칭하는 소리를 안다.
반지하.
자신이 선택한 삶도 아니건만 저런 모욕을 들어야 했다.
갑자기 아빠에 대한 울분이 터졌다.
자신은 공부도 열심히 한다.
그런데 아빠는 자신을 놀림거리로 만드는 반지하에 거주하게 했다.
그런 아빠가 고작 화장을 한 걸로 뭐라 하다니.
“연봉이라도 올리고 말하시지.”
시아는 방에 들어가면서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작은 소리였지만 작은 집의 거실까지는 충분히 닿았다.
하지만 아빠가 방으로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거실에서 훌쩍이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죄책감과 미안함이 엄습한다.
그렇게 못 된 말을 했음에도 공포를 마주했을 때 떠오르는 건 아빠였다.
콰광! 문이 박살 나는 굉음.
쿵! 쿵! 교실에서 들리는 울림.
쿵! 분명하다.
자신이 숨은 TV 앞이다.
전자기기를 사이에 둔 대치.
부득! TV를 뚫고 부리가 튀어나온다.
“흐읍!”
숨이 넘어간다.
‘도와줘요! 아빠!’
시아는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시아야!”
그 응답의 고함이 들린다.
“뒤져라! 이 괴물아!!!”
콰아앙! 수류탄이 터진 듯한 폭발음이 시아의 고막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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