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 (2)

동시 균열이 발생한 당일.
김 차장은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우선 회사에 사표를 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지후 헌터에게 받은 거래 대금만으로도 한동안 먹고살 걱정은 없기 때문이다.
세금을 제외하면 약 십오억 상당이니.
사직서를 내는 과정에서 한나절을 이 팀장과 대화했다.
“김 차장. 요즘 힘든 일 있었나? 좀 쉬고 돌아와.”
처음에는 고분고분 타일렀다.
“아니요. 다른 일을 알아볼까 합니다.”
“솔직히 말해. 다른 데서 좋은 조건을 걸었나? 업계 좁잖아.”
조금 지나서는 약간의 협박성 멘트.
“정말 다른 일을 해보려고요.”
“그 나이에 치킨집 차리게? 창업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알고? 그거 날리면 이혼이야. 정신 차려!”
급기야 이 팀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입장에서 충실한 노예가 탈출하려는 것으로 보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노예 관리인 입장에서는 주인에게 잘 보여야 하니까.
고성에 사람들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이 팀장. 유순한 사람이 핏대를 올리고?”
사장이 입장하고 신대리가 뒤따랐다.
그의 등장에 김 차장과 이 팀장의 시선이 이동했다.
“김 차장도 윗사람이 말하면 고분고분 들어야지. 이 팀장 얼마나 사람 좋아.”
“아니. 김 차장이 요즘 고생스러운 일이 있는지 퇴사 이야기를 슬쩍 꺼내길래.”
이 팀장의 발언을 들은 사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어린다.
“어디 좋은 직장이라도 알아봤어? 이 업계 좁아. 나 여기서 잘나가는 거 알잖아.”
그 주인에 그 노예였다.
사장과 이 팀장의 공통된 반응이 협박이라는 것이 웃겼다.
송사리 눈에는 자기가 살고 있는 호수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대화가 변죽을 울릴 것 같아 김 차장은 마무리를 짓고자 했다.
“아니요. 저 로또 당첨됐어요.”
““로또!?””
회의실에 있던 모든 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 얼마나!?”
이 팀장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물어본다.
대답이 궁금한지 사장의 눈이 김 차장의 입술을 주목한다.
“비밀이에요. 적당히 살 만큼.”
김 차장의 말이 끝나자.
“허허허. 축하할 일이네. 여생이 편하겠어. 한때 내 품에 있던 직원이 떠난다는데 밥이라도 사줘야지.”
기업가적인 태세 전환.
사장은 김 차장의 옆으로 다가왔다.
“아뇨. 배가 불러서요.”
“에잉··· 나한테 시간 좀 내주게.”
“맞아. 김 차장. 팀원끼리도 송별회 해야지.”
이 팀장도 태세를 전환했다.
사장에게는 못 미치는 대응 속도.
김 차장은 뚱한 표정을 유지했다.
“담배라도 한 대 피우자고.”
담배 정도는 시간을 할애할 수 있기에 김 차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사장도 뒤따른다.
“김 차장. 요즘 내가 구상하는 사업이 있는데, 언제 한번 식사나 하면서 담소를 나눠보지? 최소 열 배 이상의 수익은 보장될 거라고.”
김 차장의 옆에서 착 달라붙어서 말을 거는 사장.
“김 차장. 아니. 이제 동생이라고 해야겠다. 우리가 같이한 세월이 얼마인가. 다름이 아니라 내가 산 땅이 있는데···”
사장에게 질세라 자신의 땅을 팔아치우려는 이 팀장.
“김 차장님. 축하드려요. 언제 한번 와인 사주세요. 제가 분위기 끝내주는 곳 알거든요.”
자신이 상급자라고 착각하던 신대리.
그녀는 은근슬쩍 팔짱을 끼며 김 차장의 시선을 풍만한 가슴으로 유도했다.
하지만 김 차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아내가 어른거리기도 하였기 때문이고.
자신의 취향과는 썩 멀기 때문이기도 했다.
김 차장은 그들의 아우성을 여유롭게 들어주며 담배 한 모금을 빨았다.
한 개비가 꽁초로 변할 즈음.
“그럼 수락한 것으로 알고 저는 일이 있어서 오늘 들어가 보겠습니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김 차장.
함께 내려온 이들은 그의 등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 이제 수련하러 가자.
조용하던 견우의 한마디.
- 수련이요? 무슨 수련.
- 내공만 얻었다고 강해지냐? 아니다.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육신과 무공이 있어야 가능하지.
- 흠···
고민스러운 일이다.
어쩌다 보니 돈이 생겼다.
그렇다면 굳이 죽을 가능성이 있는 헌터 일을 하는 게 옳은가.
각성자가 되어서 헌터로 이모작을 시작하는 것은 훌륭할 수도 있지만.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버는 것이니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적당한 공터로 가자.
김 차장의 번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견우는 훈련을 종용한다.
‘뭐··· 수련만 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은 일이니.’
김 차장은 집 주변의 공기 좋은 산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각성갤을 키면서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그런데 그곳에는 때아닌 논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논란은 보면서 즐기면 된다.
하지만 순수하게 즐기지 못할 때가 있다.
바로 자신이 도마 위에 올라와 있을 때이다.
한지후 헌터는 십자 포화 같은 구애를 하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개인 쪽지로.
반도의 수호자 : 중년 신사님. 인터뷰를 통해 제 복귀 소식을 들으셨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공언했던 비유동자산의 처리가 완료되어서 잔금을 치르고자 합니다.
중년 신사 : 현재까지 수취한 금액으로도 충분합니다. 한반도를 위해서 힘써주세요.
반도의 수호자 : 아니. 이건 대국민 공약이기에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부탁입니다. 받아주세요.
김 차장의 계속된 거절이 이어지자 한지후는 다른 노선을 택했다.
[중년 신사님께]
- 각성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도의 수호자입니다. 모두 제 정체를 아시겠지만 금번에 복귀한 한지후 헌터입니다.
이렇게 공개적인 글을 쓰게 된 사유는 이번에 저를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해 주신 중년 신사님 때문입니다.
일전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비유동자산의 현금화를 끝마쳤습니다.
공약대로 잔금을 치르고자 중년 신사님께 개인 대화로 요청을 드렸으나 거절하시네요.
거래 요청도 이제는 다 거절하십니다.
여러분, 저 한지후의 복귀를 축복해 주셨다면 중년 신사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저는 오늘도 보람찬 마음으로 한반도를 수호하러 가겠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이 되길.
한지후 헌터는 생각보다 집착이 심했다.
이건 오히려 김 차장을 음해하려는 속셈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의 집착을 보였다.
게시글의 파급력은 한지후 헌터의 복귀에 열광하는 각성자들을 흥분케 했다.
ㄴ 중년 신사님. 한지훈 헌터의 성의를 무시하는 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제고하시길.
ㄴ 호의를 권리인 줄 아는 것은 죄이듯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무시하는 것도 악업입니다.
ㄴ 한지후 헌터님 힘들게 하지 마세요. 중년 신사님. 제가 찾아갑니다.
당연히 좋지 않은 댓글도 있었다.
ㄴ 미친놈이. 돈이 썩어나? 한지후 헌터가 푼돈 줄 것도 아니고.
ㄴ 자신이 뭐 되는 줄 아는 거겠지. 한지후 헌터가 조명해 주니까 혼자 즐기고 있을 수도.
ㄴ 반도의 수호자님. 저런 감사함도 모르는 놈한테 신경 쓰지 마시고 저한테 보답하시길. 좋은 데 써드릴게.
김 차장은 자신을 비방하는 댓글을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얼마나 현실이 힘들면 익명의 공간에서 타인을 비난하는 것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채울까.
각성갤을 탐방하는 것과 동시에 수련 장소를 물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적당히 통행로가 아닌 곳을 걸으며 산속을 헤매니 평지를 찾았다.
견우는 수련을 위한 적합한 장소라는 결정을 내린 후에 일장 연설을 했다.
독문 무공의 배경. 이론. 훈련법 등.
듣던 김 차장은 우선 정신적 교감을 이용해 독문 무공을 머릿속에 박아 넣었다.
굳이 들으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기에.
무리를 심상의 세계에서 숙지하고 있을 때.
삐이삐이! 김 차장의 핸드폰이 긴급 신호를 보냈다.
신경질적인 울림에 김 차자장은 핸드폰의 내용을 확인했다.
[긴급 대피 : 인천시 균열 발견. 시민들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어엇?”
김 차장은 당황했다.
자신의 거주지역에서 벌어진 균열.
그러나 재난 문자의 양식이 달랐다.
일반적으로 재난 문자에는 균열의 위치까지 표시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의 문자에는 상세한 위치도 없었고.
덩그러니 인천시라는 광범위한 구역만 제시된 것.
김 차장은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인터넷과 각성갤을 탐색했다.
[동시 균열 아니야?]
지금 보니까 부산에도 균열 발생했던데?
ㄴ 맞음. 헌터들 대부분 부산에 있던데? 유두버들이 실시간으로 영상 올리는 중.
ㄴ 그런데 인천에는 상세 위치가 없네? 보통은 알려주는데?
ㄴ 게이트 서처들 일 안 하나? 시민을 지키려면 빠릿빠릿해야지.
ㄴ 세금에 보호세에. 길드는 뭐함?
동시 균열이라니.
그것보다 시급한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관리청 헌터가 부산에 있다는 것이다.
그럼 수도권은 길드가 지켜야 하는데 길드는 묵묵부답.
김 차장은 생각한다.
‘일반적인 재난 문자 형식이 아니야.’
‘게이트 공략에 적극적인 관리청 헌터들은 부산에 있다. 길드는 최근 공략을 거의 안 하던데.’
‘아내는 서울에 있으니 안전하다. 그럼 시아랑 준수는?’
김 차장은 판단한다.
‘균열의 위치도 특정되지 않았는데 재난 문자가 뿌려졌다는 건 균열이 예상치 못한 것이란 거다.’
‘게이트 진화가 빠르다거나 등급이 인천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높다거나.
‘길드는 반응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게 맞다. 그럼 인천을 지키는 건 일반적인 군부대나 경찰이겠지.’
‘시아랑 준수한테 전화를 해보자.’
김 차장은 바로 핸드폰을 들었다.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바로 전화.
뚜르르. 통화음이 끊기며.
“준수야. 어디야?”
“집이에요.”
“집? 학교는?”
“오늘 개교기념일.”
“집에 안전하게 있어. 문자 받았지?”
“예.”
김 차장은 즉시 시아에게 통화 시도를 했다.
뚜르르. 뚜우뚜우.
‘뭐지? 연결이 안 된다니.’
핸드폰에 아내의 문자가 뜬다.
[나 사무실이야. 서울은 괜찮데. 그런데 시아랑 통화돼?]
김 차장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시아가 몇 반이었지?”
“왜?”
“빨리. 급하니까.”
“3반.”
전화를 끊었다.
‘기다려라. 아빠가 간다.’
음양심법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무작정 달렸다.
울창한 나무의 숲을 나와 도시로 진입.
길게 늘어지는 건물과 거리.
어느덧 김 차장의 눈앞에는 해솔 고등학교가 보였다.
“끼야악!”
정문은 난장판이다.
저걸 뚫고 가는 것은 시간 낭비.
후문을 이용한다.
발걸음이 한없이 가벼워지며 옷깃 스치는 소리조차 사라진다.
창문을 통해 복도에 서성이는 괴물의 위치를 확인.
3반으로 직행하는 1층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교실 안에 서성이는 닭의 형상을 한 몬스터.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저 주먹을 내질렀다.
음기와 양기가 육신에서 고속으로 회전 중이었기다.
그렇기에 단순한 지르기 동작도 더 이상 평범하지 않았다.
콰앙! 닭대가리가 폭발하며 목에서 줄기줄기 피를 뿌린다.
“시아야!”
눈을 감고 오들오들 떨던 시아는 꿈에 그리던 목소리를 들었다.
자신의 세상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불평과 불만만 내뱉었던 사람.
모든 걸 다 받아주니 처리하고 싶은 감정을 던졌던 사람.
자신을 사랑할 거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상처의 말을 했던 사람.
이기적이게도 절망의 끝에서 생각났던 한 사람.
아빠다.
“시아야!”
두려움과 공포에 굳었던 혀와 목 근육이 풀린다.
“아···”
‘조금만 더. 아빠가 날 찾을 수 있게.’
“아빠!”
애달픈 딸의 목소리가 아버지의 가슴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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