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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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해라. 이번에 관리청에 입사하게 된 가온님이시다.”
“헤헷. 안녕하세요.”
지후는 구용의 우상이다.
그의 앞에서 불편한 표정을 비출 수는 없었다.
그가 결정한 사항이었으므로.
“안녕하세요. 가온입니다.”
“반가워요. 오구용입니다.”
구용이 대인배인 듯 손을 내밀었다.
악수는 으레 처음 본 사람들과 교류의 포문을 여는 법.
가온은 손을 맞잡았다.
꽈악! 무식한 근력이 맞잡은 손아귀에 전해졌다.
‘뭐지? 헌터식 악수법인가? 예의를 지켜줘야지.’
꽈악! 가온의 손아귀에 음기가 깃들었다.
부르르. 핏줄이 돋아난 구용의 팔뚝이 떨린다.
“헙!”
악수를 그만두려 하나 얼음에 붙은 듯 가온의 손아귀에서 못 벗어난다.
‘아··· 끝났나 보군.’
가온이 힘을 풀자.
파앗! 구용의 다급한 탈출.
“허허허! 수족냉증이 있으신가 봅니다. 손이 차시네요. 관리청에 남는 홍삼이 있는데 이따 가져가시죠.”
고통을 이겨내며 의연한 척 너스레를 떠는 구용.
넉살에 진실을 섞었다.
진짜 가온의 손은 차가웠다.
마치 드라이아이스를 만진 느낌이었다.
한기가 전두엽을 강타했다.
“그런가요? 손이 따듯한 남자로 유명했는데.”
의례적인 대화.
“구용이가 잘 챙겨드려. 관리청에서 네가 제일 인맥도 넓으니.”
“알겠습니다.”
“구용이는 제 고향 동생이에요. 각성하고서 관리청에 입사했죠.”
“동향 출신 동생이라니. 든든하시겠어요.”
“하하하. 그렇죠. 제가 없는 동안 이슬 헌터와 함께 관리청을 지켜온 녀석인데요.”
뚜르르. 이때 울리는 지후의 전화.
“잠시만요. 여보세요? 어. 찾았다고?”
지후가 반색한다.
“바로 전화준대? 응. 직접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어? 알았어. 기다려.”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형님!”
통화를 마친 지후의 얼굴에 피어난 함박웃음.
구용은 함께 즐거워하기 위해 물었다.
“하하핫! 그래. 구용이도 알지? 중년 신사님.”
“당연히 알죠. 관리청의 은인이신데요.”
“찾았단다.”
““예!?””
동시에 울려 퍼지는 가온과 구용의 경악성.
“혹시 가온님도 아시나요? 중년 신사님?”
“아··· 저도 한지후 헌터님의 팬인 걸요. 대강의 사정은 알고 있습니다. 몸이 다 나으신 거죠?”
“날아갈 듯이 가뿐합니다. 사실 6 서클이 한계였는데 지금은 7 서클로 경지가 상승했습니다. 예전보다 더 몸 상태가 좋아요.”
“제가 마법 계열로 각성하지는 않아서 잘 모르지만 대단한 것이겠지요.”
“크흠···”
갑자기 구용이 목을 풀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대단하다는 말로 부족하지요. 마법 계열 각성자로 7 서클에 도달한 헌터는 국내에는 유일하십니다.”
“하하하. 부끄럽구나. 구용아. 금칠하지 말아라. 마법 계열이라도 서클로 구동하지 않는 각성자도 많은걸.”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형님. 그리고 아무리 서클 방식이 아니더라도 대략적인 비교는 가능하잖습니까.”
구용은 자부심에 찬 눈으로 가온을 응시했다.
“마법으로 분류되는 능력자 중에서 국내에는 우리 지후 형님을 이길 자가 없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저 마법 계열을 잘 모르는 것뿐이에요.”
동의한다는 듯한 미소의 가온.
이를 지켜보던 지후의 한마디.
“워워~ 구용아. 부담스러우시겠다. 김 차장님. 실례지만 저는 먼저 자리를 일어나봐야겠습니다.”
김 차장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말해야 하는 건가···’
분명 사기꾼이다.
중년 신사는 지금 여기 있다.
이 자리에.
그러나 밝히는 순간 귀찮아질 것이 분명했다.
“저··· 저도 가겠습니다. 저도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
“괜찮아. 부담스러우실 거야. 흐음··· 혹시 아닐 수도 있고.”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보한 놈들이 누굽니까? 혹시 착각해서 사기꾼이라도 데려오면 저한테 말씀하십시오. 저 오구용이 다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우선 우리 가온님 좀 나 대신 안내해 드려라. 난 간다. 진짜 가보겠습니다. 이만.”
“잘 다녀오세요.”
인사 후 등을 돌려 걷던 한지후.
‘김 차장님 표정이 안 좋던데. 아무래도 안내하다 갑자기 떠나는 게 무례하다 느꼈을 수도 있지. 더해서 도장 찍었으니 잡은 물고기라 막 대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약간의 오해가 쌓이고.
‘앞으로 더 잘해줘야겠군.’
착각에서 호의가 피어났다.
한지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가온의 심경은 복잡했다.
뿌듯함과 미안함.
헛걸음이 분명한데 막지 못한 것에서 오는 미안함.
서클이 늘었다는 것에서 자신이 건넨 구미호의 고환이 효엄이 있었다는 뿌듯함.
그 교차하는 감정을 정리 중인 와중.
구용의 얼굴은 붉으락푸르하다.
한지후 헌터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 중 굉장히 신경 쓰이는 단어.
'우리'.
어찌 우리란 말인가.
형님을 향한 구용의 충심에 불을 지피는 단어였다.
'세 치 혀로 형님을 구워삶어? 이 더러운 노친네 같으니라고'
이렇게 영광스럽게 무리의 안에 넣어줬음에도.
이놈은 주제도 모르고 한지후 헌터님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형님은 갔다.
이제 시작이다.
“가온 헌터. 어떤 계열의 각성자인가?”
금세 하대로 바뀌어 버린 구용의 언행.
‘착각이겠지.’
한지후 앞에서 보여줬던 구용의 호의적인 태도.
이것을 오해로 치부했다.
“무술 계열이에요.”
가온은 자신의 능력을 무술 계열로 숨겼다.
이는 견우의 의견도 반영된 것인데.
- 무릇 무인은 자기 힘의 삼 할은 숨겨두어야지. 그것이 언제 비장의 한 수가 될지 모른다.
그 의견에 동조한 가온은 관리청에조차 능력을 숨겼다.
견우의 조언을 떠올리던 와중.
아까부터 무언가 말을 걸어달라는 듯 경탄성을 내뱉는 견우가 신경 쓰인다.
- 아까부터 신경 쓰이네요. 왜 이리 신음 소리를 내요?
- 후인들을 보니 신기해서. 하하핫. 저 구용이라는 녀석이 익힌 무공이 익숙하구나. 아무래도-.
견우와의 의념을 통한 대화 중.
“때마침 잘됐네. 나도 무공계열이야. 어때? 한번 가벼운 대련이나 해볼까?”
가온의 눈이 갸름해졌다.
필시 이건 의도적인 하대다.
‘아무래도 지후 헌터가 자리에 없으니 서열을 잡으려는 것인가.’
가온은 숙련된 사회인이다.
인간이란 집단화를 생존의 방식으로 차용한 이후 외부인에 대한 배척을 보호 수단으로 삼아왔다.
그렇기에 소위 텃세가 생기는 것은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다.
“그래. 해보자.”
“그래?”
구용의 눈이 사선으로 치켜떴다.
“아저씨. 말이 짧네. 여긴 나이순이 아니야.”
“그럼 무슨 순인데?”
“헌터는 몬스터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사람들이지. 그럼 당연히 무력 아니겠어?”
“그래서 이렇게 반말하지 않나?”
약간은 새침한 표정.
오구용의 이마에 내천자가 생겼다.
“아저씨가 돈을 많이 받더니 정신이 좀 나갔네.”
‘아항. 계약조건을 들었나 보군. 이래서 너무 많이 받아도 피곤한 것인데.’
능력은 시기와 질투를 수반하는 것이었고 가온은 그것을 알 만큼 성숙했다.
“능력에 맞춰 받은 것이지. 네놈이 주장하는 무력이 나보다 낮다고 판단했나 봐. 관리청은.”
“뭐!?”
이제는 가슴을 내밀고 한 발 앞으로 나온 구용.
가온도 그에 맞춰서 한 발을 내민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대련하기로 했잖아? 곧 밝혀지겠지.”
구용은 올라가기 전 보호대를 착용했다.
“그리고 나는 검수다. 너도 무기가 필요하면 써라.”
“됐다. 애새끼 상대하는데 뭔 놈의 무기냐.”
“후우···”
쉬익! 단단해 보이는 헤드기어가 가온에게 날아온다.
가온이 과도하게 다치면 한지후 형님에게 변명하기가 힘들다.
적당히 뻣뻣한 고개를 숙일 정도만.
주제를 깨닫고 제 발로 능력에 맞는 수준으로 연봉을 깎으면 더욱 좋게끔.
“써라. 죽을 수도 있으니.”
“웨붸붸.”
구용은 귀를 후볐다.
‘잘못 들었나.’
이번에는 장갑을 던졌다.
“써라. 내 손에 죽은 몬스터만 한 트럭이야. 너 같은 나약한 놈은 죽을 수 있어.”
“웨뷁뷁.”
아무리 봐도 의도한 거다.
어떤 상황이든 감정이 앞서면 불리해지는 법이다.
냉철한 이성으로 현황을 파악하는 것은 직장인의 필수 아이템.
가온은 이성을 흔들고자 했다.
고도의 심리전.
미야모토 무사시도 고지로를 죽이기 전에 심리전을 했다.
그만큼 상대의 심리를 흔드는 것은 유구한 전통이 있는 전술이다.
“이 늙은이 새끼가.”
“붸랞뤸.”
오구용은 눈을 감았다.
지후 형님을 봐서라도 적당히 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적당히 끝낼 수 없게 되었다.
뿌득. 이가 부서질 정도로 턱에 힘을 준 구용.
먼저 링 위로 올라간다.
주변으로 헌터들이 모인다.
오구용은 관리청 3인자인 만큼 그를 따르는 무리가 있었다.
“형님! 박살을 내버리십시오!”
“달빛 아래 춤추는 비월검객의 검무를 보여주십시오!”
“오구용이 이기구용!”
그들은 단체로 고성을 내지르며 가온의 기를 죽이려 하였다.
숱한 폭력적인 사회인을 견뎌온 가온이다.
이런 저열한 훼방에 흔들리지 않았다.
“왘꾾땛.”
가온은 링 위에 입을 풀었다.
“닥치지 못하냐?”
“뭐가?”
가온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 방정맞은 것 말이다.”
“퀘뤠릯?”
“씨펄!”
파앙! 구용이 링을 박찼다.
급격히 좁아지는 거리.
과연 3인자 다운 도약력이었다.
중력에 의해 가속하는 낙하.
동시에 공기를 가르는 목검.
그 순간.
살랑살랑. 가온의 허리가 갈대처럼 흔들리며.
“이끄!”
달빛 아래에서의 춤사위가 시작되자.
휘웅! 휘웅! 연달은 용구의 검격은 가온을 비껴간다.
취중의 월광을 보며 창안된 월무보가 전개된다.
겉멋 든 별호에 불과한 비월검객.
그의 공격은 진정으로 취중에 창안된 보법을 파훼할 수 없었다.
“저··· 저거 택견찰의 동작 아니야?”
한 명의 구경꾼의 입에서 가온의 별호 아닌 별호가 나오자.
“어··· 맞네!”
“취··· 치한다!”
가온을 알아본 일부의 헌터들이 호의를 뿜어내고.
‘뭐야. 이 녀석이 택견찰이었어?’
거듭 공세를 펼치는 구용에게 잡념이 깃든다.
이를 알아챈 가온.
“나를 상대하며 딴생각할 시간이 있나?”
타앗!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공격을 멈춘 구용.
“유명인이셨으면 말하지 그러셨소.”
어디서 본 건 있는 것인지 말투가 바뀌었다.
“뭘 유명까지야. 그냥 영상 하나 돌아다니는 것뿐. 어차피 명성이 있건 없건 나라는 본질은 똑같다.”
갑작스럽게 자세를 곧게 고치는 오구용.
그리고 포권을 한다.
“관리청 헌터 오구용이요.”
가온은 고민했다.
저걸 받아줘야 하는지.
‘아무래도 컨셉에 심취한 것 같은데···’
이러나저러나 오구용은 말을 이었다.
“본인은 각성을 하며 비홍검술(飛鴻劍術)의 심득을 채득했소.”
“안다.”
“허허허. 본인의 공략 영상이라도 보셨나 보구려.”
오구용은 모르고 있었다.
가온이 비홍검술을 알고 있는 이유를.
“뒤에서 구경하는 친구들이 말한 것처럼, 세간에서는 월광에 어울린다고 하여 비월검객이라 불리고 있소.”
무언가 대답을 원하는 눈빛을 보내는 오구용.
가온은 마지못해 답해줬다.
“견우의 진전을 이은 무인. 그의 독문무공인 씨견도를 익혔다.”
끄덕. 구용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와라.”
구용이 하늘로 치솟는다.
그리고 한 마리의 학이 되어 떨어진다.
- 비홍검술. 제1식. 안락천제(雁落天際).
안락천제의 파훼법이 즉각적으로 가온에게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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