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토끼

가정이라는 배는 혼자서 항해하는 것이 아니다.
배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선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멋대로 키를 돌려 방향을 바꿨다가는 선원이 탈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렇기에 키를 바꾸기 위해서는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가온은 배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을 합의도 없이 하고 왔다.
그렇기에 탈주를 막기 위한 설득을 위해서는 임팩트가 있어야 했다.
가온은 차의 창문을 내렸다.
“여보!”
영애는 눈을 찡그리고 창문을 확인했다.
분명히 남편이다.
그런데 처음 보는 차에 탑승해 있다.
“차는 친구 거야? 처음 보는 차네.”
타악. 가온은 차에서 내린 후 문을 닫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아내를 향해 걷는다.
그 걸음에 영애는 묘한 기분을 느낀다.
예의 없이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았건만.
떡 벌어진 어깨와 당찬 걸음.
자신감과 대담함이 풍긴다.
킁킁. 강한 수컷의 향기.
“자. 받아.”
영애는 적절한 반응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남편은 자신의 손을 잡더니.
손가락을 펼치고는.
터억. 스마트키를 손에 쥐여준다.
뺜쭈 S 클래스.
충격. 의문. 경계. 혼란.
영애의 얼굴에 각양각색의 감정이 나타났다.
“이게 뭐야?”
의심스러운 눈초리.
“당신 거야.”
가온은 고심했다.
관리청과 도장까지 찍은 마당이다.
아내는 이런 사실을 꿈에도 모른다.
이제는 밝혀야 할 차례다.
의견도 안 물어봤다고 기분 나쁜 감정이 들지 않게 충격을 줘야 한다.
아내의 덜컹거리는 차량.
차량을 교체해야 할 시기가 지났건만.
여유가 없어 바꾸지 못했던 것.
이게 제일 필요할 것이다.
풰라리. 뢈보루기아니. 브이엠더블유. 아오지.
무수한 선택지가 있었다.
고민이 많았다.
자신의 연봉은 낮춰 말할 것이니까.
여기서 무리해서 샀다는 느낌으로.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너무 고액이란 느낌은 주지 않고.
돈에 젖어버리는 것이 제일 위험한 것이니.
“당신··· 솔직히 말해. 요즘 뭐해?”
“그게···”
“범죄야? 당신 심성이 그리 악하지 않은데··· 그럼 묻어뒀던 주식 있어? 벌었으면 빨리 빼. 저번처럼 다 날려서 힘들게 하지 말고.”
영애는 속사포를 터트렸다.
“여보. 나 헌터가 됐어.”
“뭐!?”
“각성했어.”
영애가 눈알을 굴린다.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리라.
아내는 손바닥을 펼친 채 스마트키를 들고 있었다.
갈무리할 생각도 못 하는 상황인 듯했다.
타락타락. 차키 부딪히는 소리.
가온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그리고 영상을 튼다.
“이끄!”
기합을 배경으로 아내에게 핸드폰을 넘긴다.
“이 영상 혹시 봤어? 이게 나야.”
두 번의 시각적 효과.
반짝이는 차량과 남편의 능력.
킁킁. 짙어지는 남자의 향기.
영애도 익히 보았던 영상이다.
맘카페에 올라온 것이니.
해솔 고등학교를 구한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택견찰.
지금 남편은 그것이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무슨 소리야. 허튼짓한 거 속이려는 거 아니지?”
“시아한테 전화해 봐. 내가 시아 구했어. 당시에.”
영애는 곧장 시아에게 전화했다.
“시아야. 아무래도 아빠가 사고를 친 것 같아.”
“응? 무슨 소리야. 엄마? 천천히 말해.”
“아빠가 너를 구했다고 주장을 하더구나. 각성했다고.”
잠시간의 침묵.
“맞아. 아빠가 말했나 보네. 대단한 능력이었어.”
“그게··· 정말이야?”
“응. 그 택견찰이 아빠야.”
다시 찾아온 적막.
“그래··· 이따 집에서 보자.”
뚝. 통화가 끊어졌다.
영애는 고요한 눈빛으로 스마트키를 살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따 집에서 해.”
“알았어.”
영애는 빤쮸 S 클래스에 탑승하고.
부르릉! 엔진소리를 내며 주차했다.
가온과 영애는 수십 년을 함께 살았다.
그 말인즉, 가온은 아내가 기분이 좋을 때의 버릇을 안다.
가온은 흐뭇한 표정으로 귀가했다.
양 팔이 굉장한 속도로 앞뒤로 흔들린다.
발은 날아갈 듯 빠르다.
앞뒤로 흔들리는 손이 발의 걸음보다 빨라 이질적이다.
언뜻 보기에 보행자가 당황한 것처럼 느껴지는 걸음이지만.
타악! 걷는 걸음 사이사이에 살짝 뛰는 동작은 기쁨을 표출한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영애의 눈빛에는 결연함이 깃들었다.
“시아 엄마! 어디 갔다 온 거야.”
“그냥. 남편이 집 가는 길에 선물 사왔더라고.”
“어머머. 진짜 막둥이 나오겠네.”
“호호호! 그러게.”
간드러진 웃음. 그리고.
터억! 탁자 위에 올려두는 스마트키.
“이건 뭐야? 시아 엄마?”
“남편이 요즘 고생했다고 선물로 줬어.”
""뭐어!?""
놀람과 경악이 테이블에 퍼졌다.
그들의 시선이 차키에 꽂힌다.
빤쮸.
모두가 아는 브랜드다.
엄마들이 눈알을 굴려 지명 엄마의 차키를 바라본다.
“크흠··· 나랑 같은 브랜드네. A 클래스야?”
“아니··· S 클래스.”
딱 떨어지는 음절.
""뭐어!!!""
재차 터지는 아우성.
눈에 띄게 당황하는 지명 엄마.
스윽. 지명 엄마는 슬쩍 차키를 주머니에 넣는다.
“시아 엄마 그래도 너무 헤프게 쓰면 안 돼. 인생 장기적으로 봐야지. 버는 것에 비해 과도하게 쓰면 노후가 힘들어져.”
“그러게.”
“지명 엄마도 걱정은. 시아 아빠가 회사에서 일한다고 성과급을 모아뒀데요.”
“직장인이 얼마나 번다고.”
지명 엄마의 무심한 듯하면서도 빈정거리는 목소리.
“아··· 남편이 직업을 바꿨어.”
""뭐어!!!!!!””
재차 가게를 울리는 합창.
각양각색의 높낮이.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콘트랄토.
어찌 보면 환상의 하모니.
“갑자기?”
“어쩌다 보니까···”
“뭔데?”
“각성을 했더라고. 관리청에서 헌터로 일해.”
장아 엄마가 숨을 멎었다.
그리고 목에 핏줄이 돋으며.
얼굴이 붉어진다.
- 끼에에에에!!!
장아 엄마는 성악을 전공했고.
그녀의 목소리는 가청 한계를 돌파했다.
그럴 수도 있다.
헌터는 이 시대에서 고액 연봉자로 유명하다.
몬스터가 활보하기 전의 사짜 직업들은 저리 가라 할 정도니.
“여··· 연봉은 몇억씩 되는 거야?”
“나도 잘 몰라. 그냥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게 중요한 거지.”
영애의 심장이 계피향이 물든듯 시원해졌다.
그래도 겸손이 중요하지.
마음 같아서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엄마들의 부러움보다.
지명 엄마의 일그러진 표정이 좋았다.
‘이런··· 자제하자.’
이런 일에 똑같이 생색을 내봐야 동류의 사람이 될 뿐이다.
얼마나 꼴사납던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남편의 이야기를 조잘대던 것이.
겸손해지자. 그게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담담하게 관리청 헌터의 제1의 가치.
봉사를 강조했다.
“역시. 시아 엄마.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청렴하고 헌신하는 마음이 멋져!”
“아니야··· 장아 엄마만 하겠어. 형만씨가 얼마나 멋져.”
이후 영애에게로 모든 대화가 집중되자.
“크흠··· 나··· 난 이만 가볼게. 남편 밥해줘야 해서.”
“조심히 들어가요. 지명 엄마.”
부들부들. 가방을 들은 손이 떨렸다.
그런데 일어나야 할 사람이 앉아 있다.
용녀 엄마.
평소면 그녀를 배웅한다고 나갔다 올 텐데.
“그것보다 시아 엄마. 우리 그이랑 한번 식사나 할까?”
용녀 엄마는 계산이 빨랐다.
가온의 헌터 활동은 해솔맘에만 알려진 것은 아니다.
집에서도 한바탕 시아의 뿔난 눈초리가 가온을 향했다.
“아빠! 우리 둘만의 비밀 아니었어요?”
“아··· 미안하네. 시아야. 이번에 아빠가 관리청 소속 헌터가 됐어. 엄마한테는 알려야지.”
“예!? 그럼 이제 헌터로 활동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됐구나.”
시아의 눈망울에 생기는 존경.
“아빠. 혹시 요번에 학부모 특별강연 있던데 오실래요?”
처음이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학교에 찾아가는 걸 싫어했는데.
“그래.”
따뜻한 미소를 보내주며 대답했을 때.
벌컥! 집의 문이 열렸다.
“당신! 따라 나와요!”
아내의 표정은 험악했다.
‘역시··· 혼자서 결정을 내려서 화났나.’
아무리 포장했다지만 멋대로 가정이라는 선박의 방향을 바꿨다.
가온은 아내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러나 이상하다.
저 걸음은 기분이 좋을 때의 특징인데.
띡띡! 그녀는 말없이 차를 탔고.
가온은 조용히 조수석에 앉았다.
부와앙! 급발진. 쾌속의 질주.
꽈아악. 손잡이를 잡은 가온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어···”
영애가 가는 길은 가온이 잘 아는 곳이다.
그녀와 연애하던 시절 자주 왔던 마니산 드라이브 코스.
어슴푸레한 저녁 하늘을 장식한 별빛이 창문을 통해서 쏟아졌다.
영애가 가온을 바라본다.
자세히 보니 립스틱도 발랐다.
가온은 옷깃을 여몄다.
그 시각 시아는 걱정이 들었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가족이지만 다툼은 없었다.
그런데 엄마가 화나신 듯했다.
‘크게 싸우시는 거 아니겠지...’
심란한 마음에 TV를 켰다.
시리도록 월광을 발하고 있는 달나라가 화면을 채운다.
깡총깡총. 귀여운 토끼가 표면을 뛰어다닌다.
다행이다.
귀여운 동물을 보니 마음이 편해진다.
파란 토끼가 분홍 토끼의 뒤를 따르며.
“영미야. 여기가 새집이야?”
“응. 어때 가윤아? 멋지지?”
분홍 토끼 영미가 파란 토끼 가윤에게 자랑하듯이 양손을 허리에 대었다.
“떡방아 찧는 기분이 한결 좋겠는데? 같이 해봐도 돼?”
“그럼!”
두 마리의 사랑스러운 토끼는 작업실로 향했다.
숭고한 정신으로 무장한 채 자리를 잡았다.
둘의 앞에는 그들의 존재 이유가 있었다.
휘황한 자태.
절구.
가윤이 바구니를 기울이자.
촤락! 한가득 담긴 찹쌀이 쏟아진다.
“끄응~차”
소담스레 담긴 찹쌀을 뒤로.
꽈악! 영미와 가윤이는 공이를 쥐었다.
“그럼, 나부터 시작할게!”
영미는 공이를 하늘을 향해.
곧게 세우고는.
절구에.
넣었다.
파앙! 찹쌀이 으깨진다.
영미의 절구질은 노련하고 숙련되었다.
영미의 공이가 절구에서 빠져나가고.
잠깐의 휴식도 용서가 안 된다는 듯.
파앙! 가윤의 공이가 연달아 절구에 쇄도했다.
팡! 팡! 팡! 작업실을 가득 메우는 공이질.
“더 빨리!” 영미가 외쳤다.
“더 세게 할게!” 가윤이 대꾸했다.
방망이질은 눈이 부시게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무희 같은 춤사위.
주변의 별들까지도 덩실덩실 춤춘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절구질이 잠시 멈춘다.
“자리 좀 바꾸자” 영미가 말했다.
“그래” 대답과 동시에 움직인 가윤.
자리를 바꿔 재차 절구질을 이어갔다.
팡! 팡! 팡! 쉴 틈 없이 들리는 타격음.
이제 몹시 힘든지.
둘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절구질한다.
공이질의 울림은 우람하였고.
달의 정원을 가득 메웠다.
보름달조차도 그들의 찬란한 노력과 정성을 알아보는 듯.
더욱 밝고 따뜻한 빛을 지상에 내려보냈다.
후욱. 후욱. 후욱.
뚜욱. 뚜욱. 뚜욱.
두 토끼의 혼을 녹일 것 같은 절구질.
온몸이 땀으로 질척했다.
찹쌀은 서서히 모양을 잃고.
부드럽고 고운 떡으로 변해갔다.
찍! 짓이겨져 버린 찹쌀.
찹쌀즙이 절구의 밖으로 튀었다.
“꺄악!” 그것이 영미의 눈에 튀었다.
“후우··· 미안. 잠시만 쉬었다 하자.”
터덜터덜 작업실 밖으로 나간 가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다.
달토끼들의 주변으로 가벼운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실려 온 밤꽃 향기가 그들의 코끝을 간질였다.
“재밌는 프로그램이네.”
시아는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오늘은 꿈에서 토끼들이 말을 걸 것 같았다.
벌컥! 문이 열렸다.
엄마와 아빠가 팔짱을 끼고 들어온다.
‘오잉?’
너무나.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광경.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당신. 나는 먼저 씻을게요.”
“그래.”
엄마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아빠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
‘싸우지는 않으신 건가? 기분이 좋아 보이네.’
가온 일가의 서로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세상은 넓다.
가온 일가의 가족애는 본드처럼 끈끈해지고 있었으나.
그들의 울타리 밖의 어떤 이는 다른 상황에 부닥쳐있었다.
가온과 영애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으나 어디선가는.
“야근을 오래 하네··· 왜 안 나오지?”
새로운 시작을 위해 기대감을 가지고.
짝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남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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