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각의 순정 (1)
완벽한 사람들이 있다.
타인들이 보기에 그들은 어떤 것이든 척척 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소수의 사람이 완벽한 사람에게 매료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는 불가능이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본 이들은 알 것이다.
못하는 것 하나 없는 인간은 없다는 것을.
완벽해 보이는 이도 자세히 살펴보면 단점과 결핍을 찾을 수 있다.
음식을 못 한다든지. 달리기를 못 한다든지. 하다못해 편식을 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구용은 인간적이었다.
한 가지쯤을 잘했으니까.
구용이 잘하는 유일무이한 것은.
싸움이었다.
타고난 체구 덕분에 어릴 적부터 골목대장 노릇을 해왔다.
그런 그에게 어른들은 한마디씩 했다.
“커서 뭐가 되려고···”
“매일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니 부모님이 마음이 찢어진다. 공부해라.”
“커서 깡패라도 되려고?”
어린이들은 이런 소리를 들으면 더욱 반항하고 싶은 법이었다.
구용은 더욱 격하게 자신이 잘하는 싸움에만 몰두했고.
친구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대로 행동했다.
싸움을 잘하는 이에게 대체적으로 씌워지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마초.
마초의 길을 택한 그는 동네에서 터프가이로 통했다.
그리고 마초들의 특성이 여자에게 관심 없는 척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잘생기기라도 하면 연애를 할 수 있었으련만.
여자들조차도 구용이에게 접근을 안 했으니 그는 연애와는 담쌓고 살았다.
다행스럽게도 마초에 심취해 있던 구용 역시 여자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지후를 따라 서울에 상경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서현씨 구둣발 소린데?’
화장실에 박혀 있던 구용은 재빠르게 나갔다.
동공이 찌릿하다.
세상의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모아둔 여인이 저럴까.
두근. 요동치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서현씨. 오늘도 늦게까지 일하시네요?”
서현은 노곤한 표정으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어쩔 수 없죠. 일은 해야죠.”
“아이구··· 제 마음이 찢어지네요. 힘들진 않으세요?”
“직장인은 다 힘든걸요. 안 가시고 뭐 하셨어요?”
“아··· 오늘 격한 전투를 해서 좀 쉬다 보니.”
차마 그녀를 기다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
전투를 치른 것은 진실이었다.
가온에게 거의 샌드백처럼 얻어터졌으니 말이다.
진실 속에 거짓을 섞은 대답이라서 거짓말인 티가 나지 않았다.
“헌터는 힘들겠어요.”
“서현씨만 하겠어요. 어쩌다 보니 우리 둘 다 힘드네요. 이럴 때는 저녁이라도 먹으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게 스트레스가 풀리던데.”
구용은 서현의 시선을 잠깐 피했다.
유리로 된 출입문에 남녀가 비친다.
사회 초년생의 풋풋한 여인.
그리고 세월의 풍파를 맞은 남자.
남자는 하고자 했던 말을 삼킨다.
“집에서 가족들이랑 대화로 푸세요.”
“고마워요. 항상 힘을 주시네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예. 내일 뵈어요.”
킁킁. 떠나간 서현의 향수 냄새를 맡는다.
“헤헷.”
무슨 향수를 쓰는지 몰라도 힐링 포션으로 만든 게 아닐까.
향기만 맡아도 치유되는 기분이다.
구용은 신기했다.
오늘 허수아비마냥 얻어터지고.
부하들 앞에서 무릎까지 꿇었건만.
서현을 보는 순간.
육신과 마음의 상처가 다 나았다.
그녀를 만난 것은 일 년 전이다.
여느 때와 같이 관리청으로 출근하던 때였다.
“구용아!”
익숙한 목소리.
한지후 형님이었다.
“예. 형님! 좋은 아침입니다!”
당차게 인사를 하고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인사드려. 이번에 새로 입사하신 최서현 주임님.”
“안녕하세요. 최서현이에요.”
“바··· 반갑습니다!”
찌잉. 심장에 고통이 느껴졌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보고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쳐서 고통을 느낀 적은.
구용이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당황하는 사이.
지후는 다른 사람에게 인사시키기 위해 서현을 데리고 떠났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구용의 머릿속에는 인사를 하던 수줍은 미소의 얼굴이 맴돌았다.
그녀와의 조우 이후 며칠이 흘렀다.
구용은 관리청의 인맥왕답게 그녀의 정보를 얻었다.
다행히도 연애 중은 아니었다.
그 의미는 구용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나이 차이.
그녀는 사회에 막 들어온 새파란 신입이었기에 어렸다.
자신과 여덟 살의 격차가 벌어졌다.
구용은 그것을 알았던 날 넋 놓고 밤하늘을 바라봤다.
무수히 떠 있는 별들이 연결되며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딪혀 볼까?’
고작 나이 차이다.
포기할 수 없었다.
별님이 그녀의 얼굴을 그려줬다.
이건 계시다.
그날 이후로 구용은 종종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나 쉬이 저녁을 먹자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의 결심과는 다르게.
찰나간의 동행 속에서 비치는 자신과 그녀의 모습.
마초적이던 자신감이 고개를 숙였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
“그래도 한 번 보고 대화라도 나눴으니. 됐다. 집에 가자.”
고작 대화만 나눴을 뿐이건만.
구용의 걸음은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집으로 갔다.
영애와 거사를 치르고 숙면을 취한 가온은 한결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이제 공식적으로 퇴사를 밝히고 헌터로 활동하겠다는 것도 선언했다.
아내는 빤쭈 3의 위력인지 오히려 응원해 줬다.
“당신이 선택한 건데 응원해 줘야지. 예전처럼 엄한데 투자한다는 것도 아니고 이미 능력도 인정받았다며.”
“고마워. 여보.”
“이 시대에 한 개 직업으로만 살아가는 건 힘들잖아. 아이들도 커가는데 회사보다 자신의 직업을 갖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고.”
십자 포화같이 별빛이 쏟아지는 마니산.
격정의 사건을 끝낸 후 신차의 보닛 위에서 아내가 한 말이었다.
가온은 부드러운 이불을 걷어내며 거실로 나왔다.
킁킁. 입맛을 돋우는 된장찌개의 향.
“서방님. 나오셨어요. 아침 식사 하시지요.”
“어···”
요즘 아내는 이상한 상황극에 빠진 듯했다.
가끔 한복을 입고 아침을 차린다.
- 이제야 집구석이 제대로 돌아가네.
그걸 감상한 견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침부터 진수성찬이네.”
“서방님이 이직 후 첫 출근이신데. 아내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어··· 그··· 그래.”
젓가락을 들어 반찬을 집어 먹은 후 된장찌개를 한 움큼 떠서 먹으니.
“크으··· 시원하네. 이거 맛있네. 그런데 당신은 안 먹어?”
영애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찌 서방님과 겸상하오리까. 드시지요.”
“어··· 그래···”
가온은 무언가 좋은 듯하면서도 서늘했다.
- 옳다구나. 아주 좋은 처자를 얻었어.
견우는 손뼉까지 쳐가며 좋아했다.
무언가 부담스러운 식사를 끝내자.
“이것도 드시와요. 서방님.’
아내는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는 색감의 음료를 건넸다.
“이게 뭐야?”
“부추, 마늘, 장어즙으로 만든 건강 음료지요.”
음료의 내용물을 듣던 가온은 무의식적으로 옷깃을 여몄다.
식사에는 만든 이의 욕망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건 음료도 마찬가지다.
가온이 들고 있는 보라색인지 검은색인지 모를 음료.
여기에 담긴 욕망은 무엇인지 엿보이는 재료였다.
꿀꺽. 절로 침을 삼켰다.
아내의 눈동자 속에서 튀는 염화를 본 건 가온의 착각이리라.
관리청은 자율 복장이어서 간편한 출근복으로 갈아입고 문을 나서니.
벌컥. 시아의 방문이 열리고.
“아빠! 잘 다녀와!”
“그래. 시아도 학교 잘 다녀오고.”
“응응! 그리고 전번에 말한 거 잊지 말고.”
“그래~”
쪽. 다가온 시아는 볼에 뽀뽀했다.
그것을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는 영애.
두 여자의 기운을 받은 가장은 어깨가 하늘 높이 올라간 기분이었다.
향상된 자존감과 함께 집 밖을 나서 순식간에 직장에 도착하니.
“가온 헌터님. 좋은 아침입니다.”
일찍 출근했건만 이슬 헌터는 이미 자리에 있었다.
“예. 일찍 출근하셨네요.”
“원래 아침잠이 없는 편이라서요.”
화장실을 가는 길에 이슬의 컴퓨터를 곁눈으로 봤다.
딱히 업무를 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쇼핑하고 맛집을 찾고 있었다.
‘뭐··· 헌터들이 사실 몬스터 없으면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지.’
실상이 그렇다.
헌터들은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으면 책상머리에서 할 일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런 일들을 위해서 뽑는 인력은 따로 있고.
그래서 대부분은 훈련장에서 하루를 보낸다.
거의 운동선수와 비슷한 업무 일정을 가지고 있다.
볼일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가온 헌터님. 어제 인사 못하셨죠?”
관리청 마크가 달린 서클렛. 그것으로 가린 왼쪽 눈. 백색으로 탈색한 머리.
닌자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젊은 청년.
“안녕하십니까!”
우렁찬 목소리로 허리를 과도하게 숙여 인사한다.
“예. 안녕하세요.”
“어제의 대련은 잘 봤습니다.”
이제야 생각났다.
훈련장의 구경꾼 중 일인이었다.
어제는 과도하게 어두운색으로 훈련장 구석 그림자에 숨어있던데.
아무래도 뭔가 과도한 컨셉에 빠진 헌터인 듯싶다.
“예.”
“저는 오구용 형님의 자를 수 없는 오른팔 이리라고 합니다.”
가온은 의아했다.
구용의 오른팔이라면 자신을 적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제 그렇게 자신의 형님을 두들겨 팼는데.
그러나 이것은 구용을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 착각이다.
그는 마초답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줄 알았다.
지후를 형님으로 모시게 된 계기 역시 복날 개 패듯 두들겨 맞은 이후였다.
이리도 구용이 승복할 줄 아는 남자인 것을 알았다.
어제의 대련은 정정당당한 승부였고.
구용은 변명의 여지 없이 패했다.
그렇기에 그가 가온을 형님으로 모실 거란 가능성은 농후했다.
확실하지 않은 예측에 기반한 섣부른 친밀감이지만.
이런 것은 이리의 친화적인 사교성과 단견 앞에서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아··· 성은요?”
“성이 이입니다! 이름이 리고요.”
“아··· 외자군요.”
“옙.”
담소에 끼어든 이슬.
“구용 헌터와는 거의 한 몸처럼 전투를 벌이기로 유명해요. 둘의 부르는 별호도 있는걸요.”
“둘이 맞춰온 내공이 엄청난가 보군요.”
“그런 편이죠.”
“제 이름이 앞에 있어서 좀 과분하게도 앞에 있어서 부담스러운 별호이기도 합니다.”
이리는 쑥스러운 듯 서클렛을 문질렀다.
“뭔데요?”
“이리오구용입니다.”
“예?”
“저희의 이름을 딴 별호에요. 이리오구용.”
“아···”
가온은 별호에 칭찬을 해줘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안타까움을 표해야 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런데 이리의 행동을 볼 때 자부심이 느껴진다.
“멋지네요. 의기가 느껴지는 별호입니다.”
“하하하! 그렇죠. 그런데 요즘은 구용 형님이 영 맥을 못 추셔서··· 앗! 입이 방정이지.”
이리는 실수했다는 듯 입을 막았다.
그것을 본 이슬이 말을 받는다.
“구용씨의 순애 이야기구나. 뭐 어때요. 본인만 눈치 못 챘지 다들 아는 이야기인데.”
모두가 아는 이야기라는 말에 가온도 궁금해졌다.
순애라는 말은 자극적이다.
특히, 가온 같은 중년에게는.
“무슨 일인데요?”
“크흠···”
이슬이 목을 풀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한다.
“그게··· 구용 헌터가 호감을 표하는 신입사원이 있는데. 흠··· 일 년째인데 좀처럼 진도가 안 나가요. 구용씨가 고백이라도 해서 차이면 소문이 잦아들 텐데. 그냥 호감 표시만 주구장창 해대고 있으니.”
“사실···”
담화를 경청만 하던 이리도 조심스럽게 입을 땐다.
이왕 물꼬가 트인 거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려는 모양.
“구용이 형님이 나이 차이가 너무 나 보인다고 자신감이 없어요. 그래서 어쩌지도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어요. 워낙에 남자다운 분이라서 여자한테는 숙맥이거든요.”
담소를 엿듣던 견우가 말을 걸었다.
- 가온. 이거다.
- 뭐가?
- 부하를 거둘 때는 마음을 얻어야 하는 법. 구용이의 마음을 얻어라.
- 부하 아니야. 직장 동료지.
- 쯧쯧쯧. 결국 집단이 형성되면 그 안에서 알게 모르게 서열이 생긴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위에 서는 게 낫지.
- 어차피 음양심법으로 내 말이면 껌뻑 죽는 거 아니야?
- 그건 마음을 얻는 게 아니지. 그저 상위의 능력으로 거스를 수 없게 한 것일 뿐.
견우의 말에 최근에 얻은 물건이 머리를 스친다.
고심하던 와중.
“좋은 아침!”
구용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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