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각의 순정 (2)

사무실로 밝게 들어오던 구용.
가온을 발견하고는 잠깐 멈칫했다.
“안녕. 구용. 잘 왔어?”
“아··· 예. 좋은 아침입니다.”
구용은 한껏 쭈그려졌다.
무의식적으로 존댓말까지 한 것.
단순히 패배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어제 겪은 가온의 알 수 없는 힘.
그저 꿇으라는 한마디에 그는 헌터들 앞에서 무릎을 바닥에 대었다.
무언가 거스를 수 없었다.
고양이 앞에 쥐라도 된 기분이었으니.
그 감각은 각인이라도 된 것처럼 가온을 보자 정신을 덮쳤다.
평소라면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건만.
구용은 조심스레 그를 피해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자리는 꽤 거리가 있었다.
그렇게 마음의 평안을 찾던 중.
터벅터벅. 심장을 옥죄는 발걸음 소리.
“구용. 잠깐 이야기나 할까?”
뜻 모를 미소가 안착한 표정.
“어떤 일이신지···”
“그냥 동료끼리 커피나 한잔하자는 거지. 아침에 정신 차리려면 카페인이 최고 아닌가.”
“아··· 예.”
침묵 속에 카페로 가는 길에 구용의 머리는 복잡했다.
‘서열 정리를 하려는 건가?’
어제 가온은 자신이 무릎을 꿇은 것을 보고는.
“무릎까지 꿇었으니 진 거 맞지? 나머지는 내일 이야기하자. 나 중요한 일이 있어. 늦었다.”
자신도 아연한 상황에 그는 짧은 발언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악의적으로 때리지도, 사과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전투 후의 정리가 없었으니 이제야 시작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아아지?”
“예.”
커피가 나올 때까지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알람이 울리니.
“아. 내가 먹자 그랬으니까 내가 갔다 올게.”
타악. 두 잔의 컵이 테이블에 올려졌다.
“저어··· 제 패배를 인정합니다. 어제는 깨달음도 많이 얻었고요. 말씀하신 대로 약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더군요. 보완만 하면 제 무위가 진일보할 것을 깨달았습니다.”
완벽한 패배의 인정.
마초란 그런 것이다.
자신을 꺽은 남자에게 존중을 표할 줄 아는 것.
더욱이 가온은 존중받기에 모자람 없었다.
자신은 가온을 깎아내리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그는 도리어 가르침을 주려고 했다.
오히려 자신이 그를 피했으나 다가와 줬다.
구용은 가온을 마초로 인정했다.
“아··· 그 얘기 때문에 부른 건 아니야.”
후룩. 가온이 잠시 말을 끊고 입을 축인다.
“거··· 내가 어릴 적에 연애를 많이 했어. 별명이 이동식 방앗간이었지.”
예상치 못한 발언.
‘뭐지?’
구용은 당황했다.
“그래서 그런지 연애 문제가 있는 놈들의 얼굴만 봐도 알아. 요즘 연애가 잘 안되지?”
덜커덕. 구용이 앉고 있던 의자가 움직였다.
‘뭐지? 이리인가? 아까 같이 있던데··· 이 자식이?’
구용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자.
“워워. 당황하지 마. 나이 들어서 심장이 약해.”
“아··· 예. 그런데 갑자기 왜 연애 얘기를···”
“내가 출산율에 관심이 많아. 우리나라 사람들 연애를 너무 안 해. 아이가 많아야 나라의 미래가 있는 건데 말이야.”
구용이 눈을 깜빡였다.
“아아··· 나이가 들면 말이 자꾸 세나가. 자네의 투쟁심과 용기. 나는 아주 좋게 본다고. 기분 나쁘지 않았어. 어제의 일은 말이야.”
“예. 감사합니다.”
“그런 사내가 연애로 골머리를 앓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단 말이지. 그래서 내가 해결책을 줄까 하는데. 괜찮아?”
“어떻게···”
옅게 웃는 가온.
허공을 휘적대며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꺼낸다.
그리고 빠져나오는 누런 액체를 담은 물통.
“자. 받아.”
“이게 무엇인지요···”
“받아. 어서. 팔 떨어지기 전에.”
가온의 채근에 구용은 물통을 받았다.
부릅. 구용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이 커졌다.
[에로스의 쓸개즙]
- 설명 : 포세이돈에게 장난질을 쳤던 에로스는 반으로 갈려 죽임을 당했다. 그를 목도한 제우스는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아 쓸개로 즙을 만들었다.
- 종류 : 신의 육신 일부
- 사용법 : 복용
- 효과 : 이성의 호감도 20% 증가, 이성에 대한 자신감 증가, 이성에게 젊어 보임
- 기타 : 사용자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이성에게만 효력이 있음
“이··· 이건.”
“내가 연애 상담도 많이 했지. 딱 너같이 생긴 애들의 특징이 있어. 이성과 연이 없어서 전진을 못 한다는 것이지.”
“어··· 맞습니다.”
“그래. 이런 말이 있지. 여자는 꽃과 같아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찾아가라. 꿀벌들이여.”
눈을 가늘게 뜨고는 속삭이듯 말하는 가온.
구용도 뭔가 신묘한 분위기에 입이 마른다.
“그··· 그러다 거절당하면.”
“너무 강한 거절이 아니면 다시 달리는 거야. 여자는 자신을 지켜줄 남자를 원하는 법. 한번 거절했다고 떨어질 놈이면 지켜줄 수 없을 것 같잖아.”
구용의 창자가 들끓었다.
배가 아픈 게 아니다.
무언가 호승심. 아니. 당장 고백을 박아버리고 싶다는 의욕.
그것이 뱃속을 헤집으며 맥동한다.
“혀··· 형님이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물론. 삼촌이 아닌 게 어디야. 하긴 그 정도 차이까지는 아닌 듯하다.”
구용은 아예 고개까지 박았다.
순간 가온은 고심했다.
‘그렇다고 거절하는데 스토커처럼 붙지는 않겠지? 흠···. 한지후 헌터님 오른팔인 게 불안하기도 하고··· 집착을 닮지는 않았겠지.’
아직도 한지후 헌터는 각성갤에 중년 신사를 부르짖고 있었다.
다행히 가온이 연봉을 제시한 것보다 낮춰서 받았기에.
한지후 헌터의 개인 자산을 사용할 일이 발생하지 않아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더욱 부담스러운 사죄의 글로 도배될 수도 있었음을 가온을 몰랐다.
이후 그들은 관리청으로 돌아왔다.
관리청으로 돌아간 오구용은 헌터들을 훈련장으로 모았다.
모든 헌터들이 모인 것은 아니고 자신의 파벌인 사람만.
“자자. 어제는 대련이 급작스럽게 끝나서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어. 그래서 다들 모이라 했다.”
가온과 구용은 링 위에 섰다.
구용은 마초다.
그리고 그는 은혜를 받았으면 보답할 줄 아는 남자다.
패배까지 한 마당에 은혜를 한두 개 입은 게 아니다.
처억! 구용은 가온의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어제 봤겠지만 나의 완벽한 패배다. 나는 오늘부로 김가온 헌터님을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모두 이의 있나?”
“없습니다!”
이리의 외침.
“나는 너희들의 형님이다. 그러니 가온 형님도 자연스럽게 형님이지. 앞으로는 모두 나와 지후 형님을 따르듯 모셔라.”
“”옙!!!””
가온은 무표정이었다.
무슨 얼굴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뭐··· 이거 깡패집단도 아니고. 뭐지···’
가온은 일반적인 회사에 다녔다.
살아온 세월이 적지는 않건만.
이런 극남초적인 분위기는 처음 겪었다.
‘헌터라는 게 사실 개성이 강한 무력 집단이라서 이런 문화가 있나··· 아니면 리더의 성향인가···’
“와아아!!!”
수하들의 함성.
휘잉! 휘잉! 만세삼창하듯 구용이 가온의 손을 들었다 놨다 했다.
- 수하들을 얻었군. 세상은 넓으니 한 개의 몸으로 처리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게야.
만족한 표정의 견우.
‘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가온의 얼굴에 미소가 띠었다.
그날은 개인훈련과 간간히 가온과 대련을 요청하는 친구들에 응해줬다.
그리고 모두가 퇴근하여 집으로 가는데.
“들어가십시오! 형님!”
씻고 나온 가온이 가려 하자.
구용이 재빠르게 와서 인사한다.
“그래. 너는 안 가?”
“아··· 저는 마저 훈련하려고.”
“그래. 내일 보자.”
가온은 뭔가 미묘한 미소를 보였다.
뭔가 다 안다는 듯한 느낌의 표정.
그러나 구용은 마초다.
심상에는 목표만이 가득해서 가온의 표정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를 보낸 구용은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후우···”
꿀꺽. 에로스의 쓸개즙이 그의 목을 넘어간다.
화아아. 무언가 가슴이 시원해지는 기분.
‘이게 에로스의 웅담인가···’
웅담이 곰의 쓸개라는 것을 모르는 구용은 아무렇게나 갖다 붙였다.
잠시 효력을 기다린 구용은 이내 거울의 앞에 섰다.
그러나 거울에 서 있는 남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녀에 비해 너무 추레하다.
남자의 어깨가 추욱 처진다.
‘역시··· 에로스의 쓸개만으로는 안 되던 건가··· 에로스의 심장 정도는 돼야···’
극적인 효과를 바랐던 것에 비해.
어떠한 변화도 감지하지 못한 용구의 눈동자에 실망감이 물들었다.
또각. 또각. 대리석을 두드리는 구두 굽 소리.
‘뒤쪽에 실은 체중. 짧은 보폭. 울림의 무게. 서현씨다!’
과히 스토커에 가까운 추론.
구용은 볼일을 보고 나온 척.
화장실을 나서며 서현을 마주친다.
거울을 잠시 보았던 탓일까.
또다시 밀려드는 불안에 고개가 숙여지려는 찰나.
두근. 심장이 맥동하고.
우드득. 고개가 빳빳해지며.
번쩍. 눈에서 총기가 든다.
헤일 같은 자신감이 몰려든다.
“서현씨. 늦게까지 일하네요. 그런데···”
잠시 뜸 들이는 구용.
“오늘은 더없이 아름답네요.”
용기와 함께 뿜어진 한마디.
구용은 마초다.
여성을 몰랐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발언이라 여기지 않았다.
자칫 눈살을 찌푸릴 수 있는 발언이건만.
구용을 발견한 서현의 고개가 기울고.
표정에는 의구심이 물든다.
“어!?”
구용이었다.
하지만 묘하게 달랐다.
며칠 전보다 젊어졌다.
아니. 회춘이라 해야겠다.
‘저렇게 젊었나?’
후욱. 움찔. 비강을 후벼파는 남자의 향기.
‘뭐··· 뭐지?’
이상했다.
평소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감각.
구용을 알게 된 지 어언 일 년.
서현은 그의 마음을 알았다.
여자란 예민하다.
자신을 향한 작은 구애의 몸짓도 알아채는 법이었다.
그녀는 남자의 호감이 고마웠다.
하지만 몇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하나는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도 못 한다는 점.
구시대적 가치관이긴 하나 서현은 남자가 대시를 해야 한다고 여긴다.
구용은 매번 저녁까지 자신을 기다리면서 고작 인사만 하고 갈 뿐이었다.
자신이 먼저 다가가는 것은 안 된다.
다가올 용기조차 없는 남자는 여자의 관심에서 배제될 뿐이다.
그렇다고 데이트 신청을 했다면 받아줬을지도 의문이다.
다른 하나의 걸림돌이 있기 때문.
외모였다.
서현은 남자의 외모를 크게 따지지는 않는다.
언뜻 보면 대치되는 말이지만.
그녀가 고려하는 것은 잘생김과 못생김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과 걸을 때 연인의 분위기가 흘렀으면 하는 것.
그러나 자신과 구용의 나이 차이는 10살이었다.
나이는 문제가 안 된다.
어려 보이기만 하면.
하지만 구용은 그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12살은 많아 보이던 것.
그러니 구용과 자신이 걷는다면.
삼촌과 조카가 걷는 분위기를 풍기는 게 문제다.
‘엄청 어려보이는데? 뭐지···’
그의 줄기찬 노력에 마음이 기운 것인지.
오늘의 구용은 자신과 8살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 보였다.
‘이 정도라면···’
그녀의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아··· 어제 머리를 바꿔서 그런가 봐요.”
“어떤 머리 스타일이 서현씨에게 안 어울리겠어요.”
노골적인 호감 표시.
“그러고 보니 서현씨 요즘 말랐네요?”
“예?”
최근 체중 조절을 하고 있었는데.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나 보다.
“며칠 사이에 살이 빠지신 것 같아서요.”
“호호호. 그래요? 무슨 일이지.”
흡족한 웃음.
구용의 이리 같은 눈이 번뜩인다.
“더 이뻐진 서현씨는 오늘 거리를 빛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예?”
영문을 모르는 소리에 갸우뚱한 서현.
“요즘 괜찮은 식당을 발견했는데. 가게를 빛내러 같이 가실래요?”
구용은 서현과의 데이트를 상상하며 무수히 많은 가게를 찾아다녔다.
홀로 말이다.
가상의 서현씨와 마주 보는 상상을 하며.
그런데 오늘은 실제 그녀와 먹고자 한다.
“가실래요?”
나긋하면서도.
여유로운 중저음의 목소리.
“예.”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수락의 음성이 귀를 강타하자.
‘으아아아아!!!!’
겉으로는 티가 안 나지만.
속으로 환호를 내지르는 구용.
‘가온 형님! 평생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구용의 가온을 향한 감정은.
존중에서 충성심으로 향상되었다.
또각. 또각. 한 여자와.
저벅. 저벅. 한 남자가.
서로를 확인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딘다.
이제 포문은 열렸다.
대포가 어디로 향할지는 남자와 여자도 모른다.
하지만 에로스의 가호가 남자에게 미치는 것을 볼 때.
어지간하면 대포는 목표한 바를 이룰 것이다.
구용이 장미빛 미래를 상상하던 동안.
지후는 오늘도 한반도를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었다.
“택견찰이 관리청 소속이 되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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