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막 (1)

지후가 그와 수없이 만남을 가진 것은 아니건만.
이렇게 목소리의 톤을 높인 적은 처음이다.
상대의 기류를 읽은 지후는 잠시간 대화의 여백을 두었다.
후룩. 지후는 차를 한 모금 훌쩍였다.
그의 맞은편.
산처럼 거대한 남자는 지후를 꾸욱 다문 입술로 응시한다.
“예. 관리청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허허허. 저도 며칠 전에 봤습니다.”
차 한 모금 마실 시간이건만.
상대는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이 깊은 산중까지도 그의 명성이 닿았나 봅니다.”
지후는 주변을 훑었다.
하늘을 가릴 듯 높게 솟은 울창한 숲.
나무들은 수천 년은 살아온 듯 굵었고 시야를 차단할 정도로 빽빽했으며.
마을의 외곽을 두른 숲 주변의 자욱한 짙은 안개는 외부인의 방문을 불허했다.
은둔하기에 최적의 요새.
“우리라고 완전하게 외부와 단절한 것은 아니오. 완벽한 단절은 정보의 부제를 가져오지요. 정보를 습득하지 못하는 것은 위험을 방치해 두는 것과 같고.”
지후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치에 맞는 말.
살아온 세월이 자신보다 긴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퇴적된 시간만큼 지혜로울 수 있는 존재들.
“그건 그렇고. 이번에도 이계의 침입자들에 맞서 달라는 부탁을 하러 온 거요?”
“하하하. 그저 지나가다 들렀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군요.”
“그냥 방문하기에는 꽤나 깊은 곳이지요.”
“지구는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건 결코 인간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에요. 한번 재고해 주시지요.”
지후는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지후의 언행 속에는 한 가지 의문스러운 단어가 존재한다.
인간에만 국한된 것.
이 말은 앞의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번에 게이트를 처리한 것은 우리의 자구책이었을 뿐.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서고자 함은 아니었소.”
“곧 그 마수들은 귀괴의 움막에도 그림자를 드리울 겁니다.”
“흐음···”
남자는 거대한 귓불을 어루만지며 고심했다.
“우린 인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약속했소. 그러니 더는 말하지 마시구려.”
지후는 가슴이 답답한 듯 밤꽃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비릿한 향기가 그의 비강을 적셨다.
“그건 그렇고. 택견찰을 한 번 데리고 와주실 수 있소?”
“택견찰이요?”
“그렇소.”
“그분은 어떤 일로···”
지후의 심상에 떠오른 의구심.
그리고 조금 전 보여줬던 의외의 반응.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구나.’
물가에 잔잔히 머물던 찌가 흔들거린다.
“부탁을 거절하는 입장에서 도리어 부탁하는 모양새가 이상하지만. 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소. 눈길을 끄는 자요.”
찌가 물속을 들락날락하며 요동친다.
“그러지요. 귀괴의 움막의 부탁인데. 아무렴 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야지요.”
“허허허.”
거구의 남자는 멋쩍은 듯 웃었다.
“그럼. 저도 택견찰님과 대화를 위해서 일어나 보지요.”
“괜한 소리를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는구려.”
“아닙니다. 그럼 저는 이만.”
“멀리 나가진 않겠소. 살펴 가시오.”
지후는 안내를 받으며 마을 밖으로 향했다.
“매번 들르면 귀찮게 하는군요.”
“우리가 은거하기 위해 선택한 일이오. 귀찮아도 항시 결계유지는 필수적인 일지요. 그리고 그걸 여닫는 일은 제가 맡은 과업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신묘한 분위기답게 마을을 오가는 길은 안내인이 필수적이었다.
마을을 나가며 지후는 현재 상황을 점검했다.
귀괴의 움막에서 관심을 보인 것은 처음이다.
부탁은 더더욱 한 적이 없고.
오히려 지후 자신이 매번 간곡하게 요청하던 상황이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김가온 헌터님은 무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다.
‘무엇부터였을까···’
지후는 일순간 변화된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봤다.
고진감래라.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지후는 요즘 좋은 일밖에 없었다.
능력을 회복하고. 거기에 더해 서클도 오르고.
막혀있던 관계가 물꼬를 틀 작은 조짐이 보이고.
‘중년 신사님···’
중년 신사로부터였다.
그의 앞길에 재차 휘황한 광명이 펼쳐진 것은.
이 크나큰 은혜에 보답하고자 애타게 찾고 있지만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신인가?’
믿음의 발로는 한 줄기 빛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빛줄기가 완연하게 세상을 밝혔을 때.
무럭무럭 자라난 믿음은 신앙이 된다.
한지후는 알게 모르게 믿음의 씨앗에 물을 주고 있었다.
감상에 젖어있던 그의 눈에 집착이 서리며.
커뮤니티에 다시 중년 신사에게 구애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지후가 관리청으로 올라오는 길.
가온은 영애와 깨톡 중이었다.
- 서방님. 바쁘신가요?
최근에 생겨난 아내의 괴벽.
존댓말과 사극을 오간다.
- 아니··· 왜?
- 다름이 아니라. 아녀자의 요청이 있사옵니다.
- ··· 그것이 뭐요? 낭자?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장단을 맞춘다.
- 최근 인천에 아이들의 실종 사건이 늘고 있는 것은 아시는지요.
- 내 요즘 직장을 옮겨 소식이 늦었구려.
- 최근에는 솔곁동까지 의문의 실종이 번졌습니다. 몬스터의 소행인지. 사진도 돌아다녀요. 아주 흉흉한 괴물입니다.
“흐음···”
솔곁동은 해솔동의 옆 마을이다.
- 해솔맘들의 불안이 극에 치달았어요. 최근 낭군님이 헌터인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랬더니 마을을 지켜주는 자경단을 조직해달라고 하더군요.
가온은 고민했다.
직장을 옮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추가로 일거리를 만드는 것은 부담스럽다.
어떤 답변을 보내야 할지 고심하던 가온.
‘자경단이란 것이 무척이나 고되진 않을 것이다. 다들 본업이 있으니.’
‘마을 순찰정도 도는 것이겠지’
노동 강도를 추측해 본 뒤 해볼 만하다 판단한 가온은 엄지를 움직였다.
- 흐음··· 우선 진행해 보시오.
- 감사합니다. 낭군님. 소첩 기쁨이 하늘까지 뻗을 듯하옵니다.
깨톡을 막 마치자.
“형님. 흐뭇한 표정이군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원래 가정이 평화로우면 얼굴에 행복이 깃들지.”
“과연! 이게 중년의 지혜.”
가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자네 차례인가?”
“예.”
“그럼 올라가지.”
가온은 훈련장에서 헌터들과 대련을 펼치고 있었다.
이건 전적으로 구용의 탓인데.
“형님. 혹시 제 수하들 좀 한 수 가르쳐주실 수 있습니까?”
“갑자기 왜?”
“제가 형님과의 대련으로 깨달은 바가 많아서요. 혹시 귀찮지 않다면 가능하실지요?”
가온은 흔쾌히 수락했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구용의 충심은 극에 달했다.
거의 정수리가 바닥에 꽂힐 정도로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그리고 부하들을 불러놓고.
“모두! 형님께 한 수 배워라. 나도 형님과의 대련에서 느낀 바가 많다. 우리가 형님의 발목을 잡으면 안 된다. 그러니 귀중한 시간 내어주시는 만큼 최선을 다해라! 죽을 각오로 임해!”
“”감사합니다!!!””
가온은 손을 들어 화답해 줬다.
슬슬 이 요상한 집단에 적응이 되어간다.
언뜻 보면 가온이 시간을 내어가며 그들을 가르치는 것으로도 보이지만.
이건 그에게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가온은 교감을 통해서 무리를 습득한 것이다.
그러니 실전 경험이 풍부하지는 않았다.
- 이참에 다양한 전투 방식을 경험하는 것도 좋지. 필요하면 내가 교감으로 지식을 주고.
견우도 좋아라 했다.
그래서 한 명씩 대련을 이어갔고.
이번 차례는 이리였다.
“혹독한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링 위에 선 이리는 정중하게 포권했다.
덥썩. 가온도 마주 화답하니 이리가 자세를 잡는다.
서클렛에 가려지지 않은 한쪽 눈이 번뜩인다.
‘최선을 다한다.’
이리는 필사즉생의 각오로 임했다.
그렇기에 기습은 필수.
타앗! 이리의 선공.
맹렬한 기세로 가온을 덮친다.
하지만 가온에게는 모든 것이 선명히 보였다.
어깨의 움직임. 허리의 비틀림. 착지 지점.
흘쩍 눈을 흘긴 가온에게 차례로 정보가 습득되니.
무슨 공격을 취할지 막으면 다음 동작이 어떻게 될지 그림처럼 그려진다.
“이끄!”
기합과 함께 휘젓는 팔에 이리의 주먹이 황망하게 비껴진다.
그러나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이리는 즉시 자세를 낮추며 하단 공격을 감행한다.
실전에서 우러나온 물결 같은 연환.
하지만 그것조차 이미 가온의 예측 범위였다.
펄럭! 발바닥이 이리의 뺨을 향해 쇄도한다.
씨견도. 각술. 제1식. 족격교.
타앗! 이리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몇 차례 백덤블링을 시전.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다.
“휘우! 역시 대단하십니다.”
살짝 빗맞아 삐뚤어진 서클렛.
이리는 그것을 이마 위로 올렸다.
긴 칼자국이 새겨진 오른쪽 눈.
번쩍! 눈이 떠지며 붉은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드아이? 그런데 너 오른쪽 눈 안 보이는 것 아니었어?”
“후후후. 형님. 린자는 삼 할의 실력을 숨기고 있지요.”
화르륵! 이리의 적안이 불탄다.
주변이 고요해지고.
홀로 육신을 단련하던 헌터들이 고개를 돌린다.
“이 미친! 이리! 저 자식 그걸 쓰려고!?”
“모두 여파에 대비해!”
“가스! 가스! 가스!”
이리의 현란한 손가락 놀림.
마치 피아노를 치는 듯한 유연한 양손의 손가락이 여러 형상을 그린다.
그 묘한 기세에 가온도 자세를 바로잡는다.
타닷! 재차 덤벼오는 이리.
“린법!”
가열찬 기합.
이리의 양손에 붉은 기운이 서린다.
“만-가이!”
휘적! 휘적! 잔상을 남기며 움직이는 팔.
그 손날에서 길게 늘어진 무수한 붉은 에너지가 쏟아진다.
“바람의 손날!!!”
헌터들의 외침.
이리는 만가이라 우기나 다른 헌터들은 바람의 손날이라 부르는 기술.
자칭 만가이. 타칭 바람의 손날.
이리에게 손날 요술사라 불리는 이명을 가져다준 기술이 가온을 덮친다.
마치 주변의 생명을 빨아드리듯.
칼날의 기운은 거세지고.
가온에게 이르러서는 태풍의 기세를 담았다.
칼날이 그의 사방을 점하며 짓쳐 든다.
“어···엇!”
그 순간.
가온의 오른발이 살짝 들리며.
양팔과 함께 유려하게 회전하니.
정면에 하나의 숭고한 형체가 생긴다.
“태··· 태극기!?”
관중들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그것은 태극.
씨견도. 권술. 제1식. 태극유(太極流)
모든 공간을 점유하던 칼날들이.
동그란 원을 그리는 가온의 손과 발에 빨려 들어간다.
그것은 마치 블랙홀에 흡수되는 우주의 먼지.
이내 링 위의 칼날들이 사라지고.
가온이 그리는 원 중앙에 하나의 흉흉한 기세를 흘리는 붉은 구체가 고고히 떠 있다.
“오오오!!!”
“택견찰! 택견찰!”
“씨견놈! 씨견놈!”
광분에 찬 헌터들의 함성.
“이걸 총알처럼 쏘아낼 수도 있지. 받아내겠느냐?”
이윽고 허리를 숙이며 포권하는 이리.
“한 수 배웠습니다. 걷어주시지요. 형님. 시체 늘어납니다.”
스르륵. 구체는 가온의 손아귀에서 얼음 녹듯 사라지고.
짝짝짝! 한 사내가 박수를 치며 다가온다.
“역시. 가온 헌터님이십니다.”
“지후님. 다녀오신 일은 잘 되셨어요?”
“순항할 것 같은 예감입니다. 그 일로 도움을 부탁드려야 될 것 같아서요. 혹시 저랑 내일 출장 괜찮으실까요?”
“물론이죠. 저 관리청 소속 직원일 뿐입니다.”
가온은 흔쾌히 수락했다.
다음 날.
지후와 가온은 귀괴의 움막으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안 드렸네요. 저희가 가는 곳은 귀괴의 움막이라는 곳입니다.”
“귀괴의 움막이요?”
가온은 처음 들어본 장소에 의문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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