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 (3)
금각의 오돌토돌한 붉은 혓바닥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꼬리를 자르는 게 취미인 도마뱀이었던 만큼 고통에 무감각한지.
양옆으로 튀어나온 두 개의 안구는 무감각하게 빙글빙글 돌리고만 있었다.
“금각님. 움막지기의 부탁을 듣고 여기 왔소. 그러니 그만하고 움막으로 돌아가시지요.”
낮은 변동 폭의 차분한 어조.
돌연 천방지축으로 회전하던 눈동자가 멈추더니.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이 가온에게 집중된다.
촤라락! 금각의 입에서 한 개의 혀가 더 출수한다.
가온이 뒷걸음질을 치며 회피하니.
자유를 얻은 혀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누구신지 모르겠으나. 날 막지 마시오.”
“제가 듣기로 금각님께서는 움막에서 덕이 자자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런 일을 벌이시는 겁니까.”
“이번이 마지막이오. 알려고 하지 마시구려. 그냥 가시오.”
“뒤에 있는 아이는 제 딸의 친구입니다. 저 역시 오래 알아 왔던 아이고요.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가온의 입이 다물어지고 전투 자세로 바꾼다.
“가살!”
어깨 위에 탑승한 불가살도 사납게 포효했다.
금각은 그가 물러나지 않을 것을 깨달았다.
세모꼴 입이 혀를 날름거린다.
잠깐의 정적 이후.
촤라락! 그 후 폭풍처럼 터져나가는 금각의 갈라진 혀.
바람에 출렁이는 밧줄처럼 화려하게 펄럭거린다.
갈라진 혀가 벌어지고 꼬챙이처럼 가온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온다.
파앙! 가온의 손등이 갈라진 분기점에 적중하며 튕겨 나가나.
“꺄아악!”
은밀히 바닥을 타고 쏘아진 다른 혀가 장아에게 접근 중이었다.
그를 본 가온이 바닥으로 손을 뻗으며 돌고래와 같은 회전을 하니.
손끝에서 자그만 조약돌이 쏘아진다.
씨견도. 암기술. 제1식. 수제비(水齊飛).
파앙! 공기가 터진다.
곧은 직선의 꼬리를 남기며 투척되는 조약돌은 장아를 덮치려던 음흉한 혀를 강타했다.
“뀌에엑!”
금각이 고통에 찬 울음을 내뱉는다.
‘장아가 있으니 신속하게 끝내야겠군.’
판단을 마친 가온이 대지를 밟는다.
깊은 족적을 남기며 쏘아진 가온.
그를 발견한 금각의 혀뿌리 근육이 팽창하니.
올가미처럼 변한 두 개의 혀가 가온을 포박하기 위해 조여든다.
좌우를 옥죄며 다가오는 혀.
가온과 금각의 시선이 얽혔다.
뒤에서 꿈틀대며 도사리고 있는 금각의 꼬리가 가온의 눈에 띈다.
‘공중으로 피하기를 바라는군.’
의도된 대로 움직여줄 필요는 없다.
자리에서 막아낸다.
양팔이 벌려지며 펼쳐지는 활개짓.
압출하려는 듯 좁혀오던 혀가 하나씩 가온의 양 팔뚝에 걸린다.
마치 실뜨기를 하는 듯한 부드러움.
두 개의 혀가 손에 이끌려 꼬아진다.
손에 이끌리면 신발끈처럼 묶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기가 없어지는 셈.
그 위험성을 인지한 금각은 돌격으로 되받아쳤다.
갓파처럼 빛나는 금각의 두피가 공성추처럼 가온의 비어 있는 가슴을 노린다.
허나.
가온의 회음혈에 고인 양기가 뿜어지고.
상단전에 뭉쳐 있던 음기가 흘러내리니.
가온의 가슴팍은 무쇠처럼 단단해진다.
그와 동시에.
충돌의 순간 가온의 허리가 비틀리고 입사각이 줄어들었다.
총처럼 날아온 가슴에 부딪힌 금각의 머리가 도탄 됐다.
흔히 포격전에서 전차의 차체 각도를 조정하는 기술인 ‘다이아몬드’ 전술.
피탄체인 가온의 가슴.
비틀리며 좁아진 입사각.
모든 게 맞아떨어진 콜라보레이션이었다.
금각은 길을 잃은 듯 튕겨 나갔다.
그러나 그 역시 수백 년을 살아온 역전의 노장.
어지러이 늘어진 혀를 갈무리하며 공중제비를 돌며 벽면과 부딪치는 듯했으나 안정적으로 붙어버린다.
도마뱀의 발바닥 섬모가 판데르발스의 힘 효과를 일으킨 것.
파충류의 눈이 혼란스러운 듯 당구공마냥 구른다.
곧 정지한 세로 동공이 더욱 찢어지며 결연한 의지가 드러난다.
너덜너덜한 상의 주머니를 뒤지더니 하나의 구슬을 꺼낸다.
‘저건?’
망태귀가 이지를 잃기 전 복용했던 구슬과 비슷하다.
하지만 많이 옅어 회색빛을 보인다.
“멈춰요! 금각! 선을 넘지 마!”
의도를 눈치챈 가온이 소리치지만.
꿀꺽. 작은 구슬은 손쉽게도 넓은 성대를 넘어갔다.
핏줄이 불룩거리며 커지고는 뱀처럼 꿈틀거리더니.
동공과 피부가 검게 물들고.
턱이 두꺼비처럼 부풀어 오른다.
“금각님!”
벌려진 입에서 좌우로 침이 흐른다.
그리고 뒤를 돌아 네 개의 발을 파닥거리며 달린다.
약까지 먹고 파워업을 한 것이건만.
금각의 선택은 도주였다.
“거기서!”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즉시 뒤쫓는 가온이 골목길을 도니.
“가온님!”
뒤늦게 현장에 합류한 지후와 마주친다.
“제 뒤편에 고등학생 소녀가 있어요. 좀 돌봐주세요.”
가온은 장아를 한지후에게 맡기고는 다시 냅다 달렸다.
음습한 골목길답게 다수의 샛길과 부서진 돌담은 금각의 도주를 용이하게 해주었고.
결국 금각은 콘크리트와 도로를 빠져나와 산속으로 들어갔다.
구름이 달을 삼키는 밤이었다.
숲은 어두웠고 부엉이의 울음이 간간히 들렸다.
금각의 검게 변한 피부는 자연스럽게 어둠에 녹아들었고.
섬유질 발은 나무를 집의 안방처럼 오가게 했다.
그 흔적을 쫓아 무성한 나뭇잎이 달빛조차 가린 숲에 도달했을 때.
촤라락! 굵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금각의 혀가 가온의 오른쪽 뺨으로 달려든다.
“이끄! 에끄!”
인간을 초월한 반응 속도를 보이며 손등으로 쳐내지만.
즉시 금각은 어둠에 녹아들며 뒤로 빠졌다.
그러나 달빛을 담으며 반짝이는 가온의 눈동자는 놓치지 않았다.
파아앗! 흙먼지를 일으키며 솟구친 후.
콰앙! 주먹을 내질렀으나 으스러진 건 나무의 기둥.
금각은 벌레처럼 기둥을 타고 옆으로 이동하여 옆 나무로 도약했다.
“거기서!”
폐부를 쥐어짠 고함과 함께 뒤따라가려 했으나.
두꺼비처럼 커진 금각의 턱이 바람이 빠진 듯 쪼그라들더니.
“부아앙!”
공기를 타고 흐르는 격렬한 파공음.
금각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퍼져 나오는 짙은 갈색 기체.
“으잇!”
가온은 순간적으로 몸을 젖히며 뒤로 뛰었다.
끈적한 기체는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치이익. 안개에 퍼진 입자에 닿은 것들 것 녹는다.
‘산성이다.’
새로운 대응 방식에 가온의 눈이 가늘어진다.
근접의 접근은 산성 안개로 차단하며 긴 혀를 이용한 원거리 공격.
철두철미한 전략이다.
평범한 각성자라면 그 파훼법을 찾기가 애매할 정도.
하지만 가온은 평범하지 않은 견우의 후인이었다.
그의 머리에 128가지 정도의 전투법이 스쳐 가고 있었다.
- 가살을 이용해라.
- 불가살?
견우의 담담한 목소리.
- 불가살이 다시 올 줄 몰랐지. 잠시 정신 교감을 해보자.
이후 견우의 거친 손이 가온에 닿으니.
가살과 협공 전투법이 흘러들어온다.
“오홍.”
짧은 가온의 경탄.
방금 파훼법이 한 가지 더 늘었다.
“가살!”
어깨를 꽉 붙들고 있던 가살의 응답.
서로의 눈이 마주치고.
가온은 곧장 윗옷을 부욱 찢는다.
그 빈틈을 노린 금각의 일격.
허나 발레리나 같은 우아한 동작으로 회피를 한 가온.
쉬지 않고 옷을 작은 포대기처럼 만들었다.
“불가살. 함께 해보겠나?”
“가살!”
불가살이 포대기의 중심에 들어와 공벌레처럼 몸을 돌돌 말았다.
포대기의 양 끝을 뭉쳐 잡고.
부웅부웅! 거친 회전 소리가 들리니.
그것은 돌팔매. 아니. 불팔매.
다시 가온에게 공격이 이어지나.
파앙! 불팔매가 경쾌하게 촉수를 쳐낸다.
‘돌팔매!?’
갑작스러운 공격 형태의 변환에 금각은 당황했다.
거대한 돌을 장난감처럼 돌리고 있는 가온은 전설 속 영웅이나 보여줄 법한 기상이 서려 있었다.
주변의 나뭇가지들이 휘어버릴 정도로 회전하던 불팔매가 멈추니.
파앙! 관성과 함께 불가살이 쏘아진다.
정확히 금각이 어둠에 녹아 있던 나무를 노리는 궤적.
하지만 도마뱀의 눈은 초현실적으로 발달했고.
궤도를 읽은 금각은 발바닥을 밀어내며 회피한다.
허공에서 금각은 이상함을 느꼈다.
돌돌 말린 코끼리가 나무와 충돌했건만.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
분명 나무가 부서지는 굉음이 숲에 진동했어야 한다.
이에 눈알을 돌려 뒤를 보았다.
나무는 손상이 가지 않았고 불가살은 스펀지처럼 나뭇결을 따라 움푹 꺼졌다.
- 불가살의 강도는 의지에 따라 바뀌지.
스펀지 급으로 유연해진 불가살.
파인 부분이 급격히 팽창하더니.
금각을 향해 날아간다.
미칠 듯한 도탄!
이런 비현실적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예측 못 한 금각.
콰앙! 결국 등 뒤에 불가살이 적중하고.
금각의 낙하 지점을 예측한 가온이 돌격했다
발과 허리를 비틀고 도움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회전.
씨견도. 각술. 제3식. 회축(回蹴).
태권도에서 속칭 회축이라 불리고 정식 명칭 뒤후려차기인 기술.
한 바퀴 반의 원심력에 내질러지는 발차기의 파괴력이 더해진다.
거리를 좁히며 커지는 발등이 파충류의 눈에 들어와 방어를 하려 하나.
보는 것과 움직이는 것은 차이가 있는 법이었다.
콰앙! 금각의 턱이 사정없이 흔들리며.
두개골 안쪽의 뇌는 초 단위로 진동한다.
눈이 흰자를 보이며 뒤집히고 목에서는 게거품이 흐른다.
이윽고 꺼져버린 풍선 인형처럼 육신이 늘어졌다.
잠시 후 금각이 눈을 떴을 떈 이미 포박을 당한 상태였다.
힘을 주었으나 요괴의 초월적인 근력에도 노끈을 끊을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슬의 부작용이었다.
몸에서는 한 줌의 요력을 움직이기도 힘들었고.
바람이 빠진 듯 근육은 쪼그라들었다.
“이제 정신이 드시오?”
눈알을 굴리니 가온이 서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오?”
묵묵부답으로 앉은 금각.
“혹시 동각이라는 아이가 원인인가요?”
움찔. 금각의 어깨가 떨린다.
“저도 두 아이의 아버지예요.”
잠시 침묵. 그리고 트인 금각의 입.
“꿈에서 동각과 은각이 말을 걸어요. 동각은 피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 하고. 은각은 왜 못 지켰느냐고 표독한 눈길을 보내요.”
금각의 동공에 이슬이 맺혔다.
“그렇게 잠에서 깨면 엄마와 딸의 눈동자만 기억나요. 그 눈동자가 계속 저를 지켜보고 있어요.”
“그 시선이 없어졌나요?”
적막이 그들을 덮쳤다.
“그 눈동자는 금각씨가 덕을 저버릴수록 늘어날 거예요. 종국에는 사방이 원망의 시선으로 뒤덮일 겁니다.”
금각은 대답이 없었다.
“계속할 건가요?”
“모르겠어요.”
금각의 성정과 모종의 구슬.
가온은 금각을 부추긴 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대답해 줄 수 있나요? 누가 금각님에게 접근했을 것 같은데··· 그게 누구죠?”
금각이 눈을 감았다.
“이런 건 금각씨로 끝나지 않겠죠. 이런 악행이 계속 벌어지는 것을 동각도 원치 않을 겁니다.”
검은 시야 속에 미소 짓던 동각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광분에 휩싸여 행하던 것들이 일순 벽에 부딪힌 듯 정지하니.
못 느꼈던 죄책감이 금각에 발끝부터 꾸물꾸물 올라왔다.
혀로 입술을 핥던 금각이 눈을 떴다.
입을 벌렸다.
“아가-“
파악! 말을 맺지 못하고 금각의 흉곽에 기괴한 손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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