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 (4)

“커헉!”
금각의 가슴을 관통한 손이 빠져나가자 그는 허물어지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무의 뒤로 기이한 검은 공간이 일렁이다 이내 닫혔다.
“금각··· 비밀은 지켜야죠.”
한 손을 뻗어 나뭇잎을 흔들며 걸어오는 일렁이는 그림자.
실루엣의 주인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흉흉한 적색으로 반짝였다.
눈동자에 비친 달이 붉게 물들었다.
“아가드.”
그를 발견한 가온이 씹어 삼키듯 말했다.
“가온님 덕분에 일이 틀어졌네요. 아직 귀괴의 움막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은데.”
“흐름을 보아하니 금각을 꿰어낸 건 너인 것 같은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짝짝짝! 아가드는 입술을 비틀고는 박수 쳤다.
“엄청난 추리! 마치 셜록을 보는 듯한 기분인데요?”
“대답이나 해라. 헛소리 말고.”
가온의 어조는 높낮이가 없었다.
감정의 편린도 느껴지지 않는 듯했으나 가온의 심장은 염화같이 들끓었다.
그는 아버지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두 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렇기에 금각의 고통에 조금이나마 공감을 했고.
절박함을 이용한 아가드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거기에 아가드가 벌인 일을 아는지라 더욱 용서가 안 됐다.
“뭐 거창할 것이 있나요. 저도 조직의 일원일 뿐이에요. 윗분들이 원하는 것을 행한 것뿐이죠.”
“넌 귀괴의 움막 일원이 아니었나? 배후가 누구지?”
“아이참. 한 곳에만 속하고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여기도 발 걸치고. 저기도 발 걸치고. 그런 거 아니에요?”
아가드는 양손을 위로 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달빛을 받아 움직이는 그림자는 악마의 속삭임 같았다.
“금각에게 약속한 것은 진실이었나?”
“진실이 중요한가요? 그가 원했다는 것이 중요하죠. 전 금각이 더욱 활발하게 살기를 원했어요. 보세요. 얼마나 활기차게 인간 세상을 활보했어요.”
아가드의 길게 늘어지는 듯한 음성을 듣던 가온의 머리에 한 가지 위험한 추측에 도달했다.
“혹시 동각을 건드린 것도 너인가?”
“진짜 셜록이에요? 거기까지 생각했어요? 흠··· 하지만 비밀!”
명백한 조롱의 몸짓.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뉘앙스.
“화··· 확실히 대답해! 쿨럭!”
의식을 잠시 잃었다 정신을 차린 금각.
“언제 일어났어요? 금각? 하하하. 정말 끈질기네요.”
“대답! 대답하라고!”
“지나간 일인데 왜 이리 집착하실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옅음 웃음. 의도된 여백.
어둠과 대비되는 하얀 이가 별빛에 반짝였다.
“새끼 도마뱀의 살결은 너무나 부드럽다는 거예요. 찢는 맛이 있달까?”
“으아아아!”
아가드의 자백성 발언이 끝나자 금각은 고함쳤다.
입 사이로 줄기줄기 피를 흘리고.
거미줄과 같이 붉은 핏줄이 금각의 동공을 덮었다.
분노에 잠식된 처절한 모습.
이내 입을 크게 벌리더니 두 개의 혀가 총알처럼 쏘아졌다.
붉은 적안은 그 기습을 또렷하게 응시했다.
아가드는 미동도 없이 그저 쳐다만 봤다.
눈 한번 깜빡이면 공격을 당할 거리가 남았을 때.
열기를 받은 듯 허공이 일렁이고.
일전의 빛을 삼킬 듯한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서걱! 구멍에서 튀어나온 손날이 금각의 혀를 순두부 자르듯 동강 냈다.
“끄아아!”
금각의 고통에 찬 비명을 배경으로 구멍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온다.
시체같이 창백한 피부. 치렁치렁한 백발. 달빛에 반사되는 오똑한 콧날.
“소개하지요. 제 아들 퀴라입니다.”
붉은 코트를 입은 파리한 남자 둘이 나란히 섰다.
붕어빵으로 찍어낸 듯 닮았다.
“네놈은 자식을 포식한 것이 아니었나?”
아가드는 턱을 뒤로 젖히며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알았어요?”
입을 다문 가온.
이미 움막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아가드의 집에서 등 뒤의 날개 그림자를 봤을 때 견우가 했던 말이다.
- 저놈. 저거 자식을 먹었나 본데?
- 무슨 말이에요?
- 저거 흡혈귀야. 저 일족에 금술 같은 게 있는데. 자식을 포식하면 된다더군. 그러면 특징이 박쥐 같은 날개가 생긴다고 하더라고.
- 견우님은 어떻게 알아요?
- 그냥. 아는 놈이 있었어. 지금도 살아있는지는 모르겠네.
침묵이 싫었는지 아가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비밀이에요? 저도 안 알려준 게 있으니 캐묻지는 않을게요.”
아가드는 자식의 어깨를 더듬거렸다.
“뭐··· 아신다니 한 마디 덧붙이자면. 참 이해가 안 돼요. 금각이 놈. 뭐 자식 가지고 난리를 치는지.”
퀴라의 날카로운 턱선을 따라 아가드의 손등이 미끄러졌다.
“자식이란 만들면 돼요. 그냥 소모품에 불과한 건데 뭘 그리 애지중지하는 건지··· 참. 맞죠?”
가온은 그 역겨운 광경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다 조잘거렸냐? 뚫린 입이라고.”
아가드는 배후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젠 힘으로 답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결정을 내리고 발을 들어 한 걸음 내딛자.
“하하핫. 오지 마세요. 경고! 경고에요!”
아가드의 호들갑을 무시하고 튀어 나가려는 순간.
창자까지 꿈틀거리는 감각.
정도에 오른 기인들이 느끼는 육감이다.
타앙! 숲을 울리는 총성.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고개를 뒤로 젖혔건만.
총알이 턱 끝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하하핫! 오지 말라 그랬잖아요. 그럼 전 일 끝냈으니까. 바이바이~”
“거기서!”
뒤쫓으려는 가온의 걸음을 육감이 잡아당겼다.
“제길.”
즉시 뒤로 돌아서 금각을 향해 도약했다.
그리고 밧줄을 잡아서 자리에서 치우자 마자.
타앙! 바닥이 터지며 탄흔이 생긴다.
다시 아가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그는 사라진 후였다.
“가온님!”
고함으로 위치를 파악했는지 지후가 헐레벌떡 도착했다.
“괜찮으세요? 총성이 들리던데요?”
“전 아무 일 없어요. 그것보다 금각의 부상이 심해요.”
뒤따라 올라오는 관리청 소속 헌터들.
그들을 향해 지후가 외친다.
“환자부터 치료해 주세요.”
지후의 지시에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응급처치를 했다.
“우선 관리청으로 가시죠. 금각은 거기서 치료하고 금각은 구금하면 되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관리청에서 하시죠.”
관리청으로 가며 귀괴의 움막에도 연락을 취했다.
아가드의 연락처만 가지고 있었기에 움막으로 인원을 파견하는 형태였다.
곧 리만귀도 관리청으로 들어왔다.
“금각이는 어딨어요?”
“지금 치료받고 있어요.”
가온은 금각과 아가드에 대한 경위를 설명했다.
“아가드! 이 씨펄 놈이!”
콰앙! 회의실의 탁자가 반으로 쪼개졌다.
리만귀의 귓불이 덜덜 떨렸다.
“서방에서 쫓겨난 자식을 불쌍해서 들여줬더니. 이렇게 배신을 해?”
“혹시 그 배후가 짐작이 가나?”
“후··· 사실 파악이 안 돼요. 최대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요괴와 관련된 단체면 귀괴의 움막 애들 털다 보면 나오겠죠. 아가드랑 친했던 애들 싸그리 족쳐야죠.”
“관리청에서도 알아볼게요.”
“내 추측에는 망태귀건도 아가드의 소행일 거야.”
“아가드 이 씹어 죽일 자식이. 움막에 분란의 씨앗을 뿌리고 사라져?”
“분을 삭히게 아우. 흥분이 눈을 멀게 하면 안돼.”
“예. 후우···”
깊은숨을 들이쉬니 리만귀의 넓은 가슴이 들썩였다.
“그리고···”
지후와 가온과 눈을 맞추며 운을 떼는 리만귀.
“금각의 처벌은 혹시 저희에게 맡겨주실 수 있습니까?”
가온은 지후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건 자신으로선 결정할 수 없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건 오 청장님이랑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최대한 가능한 방향으로 하겠습니다.”
“감사하오. 한서방.”
지후는 살짝 난감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으나 사실 가능한 일이었다.
단지, 움막의 협조를 더 끌어내기 위해서 뜸을 들인 것 뿐.
그들은 금각에 대한 향후 처리에 대해 논의하고는 각자의 거처로 돌아갔고.
자식을 키우는 자. 자식을 잃은 자. 자식을 먹은 자가 공존하던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동일한 날 최웅의 거처.
부르르. 사치스러운 탁자 위에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무슨 일이요?”
“인사도 안 하시고 너무하시구려.”
“비즈니스 관계지. 서로 시간이 귀중한데.”
“그것도 맞지요. 최근 한지후의 입김에 길드가 난처하다는 소문이 돌던데···”
“누가 그래?! 나 최웅이요. 대한민국 각성자들을 이끄는 사내야! 한지후 따위가 날 가릴 수 없어!”
“귀가 아프오. 목소리 좀 낮춰주시오.”
“그래서 전화한 이유는 뭐요?”
“귀중한 정보를 드리려고 하지요.”
최웅은 침묵했다.
정보를 꺼내 보라는 침묵.
“DMZ 인근에 B급 게이트가 열릴 것이요.”
“B급?”
“예. 이 기회에 B급을 처리하고 위명을 다시 살리시지요.”
“흐음···”
최웅은 고심했다.
B급이라면 길드의 힘으로 처리하기에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급수에서도 상위 개체라도 나오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다.
적막 속에서 고심을 엿본 것인지 통화의 상대방이 입을 열었다.
“혹시 처리를 못 하는 거요? 한지후 헌터를 누르려면 B급 정도의 파급력은 있어야 할 텐데···”
한지후. 이건 최웅의 역린 같은 것이다.
그와 비교되는 순간 최웅의 의사결정에는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게 되었다.
그리고 통화의 상대방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뭘 못해! 대략적인 위치랑 시기만 말해요.”
“위치는 말씀드렸고. 균열은 내일부터 생길 것이니 서처들 보내시오. 그럼 이만.”
용무가 끝나자 통화는 끊겼다.
실로 효율적인 비즈니스 매너.
탁자에 양팔을 올리고 턱을 괴고 있는 최웅의 얇은 눈에서 욕망이 흘러나왔다.
다음 날.
“지후 헌터님. B급 게이트 균열이 발견됐어요.”
“B급? 어딘데?”
“DMZ인근이에요. 그런데 최웅 더 해모수 측에서 탐색을 했어요. 공략 우선권을 달라내요.”
“B급이면 다 같이 달려드는 게 옳아.”
“마석 배분 비율을 높여줄 테니 협공을 하자 했는데 거부하더라고요.”
“하아··· 최웅이?”
“예.”
최웅.
한때는 절친이라고 믿었던 동료.
이제는 관리청에겐 목에 낀 가시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그것도 그건데··· 북한 측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DMZ는 북한과 남한의 접경지대였다.
피곤과 짜증이 한지후의 눈꺼풀을 내리눌렀다.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처음으로 작가의 말을 남기네요.
어느덧 30화가 되어갑니다.
축하할 일이지만 독자님들께 좋지 못한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지 않은 선호작을 가졌지만, 최근 선호작이 급락했습니다.
이 기세면 작품을 연재할수록 선호작이 사라지다가, 종국에는 0에 수렴할 것 같더군요.
그래서 리메이크를 할 예정입니다.
선호작이 해제된 회차들을 조사하고 독자님들이 불편하셨던 지점을 수정할 생각입니다.
이 기간에 연재를 안 할 건 아니고 조금 늦어질 것입니다.
매일 연재였다면 아마 주에 3회쯤이 될 것 같습니다.
기존의 회차는 도입부 수정, 몇 개의 에피소드 추가 및 삭제, 등장인물 추가 등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기존 회차들의 수정이 완료되면 진행되던 본래 스토리까지 연참할 생각이니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분석을 하다 보니 회차별로 조회수가 급격히 추락한 화를 살펴봤습니다.
제가 웃으면서 쓴 회차더라고요.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아마 제가 유치한 아저씨여서 그럴듯합니다.
약간은 유치함도 덜어낼 예정입니다.
혹시 여기까지 읽어 주셨다면.
한 가지 소식을 더 전달해 드리고자 합니다.
최근에 새로운 작품을 시작했습니다.
작품명은 ‘아포칼립스의 작은 거인’입니다.
‘헌터계의 대물이 된 남편’의 경우 삭막한 사회에 지쳐 시들어져 버린 가족애의 회복이 주제였습니다.
최신작은 단신이 주인공입니다.
사회를 살아가며 키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단신들은 사실 장신을 부러워합니다.
제가 단신이기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신들의 희망이자 영웅이 되는 작은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말이 너무 길었습니다.
혹시라도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넙죽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밤 되십시오.
내일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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