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기하면 투명해지는 이혼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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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도우
작품등록일 :
2024.11.07 17:26
최근연재일 :
2024.11.14 08:00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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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수 :
46,899

작성
24.11.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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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화. 투명인간

DUMMY

우울증약 4알

수면제 5알

두통약 4알

위장약 2알


나태한이 하루에 먹는 약의 양이다.


- 쾅


"?"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퇴근한 나태한. 조심스럽게 겉옷을 벗어 스타일러에 걸어두고 있었다.


"야! 나태한!"

"응?"

"이게 뭐야!"

"뭐, 뭐가 말이야?"


날카로운 아내 김지수의 음성

또 뭔가 꼬투리를 잡힌 모양이다.


'뭐지? 오늘 아침에 분명 다 체크하고 나왔는데?'


"화장실 말이야."

"화장실?"


순간 빠르게 돌아가는 태한의 두뇌.


수건 위치, 비누 위치, 가지런히 놓인 칫솔과 컵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오줌 앉아서 싸라고 했지?"

"아, 그게..."


'아차.'


그제야 태한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다름이 아니라, 너무 피곤한 나머지 변기에 선 채로 소변을 본 것이었다.


"여기 오줌 튀었잖아! 여.기.!"

"미, 미안, 바로 닦을게."

"하아, 진짜 개짜증나."


코를 틀어 막은 채 서 있는 김지수의 싸늘한 시선을 느끼며, 태한은 무릎을 꿇고 향균 물티슈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하아, 이 미친년 진짜.'


태한은 잠시 동안 김지수의 아구창을 수차례 갈기는 상상을 했다.


- 퍽퍽


"이 미친년아! 집에서 쳐 노는 니가 좀 닦아!!!"

"꺄악"


하지만 그건 상상일 뿐이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서서 싸기만 해봐, 그때는 진짜 이혼이야, 이혼!"

"...조심할게."


이제 결혼 10년차 부부 나태한과 김지수.

남편 나태한을 향한 김지수의 히스테리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저기 지수야."

"왜?"

"그러니까 그게..."

"아 빨리 말해.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내 갈색 셔츠 혹시 어디 있는지 못 봤어?"

"하아, 진짜."


혹시나 했는데 역시 짜증을 내며 일어서는 그녀.


"내가 빨래해서 저기 서랍에 넣어뒀다고 했지!"

"저기라면 정확히 어디에..."

"안방 서랍!"

"아, 거기 있었구나."

"왜 어디다 뒀는지 맨날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


'그거야 맨날 니 맘대로 정리해두니까 그렇지, 이 망할년아!!!'


그랬다.


김지수는 본인이 원하는 장소에 물건을 정리하지 않으면 엄청난 히스테리를 시전하는 돌아이 같은 여자였다.


더 큰 문제는 물건을 정리해두는 장소가 자꾸 바뀐다는 데 있었다.


"저, 저번에 셔츠는 작은 방 첫 번째 서랍에 둔다고..."

"그건 여름일 때고. 지금은 가을이잖아! 그런 센스도 없어?"

"...'

"앞으로 또 물어보면."

"?"

"이혼이야. 이혼."

"...미안해."


속에서 천불이 나며 수 없이 많은 비속어가 맴돌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채, 태한은 말 없이 돌아섰다.


하지만 이 모습들은 아직 빙산의 일각,

아니 손톱 만한 얼음 한 조각에 불과할 뿐이다.


"월급 명세서 가져와."

"여, 여기."

"...카드 내역서는?"

"여기."

"통장 정리 한 거는."

"여, 여기."

"여기 [열렙커피]라고 써있는 건 뭐야? 3400원."

"회사 앞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나태한."

"응?"

"너 재벌이야?"

"?"

"내가 커피는 회사에 있는 믹스 커피나 마시라고 했지."

"그게..."


3400원을 지출한 2024년 8월 16일 아침.

출근길에 회사 후배 홍혜원을 만난 날이었다.


"선배!"

"아, 혜원아."


태한이 근무하고 있는 헬트리오 제약 홍보 2팀의 사원 홍혜원.

20대의 싱그러움

수수한 듯 알고 보면 비싼 명품옷과 가방

그리고 2억 대의 포르쉐를 몰고 다니는 금수저였다.


가정에서 지옥 같은 나날을 살아가는 태한에게, 혜원의 존재는 사막 속 작은 오아시스였다.


"대리님, 오늘도 일찍 출근하시네요."

"항상 그렇지 뭐."

"오, 저기 새로운 카페 생겼나 봐요."


횡단보도 너머 새로 오픈 한 가게를 가리키는 혜원.


<열렙커피. 일주일 간 아메리카노 1700원!>


"그러게. 아메리카노가 1700원 밖에 안 하네."

"우리 저기서 사 들고 갈까요?"

"저, 저기서?"


태한은 순간 움찔했다.


[1700원 * 2명 = 3400원]


태한의 머릿속에 거품을 물고 지랄하는 김지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그럴까?"

"가요. 제가 살게요."

"아니야. 오늘은 내가 살게."


매번 출근길에 혜원을 만나 얻어 마신 커피만 몇잔이던가.

이날 만큼은 꼭 혜원에게 커피를 사주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선배."

"감사는 무슨. 하하하."


'하아,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그리고 다시 현재.


"하루에 1700원 * 30일 * 12개월이면 얼마인지 알아? 어디보자... 60만원이 넘어 60만원!!"

"그날 한 번 마신 건데..."

"한 번이 두 번, 두 번에 네 번 되는 거라고!"

"알았어. 다시는 안 사 마실게."

"한 번만 더 사 먹으면."

"?"

"이혼이야. 알았어? 이혼이라고."

"다시는 안 그럴게. 미안해."


언제나 갑은 김지수

을은 나태한이었다.


하지만 나태한이 이렇게 비참하게 살면서도, 차마 이혼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7년 전>


수 차례 시도에도 아기가 생기지 않아 방문한 산부인과에서 듣게 된 청천벽력과 같은 말.


"무정자증이요?"

"네. 그러니까 그게..."


아내 김지수의 눈치를 살피는 산부인과 의사 윤서희.

그녀는 아내의 절친한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남편 분, 그러니까 태한씨 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저요?"

"흐윽."


윤서희의 말과 동시에 눈물을 쏟는 아내 김지수.

태한은 그야말로 대역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저는 담배도 안 피고, 술도 안마시는데 불임이라고요?"

"무정자증은 그런 후천적인 부분 보다는 아무래도 선천적인 부분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죄책감]


김지수가 지금과 같은 강박증 사이코가 된 이유가, 자신의 무정자증으로 인해 아기를 갖지 못해서라고.


김지수의 히스테리가 심해질 수록, 태한의 죄책감 역시 깊어졌다.


<다음 날 아침>


"다녀올게."

"..."


아침 식사는커녕 배웅조차 하지 않는 김지수였지만, 태한은 습관적으로 무미건조한 인사를 남기고 문을 나섰다.


"후우, 서두르자."


오늘은 특별히 한달에 한 번 있는 헬트리오 제약 전체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헬트리오 제약 사장인 모상식을 비롯, 임원진 모두가 참석하는 회의기에 특별히 서둘러 출근하는 태한.


하지만


"그걸 안 챙겨왔다고?"

"죄송합니다 대리님."


오늘 회의 시작 때 쓸 파일이 담긴 USB.

입사 1년 차이자 태한의 후배인 정진수가 깜박하고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


"야이 새퀴야. 그걸 안 가져오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크흑."

"아니 울지 말고. 혹시 클라우드에 백업해둔 것 없어?"

"네, 거기까지 생각을 못하고..."

"하아, 어떻게 하지?"

"제가 지금이라도 집에 가서..."

"너 집 엄청 멀잖아 여기서."

"한 시간 반 정도..."


현재 시각, 오전 8시.


10시에 시작하는 회의에 맞추기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


"어, 어떻하죠 대리님."

"일단 우리 집 pc에 파일을 저장해두긴 했는데, 시간이..."


집에서 회사까지 걸리는 시간은 50분.

차가 막히는 시간을 가정해도 해 볼만한 시도였다.


"내가 집에 가서 가져 올게."

"가, 감사합니다 대리님."

"혹시 모르니까 오면 우리팀 파트 바로 시작할 수 있게 준비 해 놓고 있어. 알았지?"

"네!"


후배의 실수에 한 번 정도 나무랄 법도 하지만, 태한은 언제나 누군가를 비난하고 책망하기 보다는 자신이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 타다다닥


"헉, 헉."


가까스로 버스를 타서 집 문 앞에 도착한 태한.


8시 45분.


이 정도면 시간은 충분했다.


- 띠띠띠띠


빠르게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태한.


- 끼이익


문을 열자마자 정신없이 작은 방으로 향하려던 그때.

뭔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몸을 감쌌다.


지수의 운동화.


지금쯤 분명 운동화를 신고 아침 필라테스를 가느라 집에 없을 시간이었다.

근데 운동화가 놓여 있다고?

강박증이 있는 지수가 필라테스를 빠진다고?


"어디 아픈가?"


서둘러 USB를 챙겨 나가야하는 태한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방 문을 열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모른 채.


- 끼익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방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신음 소리.


"하아, 하악."

"헉, 헉."


한 사람의 신음 소리가 아니었다.


하나는 지수.

하나는 다른 남자의 목소리였다.


"아아아"

"싸, 싼다아!"

"꺄아악"


그리고 절정으로 치닫는 소리.

태한은 얼어붙은 채, 자리에 서 있었다.


'씨, 씨발...!'


머릿속에 있는 뭔가가 끊어지는 느낌

그와 동시에 태한은 탁자 위에 놓인 꽃병을 집어 들었다.


"근데 안에 싸도 괜찮아?"

"응, 상관없어. 어차피 나 불임이라."


- 멈칫


태한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부, 불임?'


"큭큭, 나야 좋긴 한데."

"더 해도 괜찮아 자기야."

"근데 니 남편이 의심 안 해?"

"의심은 무슨. 그 검사한 산부인과 의사가 사실 내 고등학교 동창이거든."

"아 진짜?"

"응, 내가 미리 말 해뒀지. 걔한테."

"흐흐, 철저한데 김지수?"


김지수의 말에 머리가 뜨거워지는 태한.


지금껏 그를 버티게 한 죄책감.

그 죄책감으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허술한 탑이 무너지고 있었다.


'김지수 이 씨발년이...!'


"하, 아쉽지만 이제 가봐야 할 시간인데?"

"벌써?"

"응, 오늘 전체 회의 있어서. 하 씨발 귀찮게."


'전체...회의?'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어딘가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

머릿속에 하나의 기억이 빠르게 스쳐갔다.


<3년 전, 헬트리오 제약 본관 신년 행사장>


지수와 함께 부부 동반으로 참석했던 헬트리오 제약의 신년 행사.

가는 게 영 내키지 않았지만, 부장의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참석한 행사였다.


"어이구 우리 회사에 이런 미인이 계신 줄 몰랐네요, 하하."

"?"


조용히 구석에서 식사하고 있던 지수와 태한에게 다가온 한 남자.


"아,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평소에는 말 한 번 붙여보기는커녕, 한 번 눈으로 보기조차 어려운 헬트리오 제약의 황태자 모상식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태한은 헐레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런 태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지수에게 악수를 건네는 모상식.


"저, 사장님."

"응?"


그때 모상식을 옆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 마현수가 그에게 속삭였다.


"이분은 직원이 아니라, 직원 아내입니다."

"흠흠. 그런가? 하하."


당황한 듯한 모상식의 얼굴.


"뭐 어쨌든 우리 헬트리오 제약 식구가 아닙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네, 가, 감사합니다."


- 꼬옥


모상식이 건낸 악수에 응하는 지수


그때는 모상식의 등장으로 당황한 탓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지수를 바라보는 모상식의 음흉한 눈빛.

그리고 그 눈빛을 피하지 않는 지수의 모습을.


<다시 현재>


"크윽"


너무 충격을 받은 탓일까. 나태한은 순간 뒷목을 움켜 잡았다.


'뭐, 뭐지.'


마치 오래된 TV 화면처럼 흐릿하게 변해가는 주변 모습.

태한은 그대로 뒷걸음질 치다 침대 위로 쓰러졌다.


- 털썩


'이, 이렇게 죽는 건가... 젠장...'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태한은 생각했다. 죽어서도, 죽어서라도 저 두 연놈들을 용서하지 않겠노라고.


- 쨍그랑


그와 동시에, 태한이 쥐고 있던 꽃병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히 부서졌다.


"!"

"무슨 소리지?"

"니 남편 온 거 아니야?"

"이 시간에 그럴리가 없는데?'


- 덜컥


이내 안방 화장실 문이 열리며 밖으로 나온 모상식과 김지수.


하지만 눈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깨진 꽃병의 조각들만 바닥에 흩어져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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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투명인간 24.11.07 14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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