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안전만.
내 이름이다.
호칭은 따로 있었다.
어이 전만이.
호는 어이요 이름은 전만이라···
개명 하고 싶었다.
난 고아라 보육원 원장님을 졸라야 했는데···
그 양반은 결국 퇴소할 때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혼자 힘으로 개명 신청을 했지만···
이마저도 사유 불충분으로 기각.
이상했다.
세상 사람들이 전부 나를 전만이로 부르는데 이것보다 더 명확한 사유가 존재할 수 있는 거였나?
이름이 무슨 대수냐고?
학폭, 왕따, 무시, 조롱, 비아냥···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괴롭힘이란 괴롭힘은 모조리 당하면서 자라왔다.
그게 과연 이름 때문이었겠냐고?
말해봐라.
너의 이름은?
평범한 이름을 가진 이는 이름의 무게를 모른다.
암, 알 리가 없지...
뭐, 각설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거다.
이름 때문에 하드모드 인생을 살다 보니···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이 생겨버렸다는 것이다.
안전만을 위한 3원칙.
숨고, 피하고, 무시한다.
일단 숨어라.
숨을 수 없으면 피해라.
상기 원칙이 통용되지 않는다면 상황 자체를 무시해라.
학계의 점심인 이 이론 덕분이었을까···
비참하기만 했던 내 삶에도 나름 안정이 찾아왔다.
간신히 얻은 10평 남짓한 오피스텔 월세방.
이곳은 누구도 찾아오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좁지만, 오롯이 나만 존재할 수 있는 나만의 세상이었다.
숨거나 피하고 무시할 필요가 없는···
완벽한 안식처인 것이다.
먹고 살 걱정도 없었다.
내 직업은 방구석 프리랜서 게임 기획자.
게임 시스템과 레벨 디자인을 주로 한다.
최근엔 과금 모델 구축 의뢰까지 들어왔다.
업계 평판이 썩 나쁘지 않은 편이라는 소리다.
이 정도면 완벽했고 만족스러웠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만큼.
물론 세상 모든 일이 으레 그렇듯···
이런 내 소소한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더럽게 뜬금없이도···
세상이 멸망해 버렸기 때문이다.
『미 국방성 펜타곤, 전대미문의 데프콘 원 선언. 우방국 및 한반도 전역도 포함. 최고 경계 태세로···』
『UN 안전 보장 이사회 긴급 결의. 범지구적 비상사태, 전 세계가 힘을 모아야 할 때.』
『러시아 내부 수상한 움직임. 자국 내 전략 핵무기 사용 징후 포착.』
인터넷은 온통 멸망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이마저도 1시간 전에 확인한 내용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본 건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만 덩그러니 남은 브라우저 창이었다.
인터넷이 끊긴 거다.
그것뿐이라면 다행이었을까.
이젠 컴퓨터에 전원 자체가 들어오질 않는다.
본체를 열어보니 파워와 메인보드가 전부 녹아있었다.
핸드폰, 냉장고, 전자렌지, 티포트···
전자 기기란 기기는 전부 먹통.
원인은 컴퓨터와 같다.
나도 모르는 새 EMP 폭탄이라도 터진 걸까?
투다다다닥! 끼히이이이···
쿵! 쿵! 쿵! 캬하아아악!
현관문 밖 복도에 무언가가 뛰어다닌다.
분명 인간의 발소리인데···
짐승 같은 소리를 내는 걸로 보아 인간은 아닌 듯하다.
사실 저것들의 정체는 몇 시간 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창문 밖만 봐도 단번에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2층인 이곳에선 바깥 상황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워어어어어···
끄우우우우우···
동공이 사라지고 흰자위만 남은 눈.
피 칠갑을 한 입가와 옷.
어기적거리며 움직이는 시체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소설과 만화, 영화, 게임에서 질리도록 봐왔던 그것들이다.
‘좀비···’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저것들이 삽시간에 도시를 장악해 버렸다는 점이다.
‘좀비 바이러스 같은 게 창궐했나?’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마치 땅에서 솟은 것처럼...
바이러스는 퍼지는 데 시간이 좀 걸리지 않나?
‘어딘가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냐···’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놈들은 평범한 시민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마계에서 기어 올라온 마물의 모습이 아니란 소리다.
이를 증명하듯, 방금 아는 사람의 얼굴까지 목격해 버린다.
‘저 여자애는 분명 편의점에서 알바하던···’
항상 미소 짓는 얼굴로 나를 반겨주던 여학생.
지금은 시뻘건 무언가를 질겅이며 도로변을 어슬렁거린다.
순간 다른 사람인가 착각할 만큼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저거 설마··· 내장이야? 우웁!’
멀쩡했던 사람들이 별안간 좀비로 변한 것이 분명하다.
갑자기 왜?
‘원래 바이러스 같은 것을 품고 있었던 거야··· 특정 계기로 그게 발현돼서···’
음···
그닥 말이 되는 추리 같진 않다.
‘정말 말이 안 되는 건 저거지만···’
내 시선은 위를 향한다.
먹물을 풀어놓은 듯 우중충한 하늘.
그곳엔 무언가가 떠있었다.
상식 선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무언가가···
【왕십리 구역】
【동기화 진행 중···】
글자다.
서울 어디에서라도 볼 수 있을 만큼 큰 글자.
점들이 순차적으로 깜빡인다.
진행 중임을 나타내는 깨알 같은 연출이었다.
‘여기가 왕십리는 맞는데··· 동기화? 뭘 동기화한다는 거야?’
대체 뭘까.
내가 살던 이곳이 실은 현실이 아닌 건가?
세상은 프로그램 코드 쪼가리일 뿐이고···
조만간 난 빨간약과 파란약 중 하나를 골라야 하나?
가짜 건 진짜 건 확실한 한 가지는···
세계에 멸망이 도래했다는 사실이다.
여지없이 발동하는, 안전만을 위한 3원칙이었다.
숨을 수 있는가?
당분간은 가능하겠지.
원룸에 짱박혀 있으면 될 테니.
하지만 식음료가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할 테니 패스.
피할 수 있는가?
구조대가 온다면 모를까···
아무리 긍정적으로 머리를 굴려봐도···
구조대가 올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다.
다른 지역이나 해외로 순간 이동하지 않는 이상···
피하는 것도 불가능.
다른 곳 상황이 여기보다 낫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럼 이 모든 상황을 무시할 수 있는가?
···겠냐?
결론은 한 마디로 귀결되었다.
“좃됐네···”
굶주림에 고통받다 아사하긴 싫다.
좀비들에게 산채로 뜯어 먹히는 건 더더욱 싫고.
의식의 흐름은 강물처럼, 사고 판단은 단두대의 칼날처럼···
편안히 현생을 로그아웃할 수 있는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포기가 빠른 남자, 그것이 바로 나니까.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도 정확히 그즈음이었다.
〔히요오오오! 안녕하신가 인류 여러분?〕
깜짝 놀라 창 밖을 바라봤다.
밖에서 누가 확성기로 외치는 줄...
이내 뭔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챈다.
명확히 설명하기 힘들지만···
소리는 고막이 아닌 머릿속을 울려대는 방식이었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이 좀 어질어질하지? 일단 캄 다운! 꿈이나 환영 따위 아니니까 쓸데없이 허벅지 꼬집지들 말고. 헤이 유! 스탑 빗!〕
뭐지?
누구냐 넌?
신이나 악마··· 뭐 이런 건가?
혹은 극한의 상황에 직면해 분리된 나의 또 다른 자아?
내가 별 볼 일 없는놈들 중 탑티어급이긴 하지만···
저딴 게 내 분리된 자아라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내 이름은 베리타스. 아, 원래 이름 따윈 없지만 너희의 편의를 위해 급하게 만든 거야. 어때? 오! 쏘베리투마취 카인들뤼!〕
‘말투 개킹받네 진짜···’
생소한 이름, 거지 같은 말투.
그래, 저건 내 분열된 자아 따위가 아니다.
내 자아였다면 볼품없을지언정 저 정도로 또라이는 아니었을 테니까.
저 또··· 아니, 베리타스의 수다는 계속됐다.
〔지금 상황은 너희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종 투 더 말! 인류는 이제 곧 멸망할 거야. 오우, 노우!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마. 이만큼 해 쳐먹었으면 됐잖아?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으면 이제 그만 사라져 주셔야지. 롸잇?〕
티배깅도 정도란 게 있는데···
덕분에 살아야겠다는 욕망마저 샘솟았다.
세상에.
내게도 이런 반골 기질이 있을 줄이야···
그래서였을까···
죽기로 한 걸 까먹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숨을 곳을 찾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안전해야 할 집에서조차 숨어야 하다니···
짜증 난다.
근데 저거···
사람 머릿속에 대고 직접 말을 거는 존재잖아···
숨을 수 있기는 한 건가?
〔버어어엇! 관대한 본좌는 너희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야. 어때? 니들이 죽고 못 사는 그 허황된 신들 말고, 본좌를 막 추앙하고 싶어지지 않아? 응? 세이마이네임! 프레이포미!〕
암만 들어도 저거 보통 정신 나간 놈이 아니다.
〔4시간 43분 전에 잠재력이 없는 인간은 좀비가 됐어. 81억 9834만 7265명 중 58억 4460만 1766명이 좀비가 되거나 좀비에 의해 죽었으니 전 세계 인류의 71.29%가 뒈진 거지. 오우··· 갓··· 뎀잇! 이모! 방금 6244명 추가요.〕
이건 또 뭔 소리람.
인류의 70% 이상이 죽거나 좀비가 됐다고?
지금 저 허무맹랑한 말을 믿으라는 건가···
하지만 그저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엔···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전부 말이 안 되는것들뿐 아닌가.
〔이 말은 즉, 살아남은 너희들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야. 각성을 통해 잠재력을 일깨우고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 두유노 각성? 각성··· 몰롸? 인간의 범상함을 초월해 습혜셜하고 골져스하게 변하게 되는 그거, 그게 각성이야. 언덜스텐? 그럼··· 다들 새로 태어날 준비는 됐나? 알유레뒤투리본?〕
정신 사나운 설명이었지만, 요점은 이해했다.
한마디로 생존자들을 각성시켜 초능력을 쓸 수 있게 해 준다는 이야기다.
멸망에 대항할 수 있도록···
이게 뭔 양판소 삼류 웹툰 저질 영화 쿠소 게임에 밥 말아 먹는 소린가 하겠지만···
‘장난이 아니야. 몰카 따위도 아니다.’
어쩌면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죽지 않고 좀 더 살아갈 가능성 말이다.
‘어떤 능력을 각성하느냐가 핵심이다!’
〔히익? 이러는 와중에도 1만 4769명이 또 뒈졌네? 빨리 각성부터 하자! 너희들의 목숨은 본좌에게도 소중하니까. 마이 프레셔쓰!〕
띠링.
눈앞에 홀로그램 메시지 창이 떠오른다.
그곳엔 생소한 단어가 적혀있었다.
[당신은 ‘나노셰이퍼’로 각성했습니다.]
‘나노··· 셰이퍼? 나노 테크놀로지의 그 나노인가?’
동시에 멜론 크기만 한 쇠구슬이 스르륵 나타났다.
은빛 광택이 흐르는 그것은 내 눈앞에 있었다.
허공에 둥둥 뜬 채로...
“뭐··· 뭐야 이거?”
- 시스템 가동. 사용자 인식··· 완료. 주인으로 모실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안전만 주인님.
쇠구슬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어이라는 호를 붙이지도, 성을 생략하지도 않고 온전히 내 이름을 불러주는···
기품 있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어··· 안녕?”
맙소사, 나 방금 쇠구슬에 인사한 건가?
- 시스템 안내 기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궁금한 사항은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이리저리 둘러봐도 입을 찾을 수 없었지만···
녀석은 선명한 음성으로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너··· 눈나··· 여자야?”
- AI에 성별은 없습니다.
“나노 머신 AI?”
- 그렇습니다.
“어··· 음··· 그래 그럼··· 지평좌표계는··· 아니, 이게 아니고··· 어떻게 공중에 떠 있는 거야?”
- 저를 구성하는 1825억 3213만 7749개의 나노 입자들은 전부 반중력 기술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반중력··· 혹시 미래에서 왔어?”
- 시간선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차원 개념까지 더해야 합니다.
“차원? 그게 무슨···”
- 간단히 말해, 저는 이곳과 전혀 다른 세계의 존재라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세계라니···
그런 게 실존했단 말인가?
어안이 벙벙해진 탓에 넋을 놓고 있는데···
또다시 베리타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떻게, 다들 각성한 능력은 마음에 드나? 동기화가 끝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니, 각자 자신의 능력을 알아 가는 시간을 가지도록. 상태창을 떠올리면 정보를 확인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시간을 넉넉히 줄 순 없으니까 서둘러. 허뤼업!〕
〔참! 그리고 닉네임을 하나 정해 두도록 해. 너희 게임 좋아하잖아? 게임 캐릭터를 만들듯이 가짜 이름을 만드는 거지. 실명을 써도 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내 알 바 아니라는 걸 잊지 말고. 논 오브 마이 비즈니스!〕
‘상태창?’
속으로 의문을 품었을 뿐인데 바로 반응이 온다.
눈앞에 펼쳐지는 홀로그램.
자주 봐왔던 게임의 그것···
상태창이었다.
—————————————————
이 름 : 안전만
닉네임 : 스펙터
직 업 : 나노셰이퍼
입자량 : 1825억 3213만 7749개
에너지 : 99%
스 킬 : 형태변환/ 형질변환
업 적 : -
골 드 : -
—————————————————
평소에 줄곧 사용하던 닉네임을 떠올리고 있던 탓일까···
‘스펙터’라는 내 필명이 상태창에 적용되어 있었다.
‘근데, 뭐가 이리 단촐해?’
일반적인 상태창과는 다르다.
기본적인 레벨부터 힘, 민, 체 스탯 항목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입자량은 나노 입자의 수를 말하는 것일 테고··· 에너지는 전력 같은 건가?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두 개뿐이고?’
이런 정보만으로는 나노셰이퍼가 뭔지 알 수 없다.
혼자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말할 줄 아는 각성의 산물이 눈앞에 있는데···
“넌 뭘 할 수 있지?”
- 주인님이 머릿속에 떠올린 모습대로 형태를 변형할 수 있습니다. 나노입자 수가 늘어날수록 더 크고 복잡한 형태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형태변환 스킬을 말하는 거로군. 형질 변환은?”
- 물질의 분자 구조를 변형할 수 있습니다. 아직 이쪽 세계 물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복잡한 형질 변환은 수행할 수 없지만, 안전만 주인님이 보유한 지식을 바탕으로 몇 가지 형질 변환이 가능한 항목을 추가했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 내 머리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거야?”
- 주인님과 만난 직후 나노 입자가 주인님의 뇌 속에 침투해 동기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용자의 성향과 지식을 바탕으로 명령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하시지 않는다면 동기화 작업을 중지하겠습니다.
“아··· 아냐. 계속해. 찝찝하지만 어쩔 수 없지.”
-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질 변환에 대해 자세히 말해줘. 형질 변환이 가능한 게 뭐가 있지?”
- 대표적으로 물이 있습니다. 오염된 물을 주인님이 마시던 생수와 같은 성분으로 변환하는 게 가능합니다. 원하신다면 주인님의 신체에 더 적합한 수준으로 칼륨, 마그네슘, 미네랄, 무기질 함량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물을 정화해? ···설마 오줌도 정화할 수 있어?”
- 가능합니다.
“어··· 그럼 음식은? 썩은 음식이나 벌레··· 똥 같은 것도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거야?
- 가능합니다. 주인님이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를 이미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했습니다. 가능한 항목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어··· 아니, 아냐. 나중에 볼게.”
- 알겠습니다.
하···
이건 정말이지···
‘대박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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