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채널: 왕십리】
베리타스줫까> 전 세계 채팅ㅇㅈㄹ 채널 제한된 거 안 보이냐?
모르는개산책> 채널 말고 채팅 기능이 열렸다고 ㅄ아.
베리타스줫까> 다들 병든 개새끼 마냥 좋아서 질질 싸고 자빠졌노. 어차피 다 뒤 질 새끼들이.
트롤리> 이 와중에 정신 나간 인간이 하나 있네···
베리타스줫까> 다 조까! 베리타스 좃까라그래! 내 글 안 올라오면 난 뒤진 거임···
베리타스줫까> 다 조까! 베리타스 좃까라그래! 내 글 안 올라오면 난 뒤진 거임···
베리타스줫까> 다 조까! 베리타스 좃까라그래! 내 글 안 올라오면 난 뒤진 거임···
어디에나 미친놈은 존재한다.
아포칼립스 세상도 예외는 아니었다.
웬 정신 줄 놓은 인간이 채팅창에 도배를 하기 시작한 것.
과연 저놈은 깡이 좋아 저러는 걸까···
아니면 그냥 다 내려놓고 자포자기한 걸까···
‘너 그러다 죽어···’
아니나 다를까, 어느 순간 갑자기.
채팅창을 가득 메우던 놈의 글이 멈춘다.
한동안 채팅창엔 아무 글도 올라오지 않았다.
숨 막히는 정적만 흐를 뿐이었다.
〔방금 채팅창 규정에 어긋난 행동을 한 머저리들을 강퇴했다. 전 세계에 총 1734명. 지성인이면 기본 매너 좀 지켜라, 벌레 같은 새끼들... 뻐킹 에솔!〕
베리타스의 공지 이후에도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
아무도 말을 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강퇴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까딱 생각을 잘못 놀렸다간 머리통이 날아가는 죽음의 채팅창.
함부로 글을 올릴 엄두가 나지 않는 건 당연한 반응일 터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채팅창의 정적을 깨부수며 글 하나가 올라온다.
【채널: 왕십리】
카이저> 자자, 베리타스의 조언대로 다들 매너 있게 소통하도록 하죠.
카이저!
녀석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채널: 왕십리】
새천년은언년이야> 그래요 우리.
모르는개산책>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이제야 채팅이 좀 할 만하네.
송재승> 엄마··· 살아있으면 대답 좀 해줘! 엄마···
Zaha81> 지선아 대답해. 괜찮은 거니?
트롤리> 다들 골드 어디다 썼음?
새천년은언년이야> 전 너무 배고파서 이온 캡슐이요···
사람들이 조심스레 소통을 재개한다.
카이저의 등장 이후 채팅창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확실히 똑똑하고 센스 있는 녀석이다. 15분밖에 주어지지 않는 귀중한 소통의 기회인데, 다들 겁먹은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시간만 보내 버리는 최악의 상황을 막았어.’
녀석에게 강한 호기심이 일었지만···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팅만 하는 위치를 고수했다.
【채널: 왕십리】
트롤리>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우리끼리 유용한 정보를 공유해야 하지 않음?
새천년은언년이야> 각자 어떤 능력을 각성했는지 말해보는 건 어때요?
모르는개산책> 에이, 그건 쫌 오바 아니냐?
카이저> 맞습니다. 급할 거 없어요. 차분히 하나씩 알아가도록 하죠.
트롤리>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데 말투 침착한 거 보소. 내 생각엔 카이저 최소 X세대.
카이저> ㅎㅎ 지금은 그냥 편하게 일상 이야기나 하죠. 긴장도 풀어 줄 겸··· 다들 힘든 하루였잖아요.
‘뭐라는 거야···’
가까스로 소통을 재개했는데···
쓸데없는 일상 이야기나 하겠다고?
카이저에 대해 내가 너무 과대평가를 했던 걸까?
다음 미션이 열리기 전···
생존자끼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지 않나.
채팅창 위에 표시된 남은 시간은 이제 5분.
나라면 이 절호의 찬스를 저딴 식으로 날려버리진 않을 것이다.
‘아니야. 만약··· 과대평가가 아니라면···’
저건 아마도 밑밥일 것이다···
자연스레 판을 까는 행위.
‘그래, 분명 뭔가 있어··· 저 녀석 지금부터 뭔가를 할 거다.’
【채널: 왕십리】
카이저> 그나저나 미션들이 전부 게임과 같은 방식이라니··· 다들 게임 많이 하시나요?
새천년은언년이야> 전 메이플시럽 스토리요.
트롤리> 서든 배틀.
모르는개산책> 오 서든!
카이저> 서든··· 국민 겜이죠ㅋㅋㅋ 숏오바 짤. 기방 대기.
트롤리> 앜ㅋㅋ 서든 용어! 나 패줌 마스터였음.
새천년은언년이야> 서든은 예전에 접었는데···
서든 배틀.
나온 지 10년이 넘은 온라인 FPS 게임이다.
그만큼 인기 있는 게임이라는 이야기다.
국민 게임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특이한 점은···
오래된 게임이다 보니 유저들끼리만 통하는 전문 용어들이 난무했는데···
‘숏 오바 짤’은 숏이라는 구역에서 나온 적을 처리했다는 뜻이고, ‘기방’은 한 지역에 모여 적을 기다린다는 식이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나 역시 서든을 플레이했었으니까.
뭐···
순수하게 즐기기 위해서였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채널: 왕십리】
카이저> 아마 녹길 반계 선셋 타깃.
카이저의 한마디에 다시 채팅창이 얼어붙는다.
서든 용어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물론···
익숙한 이들조차 저게 뭔 소린가 싶을 것이다.
‘당연하지··· 서든 배틀에서 아마라는 용어는 없으니까.’
저건 신호였다.
서든 용어를 암호처럼 활용한···
‘첫 단어는 맵의 이름이야. 보통 줄여서 표현하지. 웨어는 웨어하우스, 올타는 올드타운 같은 방식으로··· 녀석이 말한 아마는 현존하는 지역을 말하는 거다. 왕십리에 있고··· 누구나 알 수 있는 랜드마크와 같은 곳···’
왕십리의 랜드마크들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아로 시작하는 랜드마크라··· 아··· 아··· 아는 알파벳 아이인가? 마··· 마트··· 아이마트?!’
아이마트.
유명한 프랜차이즈이자 왕십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트.
녀석은 아이마트 건물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녹길은 녹색 길. 아이마트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 바닥이 녹색이었지. 반계는 그쪽에 있는 반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말하는 것일 테고. 선셋 타깃은 시간··· 말 그대로 인가? 해질녁에 만나자는 뜻이야!’
시계가 전부 고장 나 정확한 시간을 특정할 수 없으니···
해가 지는 시점을 제안한 게 분명했다.
채팅 창 주변 하늘을 확인한다.
날이 흐려 정확히 가늠할 순 없었지만···
앞으로 두세 시간 뒤면 해가 질 것이다.
【채널: 왕십리】
트롤리> 라저.
모르는개산책> 롸져 댓.
새천년은언년이야> ROGER.
송재승> 뭔소리예요? 왜 지들끼리만 아는 이야길 하고 있어.
Zaha81> 그게 뭔데 이 씹덕들아.
나와 비슷한 타이밍에 카이저의 신호를 이해한 사람이 세 명.
이들 역시 서든 용어로 답신을 날린다.
몇 시간 뒤···
카이저를 포함한 최소 4명이 아이마트에서 회동을 가질 것이란 의미였다.
‘역시··· 보통 내기가 아니네···’
아직은 베리타스의 룰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다.
생존자들이 따로 만남을 가져도 되는지···
그런 약속을 채팅창에 보란 듯이 올려도 되는지 알 수 없다는 소리다.
일상적인 잡담을 하는 척 베리타스의 이목을 벗어나고··· 자연스레 서든 배틀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 냈다.
이어서 게임 용어를 활용해 회동 약속을 공지하다니...
‘게다가, 괜히 서든 용어를 암호로 사용한 게 아니야···’
이는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센스가 있는 사람만 선별해 만나겠다는 의도.
더구나 만남의 장소로 아이마트를 고른 것까지···
‘대형 마트를 본거지로 사용하면 충분한 물과 음식을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이온 캡슐을 구매하는 것에 골드를 허비하지 않겠다는 소리다.’
하지만 여전히 산재한 문제는 있었다.
아이마트에도 다수의 생존자가 남아 있을 터.
그곳을 본거지로 삼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생존자끼리 죽고 죽이는 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카이저··· 어쩔 생각이지?’
이런저런 추측을 하는 와중에···
채팅창에 새로운 사람의 글이 올라왔다.
【채널: 왕십리】
구름을비추는새벽> 라저.
카이저의 제안을 따르려는 사람이 한 명 더 추가된 셈.
- 주인님.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완자가 내게 묻는다.
내 생각 정도는 훤히 파악하고 있을 텐데···
하긴, 저런 질문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방금 난 살짝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회동 자리는 나가보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카이저가 어떤 녀석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 그렇습니까?
하지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내가 직접 집 밖으로 나간다고?
그것도 좀비들을 뚫고 아이마트까지?
완자의 호위를 받아 안전할 거라는 걸 감안해도···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불가능··· 절대 무리지···’
더구나 타인들과 얽히기 시작할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온다.
‘그래도 앞으로 열릴 미션 중엔 파티 플레이가 필수인 미션도 있을 거야··· 사람들과 얽히는 건 피할 수 없다···”
어쩐다···
역시, 나가 보기는 해야겠지?
이런 내 생각이라도 읽은 것일까···
카이저가 채팅창에 추가로 올린 글은 나를 언급하고 있었다.
【채널: 왕십리】
카이저> 스펙터도 우리랑 같이 게임 하면 좋을 텐데···
새천년은언년이야> 맞아요! 진짜 너무 궁금해요.
모르는개산책> 멸망 시작과 동시에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레전드··· 영접 못 하나요?
트롤리> 스펙터 정도면 파티원 스펙 오지게 따질 듯ㅋㅋ
회동 장소에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당장의 이미지 메이킹은 필요해 보인다.
난 적대적이고 폐쇄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동료가 필요한 시점을 대비해야 하니까···’
【채널: 왕십리】
스펙터> 그렇지 않습니다. 전 모두와 협력할 의사가 있고 생존자들 전부가 재앙으로부터 무사하길 바랍니다. 진심으로요.
채팅창 종료가 몇 초 남지 않은 시점.
간신히 올린 첫 채팅이었다.
내가 글을 올리자마자 모닥불에 기름을 들이부은 듯···
채팅창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채널: 왕십리】
새천년은언년이야> 꺄아아아아아! 스펙터 오빠다!♥♥♥
Zaha81> 진짜 스펙터 님이신가요? 대박···
모르는개산책> 와 씨! 깜짝이야! 스펙터 본인 실화냐?
트롤리> 엌! 그럼 저랑 파티해 줘요! 네?
송재승> 스펙터님! 엄마 좀 구해 주세요. 제발요 스펙터님···
구름을비추는새벽> 스펙터님 멋지십니다.
이내 채팅 가능 시간이 종료된다.
채팅창이 스르륵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을 장식한 글은 카이저의 메시지였다.
【채널: 왕십리】
카이저> 그렇군요. 그럼 있다가 봅시다, 스펙터 씨.
‘난 참여한다는 답신도 안 했는데···’
녀석은 내가 회동 장소에 나올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감일까?
아니면 그저 사람의 성향을 잘 읽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녀석의 예상은 맞았다.
방금 결심했으니까.
난 약속 장소로 나갈 생각이었다.
물론 직접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눈앞에 얌전히 떠 있는 완자를 바라본다.
‘완자를 보내는 게 과연 최선일까···’
그래.
난 카이저가 제안한 회동 자리에 완자만 내보낼 생각이었다.
안전만을 위한 3원칙에 입각한 결정.
안전하기 그지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내심 우려되는 사안들이 몇 가지 있었다.
‘일단 내 능력이 드러난다. 적인지 아군인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나노셰이퍼 능력을 공개할 이유는 없지.’
두 번째는 신뢰의 문제였다.
본인이 아닌 아바타가 나타나 간을 본다?
이는 상대를 불신한다는 의중을 대놓고 드러내는 행위니까.
초면부터 관계가 어긋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주인님께서 회동에 참여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니 정체를 드러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현장을 정찰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주인님이 원하시는 건 그들의 성향과 정보 아닙니까?
완자의 의견은 꽤 일리가 있었지만···
문제는 방법이었다.
“멜론 만 한 쇠구슬이 붕붕 떠다니면서 따라다니면 저들이 가만히 있을까? 나라면 따돌리거나 잡으려고 할 것 같은데?”
- 그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
갑자기 완자의 모습이 사라진다.
마치 스위치를 내린 듯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가만··· 사라진 게··· 아니야?’
통. 통.
허공을 손으로 툭툭 건드리자 무언가 만져진다.
보이지만 않을 뿐···
완자는 여전히 이곳에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투명해진다고? 맙소사··· 이거 어떻게 한 거야?”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