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빙의 당한 것 같다
“공자님. 공자님.”
공자야, 대답 좀 해줘라. 시끄러워 디지겠네.
“공자님, 일어나셔야 합니다.”
누군가가 조심스레 나를 건드는 느낌에 나는 팔을 휘휘 저어 쫓아내려 했다. 적어도 그러려고 했는데···.
쿵!
“아오, 샹.”
왜 침대에서 떨어지고 지랄······. 아 잠시만. 내 원룸에 침대가 어딨어. 그제야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나를 걱정스레 내려다보는 노친네와 당황스러워하는 내 또래의 남자 두 명이 보였다.
‘이거 우리 집 아닌데?’
딱 봐도 볕 잘 드는 공간이었다. 넓은 공간에서만 맡을 수 있는 공기 냄새도 한몫했다. 여기가 어디야.
“으악!”
벌떡 일어나기가 무섭게 내 시야는 다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아이고, 공자님!”
그러자 늙은이의 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뭣들 하는 것이냐! 공자님을 어서 침대로 다시 모시지 않고!”
노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몸이 들어 올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노인네 옆에 있던 놈들이 나를 들어올린 것이었다. 그런데 한 놈의 위치가 이상했다.
‘왜 허벅지 사이에 있고 지랄이야.’
띠겁게 놈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으아아아악!”
그리고 알아차렸다. 왜 놈이 내 허벅지 사이에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내 다리!”
나는 덜렁거리는 오른쪽 바지자락을 바라보며 외쳤다.
“시발, 내 다리 어디 갔어?!”
그랬다. 다리 하나가 보이질 않았다. 정확히는 허벅지 중간 부분에서부터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내 다리이!”
“공자님! 진정하십시오!”
“지금 할배 같으면 진정하게 생겼어?!”
기겁한 내가 열심히 발버둥치는 것이 버거웠는지, 남자 둘은 나를 서둘러 침대로 올려놓고는 나를 내리눌렀다.
“이거 안놔!”
내 다리가 어떻게 된 건지 확인은 해봐야 할 것 아냐! 나는 놈들을 떼어내려 두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런데······.
“으아아악!”
나는 허공을 휘젓는 오른손을 바라보며 외쳤다.
“내 왼팔은 또 어디 갔어?!”
“도련님, 진정하십시오!”
“의사! 의사를 불러와라.”
“으아아아악!”
누가 봤더라면 가관이었으리라. 나는 지랄지랄 악을 써대고 있지, 한 놈은 그런 나를 붙잡느라 애를 쓰고 있었지. 다른 한 놈은 노친네의 말이 들리고 나서 방을 뛰쳐나가는 듯 보였다.
“시발! 내 팔다리 어디 갔냐고오!”
“공자님 잊으셨습니까?”
다급한 노친네의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어릴 적 사고로 팔다리를 잃으셨잖습니까!”
무슨 미친 소리야.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내가 왜 사고를 당해!”
이건 말도 안 된다. 꿈이지 않고서야. 말도 안 되지.
“집사님, 의사를 데려왔습니다!”
“그래, 선생. 진정제를······!”
헉헉.
뭘 했다고 벌써 숨이 차는 거야. 발버둥 몇 번 쳤다고 기력이 빠질 저질 체력은 아니었기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힘이 빠져있는 사이, 놈들은 타이밍 좋게 내 오른팔을 잡아 눌렀다.
“공자님, 진정제를 놔드리겠습니다.”
한숨 자면 괜찮아질 거라며 수염난 중년남성이 말했다. 그래, 시발. 이게 꿈이면 자고 일어나면 되는 거 아냐.
나는 반항을 멈췄다. 그리고 주사가 놓이자마자 스르륵 눈이 감기는 것이 느껴졌다.
효과 존나 좋네······.
***
구라였다.
한숨 자면 괜찮아질 거라며. 왜 아직도 내 원룸이 아닌 건데!
“진정되셨습니까, 공자님.”
노인이 나를 보며 물었다. 이건 진정이라고 보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사람을 마비시켜놓은 거 같은데.
“좀 괜찮아지신 것 같군요.”
의사의 말에 나는 침이라도 뱉을 요량으로 입술을 움직이려 했으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공자님께서 잠에서 깨어나시더니 갑자기 저렇게······.”
노인의 말에 의사가 답했다.
“아마 꿈과 혼동을 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거든, 돌팔이 새끼야.
“종종 그런 환자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을 수 없는 저들은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용은 대충 진정제 효과가 사라지고 나면 내가 정신을 차릴 거라는 거였는데······.
개뿔이!
난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이고, 그게 팩트라고! 생각할수록 화가나서 몸을 버둥거렸지만, 내 입에서는 끙끙대는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젠장.
‘후우.’
그래, 진정하자. 그래도 일단 내 상태는 확인해야겠지. 나는 다시 심호흡을 하고, 간신이 눈동자를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봤다.
오른쪽 다리와 왼쪽 팔이 없는 것도 모자라 말라비틀어진 몸뚱이. 심지어 오른쪽 다리에는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건 내 몸이 아니었다. 속으로 헛웃음이 나와버렸다.
“그럼, 전 이만.”
돌팔이 새끼가 방을 나선 뒤, 노인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수건으로 내 이마를 꾹꾹 눌렀다.
“공자님. 저는 공자님께서 그만 힘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눈물을 훔치던 노인은 그대로 널브러져 있던 이불까지 가지런히 내게 덮어준 뒤 말했다.
“잠시 뒤에 오겠습니다. 쉬고 계십시오.”
쉬기는······.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부터 알아야지. 하지만, 다시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놔, 약효 아직 안 가셨냐?
이젠 하다못해 내 눈꺼풀하고도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천하장사도 들어올리기 힘든 것이 눈꺼풀 이랬던가. 이번 싸움에서도 내가 졌고, 시야는 암흑으로 변해갔다.
***
내가 그 퀴퀴한 원룸을 고대하며 눈을 뜨길 한 달 째. 나는 내 처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엔 내가 에X워드 엘X에 빙의된 건가 싶었다.
하지만 생긴 게 금발 금안은 아니었기에 바로 제외했다. 그러자 남은 옵션은······.
‘이세계 빙의.’
이게 무슨 중2같은 발언인가 싶으면서도 그것밖엔 이 거지 같은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 됐고. 내가 가진 정보나 복기해보자.’
첫째, 내 이름은 마르엥겔 아펠리온. 아펠리온 대공가의 외동아들이다.
둘째, 나를 내려다본 노친네는 대공가의 총괄집사, 다니엘이다.
셋째. 다니엘에 따르면, 마르엥겔은 아펠리온 가문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줄 유망한 후계였었다.
넷째. 이곳에서 나는, 아니 마르엥겔 아펠리온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 없다.
왜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했냐면, 별다른 용무가 없이는 아무도 내 방을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몸도 불편한데, 휠체어도 없고 돌아다닐 수가 없는 처지인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창밖의 연무장을 내다보거나, 식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뿐.
“이게 사람 사는 거냐?”
짜증이 섞인 마르엥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나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마르엥겔의 아버지인 아르반 아펠리온이 매정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
적어도 다니엘의 입에서 나온 아펠리온 대공의 이미지는 그랬다. 고로 내 부탁 정도는 들어줄 수 있을 법했다.
똑똑.
내가 푸념이나 해대던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식사 시간인가.
“공자님.”
다니엘이었다.
“대공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빙의되고 나서 처음 보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엥겔.”
중후한 목소리가 내게 말했다.
“몸은 좀 어떠냐.”
어떻겠습니까, 아저씨.
물론 생각으로만 삼킨 말이었다. 나도 지랄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고.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형님.”
뭐, 형님?
나는 대공 뒤에 서 있던 시종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께서는 늘 형님 걱정이십니다.”
아버지? 나 외동아들 아니었어?
“그리고 오늘 아버지께서 황궁의 부름을 받아 가십니다.”
시종인 줄 알았던 놈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저도 같이 가고요. 황제폐하의 명을 받드는 아버지를 모실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를 보러왔다는 놈의 면상과 대공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니, 둘이 닮지도 않았는데?’
“어디 불편한 점이라도 있느냐, 엥겔?”
아펠리온 대공의 물음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닙니다.”
“그럼 되었다.”
아펠리온 대공이 뒤돌아섰다. 뭐야, 이게 끝이야?
“형님, 쾌차하셔야합니다.”
대공 뒤에 있던 놈이 나를 보며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하지만, 저게 뭐 하는 새끼인지 알아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아버지!”
“왜 그러느냐.”
“드릴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라는 말에 아펠리온 대공의 눈동자가 커져갔지만, 정작 뭐냐는 물음은 나오지 않았다.
“형님답지 않습니다. 부탁이라니요.”
넌 닥쳐. 나는 옆에 있는 놈의 말을 깡그리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새로운 팔과 다리를 가지고 싶습니다.”
그러자 아펠리온 대공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형님,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체불명인 놈이 초를 치기 시작했다.
“잘린 팔다리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형님.”
“그렇다면, 의족 의수를 사용하면 된다.”
그러자 경박한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꿨다.
“아, 죄송합니다. 형님께서 당치도 않는 말씀을 하시니까─.”
“세드릭.”
아펠리온 대공의 중재에 놈의 아가리가 다물렸다.
“하지만, 엥겔. 세드릭말도 맞다.”
의족 의수를 사용하지 않는 세계관인가? 뭐, 그래도 상관없다.
“아뇨, 가능합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왜냐고? 내가 만들 수 있으니까.
“대공가의 기술자들을 제 방으로 모이게 해주십시오.”
대한민국 건장한 청년인 나의 직업은 의지장구사. 즉 의족 의수와 보조기구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제가 만들겠습니다.”
나는 기세 좋게 말했다.
“제 팔다리는 제가 만듭니다.”
아펠리온 대공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정신이 나갔다고 하더니, 사실인가 보네?”
대공이 없는 방에 홀로 남은 세드릭 놈은 대놓고 반말을 찍찍 내뱉기 시작했다.
“뭐래, 적자도 아닌 새끼가.”
그러자 대번에 세드릭의 얼굴이 굳어졌다. 찍었는데 맞았나보다.
“닥쳐. 너 따위 병신이 없었다면, 내가 진즉에 후계자가 되었을 테니까.”
으르렁대는 놈을 향해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넌 그럼 병신 하나 이겨먹으려고 최선을 다해봐라.”
그러자 내 멱살이라도 잡을 요량인지 놈은 성큼 달려들었다. 그런데,
똑똑.
노크 소리가 그를 방해했다. 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정심을 되찾은 얼굴로 내 옆에 서 있었다.
“들어오세요.”
야 이 새끼야, 여기 내 방이거든?
“저, 공자님. 저희를 부르셨다고······.”
방문 앞에는 한 손에 모자를 든 사람들이 서 있었다. 거뭇한 것들이 묻어있는 투박한 손은, 기술자들의 손이었다.
“아, 맞아. 내가 불렀다.”
그러자 기술자들이 쭈뼛쭈뼛 내 곁으로 다가오는 척했다. 누가 봐도 이 새끼 눈치부터 보는 걸 알 수 있었다.
“동생아, 넌 이만 가보지 그러냐?”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형님.”
놈이 내 어깨에 얹은 손아귀에 힘을 주며 말했다.
“건강 잘 챙기세요.”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아팠지만, 나는 일부러 세드릭 새끼를 노려보았다. 내가 여기 오기 전엔 3대 400 치던 사람이었다고.
“저······. 공자님?”
놈이 내 방을 나설 때까지 눈알을 부리던 나는 시선을 돌려 기술자들을 바라보았다.
“아, 미안.”
“아닙니다.”
“이제부터 내가 말하는 것을 만들어줬으면 좋겠군.”
나는 그들이 가져온 펜에 잉크를 묻혀, 양피지에 거리낌 없이 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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