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닝
“이, 이걸 침대에 달아달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들은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며 되물었다. 아무래도 내가 제정신이냐고 물어보고 싶은 듯 보였다.
“응, 맞아.”
나는 딱 부러지게 말했다.
“이게 내가 원하는 거야.”
기술자들은 나를 무슨 마조히스트 보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왜 이래. 나도 고통을 즐기는 이상 취미 같은 것은 없다고.
“언제까지 만들어 줄 수 있지?”
나의 물음에 기술자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데.”
나의 말에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대답했다.
“내일모레까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와, 그렇게 빨리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공자님.”
나는 물러나는 기술자들을 손짓으로 배웅한 뒤, 바로 배를 깔고 엎드렸다.
“으윽······.”
오른팔로 침대를 밀며 고관절 스트레칭을 하자, 굳은 몸뚱이가 비명을 내질렀다.
오른쪽 힙 플렉션 컨트렉쳐 (Hip flexion contracture: 고관절이 굽혀진 채로 고정되어있는 상태)가 심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크읏······!”
하지만, 이건 버텨야 하는 순서였다. 의족을 착용하려면 저 굳은 고관절을 풀어주는 것이 먼저니까.
근육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만큼 목구멍으로 비명이 튀어나오려했다.
“윽······!”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트레칭을 계속해 나갔다.
그렇게 기술자들이 말한 날까지 나는 밥시간, 자는 시간을 빼면 스트레칭에 몰두하며 살았다.
그리고 약속의 날.
기술자들은 정말로 내가 부탁한 장비 만들어서 왔다.
“······설치가 다 되었습니다, 공자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공구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고마워!”
그들 덕분에 내 침대는 우락부락해졌지만, 나는 대만족이었다.
나는 침대 밖에 달린 무게추와 도르레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내가 그들에게 부탁한 것은 퍼스널 헬스기구였다.
“저, 그러면 저희는 이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대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나같이 벽에 찰싹 붙어있던 기술자들이 우르르 방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된 방 안. 나는 낑낑거리며 기구에 앉았다.
일단 내가 맨손근력검사를 해본 결과 내 왼다리는 너무 약했다. 종아리부근은 아예 근육의 움직임조차 보이질 않았다. 그나마 허벅지는 힘이 좀 남아있어서, 다리를 들어올리거나, 미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상태로 다리운동은 불가.
고로 나는 팔운동 먼저 하기로 했다. 근데 내가 무게를 드는 건지, 무게가 나를 드는 건지. 그렇게 몇번의 실랑이 후, 지쳐나가떨어진 나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후우, 후우.”
겨우 이 정도로 숨이 차는 게 기가 막힌다.
‘지금의 나를 본다면 K0 레벨이려나.’
K0레벨이면 의족이 있어봤자 쓸 수 없는 아주 열약한 상태였다. 나는 씁쓸하게 창밖을 내다보았다.
연무장엔 내 또래의 성인 남성들이 뜀박질하고 있었다.
‘나도 달리는 게 취미였다고.’
다시 한번만 달려보고 싶었다. 허파에 가득 차는 상쾌한 바람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K레벨을 2로 올려야 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뜻이었다.
“자, 그럼 스트레칭을 해볼까!”
나는 다시 배를 깔고 엎드렸다.
***
“아르반.”
대공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있는 단 한명이 명했다.
“서부 지역 마수 토벌을에 앞장서서 싸워주게.”
서부 지역은 애쉬톤 변경백의 담당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랬다.
“변경백의 사망으로, 현재 공석인 그 자리를 자네가 맡아준다면 빠르게 토벌을 마칠 수 있다는 의견들이 많았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폐하.”
아르반 아펠리온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 뻔했다.
“토벌의 기한은 한달입니다, “
그러자 황제의 옆에 서있던 황태자가 말을 이었다.
“대공의 실력과 비교하면 하수나 다름없는 마수들이니, 한달도 길다고 생각되지만······.”
살풋 웃는 것이 마치 혀를 낼름거리는 뱀새끼와 같았지만, 아르반은 반론하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만족했는지, 물러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를 따라 알현실을 나선 아르반의 뒤로 세드릭이 말을 걸어왔다.
“아버지. 조사해보니 서쪽 마수는 주로 중급과 상급으로 구성되어있답니다. 황태자 전하의 말씀대로 쉬울 것입니다.”
세드릭의 말에 아르반은 대꾸하지 않았다. 애초에 황태자쪽에서 추천한 양자였다. 그자의 입김이 닿지 않았을리 없었다.
“아버지?”
“그래, 알겠다.”
아르반은 속도를 낮추지 않은 채 답했다.
“공작저에서 정비한 뒤,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다.”
“예, 아버지!”
그렇게 아르반 아펠리온의 출전이 시작되었다.
***
황태자와 세드릭이 말한 것과는 다르게 토벌은 쉽지 않았다. 그럴만했다. 비록 중급과 상급의 마수들이었지만, 속성이 어둠이었기때문이었다. 어둠의 종은 무기를 다루는 인간들에게 있어 상당히 까다로웠다.
“이럴리 없습니다, 아버지. 이 토벌은 분명 쉽게 끝났어야하는데······!”
세드릭의 말에 아르반은 말없이 지도만 바라보았다.
“노심초사하지 말거라. 어둠 속성의 마수들에겐 물리적인 타격을 입힐 수 없으니, 장기전으로 들어갈 것은 이미 예측했다.”
그러자 세드릭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버지. 황태자 전하께 한달안에 토벌하겠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렸는데,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가다간, 아버지의 명성에 누가······.”
그 말에 아르반은 빤히 자신의 양자를 쳐다보았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아버지.”
“피곤할텐데, 이만 쉬거라.”
“예, 아버지.”
천막을 나오며, 세드릭은 턱을 사리물었다.
‘저 빌어먹을 늙은이.’
한시라도 빨리 서부지역에 안정을 가져와 황태자 전하의 근심을 덜어드려야하는데, 도대체가 움직일 생각을 않고 있다. 여지껏 한 것이라고는 병사들을 시켜 무언가를 듬성듬성 땅에 묻은 것 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 것인가!’
촤락.
세드릭은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천막 입구를 열었다.
“오셨습니까. 세드릭 님.”
세드릭은 제 천막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부하를 삐뚤게 쳐다보았다.
“’세······드릭 님?’”
부하의 말을 따라하던 세드릭이 그대로 발길질을 날렸다.
“감, 히!”
불시에 발길질을 맞고 떨어진 부하는 익숙하다는 듯, 곧바로 세드릭 앞에 서서 대기했다. 그러자, 또 다시 발길질이 시작되었다.
“아펠, 리, 온 가문의, 공자, 이름을!”
천막을 잡아먹을 듯한 소음에 사람들이 올법도 한테, 아무도 천막을 살피는 이는 없었다.
“어디서! 함, 부로! 부르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도련님!”
세드릭은 분이 풀릴때까지 부하를 차고 또 찼다. 그럼에도 부하놈은 살려달라는 소리한번을 하지 않는다.
“재수 없으니까 꺼져!”
결국 세드릭의 호통이 있고나서야, 부하는 절뚝 절뚝 천막 밖으로 나섰다.
“으아아아!”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익숙한지, 병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직도인가?”
“그런 것 같더군.”
“······도대체 주군은 무슨 생각이신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아펠리온 공작의 명을 따라 해가 지는 밤마다 방어전만 펼친 군대였다. 이리 되니 군사들의 사기도 자신들이 판 땅만큼 내려간 상태였다.
“우리가 무슨 땅만 파러 이곳에 파견 온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래도 어쩌겠나, 주군께서 다 뜻이 있으시겠지.”
그렇게 주군의 뜻을 헤아리다가, 또 2주가 지났다.
해가 완전히 진 밤.
아펠리온 공작이 조용히 감은 눈을 떴다.
“때가 되었다.”
달 한점 떠있지 않은 캄캄한 어둠 속, 그가 나타났다.
“제군들.”
공작은 자신의 군대를 바라보았다.
“오늘 밤을 계기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드디어 본업을 하게 되었다는 군사들의 생각에 비장함이 서려있었다.
키에에에─.
주변에서 들려오는 마수들의 울음소리도 경각심을 돋는데 한목 했다.
키에에에─!
시시각각 들려오는 마수의 소리는 그 수를 가늠치 못하게 했다.
‘제기랄, 도대체 얼마나 모여든 것인가.’
제 양아버지와는 다르게 울음소리에 겁을 먹은 세드릭이 입술을 깨물었다.
달빛조차 없는 칠흑은 놈들이 활동하기 더없이 좋은 환경을 선사했다.
‘아버지는 도대체 왜······!’
이런 열약한 환경을 고집하셨는지 모르겠다.
키에에엑─!
아니나 다를까, 언덕밑을 보니, 시커먼 것들이 우글우글 거렸다.
이것들이 진지 근처까지 왔다.
까드득 세드릭이 턱을 사리무는데, 아펠리온 공작의 외침이 들려왔다.
“발동하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마법진이 땅속에서 피어 오르며 순백의 빛을 쏟아냈다. 군사들이 힘들게 땅에 묻은 그 자리들이였다.
끼에에엑─!
빛을 정통으로 맞은 나이트워커와 쉐도우가 파스스 재가 되어 사라졌다. 부분 적으로 맞은 놈들의 사지또한 멀쩡하지 못했다. 그렇게 마수의 1/3이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한 병사들은 제가 한 일이 헛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군, 돌격하라!”
“으아아아아!”
사기가 오른 군사들이 주군의 명을 받들어 마수들이 들끓는 판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 저게······. 뭡니까?”
세드릭의 벙찐 물음에 아르반은 순순히 답했다.
“성력을 담은 빛이다.”
지뢰처럼 사방으로 빛이 퍼지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어네스트와 바르바디 팀이 이리도 멋진 장비를 만들어냈다.
“그럼, 오늘까지 기다리신 것은······?”
“놈들이 가장 많이 기어나올 때를 노린 것이다.”
그랬다. 한번에 토벌하려면, 이게 제일 효과적이었으니까.
“저 빛을 이용하여, 놈들을 처단하라!”
어네스트가 특별이 공수한 성력을 담았다고 했다. 그러니 그 값을 십분 활용해야했다.
아르반의 군대는 베테랑이었다. 그들은 이미 땅을 솟아오른 빛이 마수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오러로 흡수해 마수를 처단했다.
베어질 수 없었던 무리가 삽시간에 반토막이 났다. 그렇게 제 군주의 참 뜻을 알게 되었던 군사들은 여명이 틀 때까지 호기롭게 토벌을 계속 했다.
***
“와아아!”
“아펠리온 대공전하 만세!”
“아펠리온 만세!”
토벌이 끝나고 명예롭게 서부지역을 떠나는 대군을 제국민들이 배웅했다. 색색의 양피지 꽃가루를 뿌리며 축제의 기분에 젖어든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가 만개했다. 하지만, 아펠리온 대공의 표정인 변화가 없었다. 그저 제 임무를 다했다는 듯, 그는 손을 흔들고는 에쉬톤 변경백령을 떠났다.
그리고 도착한 수도.
의외로 수도는 적적했다. 토벌을 끝내고 온 그들을 위한 환영식도 없었다. 대공저로 향하는 그들의 뒷모습은 쓸쓸해보일 정도였다.
“오셨습니까.”
다니엘을 포함한 사용인들이 피곤한 여정을 마친 군대를 맞이했다. 그래도 집안 사람이라고 이리 챙겨준 것이리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버지.”
그 때 아르반은 다시는 밖에서 들을 수 없었다 생각했던 목소리를 들었다. 놀란 그가 말에서 내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너······.”
아르반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네, 접니다, 아버지.”
그곳에는 엥겔이 서 있었다.
그것도 혼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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