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불구 자식 vs 주워온 자식

세드릭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어차피 저 새끼가 설치지 못하게 밟아줄 생각이었으니까.’
세드릭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병신새끼를 노려보았다.
“좋다, 그 결투 받아들이도록 하지.”
그러자 병신과 저를 둘러 싸고 있던 기사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들은 세드릭이 사람구실도 못하는 공자의 대결신청을 받아들였다는 것에서부터 놀라는 것 같았다.
“기사도 정신에 어긋나는 거 아니야?”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흥, 그깟 기사도.’
세드릭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보는 눈이 있으니, 기사도를 지키는 시늉이라도 해야했다.
“결투 날짜와 종목은 네 놈이 정해라.”
세드릭이 말하자, 병신은 좋아라 웃으며 말했다.
“야, 배려해줘서 고오맙다.”
그러더니 놈은 바로 날짜와 종목을 골랐다.
“한 달 뒤, 이 자리에서 검으로 승부를 보도록하자.”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더 길게 잡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짓밟히는 건 네 놈이 될테니까.”
여유롭게 받아쳤다고 세드릭은 생각했다.
“아, 난 너를 위해서 1달을 준건데? 네가 하도 훈련을 안해서 검이 녹슬었다더라.”
이게 진짜 입만 살아서는! 분을 못 이긴 세드릭이 주먹을 들어올리자, 이번엔 기사들이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섰다.
“아이고, 공자님들! 그만하십시오. 기사단장님이 아시면 바로 대공께 보고가 들어갈겁니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버지귀에 들어가는 것만은 절대로 피해야 했으니까.
“후우······.”
짜증스런 한숨을 내뱉은 세드릭은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며 병신에게 외쳤다.
“한 달 뒤에 보자. 그땐 울면서 땅바닥을 기어도 봐주지 않을 줄 알아.”
”뭐, 그러던가.“
놈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믿는 구석이 있는건지 뭔지. 그게 짜증났던 세드릭은 땅에 침을 뱉고는 그대로 연무장을 나와버렸다.
***
그 뒤로 아펠리온 가는 결투 얘기로 들끓었다.
“얘, 그 얘기 들었어?”
“아, 공자님들의 결투?”
“그래! 그거 어떻게 될 거 같니?”
“첫째 공자님을 말려야하는 거 아냐?”
“나도 그렇게 생각······. 어머, 공자님!”
청소를 하며 입방아를 찧던 하녀들이 나를 보고는 서둘러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꾸중하려는 건지, 뒤쫓아가려는 다니엘을 나는 붙잡으며 생각했다.
‘그렇겠지. 누가봐도 내가 불리한 싸움이긴 해.’
하지만, 나도 안전장비 하나 없이 불구덩이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그 힘······.’
내가 넘어지려고 할 때마다 나와서 나를 지탱했던 그 힘이 나의 믿을 구석이었다.
“도련님. 굳이 그 결투를 하셔야겠습니까······?”
내 뒤를 따라오는 다니엘의 근심어린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꼭 해야한다. 이건 세드릭 그 놈에게 아펠리온 가의 질서를 알려주는 일이니까.”
그러자 다니엘은 더 이상 나를 만류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내가 가는 길을 조심스럽게 따라올 뿐이었다. 그런 다니엘을 데리고 나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기사단장을 보러 왔는데?”
내가 용건을 말하자, 기사들이 서둘러 단장을 부르러 달려갔다. 그러더니 곧 한 남자가 두 사내를 대동하고 내 앞으로 걸어나왔다. 풍채 좋은 남자가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대가 오러 유저라는 소리를 들어서 말이야.”
그러자 기사단장의 입매가 굳게 닫혔다. 대신 옆에 있던 부단장이 웃긴 농담을 들었다는 듯이 킥킥대며 물었다.
“설마 공자님이 오러 유저가 되려고 하시는 겁니까?”
딱 봐도 날 대 놓고 무시하려는 태도가 보였다.
“그 몸으로요?”
급기야 턱짓으로 나를 가리키는 부단장을 향해 나는 차갑게 물었다.
“그게 무슨 문제지?”
그제야 부단장이 멈칬했다. 하지만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토해냈다.
“그걸 몰라서 물으시는─.”
“그만 해라.”
그 때, 기사단장이 부단장을 꾸짖었다. 덕분에 저 부단장놈의 아가리에 어퍼컷을 날릴 기회를 놓쳐버렸다. 기사단장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따라 오십시오, 공자님.”
그 말에 나는 부단장의 어깨를 괜히 치고 지나갔다. 부단장의 얼굴은 굳어졌지만, 내게 뭐라하지는 못했다.
“오러에는 어쩌다 관심이 생기신 겁니까?”
복도를 걸으며 기사단장이 물었다.
“음······. 내가 오러를 사용한 거 같아서? 그게 맞나 확인해보려고.”
내 말을 들은 기사단장이 우뚝 멈춰섰다.
“오러를 사용하신 것 같다고요?”
“응.”
나는 담백하게 내가 느꼈던 기운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게 날 지탱해줬다는 것도.
“······이쪽으로 와보시죠.”
기사단장이 나를 개인 훈련장으로 데려왔다. 햋빛 아래 여러 종류의 무기들이 정렬되어있었다. 그중에 유독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다.
낡고 무뎌진 검.
잘 다듬어진 다른 무기들과는 달랐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검을 집은 기사단장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잡아보시겠습니까?”
나는 기사단장이 건넨 낡은 검을 바라보았다. 딱 봐도 보통 검같지는 않았다.
“이게 뭔가?”
내가 묻자, 기사단장이 답했다.
“제 스승님의 검입니다. 스승님은 소드마스터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투박한 검이 뭔가 새롭게 보였다. 나는 조심스레 오른 손을 들어 검 손잡이를 잡았다.
“······.”
하지만 그게 다였다. 검을 잡는다고 뭔가 확연하게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뭔가 느껴지는 게 있으십니까?”
기사단장이 약간의 기대를 품은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아니.”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기사단장은 실망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다시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디 한번 오러를 끌어내볼까요?”
그러더니 그가 갑자기 검을 꺼내들었다. 내가 뭐라 할 새도 없이 검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내 머리통을 겨눴고, 반사적으로 나는 낡은 검을 들어 방어자세를 취했다.
날붙이가 맞붙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기사단장의 힘을 이기지 못한 내 몸이 뒤로 고꾸라질 때였다.
‘이러다간 넘어진다!’
싶었던 찰나, 다시 몸에서 무언가가 쑤욱 빠저나가는 기분이 들더니, 내 다리를 지탱해줬다.
“아······. 말씀하신 오러가 이거군요.”
칼을 거둔 기사단장이 내 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확실히 공자님은 오러유저가 맞으십니다. 다만, 오러가 저쪽에서 발동한다는 것이 신기하군요.”
정확히 내 의족을 짚은 기사단장이 검을 거둬들이며, 내게 목례했다.
“그럼, 이만.”
“어? 잠깐만!”
내 부름에 기사단장이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난 이 오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른다.”
“예, 그래보입니다.”
······기사단장, 날 놀리는건가?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다시 숨을 고르고는 그에게 부탁했다.
“자네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안됩니다.”
그러자 칼같은 거절이 돌아왔다.
“아니, 왜? 생각은 해보고 거절하는 건가?!”
내가 따져묻자, 기사단장이 담담하게 나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오러사용법을 익히셔서 세드릭 공자와의 결투에 임하시려는 계획이잖습니까.”
맞는 말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사단장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래서 안된다는겁니다. 결투는 공평해야하니까요.”
저런 꽉막힌 사람같으니라고. 속으로 한 불평을 읽힌 것인지 기사단장이 나에게 물었다.
“제가 세드릭 공자에게 검법을 가르쳐도 괜찮겠습니까?”
“당연히 안된다!”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서 공자님의 부탁을 거절한 겁니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공자님. 아까의 감정을 복기해보십시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그렇게 그는 나를 두고 개인 연무장을 나서며, 부하에게 말했다.
“공자님을 저택까지 모셔다 드리도록.”
그의 말에 나는 손을 들며 거절의사를 밝혔다.
“나 혼자 충분히 갈 수 있다.”
그리고 걸음을 떼면서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이 의족에 오러를 넣을 수 있을지를.
***
한달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버러지같은 병신새끼는 그동안 제 방에 틀어박혀있거나, 기술장을 찾아가기만 했다. 결투에서 이길 생각이 있긴 한건지 의문일 정도로 조용한 놈의 행보에 세드릭은 잠깐 의아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제깟놈이 뭘 할 수 있겠어.”
세드릭은 피식 웃으며 침대에 누웠다. 내일 놈을 뼈도 못추리게 합법적으로 두드려 팰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서 잠이 오질 않았다.
그래도 자야했다. 괜히 컨디션 난조로 그 병신을 혼쭐 낼 귀한 시간을 낭비하긴 싫었으니까.
아펠리온 가의 모든 이들이 이 결투가 어찌 끝날지 궁금해 했으며, 모두들 세드릭이 이길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당연한 얘기였다.
“좋아. 최상의 컨디션으로 그 자식을 묵사발내는 거다.”
그렇게 다짐한 세드릭은 서둘러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연무장으로 나온 세드릭은 가볍게 몸을 풀며, 삼삼오오 모여 연무장을 바라보는 사용인들을 훑어보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구경하러 나왔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파는 많았다.
그 점이 만족스러웠던 세드릭이 한 쪽 입꼬리를 늘릴 때였다.
“어머.”
한 사용인의 외침에 시선을 돌리니, 병신새끼가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지팡이도 없이 오는 걸음에서 절뚝거림은 더이상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변화를 눈치 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르엥겔 공자님 팔에 달린 저게 뭐야?”
“그러게······?”
“집게인가?”
다들 마르엥겔 아펠리온의 몸에 달린 이상한 물건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크하학!”
그리고 세드릭은 그런 놈의 외관을 손가락질 하며 배를 잡고 웃었다.
“설마 저걸 팔이랍시고 달고 온 건 아니지?!”
“맞는데?”
그냥 원통같은 나무에 집게를 달아놓고 팔이라니! 세드릭의 웃음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그를 따라 몇몇 구경꾼들도 낮은 웃음을 토해냈다. 하지만, 병신새끼는 부끄럽지도 않은가보다. 그는 오히려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걸 유식한 말로 의수라고 한단다, 멍청한 동생놈아.”
이게?! 놈의 도발에 세드릭의 얼굴에서 웃음이 증발해버렸다. 세드릭은 천천히 상체를 피면서 놈을 노려보았다.
“그래. 네 놈의 잘난 주둥이가 결투 뒤에도 살아있는지 한번 보자고.”
어깨를 돌리며 몸을 푼 세드릭은 곧바로 검을 집어들었다.
“잡아, 병신아.”
그 말에, 놈은 천천히 옆에 있던 검을 들어올렸다. 한팔로 취하는 방어자세는 정말이지 너무나 우스꽝스러웠다.
“받아라!”
세드릭은 지체없이 검을 낮게 들어 올려 놈의 옆구리를 노렸다.
챙—!
병신이 칼을 내려 방어하는 바람에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으나, 세드릭은 이어서 다음 공격을 하기 위해 검을 다시 들어올렸다.
“끝이다!”
이번엔 힘으로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그래서 세드릭은 강하게 검을 내리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격이 막혔다. 그것도 생각치 못한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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