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의지와 유배
“제가 시간을 끄는 사이 도망가십시오.”
비장한 목소리가 나직히 말했다.
“산의 마나를 흡수하고 있는 만큼, 산 아래까지 내려가진 않을 겁니다.”
바르사가 나를 재촉했다.
“아셨죠, 공자님?”
머리로는 알겠다. 나나 다른 사람들이 있어봤자 도움도 안될테니까. 하지만, 두고 간다는 게 내 자존심을 긁었다. 고민보단 몸이 절로 움직였다.
“아니, 나도 같이 싸우겠다.”
검을 빼든 나는 바르사 옆에 섰다. 오러를 의족의수와 부츠에 넣은 내가 기합을 다지는데, 갑자기 바윗덩어리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쿠구궁─!
마고일의 주먹질에 땅이 울렸다. 미리 오러를 넣어놔서 재빠르게 피할 수 있었지, 아니었다면 갈라진 땅 속으로 떨어질 뻔 했다.
마고일의 주먹이 땅에 박힌 틈을 타 바르사가 마고일의 팔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는 어깨 부분에 검을 내리 찔렀다.
챙─!
날붙이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지만, 정작 검은 마고일의 몸을 뚫진 못했다. 그때, 마고일이 귀찮은 파리를 쫓는 다는 듯이 제 어깨를 손으로 탁 쳤다. 스톤 골렘과는 다르게 움직임이 빠른 편이었다.
“바르사!”
다행히 손을 피해 빠져나온 바르사가 미끄러져 나왔다.
“단단하네요.”
바르사가 검을 들고 있던 손을 흔들며 중얼거리는데, 마고일의 사악한 얼굴이 우리쪽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씨익 웃었다.
식은 땀이 흘렀다.
‘살육을 즐기고 있구나.’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공책을 뒤지고 있는 길잡이와 어쩔 줄 몰라하는 광부에게 소리쳤다.
“먼저 내려가!”
내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들은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길잡이가 외쳤다.
“공자님! 마고일 가슴 정 중앙입니다!”
거기에 핵이 있다는 소리였다.
“바르사. 우리도 내려가면서 놈의 핵을 노려야해.”
산에서 떨어지면 저 마고일의 힘도 조금은 줄어들테니까. 그러자, 바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불리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마고일은 개미를 잡는 짖궃은 소년 처럼 여러차례 손바닥으로 땅을 내리쳤다. 그럴때마다 산의 지형이 금세 바뀌어갔다.
쿵!
쿵!
쿵!
땅이 무너지고 지반이 흔들리는 정신 없는 상황에도 바르사는 공격의 기회를 찾았다. 여러번 그가 시도를 해봤지만, 검은 마고일의 피부도 뚫지 못했다.
“제길!”
이번에도 실패하고 지면으로 내려온 바르사를 노린 마고일의 주먹이 연달아 땅을 후려쳤다. 그리고 바르사의 발뒤꿈치쪽의 지반이 무너지면서 그의 균형이 흔들렸다.
“바르사!”
이를 놓치지 않고 마고일의 주먹이 공기를 갈랐다. 저걸 그대로 맞으면 죽겠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나는 바르사쪽으로 달려갔다.
쾅—!
“크흑!”
마고일의 돌주먹을 통째로 막은 내 의수를 통해 강한 진동이 몸을 타고 흘렀다. 오러가 없었다면 그대로 짖이겨졌을 힘이었다.
하지만 오러를 넣은 의수라도 재질에 한계가 있었다.
우지끈.
나무의 결이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러다간 큰일나겠다 싶어, 나는 의족을 들어 마고일의 주먹을 발로 밀었다.
그때, 주먹 앞쪽으로 뭔가가 휙 지나갔다.
바르사였다.
그가 마고일의 시선을 끄는 사이, 나는 발을 빼고 옆으로 굴렀다. 쿵 소리와 함께 내가 있던 자리가 깊게 패였다.
“괜찮으십니까?”
어느새 내 옆으로 온 바르사가 물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을 본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빨리 끝내야한다.’
그때, 덜컥하면서 의수 조각이 떨어졌다. 역시나, 팔뚝 부분의 나무가 부러진 것이다.
“잠깐······.”
나는 부러진 의수를 바라보았다. 나무조각이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쩌면 승산이 있을지도?’
그렇게 생각한 나는 부러진 의수에 오러를 담은 채, 마고일의 몸통으로 향했다.
“공자님!”
바르사의 외침을 뒤로하고 마고일의 팔을 디딤판 삼아 높게 점프한 나는 그대로 부러진 의수를 마고일의 가슴팍에 꽂았다.
푹─.
의수는 돌무더기를 뚫고 팔꿈치까지 들어갔다. 그러자, 마고일이 험악한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었다.
“어딜!”
나는 마고일의 돌 뿌리를 잡고 버티며, 더 깊숙하게 팔을 집어 넣었다. 어깨까지 박아넣고서야 마고일이 뒤뚱거리다 육중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흙먼지가 뿌옇게 시야를 가린 탓에, 덜그덕 돌덩이들이 굴러다니는 소리만이 우렁차게 들려왔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나를 찾아온 바르사는 놀란 눈으로 내 의수를 내려다 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나도 의수로 시선을 내렸다. 내 의수에는 진흙이 뚝뚝 떨어지는 갈색 덩어리가 꽂혀있었다.
“······마고일의 핵이네요.”
바르사가 중얼거렸다.
“그것도 가져가시면 나중에 좋은 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흙을 손으로 닦아내자 마고일의 핵이 그 모습을 완벽히 드러냈다. 돌을 깎아 만든 심장처럼 생겼다. 나는 그걸 옆구리에 끼고 바르사와 함께 산을 내려갔다.
“두 분, 무사하셨군요!”
산 입구에서 발을 동동구르던 길잡이와 광부가 우릴 발견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왔다.
“괜찮으신겁니까?”
“응. 그나저나 트리타니움은?”
나의 물음에 광부가 씨익 웃으며 주머니를 들어올렸다.
“당연히 챙겨왔습죠.”
“잘 했다.”
나는 광부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모두에게 돌아가자고 말했다. 그렇게 나의 첫 모험이 끝이 났다.
아펠리온 가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바르사와 함께 대공에게 귀환했다는 보고를 드린 뒤, 집무실을 나왔다.
“바르사, 수고했다. 언젠가 밥 한끼 같이 하지.”
“예, 공자님.”
나는 고개를 숙이며 짧게 목례하는 바르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기술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고일의 핵까지 가져오셨다고요?!”
기술자들이 신기하다는 듯 핵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흔치 않은걸 가져오셨네.”
스티브가 중얼거렸다.
“마고일은 개체수 자체가 적은데······.”
그리고 막내 기술자 알렉스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이걸로는 뭘 만드실 건가요?”
“그러게.”
이 돌덩이로는 뭘 만들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데, 바르바디가 슬쩍 의견을 건네왔다.
“저걸 트리타니움과 섞으면 더 강한 금속이 될텐데요. 그 가짜 팔을 만드심이 어떨지요?”
바르바디가 내 부러진 왼팔을 가리켰다.
“그······. 나무 팔은 아무래도 검을 잡기엔 무리였습니다.”
머쩍게 이유를 대는 바르바디를 보며 나는 서둘러 입매를 고쳐잡았다.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나를 그렇게 정신나간 사람취급을 하더니만, 이젠 나서서 더 좋은 팔다리를 만들기위해 궁리를 하다니.
“그래. 그게 좋겠군.”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러자, 기술자들이 알아서 트리타니움과 마고일의 핵을 들고 대장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내가 디자인하고, 마법사와 기술자들, 그리고 대장장이들이 만든 KAFO와 의수가 완성이 됐다.
***
“요새 마르엥겔 공자님이 많이 달라지신거 같지 않아?”
“응. 지팡이 없이 걸으시는데도 보통 사람 걸음걸이하고 같던걸.”
사용인들의 대화를 몰래 엿들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창문 너머로 사용인들의 대화는 계속 흘러나왔다.
“그 뿐이야? 데이비드 말로는 연무장에서 훈련하시는 모습도 보통 기사들과 다름없었대.”
그 말에 나는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기구를 장착하고 나서부턴 몸이 한결 더 단단해졌기 때문이었다. 의수도 제법 사람 손다운 모습을 하고 있어서 검을 잡기에 한결 편했고.
“하긴, 몸이 불편하셨을 때도 세드릭 공자님을······.”
“쉿!”
그때, 사용인들의 대화가 뚝 끊기더니 발걸음 소리가 흩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곧 알 수가 있었다.
“빌어먹을 병신새끼가!”
세드릭이 또 히스테릭을 부린 탓이었다. 어느덧 내 근처로 다가온 세드릭이 중얼거렸다.
“이러다간 진짜로 파양당할지도 몰라······.”
그걸 걱정하고 있으면서 저딴 식으로 군다고? 어이가 없었다.
세드릭의 소문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근 들어 아펠리온 가의 사용인이라면 무조건 피하고 보는 게 세드릭 아펠리온이었다. 방에만 처박혀있던 내가 나오면서부터 저렇게 됐단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미친 놈처럼 중얼거리며 복도를 빠져나가는 세드릭의 발걸음이 멀어지자, 나는 몸을 일으키며 놈이 지나간 곳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사달을 낼 것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르엥겔 공자님! 어디 계십니까?”
나를 찾는 다니엘의 목소리에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린 나는 그대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야?”
내가 묻자, 복도 끝에서 나를 찾고 있던 다니엘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주인님께서 공자님을 찾으십니다.”
“나를? 왜?”
아펠리온 공작이 딱히 나를 부를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니엘도 그가 왜 날 부르라 했는지 알면서도 입을 꾹다무는 것이 말해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지금 가면 되는건가?”
내가 묻자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집무실로 안내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아펠리온 대공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자리를 권했다.
“앉거라.”
그의 명에 따라 소파에 앉으니, 대공이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며 뜸을 들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묻자, 아펠리온 대공이 나를 바라보았다.
“몸은 좀 어떻느냐?”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러자 대공의 붉은 눈동자가 내 의수를 직시했다.
“그래도 저택에만 갇혀있다시피하니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질 수도 있지 않느냐.”
“······.”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대공이 본론을 꺼냈다.
“이젠 걸어다닐 수도 있고 하니, 기분 전환 삼아 남부지방에 갔다오는 게 어떻겠느냐.”
그러니까 날 치워버리겠다는 얘기였다.
‘왜?’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난 더이상 잉여인간이 아닌데. 어엿하게 아펠리온 가의 일원으로 나설 준비가 됐는데, 뭣 때문에 내가 남부로 쫒겨나야한단 말인가.
“잠시동안만 가 있거라.”
아펠리온 대공은 이미 결정을 다 내린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답한 뒤 집무실을 나오는데, 대공이 나를 남부로 보내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하인들에게 명하는 집사를 통해 듣게 되었다.
“폐하께서 오신다니, 각별히 신경써야할 것이다!”
폐하.
그러니까 클라테스 제국의 주인이 아펠리온 대공가를 방문하겠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날 잠시동안 치워놓으시려는 것이었나······.’
입 안이 썼다. 그래도 아펠리온 공작이 아버지로서 나에게 일말의 정은 있는 줄 알았는데, 황제 앞에선 다 소용없었다.
방으로 돌아가자 사용인들이 이미 가방에 내 짐을 넣고 있었다.
“곧 준비가 다 됩니다, 공자님.”
그렇게 속전속결로 내 짐이 다 꾸려지고, 나는 그날 바로 남부로 향하는 마차에 올라타야했다.
‘이렇게 쫓겨나듯 떠나는 여행이라니······.’
내 입지를 기필로 다져놔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더 강해져야했다.
‘그래. 남부에서 수련하는 셈 치지, 뭐.’
그렇게 마음을 바꿔먹기로 결심한 나는 마차 등받이에 기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았더라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것이지만······.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