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가죽 팔찌.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단체 및 배경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 세계에서 신의 선물을 받다. -
1부. 신의 선물을 받은 아이들.
[아파트 화단에 너무도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나는 그 꽃을 바라볼 때면 행복에 빠져들곤 했다.]
[소중히 보호하고 가꾸려 노력해야겠어.]
[어느 날, 다른 누군가가 그 꽃을 꺾었다.]
[너무 이쁘다.]
[한마디만 남긴 채.]
1막. 가죽 팔찌.
고그(G.o.g.) 현상 발생, 당일.
강원도의 한 강나루에 온몸은 싸움으로 찢기고, 마음은 슬픔으로 찢긴 30대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상처와 거즈로 엉망이었고, 그 위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 남자의 가슴 속 상처를 말해주고 있었다.
“흑흑흑, 유리야. 꽃잎처럼 가녀리고 예쁜 내 동생.”
남자는 가슴에 품은 작은 유골함을 혹여나 깨질까 꽉 안지도 못한 채 흐느끼고 있었다.
“너 없이 이 오빠가 어떻게 살아가니. 유리야.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흑흑흑.”
남자는 어떻게 해도 전할 수 없는 마지막 사랑에 원통 해하며, 해가 저무는 것도 잊은 채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렇게 유골함을 품에 묻고 슬픔에 지쳐 잠든 남자의 하늘 위로 오로라가 짙게 번지고 있었다.
***
며칠 전, 이른 저녁 ‘강철파’의 클럽 안.
“김 강 나와! 안 나오면 모조리 다 죽는다!”
오른손과 쇠 파이프를 하나로 동여맨 ‘권 태호’가 클럽 입구에서부터 피를 뿌리며 안으로 난입하고 있었다.
“어떤 미친놈이 형님 이름을 입에 올려! 야! 빨리 잡아!”
덩치 큰 남자가 클럽 안쪽에서 다부진 조폭들을 몰고 나타나며 외쳤다.
입구 쪽 조폭들과는 행색이나 느낌부터 다른 이들이었다.
“김 강 어딨어? 김 강 나오라고 해!”
태호는 가볍게 날아올라 십여 명은 넘어 보였던 입구 쪽의 마지막 인원을 쇠 파이프로 정리했다.
거친 호흡을 내쉬며 클럽 중앙으로 당차게 들어서고 있는 태호의 눈엔 독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캬~ 쌔끼, 좀 치네?, 야 제 뭐야?”
덩치 큰 남자의 물음에 앞으로 몰려나온 조폭 중 누군가의 대답이 들려왔다.
“방패파 행동대장 권태호 같습니다. 형님.”
“권태호? 잠깐만, 아니 태호면 방패파 간판 아니야? 야! 근데 저 새끼가 여길 왜 온 거야?”
덩치 큰 남자는 잠시 어리둥절해한 뒤 이내 조용히 명령을 내렸다.
“얘들아, 빨리 끝내라. 곧 영업시간이다.”
강원도 일대는 ‘김 강’이 이끄는 ‘강철파’와 ‘이 방’이 이끄는 ‘방패파’가 양립해 있었다.
과거 동창이었고, 절친이었던 ‘김강’과 ‘이방’이 왜 서로 다른 조직을 이끌며 대립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방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자식 같은 조카 ‘이 호준’이 유일한 혈육이었다.
호준은 조직 내에서 서열을 명확히 가지고 있지 못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런 호준에게도 동창이며 절친인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방패파’의 간판 현역 행동대장 ‘권 태호’였다.
보스의 유일한 혈육이었고, 현역 간판 행동대장의 절친으로 호준은 그렇게 조직 내에 자리하고 있었다.
클럽 사건 발생 일주일 전.
“오빠!”
‘향긋한 꽃잎처럼 한없이 하늘거리는 바람을 타고 그녀가 내게 오고 있었다.’
“유리야!”
‘눈 부신 햇살조차도 가리지 못하는 그녀는, 환한 미소로 내 품에 달려오고 있었다.’
“야! 넌 뭐하냐?”
태호는 호준의 어깨를 가볍게 짚으며 앞으로 나와 동생 유리를 맞이했다.
간만에 주말을 맞아 고향에 잠시 들른 유리를 태호는 터미널에서 맞이하고 있었다.
“어! 호준 오빠도 왔네. 반가워요, 호준 오빠.”
유리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호준이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어? 그래. 유리야. 정말 오랜만이다. 나도 반가워.”
호준은 여전히 꿈이라도 꾸듯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첫사랑이자 짝사랑인 유리를 그렇게 맞이하고 있었다.
셋은 호준의 고급 세단에 몸을 실었다.
“먼 길 오느라 배고프지? 밥부터 먹자 오늘은 내가 풀 코스로 쏜다.”
호준은 룸미러로 뒷자리 유리를 바라보며 환히 웃었다.
“짜식, 내 동생이 왔는데 왜 네가 밥을 사? 사도 내가 산다.”
태호는 사랑하는 하나뿐인 동생에게 잘 대해주는 호준이 내심 고마웠다.
“얌마, 여기서 네 동생 내 동생을 왜 따져? 서울에서 혼자 대학 다니느라 고생하는데, 지금 내가 힘내라고 응원하는 거잖아. 뭐! 문제 있냐?”
호준도 멋쩍음과 서운함에 쉽게 물러날 수는 없었다.
“아, 아, 오빠들. 반가운 날 싸우지 마시고, 돈은 나중에 누가 내든, 일단 고기부터 먹으러 갑시다. 호준 오빠 레고~!”
유리가 잘 기억해 내지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도 태호와 호준 유리는 언제나 함께 웃고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일찍 잃고 힘겹게 살아온 유리와 태호에게 호준은 언제나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유리에게 호준은 언제나 친오빠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 호준의 뒤에는 어린 시절부터 태호를 눈여겨본 이방이 있었다.
“여기 너무 비싼데 아니야? 난 그냥 돼지갈비도 황송한데.”
유리는 한우 전문점의 귀빈실로 들어서며 말을 잊지 못했다.
“에이, 무슨 소리야! 나 강원도 이호준이야! 서울에서 귀한 여동생이 내려왔는데. 이 정도는 대접해야지.”
호준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태호도 그런 호준의 어깨를 툭 한번 감싸 쥐며 고마움의 눈빛을 보내고 자리에 앉았다.
셋은 최고급 한우를 맛있게 먹으며 모처럼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점심 다 먹고 유리는 뭐 하고 있을 거야? 오빠는 일이 좀 있어서 말이야.”
태호는 모처럼 가족과의 평범한 시간을 보내는 이 순간이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 태호는 항상 바쁘니까. 그러면, 우리 태호 이 자식은 빼놓고 어디 놀이동산이라도 갈까?”
호준은 이미 유리와 단둘이 즐겁게 바이킹이라도 타고 있는 기분을 느끼며 물었다.
“무슨, 오빠도 바쁠 텐데 일 봐요. 난 서점에 좀 들렀다가 오랜만에 고향 친구 좀 만나려고 해.”
유리는 다시 봐도 아련한 오빠 태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유리에게 오빠 태호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아빠였고, 엄마였다.
“음, 그러면 저녁에 친구하고 우리 클럽에 와서 놀아. 내가 룸 싹 비워 놓을 테니까. VIP 룸으로 다가.”
호준은 아쉽게도 놓쳐버린 놀이동산 바이킹에서 내려와 저녁 만찬에라도 서둘러 함께하고픈 심정으로 말했다.
“아니야. 오빠. 그냥 친구하고 편하게, 가볍게 놀 거야. 신경 쓰지 마. 그리고 생각해줘서 고마워.”
유리는 호준에게 찡긋 눈인사를 보내며 말했다.
오빠 태호 옆에서 지금까지 함께 해주며 힘이 되어주고 있는 호준에게 유리는 항상 고마움과 내색할 수 없는 걱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그래. 오래간만에 내려왔으니 친구도 좀 만나고. 너 편한 데로 있어. 대신 계속 전화하고. 늦지 않게 들어오고. 알았지?”
“네네. 알았네요. 내가 뭐 아직도 어린앤가. 너무 걱정하지 마, 오빠.”
그날 저녁.
오늘따라, 더욱 늦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온 태호는 조금씩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태호는 종일 짬을 내서 동생 유리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했다.
하지만 해가 진 이후 더는 유리와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유리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태호야! 무슨 말이야? 유리가 사라졌다니?”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온 호준은 구두도 벗지 않은 채 태호를 찾아 물었다.
“오후까진 통화를 했는데, 유리가 집에 안 들어왔어. 그리고 이젠 전화기도 꺼져있어.”
태호는 안절부절못하며 걱정에 몸을 떨고 있었다.
호준도 이렇게 떨고 있는 태호의 모습을 이전엔 본 적 없었다.
지금 태호의 모습은 ‘대 방패파’의 간판 행동대장 김태호의 모습과 사뭇 달라 보였다.
“임마. 걱정하지 마. 내가 오면서 경찰서장한테도 전화 넣어 놓았고, 지금 우리 애들도 풀었으니까, 이제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반드시.”
꼬박 하루가 더 지나고 나서야 유리를 찾을 수 있었다.
유리는 피투성이로 쓰러진 채 산속 비탈길에서 발견되었다.
지금 유리는 의식불명 상태로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병원 복도에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는 태호의 옆으로 호준이 뛰어왔다.
“누군지 찾았어. 근데 태호야 일이 좀 복잡하게 됐다.”
호준의 설명은 이러했다.
유리와 그녀의 친구로 보이는 여자가 늦은 저녁 한 클럽에 나타났다고 했다.
클럽 직원의 말에 따르면 다른 곳에서 이미 한 차례 술을 먹고 온 모습이었다고 했다.
유리의 친구로 보이는 여자가 이미 흥건히 취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유리와 친구는 그래도 아무 탈 없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고 했다.
하필 그곳에 그놈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그놈이라니?”
태호는 본능적으로 눈에 살기를 띠며 호준을 다그쳤다.
“개차반 김현수. 도지사의 외동아들.”
김현수는 이 지역에서 유명한 골칫덩어리였다.
아버지 김주석 도지사의 배경 아래 온갖 잡스러운 사고들을 치고 다니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방패파 조직 내에서도 거리를 두고 신경 쓰지 않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김도지사가 강철파의 뒤를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호준의 말이 이어졌다.
“이 미친놈이 클럽에서 유리를 보고 첫눈에 빠져 접근한 거 같아.”
호준의 설명에 따르면 상황은 이러했다.
현수는 VIP룸에서 술을 마시다 유리를 보게 되었고, 이미 취해 버린 유리의 친구를 유인해 VIP룸으로 둘을 끌어드린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엔 유리를 기절시켜 외곽 별장으로의 납치를 감행했고, 유리는 그렇게 꼬박 하루 동안의 그곳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리고 종일 취해 있던 현수의 빈틈을 노려 유리가 도망쳤고, 이를 알아차린 현수가 추격하면서 여러 가지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었다.
“새끼 죽인다.”
태호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도지사의 아들인 현수를 잡아 죽이려 했다.
하지만 호준이 이런 태호를 다급히 말리며 말했다.
“도지사는 강철파가 모시는 사람이야. 네가 지금 도지사 아들을 건드리면, 이건 그냥 강철파와 방패파의 전쟁이 되는 거야.”
다음날.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강철파 보스 김강은 도지사를 직접 만나 이 이야기를 전했다.
도지사도 더 이상 자신의 앞길을 막는 아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태호는 해외로 도피하기 위해 이곳을 뜨려는 주지사 아들의 차량을 쫓아가 그 앞을 막아섰다.
“내 동생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어딜 도망가! 김현수 그냥 죽어!”
태호의 손에는 이미 쇠 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때마침 나타난 방패파 넘버2와 그 일행들에 의해 태호의 계획은 저지당하고 말았다.
“형님이, 왜! 왜 저를 막는 겁니까?”
태호는 일행들에 의해 제압당한 채 싸늘한 아스팔트 위에 얼굴을 처박고 소리쳤다.
그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수는 ‘방패파’와 함께 도착한 ‘강철파’의 호의를 받으며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미안하다. 태호야. 하지만 이건 그냥 비즈니스야. 몸으로 전쟁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고. 그냥 받아들여.”
“무슨 개 소리야! 이거 놔!”
이후, 그렇게 하나뿐인 동생의 숨이 가늘어지고 있는 것을 병실 밖에서 지켜만 보던 태호가, 어느 날 갑자기 강철파 클럽에 나타난 것이었다.
아무리 방패파의 현역 간판 행동대장인 권태호라 해도, 혼자서는 호기일 뿐, 그저 무리수일 뿐이었다.
“커억! 죽인다. 지금 나를 죽이지 않으면, 내 동생의 숨이 멈추는 날, 내가 반드시 다시 찾아와 너희들 다 죽이고 만다.”
태호의 말에는 그리고 눈에는 거짓 없는 분노의 약속이 담겨 있었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바로 처리할까요?”
“미쳤어? 휴우~ 방패파에 알려, 새로운 협상이 필요하다고.”
결국 김강과 이방의 대면 협상이 진행되었다.
보복 전쟁을 안 하는 대가로 강철파는 태호와 그의 여동생까지 깔끔하게 방패파에서 처리하는 조건을 내세웠다.
이방은 고심 끝에 받아들였고, 방패파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마취된 채 쓰러져 있는 태호와 병실에서 나오는 순간 숨을 멈춘 듯한 유리를 실은 자동차가 깊은 산자락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SUV 한 대가 그들의 뒤를 몰래 따르고 있었다.
이호준이었다.
일행이 태호와 유리를 처리하려던 순간, 호준은 가져온 사냥용 마취총을 사용하여 모두를 잠재웠다.
그리고 태호와 유리를 태운 호준의 SUV는 멀리 바닷가를 향해 내달렸다.
“고맙다. 호준아.”
정신을 차린 태호는 자신이 안전하게 바닷가에 와 있다는 것과 호준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안해 태호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이 차 쓰고, 가방에 현금도 좀 넣어 놨다.”
호준은 뒷좌석에서 차가운 종이 인형처럼 앉아 있는 유리를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함께 못해서 미안하다.”
호준은 그렇게 눈물을 훔치며 차에서 내려 급히 자리를 떠났다.
이제 암흑 속에 남겨진 태호의 할 일은 꽃처럼 향긋했던 동생 유리를 바람처럼 보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면 되는 것이었다.
***
고그(G.o.g.) 현상이 시작된 그날.
갑자기 쏟아진 굵은 빗줄기에 까무룩 잠든 태호는 눈을 떴다.
태호의 가슴에는 여전히 유리를 고이 품고 있은 작은 병이 안겨 있었다.
태호는 젖을 리 만무한 유골함을 재킷을 벗어 다시 감싸 안고 일어섰다.
그런 태호의 오른쪽 손목에는 오래되어 반들거리는 가죽 팔찌가 보였고, 왼쪽 손목에는 새것 같아 보이는 끈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어린 시절 태호가 유리에게 만들어주었던 가죽 팔찌를 유리는 지금껏 소중히 차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태호와 유리만의 가죽 팔찌가, 유리의 새로운 끈 팔찌와 함께, 이제는 유리가 남긴 유품이 되어 태호의 손목에 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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