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막. 파란 손목시계.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단체 및 배경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 세계에서 신의 선물을 받다. -
1부. 신의 선물을 받은 아이들.
[아빠는 엄마와 함께한 이곳에서의 추억을 지우고 싶은 거야?]
[아니! 아빠는 엄마가 사라져 버린 이곳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거야. 처음 만났던 곳으로 가서 다시 시작할 거야, 그때처럼.]
7막. 파란 손목시계.
고그(G.o.g.) 현상 발생, 6개월 후.
“자아! 곧 오픈합니다. 다치시지 않도록 질서를 지켜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주말 단 이틀. 한정 수량. 유명브랜드 울트라 초초특가!]
도심 중심가에 있는 백화점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다.
백화점 입구는 이미 많은 인파로 ‘오픈런’이 준비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XX 백화점입니다.”
백화점 입구의 문이 드디어 열리는 순간이었다.
<부 웅!>
순간, 주위의 공기가 떠오르듯 시간이 멈추었다.
잠시 후, 멈춰버린 수많은 사람 사이를 한 아이가 유유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이는 입에 사탕을 물고, 열려 있는 문을 통해 시크하게 행사장으로 향했다.
아이는 의류코너에서 천천히 옷도 입어 보고, 신발코너에서 운동화도 신어보며 쇼핑을 만끽했다.
얼마 후, 아이가 쇼핑을 마치고 계산대로 향하는 그 순간, 다시 광란의 오픈런이 시작되고 있었다.
***
고그(G.o.g.) 현상 발생, 얼마 후.
‘띵동댕동, 띵딩동댕.’
“자!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친다.”
서울의 한 국제중학교에서 오늘의 하교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갑자기 비가 많이 오네, 다들 부모님께 미리 전화는 드렸지?”
“네!”
오후가 되어, 예보에 없던 비가 갑자기 내리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안전한 하교를 위해, 학생들에게 미리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도록 조치했었다.
1층 입구에는 이미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로 가득했다.
“엄마!”
“어머! 우리 이쁜 딸! 수업은 잘 받았어?”
이곳저곳에서, 어미가 잃어버린 새끼를 찾아 반기듯, 조금은 과장된 듯한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누구는 아이를 끌어안아 차에 태우고, 누군가는 아이의 가방을 둘러메고 아이와 나란히 교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렇게 각자의 짝을 찾아, 교정을 벗어나고 있었다.
“쳇! 다들 왜 저리 오버야.”
아테나는 올해 한국으로 들어와, 이곳 국제중학교 3학년으로 전학을 온 아이였다.
아버지는 여행 관련 자유기고 작가로,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를 여행 중일 것이었다.
‘엄마, 나도 엄마가 보고 싶어.’
아테나는 조금 전, 내뱉었던 말과는 다르게 마음속으로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아테나의 엄마는 외국 국적의 사람이었다.
엄마가 지병으로 돌아가신 후, 아빠의 고향인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
“한국? 갈 거면, 아빠 혼자가!”
아빠가 한국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통보하던 날, 아테나가 외친 한마디였다.
엄마와의 모든 추억이 있는 이곳에서, 아테나는 단 한 발짝도 떠나기 싫었다.
하지만, 아테나는 결국 이렇게 한국에 와 있었고, 엄마의 흔적도 없는 이곳에서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
<부 웅!>
수많은 각양각색의 우산들이 그 분주했던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차게 내리던 빗방울도 공중에 그대로 멈추고 있었다.
“응? 뭐지?”
아테나는 의아한 듯, 눈앞에 두둥실 떠 있는 빗방울을, 손가락 끝으로 건드려 보았다.
‘톡!’
빗방울이 아테나의 손가락을 타고 손안으로 흘러들었다.
“응?”
이번에는 손바닥을 펼쳐서 많은 빗방울을 쓸어보았다.
‘촤르르륵!’
“앗! 차가워!”
많은 빗방울이 아테나의 소매 속으로 들어왔고, 놀란 아테나는 손을 급히 털었다.
그 순간, 아테나에게서 털어져 나간 빗방울은, 다시 또 저만치로 날아가 공중에 떠 있었다.
“쳇! 뭐야 정말, 쳇이다. 쳇!”
아테나는 빗방울이 멈춰있는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며 말했다.
“엄마, 난 엄마와 우산이 필요한 거야. 이딴 이상한 능력 따윈 필요 없다고.”
아테나는 고개를 내려 후드를 깊게 쓰고 교문을 향해 걸었다.
“쳇! 뭐야? 결국 비는 다 맞는 거잖아? 정말 쓸모없어. 쳇!”
아테나가 지나가며 건드리는 빗방울들은 모두 그녀의 옷과 피부에 묻어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아테나는 샤워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의 상황을 이해해 보기 위해서였다.
“내가 시간을 멈출 수 있다는 말이지? 그런데 왜 갑자기?”
아테나는 잠시 고민했다. 정말 잠시의 고민이었다.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고, 일단 어떻게 사용할지부터 생각해 보자. 앗싸, 존좋!”
갑자기 생겨버린 능력이, 어디에서 어떻게 왜 시작된 것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분명 알 수게 될 것이었다.
아테나 스스로든,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든.
다음날.
‘띵띵띵띵 띠리링동’
국제중학교에서 오늘의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야! 뛰어.”
“오늘 특식 스테이크야, 늦으면 못 먹어.”
<부 웅!>
테나는 구내식당 첫 번째 학생으로, 갓 구운 따끈한 스테이크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파스타를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고그(G.o.g.) 현상 발생, 몇 주 후.
거실 소파에 아테나가 혼자 앉아 있었다.
아테나는 지금 벽에 걸린 대형 TV를 통해, 과거 엄마와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영상 속에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엄마가 아가에게 뽀뽀를 연신 강제로 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것도, 아가의 양 볼을 짓궂게 눌러 잡고, 강제로 튀어나온 아가의 입술에 뽀뽀하는 영상이었다.
“헤헤, 엄마도 참. 엄마가 더 귀엽단 말이야. 헤헤.”
아테나는 지금 이 똑같은 장면을 계속해서 돌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아테나의 손에는, 리모컨이 들려있지 않았다.
‘띠리릭! 턱!’
현관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행 작업을 마친 아빠가 돌아오는 소리일 것이었다.
‘아빠? 내가 거실에서 엄마 영상을 보고 있으면? 흠, 간만에 만나는 아빠는 또 뭐라고 하실까? 흠, 쳇! 생각하기도 귀찮아.’
<치리릭!>
‘띠리릭! 턱!’
다시, 현관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행 작업을 마친 아빠가 집으로 들어오며, 거실의 불을 켰다.
거실에는 어둠과 정적만이 흐를 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덜컥!’
“아빠 오셨어요?”
“어? 딸. 집에 있었네?”
아테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기 방에서 나오며 아빠에게 인사했다.
아빠도 오랜만에 보는 딸이 매우 반가웠지만, 그만큼 서먹하기도 했다.
아빠와 아테나는 한국살이를 시작으로, 서로 서먹해져 있었다.
아테나는 이런 상황들에 아이템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테나의 파란 손목시계는, 처음 시간을 멈추어 주었던 것을 넘어, 이제 짧은 시간일지언정 시간을 되돌리고 있었다.
***
고그(G.o.g.) 현상 발생, 6개월 후.
한 여인이 꿈을 꾸고 있었다.
[유명백화점 입구에는 무엇 때문인지 ‘오픈런’이 시작되고 있었다.
<부 웅!>
잠시 후, 멈춰버린 수많은 사람 사이를 한 아이가 유유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이는 코너를 돌며 천천히 옷도 입어 보고, 신발도 신어보고 있었다.
아이가 쇼핑을 마치고 계산대로 향하는 그 순간, 멈춰있던 광란의 오픈런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으음. 휴 우.”
여인은 평온한 표정으로 꿈에서 깨어나,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곧바로 핸드폰을 찾아 메모장에 무언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여자아이. 중학생?. 파란 손목시계.)
메모장에 내용은 단출했다.
그녀는 이날, 오랜만에 새로운 인물에 관해 꿈을 꾼 것이었기에, 그 대상을 특정할 수는 없어 보였다.
그녀가 아이의 얼굴을 본 것은 분명했으나, 그것을 다른 동료들에게 알릴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며칠 뒤, 그녀는 또다시 꿈을 꾸고 있었다.
[양 갈래로 머리를 귀엽게 딴 여중생이 보였다.
그녀는 뒷골목에서 돈을 빼앗긴 아이에게 돈을 찾아 돌려주었고, 넘어지려는 할머니를 도와 안전하게 잡아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예매율 1위인 영화의 긴 대기 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롭게 영화관에 들어가 영화를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 순간, 놀이공원의 모습으로 바뀌며 바이킹을 신나게 즐기는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하나의 놀이기구가 끝나자마자, 한순간의 기다림도 없이, 바로 다른 놀이기구를 타며 놀고 있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녀가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 판이었다.
그렇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그녀는 지금 교복을 입고 있었다.
‘아테나’ 교복의 국제중학교 엠블럼 위에 선명하게 붙어있는 이름표였다.]
고그(G.o.g.) 현상 발생,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아테나는 홀로 놀이동산을 찾았다.
“하! 혼자 오니 더 좋네.”
아빠는 오늘도 작업을 한다는 이유로 그녀의 곁에 없었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는, 언제나 온 가족이 함께 놀이동산에 왔었다.
“그럼! 이런 곳은 온 가족이 함께 와야 더욱 즐거운 법이지.”
과거의 아빠가 항상 했었던 말이었다.
“쳇! 이젠 혼자라도 좋다고.”
아테나는 떠오른 추억을 애써 날려버리며 추로스를 입에 넣었다.
아테나는 추로스를 와그작 씹어 먹으며, 어떤 놀이기구를 먼저 탈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흠! 뭐지? 자꾸 나를 쳐다보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놀이동산의 입구에서부터 그녀의 주변을 계속 맴돌며, 그녀를 자꾸만 힐끔거리는듯한 느낌의 한 무리 사람들이 보였다.
어쩌면, 워낙 인파가 몰려드는 놀이동산이라, 그저 평범한 관람객들일 지도 몰랐다.
“모르겠다. 일단 신나게 놀자.”
아테나는 바이킹을 향해 걸어갔다.
“끼야악, 와아악!”
바이킹이 움직일 때마다 탑승객들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아테나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잠시 후, 바이킹의 움직임이 느려지며 서서히 멈추고 있었다.
“와 아! 오랜만이라 너무 재밌잖아! 또 타야지.”
<부 웅!>
아테나는 바이킹이 멈추기가 무섭게 시간을 멈추며 내렸다.
다음 순간.
“바이킹! 출발합니다.”
진행요원의 말과 함께 바이킹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바이킹의 끝자리에는 아테나가 다시 탑승해 있었다.
“꾸엑! 어휴, 롤러코스터를 연속으로 세 번이나 타는 건 역시 좀 무리였나?”
아테나는 헛구역질하며 힘겹게 거리 벤치에 앉았다.
아테나는 바이킹을 두 차례 탄 이후로, 롤러코스터를 연속해서 세 번이나 탄 상황이었다.
“아휴! 음료수라도 먹어야겠어, 스무디를.”
아테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혼잣말로 평소에 즐겨 먹던 스무디를 찾았다.
“학생! 힘들어 보이는데, 이거 마실래?”
아테나의 눈앞에 평소 즐겨 먹던, 블루베리 스무디가 보였다.
“엥? 누구세요?”
아테나의 눈앞에 스무디를 내민 사람은, 노란 안경이 돋보이는,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언니였다.
“아, 저기 나는.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
<부 웅!>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아테나는 시간을 멈추어 세웠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와 그녀의 무리로 보이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쳇! 역시나, 아까 그 사람들이잖아?”
아테나는 천천히 그 무리를 살펴 보았다.
노란 안경이 돋보이는 대학생 느낌의 언니, 그리고 몇 발자국 뒤에 서 있는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 한 명.
“오! 이 아저씨는 좀 존잘이네, 헤헤. 그리고.”
그리고 휠체어를 탄 남자와 휠체어를 잡고 서 있는 여자가 그 존잘남 뒤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딱히 나쁜 사람들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이 사람들 뭐지 진짜? 왜 나를?”
아테나는 잠시 고민하고 있었다. 역시나 잠시였다.
“아씨, 블루베리 스무디를 보았더니, 더 먹고 싶네. 빨리 먹으러 가자!”
아테나는 스무디를 먹으러 음료 판매장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부 웅!>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 아테나를 찾으며, 노란 안경의 그녀가 황당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이들 한 무리는 황당해할 뿐, 진정으로 놀라거나 하지는 않고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오늘 처음으로, 잠시나마 마주했던 아테나와의 만남에 무척 만족해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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