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이라와 아이다는 칼리오스 신봉자들의 의식을 막기로 결정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칼리오스 신봉자들의 본거지를 알아내야 했다.
“칼리오스 신봉자들의 본거지는 어디지?”
“칼리오스 신봉자들의 본거지는 칼리오스 신봉자들이 알겠지요.”
“그렇다면 칼리오스 신봉자들에게 칼리오스 신봉자들의 본거지의 위치를 물어보자.”
이라와 아이다는 거리로 나왔다. 거리는 폭동으로 인해 개판이었다. 이라는 몽둥이를 들고 가게를 털고 있던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약탈하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누구십니까?”
“지나가던 행인입니다. 혹시 칼리오스 믿으십니까?”
“아! 칼리오스 아시는구나! 칼리오스는 정말 대단한 어둠의 신입니다.”
다행히 이 폭도는 칼리오스의 신봉자인 듯했다. 이라와 아이다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 녀석 칼리오스 신봉자. 줄여서 칼신도다.’
‘칼리오스 신봉자를 줄이면 칼신 아닙니까?’
‘그건 어감이 좀 이상하잖느냐. 칼신도라고 부르자.’
이라는 칼신도에게 말하였다.
“칼리오스, 잘 알고 있지요. 다름이 아니라 칼리오스 신봉자들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그것이 왜 궁금합니까? 혹시 칼리오스교에 입단하실 생각이십니까?”
칼신도는 이라를 칼리오스교 입단 희망자로 착각하였다. 이라는 잠시 고민하였다. 여기서 칼리오스교에 입단하고 싶다고 얘기하면 손쉽게 칼신도들의 본거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운명의 아이로서 칼리오스교에 입단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행동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나?’
자존심은 딱히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일단 이라는 자존심을 굽히기로 했다.
“예, 그렇습니다. 칼리오스교에 입단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도 약탈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그럼 제가 칼리오스교회로 모시겠습니다.”
이라와 아이다는 칼신도를 따라갔다. 칼리오스교회는 바로 황궁이었다. 칼신도들이 황궁을 점령한 것이었다.
“대단하군요. 어떻게 황궁을 점령하신 겁니까?”
“아시나 모르겠지만, 최근에 인간 황제가 죽었습니다. 황제가 없어진 덕분에 황궁의 힘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냥 점령했습니다.”
“그렇군요. 칼리오스교는 정말 대단하군요.”
“예. 이럴 때는 칼리오스 만만세라고 외치면 됩니다.”
“칼리오스 만만세!”
이라와 아이다, 그리고 칼신도는 칼리오스 만만세를 외치며 칼리오스교회에 들어갔다. 칼리오스교회에는 수많은 칼신도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손에 무기를 하나씩 쥐고 있었다. 약탈과 폭동을 순조롭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라와 아이다를 안내한 칼신도는 다른 칼신도들 앞에 서서 말하였다.
“여러분! 새로운 신도입니다! 칼리오스 만만세!”
“칼리오스 만만세! 칼리오스 만만세!”
“그럼 새로운 신도분들.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라입니다. 칼리오스 만만세!”
“안녕하세요. 저는 아이다입니다. 칼리오스 만만세!”
이라와 아이다가 소개를 마치자 칼신도들이 박수를 쳤다.
“환영합니다, 이라 신도, 아이다 신도.”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마음, 환영합니다. 이제 신고식을 하지요.”
“신고식? 자기소개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칼리오스교에 입단한 신도는 무조건 신고식을 거쳐야 합니다. 그 신고식이란 바로 장기자랑이지요.”
“장기자랑!”
이라는 곤란했다. 장기자랑이라고 할 만한 재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물의 힘을 자유자재로 쓸 수는 있었지만, 그건 힘자랑이지, 장기자랑이 아니지 않은가.
“아이다. 너 장기자랑 할 만한 거 있냐?”
“이라 님. 저는 춤을 출 생각입니다.”
“흐음. 장기가 있어서 부럽구나.”
아이다가 먼저 장기자랑을 시작했다. 아이다는 열심히 춤을 추었다. 칼신도들이 박수를 보냈다.
“이제 이라 신도 차례입니다. 앞으로 나와주시죠.”
“예. 크흠. 그럼 저도 장기자랑 해보겠습니다. 음, 성대모사 해보겠습니다.”
“어떤 성대모사죠?”
“혹시 과학자 톰슨을 알고 계시는 분 있습니까?”
“톰슨? 알고 있습니다. 어제 톰슨의 집을 약탈했지요. 철로 배를 만들고 있더군요. 얼탱이가 없어서 그냥 죽여버렸습니다. 철로 배를 만들다니. 웃기지도 않지요.”
“톰슨을 알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라는 톰슨의 성대모사를 시작했다.
“철로 만든 배도 부력 때문에 뜰 수 있습니다! 부력이 뭔지는 아시죠? 부력 모르면 병신인데? 아, 참고로 부력은 제가 방금 만든 단어입니다.”
“푸하하! 똑같다!”
반응이 괜찮았다. 이라도 칼신도들의 박수를 받았다. 칼신도들은 이라와 아이다를 아주 따듯하게 맞이해주었다. 이라의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이런 환대를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아이다. 이 사람들 좋은 사람들 같다.”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선한 사람들이군요.”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칼신도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온 세상 사람들이 칼리오스를 믿는 칼신도였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이렇게 착한 사람들만 있다면 세상을 구할 맛이 났을 텐데!
“자, 그럼 신입 신도 환영회를 엽시다!”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이라와 아이다, 그리고 칼신도들은 즐겁게 만찬을 즐겼다.
“이렇게 맛있는 것들은 처음입니다! 이것들은 다 어디서 구해 온 것이죠?”
“이 빵은 아리까리베이커리에서 약탈해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기는 피터의 정육점에서 약탈해 온 것이죠. 저 과일들은 근처 농가에서 털어왔습니다.”
“과연! 신도들이 노력해서 약탈한 음식들이군요! 신도들이 땀 흘려가며 얻은 음식이라 그런지 정말 맛있습니다!”
음식들에서는 신도들의 정성이 느껴졌다. 정말 감격스러운 시간이었다. 어느덧 배가 많이 불러진 이라. 그녀는 신도들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칼리오스교에서 어떠한 의식을 치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아하, 칼리오스 봉인 해제 의식 말씀이시군요. 관심이 있으십니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럼 의식을 진행하고 있는 제단으로 모시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대사제 왓슨입니다.”
왓슨 대사제는 이라와 아이다를 제단으로 안내했다. 제단 위에는 노숙자들의 시체가 쌓여있었다.
“노숙자들이군요. 저들을 왜 죽인 것이지요?”
“저 자들은 칼리오스 님에게 바치는 제물입니다. 종교학적으로 계산해 봤을 때, 노숙자 999명을 제물로 바치면 칼리오스 님의 봉인이 풀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몇 명의 제물을 바쳤습니까?”
“현재까지 989명의 노숙자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앞으로 10명만 더 모으면 되지요.”
정말이지 코앞이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칼리오스교에서 노숙자 10명을 더 모아서 의식을 마치고 칼리오스 봉인을 해제했을 것이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다. 늦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제 10명을 더 모으는 것을 막기만 하면 된다.
“대사제님! 마침 노숙자 10명을 더 납치해왔습니다!”
“오호!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큰일났다! 10명 더 모으는 것을 막으려 했는데 이미 10명 더 납치해 왔다!! 저 10명으로 의식을 끝내버리면 끝이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의식은 어떻게 치르는 겁니까?”
“간단합니다. 저 노숙자들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죽이면 됩니다.”
“죽이면 뭐 어떻게 됩니까?”
“킬 수가 올라가면서 999가 채워지는 순간 칼리오스 님의 봉인이 풀리죠. 저기 제단에 적힌 숫자 보이십니까?”
확실히 제단에는 989라고 적혀 있었다.
“한 명 죽일 때마다 수가 올라가는 기능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킬 카운트를 세는 것이지요. 자, 보십시오.”
그때 노숙자 한 명이 제단 위에서 처단당했다. 989였던 숫자가 990으로 올라갔다.
“큰일입니다, 이라 님. 얼른 막지 않으면···!”
“그래. 내가 막아보도록 하지.”
이라는 제단 위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는 주먹을 높이 치켜들었다.
“생명의 망치!”
그러자 이라의 주먹에서 빛이 발하더니 빛으로 이루어진 망치가 생겨났다. 유물의 기름을 짜서 볶음밥을 해 먹은 덕분에 이런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이라는 생명의 망치를 들고 노숙자들의 시체를 무차별적으로 두들겼다.
“이라 신도? 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 그들은 이미 시체입니다! 꼭 의식에 참여하고 싶다면 새로 잡아 온 노숙자들을 때려죽이십시오!”
“대사제님! 큰일입니다! 제단에 적힌 숫자를 보십시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이라가 망치로 시체를 두들길 때마다 990이었던 숫자가 점차 줄어들었다. 순식간에 990에서 947까지 내려왔다. 그렇다. 이라는 생명의 망치의 힘을 이용해 이미 제물로 바쳐진 노숙자들을 다시 살려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물로 바쳤던 게 취소되고 있는 것이었다.
“947번만 더 때리면 된다!”
“젠장! 막아라! 이라 신도를 막아라!”
신도들이 제단 위로 덤벼들었다. 이라는 즉시 위로 올라온 신도 3명을 죽였다. 그러자 947이었던 숫자가 950으로 올랐다.
“헉! 이러면 안 되는데!”
제단 위에서 사람을 죽이면 제물로 취급된다. 즉, 제단 위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란 뜻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칼리오스교 대사제도 깨달은 듯했다.
“신도들이여! 제단 위로 올라가라! 그리고 이라 신도와 싸워라! 죽으면 더 좋다! 웬만하면 죽어라! 제단 위에서 죽어라!”
“크윽, 이런 짓을 벌이다니!”
이라는 제단 위로 올라오는 신도들을 열심히 죽였다. 동시에 노숙자들도 급하게 살려냈다. 전력을 다해 망치질을 했지만, 킬 카운트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952···. 953···. 954···. 953···. 954···. 955···. 956···.”
“제기랄! 살리는 것보다 죽이는 게 쉬워서 낭패다!”
아무리 노숙자들을 살려봐도 신도들이 죽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라는 큰일이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도들을 죽이지 않으면 노숙자들을 살릴 수 없다. 신도들을 죽이면 노숙자를 살려봤자 소용이 없다. 이 무슨 딜레마인가!’
이래서는 도저히 칼리오스 봉인 해제 의식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라는 잠시 고민하였다. 그리고 곧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의식 못 막을 것 같다! 그냥 시원하게 다 죽여버리는 수밖에!”
노숙자 살리느라 속 시원하게 신도들을 죽일 수 없었다. 괜히 스트레스만 받을 바에야 아예 포기하고 신나게 학살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이라는 곧바로 유물의 힘을 사용했다.
“신성한 불꽃의 심장!”
이라가 외치자 이라의 가슴 부근에서부터 푸른 화염이 불타올라서 이라의 몸 전체를 뒤덮었다. 이것이 신성한 불꽃의 심장의 힘이었다. 불꽃인간이 되어서 불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힘. 이라는 불로 신도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불맛 좀 봐라!”
“으아아악! 살려주십시오!”
“크악! 너무 뜨겁다!”
“끄아아악! 불맛은 요리 재료가 불에 직접 닿아 생긴 특유의 풍미를 뜻하는 것인데! 크아아악! 우리는 요리 재료가 아니다!”
순식간에 킬 카운트가 999가 되었다. 하지만 이라의 학살은 그칠 줄을 몰랐다. 킬 카운트가 1,000이 되고, 1,200이 되고, 1,500이 되었다. 대사제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절규했다.
“999가 넘었는데 어째서 칼리오스 님이 강림하지 않으시는 거지?!”
“크하하, 지화자 좋다! 얼씨구 1킬 추가!”
“대체 어째서! 대체···. 서, 설마···!”
절규하던 대사제는 갑자기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이미 칼리오스 님은 이 세상에 부활하셨구나!”
“뭐라고? 칼리오스가 부활해? 어디에?”
깜짝 놀란 이라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불에 탄 시체들과 신도 몇 명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대사제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그리고 이라를 향해 외쳤다.
“이라 님! 아니, 칼리오스 님! 당신이 바로 칼리오스 님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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