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나저나 이 동네. 낯이 익군.”
카페 ‘여기라면 안전하’가 있는 동네는 어째서인지 이라에게 낯이 익었다. 언젠가 한번 와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아이다. 이곳이 어딘지 아느냐?”
“이곳은 ‘여기라면 안전하’라는 카페입니다.”
“카페 이름 말고. 이 동네가 어딘지 아느냐는 물음이었다.”
“아하. 이곳은 가룸바할입니다. 인간 제국의 한 해안가 마을이지요.”
“뭐라고! 가룸바할!”
이라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룸바할은 이라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태어난 순간 바다로 버려지긴 했지만, 아무튼 여기서 태어났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가룸바할은 내 고향이다!”
“그래서요?”
“그냥 그렇다고.”
아이다의 반응이 시원찮아서 이라는 무안했다. 조금 더 격렬히 반응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그리운 곳이군. 난 이곳에 태어나서 9분 정도 살았다. 10분이 될 때 쯤에 바다로 던져졌지.”
“9분이나 살았다니. 그런 고향에 돌아와서 감개가 무량하시겠습니다.”
“그렇다. 감개무량하구나.”
“그렇다면 이곳에 이라 님의 부모님이 계시겠군요?”
“그럴지도 모르지. 이미 죽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을 수도 있어.”
“이건 어떻습니까? 이라 님의 부모님을 찾는 겁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여쭈어봅시다. 이라 님이 운명의 아이가 맞는지 아닌지.”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이라와 아이다는 마을회관을 찾아갔다.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부모님을 찾으러 왔습니다.”
“부모님이 어디 있는지 모르십니까?”
“예.”
“속상하시겠군요. 그럼 저기 미아보호센터로 일단 가십시오.”
이라와 아이다는 미아보호센터에 들어왔다. 이라는 미아보호센터 직원에게 호구조사를 당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전역에 미아보호방송이 울려퍼졌다.
“부모님을 찾고 있습니다. 미아의 이름은 이라. 나이는 만 19세로, 0세일 때 부모님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라의 부모님은 마을회관 미아보호센터로 찾아와 주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의 부부가 찾아왔다.
“이라! 이라가 정말 이곳에 있는가!”
“어머니? 아버지?”
“이라! 네가 바로 이라구나!”
어머니가 이라에게 다가와 이라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아버지도 이라를 꼭 껴안았다. 그렇게 셋은 부둥켜안고 약 1분 정도 울었다.
“우리가 다시 너를 만나게 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도 이렇게 부모님을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그때 아이다가 이라의 옆으로 다가와 이라의 귀에 속삭였다.
“그런데, 이라 님. 왜 이렇게 기분 좋게 재회합니까?”
“19년만에 부모님을 만나는데 어찌 기분이 안 좋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이분들은 이라 님을 버렸잖습니까? 그것도 쓰레기통에 적법하게 버린 게 아니라, 바다에 무단 투기 했잖습니까. 이것은 종량제봉투를 사기도 아까웠다는 뜻 아닐까요?”
“헉! 네 말이 백번 옳다.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이라는 부모님을 밀쳐내고 화를 박박 냈다.
“잠시 까먹고 있었는데! 당신들! 날 괴물 취급하며 버렸죠! 그것도 바다에 무단 투기했죠!”
“이라야! 그것은 오해다!”
“오해는 무슨! 저는 바다에 빠진 이후로 19년간 정말 힘들게 살아왔단 말입니다!”
“부디 우리의 변명과 핑계를 들어주겠나?”
이라의 부모님은 변명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네가 태어난 날. 너무 기뻤다.”
“기뻤는데 왜 바다에 집어던졌습니까?”
“제발 끝까지 들어다오. 너는 태어나자마자 일곱걸음을 걸으며 ‘안녕하세요. 저는 운명의 아이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저를 괴물 취급하며 바다에 집어던졌잖습니까.”
“제발 끝까지 들어다오. 우리는 그때 널 괴물취급하긴 했다. 솔직히 괴물이 맞잖아. 태어나자마자 걸으면서 말을 하는 아기가 어떻게 괴물이 아니겠니.”
“그래서 절 버리신 거죠.”
“아니다! 우리는 괴물을 낳고 싶었어! 왜냐하면 우리 부부는 괴물 마니아기 때문이다!”
이라는 충격받았다. 부모님이 괴물 마니아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괴물 마니아라면 괴물을 낳았을 때 기뻐하고 잘 키워줬어야 할 것 아닌가. 어째서 바다에 집어던진 거지?
“괴물을 낳아서 너무 기뻤던 우리 남편. 그러니까 네 아버지는 너를 들고 신나게 바다로 뛰어갔다. 온 세상에 널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그런데요···?”
“그런데 너무 기뻐서 흥분한 나머지. 너를 들고 이리저리 팔을 흔들다가 그만 손이 미끄러져 널 바다에 집어던진 것이었다.”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이라는 버려진 게 아니었다. 미끄러진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 모든 게 실수였단 말입니까?”
“그래. 이 모든 게 실수였지. 우리는 실수로 널 잃고 만 것이다.”
“이 모든 게 실수라니.”
“크흡. 이라야! 우리가 실수해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실수를 탓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너는 실수를 탓하는 사람이 물론 아니지! 넌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니까!”
“어머니! 아버지!”
“이라야!”
이라와 부모님은 또다시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정말이지 감격스러운 시간이었다.
“이라 님. 감동의 재회도 좋지만, 일단 확인해야될 게 있잖습니까?”
“확인?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어머니, 아버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는 운명의 아이입니까?”
이라의 질문에 부모님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운명의 아이? 그러고 보니 네가 태어났을 때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우린 그런 것 모른다.”
“네? 그럼 혹시 저는 칼리오스입니까?”
“칼리오스는 또 뭐지? 이라야. 너는 이라다.”
“어머니! 아버지! 저는 평생 제가 운명의 아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말 그대로 평생! 왜냐면 태어난 순간부터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의심이 듭니다! 제가 사실 운명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 제가 사실은 적이라고 생각해 왔던 칼리오스 본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어머니! 아버지! 저는 이제 어떡해야 합니까!”
이라는 눈물콧물 다 흘리며 울었다. 강한 척했지만 정말 힘들었던 모양이다. 역시 부모님 앞에서는 누구나 어린아이가 되는 법이다.
“이라야. 잘 들어라. 네가 운명의 아이든, 칼리오스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니. 그럼 대체 뭐가 중요합니까!”
“너는 이라다. 너는 이라야! 지금까지 이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라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그래! 넌 괴물이라는 거다! 괴물, 이라! 운명의 아이나 칼리오스 같은 노잼 노간지가 아니라 킹왕짱 캡숑 지대 멋진 괴물! 넌 괴물이다, 이라! 자랑스러운 우리의 딸이지!”
그 순간 이라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자신은 운명의 아이라는 명칭에 집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운명의 아이가 아니라면 뭐 어떤가. 이라가 세상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것은 사실인데! 이라는 여전히 이라였다.
“어머니,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제가 운명의 아이든 칼리오스든, 지금까지 이라로 살아왔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것이군요! 나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나. 내가 나 스스로를 이라라고 생각하면 이라인 것이군요! 그것이 부모님께서 해주신 이야기의 핵심이지요!”
“무슨 소리냐! 우리 이야기의 핵심은 네가 괴물이라는 거다! 엄청 멋진 괴물!”
괴물 마니아인 부모님은 답답해했다. 하지만 이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린 듯 했다.
“아이다! 나는 이라다. 운명의 아이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리고 칼리오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이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다시 존경을 표하겠습니다.”
“뭐지? 계속 존경을 표하고 있지 않았나? 존댓말 했잖아.”
“혹시 몰라서 존댓말만 하고 존경은 안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존경도 하겠습니다.”
“좋다!”
이라는 각성했다. 무언가 이라를 막고 있었던 장애물을 부순 느낌이었다. 지금껏 운명의 아이라는 알 속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그 운명을 깨부수고 비로서 이라로서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괴물 이라로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다!”
“예, 이라 님!”
“나는 운명의 아이가 아니다. 하지만 칼리오스도 아니다. 나는 이라다!”
“압니다. 그래서 제가 방금 이라 님이라고 불렀잖습니까.”
“알면 됐다. 그럼 이제 세상을 구하러 가보자!”
“예!”
이라와 아이다는 세상을 구하기로 다시금 다짐했다. 비록 이라가 운명의 아이가 아니더라도 세상 정도는 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꼭 운명의 아이만 세상을 구하라는 법이 있나? 신들이 그렇게 예언했으면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하나? 신들이 뭔데? 지들이 뭔데 멋대로 정하냐 이 말이다. 이라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것이다. 이라는 앞으로 이라 본인의 말만 들을 것이다. 그 어떠한 제약도 이라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면 이라는 괴물이니까. 괴물, 이라니까.
“그런데, 이라 님. 세상은 어떻게 구합니까?”
“세상? 그건 딱히 생각 안 해봤다.”
“세상을 구하려면 일단 칼리오스가 부활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칼리오스를 죽여야 세상을 구할 수 있겠지요.”
“네 말이 맞다. 그럼 어떡하지?”
“칼리오스를 부활시킵시다. 칼신도들보다 먼저 부활시켜야 합니다! 선수를 빼앗기고 싶지 않으니까요.”
“좋다. 그럼 칼리오스를 부활시켜보자.”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라와 아이다는 이미 알고 있다. 칼리오스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과거 신들이 세상을 굽어살필 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 필요가 있겠어.”
“그렇다면 일단 대학교에 다시 가봅시다. 종족학 교수 제임스라면 분명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을 겁니다.”
이라와 아이다는 다시 제국 중심부로 돌아갔다. 그곳은 이미 칼신도들이 점령했다.
“여기저기 현상수배가 걸려있군.”
“예. 저와 이라 님을 찾고 있군요.”
“나를 칼리오스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모양이다. 멍청하기 짝이 없군. 나는 이라인데!”
이라와 아이다는 칼신도들의 눈을 피해 대학교에 갔다. 그리고 우연찮게 종족학 교수 제임스를 만날 수 있었다!
“교수님! 접니다. 저번에 만났던 이라!”
“이라! 운명의 아이! 오랜만이구나! 세상은 어떻게 좀 잘 구하고 있는가!”
“노력 중입니다. 그런데 정정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수님. 저는 사실 운명의 아이가 아닙니다.”
“뭐라고? 운명의 아이가 아니라고? 날 속인 것인가?”
“아닙니다. 저 또한 그 당시에는 제가 운명의 아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럴 수도 있잖습니까.”
“그럴 수도 있긴 하군. 그럼 자네는 대체 무엇인가!”
“저는 괴물입니다. 괴물, 이라입니다.”
“괴물? 그렇군. 자네는 괴물이군.”
제임스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라서 그런지 새로운 지식을 잘 받아들인다.
“저번에 내 교재에 싸인을 해줬었지. 운명의 아이랍시고 싸인을 해줬었지.”
“예. 그렇습니다. 싸인 다시 지워드릴까요?”
“괜찮다네. 운명의 아이의 싸인이 적힌 교재라고 한 다음 비싼 값에 팔았다네.”
“축하드립니다. 사실은 운명의 아이의 싸인이 적힌 교재가 아니라 괴물의 싸인이 적힌 교재였는데. 개이득 보셨군요.”
“그래. 덕분에 개이득을 볼 수 있었다네.”
이라의 싸인 덕분에 제임스가 개이득을 볼 수 있었다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래서. 자네들은 어째서 날 찾아왔는가?”
“옛날, 신들이 있던 시절. 그때의 신화를 자세히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렇다면 잘 찾아왔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설명해주도록 하지.”
“아뇨. 처음부터 끝까지의 자세한 설명은 사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칼리오스의 부활 조건 부분만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제임스는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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