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12시.
시곗바늘이 정각을 가리켰다.
‘오늘 점심은 뭐 먹지.’
국밥? 햄버거? 제육?
점심 메뉴를 정한 다음.
의자에서 일어났는데.
그 순간.
“야! 이태수!”
햄버거가 나를 불렀다.
정 상무.
내 상사다.
“네?”
“너, 지금 뭐 하냐?”
“그···. 점심시간···.”
“뭐 점심? 일을 이따위로 해놓고 밥이 넘어가?”
팀장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짝-
내 뺨이 돌아갔다.
탑이 생기고 나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
동시에 인권도 죽으면서.
내 성격도 같이 죽었지.
저 돼지가 왜 화났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뭐, 다 내 잘못이겠지.’
영문도 모른 채.
고개부터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하면 회사가 손해 본 게 돌아와?”
“네? 아···! 하지만 그 건은 상무님이···.”
“뭐? 이젠 내 탓을 해? 고아 새끼가 많이 컸네? 이제 말대꾸도 하고?”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어휴, 저 쓸모없는 놈.”
맞다.
내가 진행한 일.
‘근데 억울했다.’
난 분명 반대했으니까.
뺨을 맞기 전까진.
한 5대쯤 맞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시키는 대로 한 죄.
아주 죽을죄다.
제일 만만한 게 나니까.
무조건 다 내 잘못.
3차 재해 당시.
가족을 모두 잃고.
간신히.
나만 살아남았다.
학교도 졸업 못 하고.
변변한 재능도 없었다.
말 잘 듣는 재주 하나로.
회사에 붙어 있는 상태.
이런 나에 비해서.
정 상무는.
무려.
“이번에 이 건 수습 못 하면, 아버지한테 말해서 기필코 네놈 자른다. 알겠냐?”
사장 아들.
그리고.
또.
“어휴, 내가 뼈 빠지게 탑을 가면 뭐하냐. 회사에 저딴 밥버러지들이 득실득실한 데.”
각성자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거역할 수 없었다.
각성자들이 파업하고.
3차 재해가 일어났다.
고의로 탑 공략을 하지 않아서.
도시가 여러 개 날아갔다.
‘각성자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줬지.’
그 이후.
각성자 권한이 강해졌다.
‘일명 각성자 우대 특별법.’
각성자에게 폭행을 당해도.
중상이 아닐 경우.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했다.
죽고 싶을 만큼.
불합리한 세상이지만.
난 살아야 했다.
부모님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나를 구했으니까.
“... 네, 제가 책임지고 해결하겠습니다.”
“책임? 네가? 무슨 수로?”
“제, 제가 어떻게 해서든.”
“그래서 어떻게?”
“그···.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가 이를 악물고 대답하자.
평소처럼.
“안 되겠다. 넌 좀 더 맞아야겠다.”
주먹을 휘두르는 정 상무.
퍽-
둔탁한 타격음과 동시에.
[각성자로 선택되었습니다.]
경쾌한 알람이 울렸다.
진짜로 했다.
각성을.
‘진짜?’
각성은 로또다.
그리고.
로또에 당첨되면.
“하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책임지고 옷 벗으면 되는 거죠?”
보통 나처럼 행동하겠지.
아닌가?
“응? 너, 너 이 자식 방금 뭐라고 했어.”
“그만둔다고요. 귀에 살이 쪄서 그런가? 잘 안 들리시나 봐요?”
성격 좋단 소리 많이 들었다.
그동안 다 참은 거다.
가진 것 없는 놈이 성격까지 더러우면.
‘사람 취급 못 받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지.
“어···. 어?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래, 뭐 잘 못 먹었냐.”
“먹긴 뭘 먹어요. 아직 점심도 못 먹었는데.”
“이 미친놈이! 이대로 그만두면 끝일 것 같아? 내가 전화 몇 번 돌리면, 너 이 바닥에 발도 못 붙여! 알아?”
”하든가, 말든가요. 애초에 내 스펙으로 가긴 어딜 가요. 이딴 데 말고, 정상적인 회사에서 받아나 주겠어요?“
내가 비아냥거리자.
눈을 부라리는 정 상무.
제아무리 각성자라 해도.
탑 밖에서 능력을 쓸 순 없다.
저쪽이나 나나.
평범한 일반인.
그러나.
‘싸우면 내가 지겠지?’
체급 차이가 심했다.
정 상무는 120킬로가 넘는 돼지니까.
화가 나는데.
동시에 겁도 났다.
그래서 주먹을 내지르진 못하고.
정 상무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렇게.
서로 멱살을 붙잡기 직전.
“이 주임 왜 그래. 상무님 말이 그게 아니잖아. 일단 진정 좀 하고.”
“맞아요. 주임님, 잠깐 바람 좀 쐬고 오세요.”
그제서야 나를 말리는 팀장과 팀원들.
‘속 보이네. 속보여.’
나를 걱정하는 게 아니다.
내가 그만두면.
‘누군가는 정 상무 욕받이를 해야 하니까.’
전용 샌드백이 사라질까 봐.
그게 걱정이겠지.
“됐어요. 놓으세요.”
팀장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꾸깃꾸깃한 봉투를 꺼내서.
“사직서 여깄으니까 알아서 처리하시고요.”
쾅-
책상에 내리꽂았다.
그렇게.
“야, 이, 이 새끼, 너어, 너, 너.”
어버버거리는 정 상무를 뒤로하고.
회사를 빠져 나왔다.
아주.
속이 다 후련했다.
**
후련했었다.
과거형이다.
“회사로 다시···. 못 돌아가겠지?”
뭔가 잘못되었다.
[직업 : 안드로이드 지휘관]
생소한 직업.
그래도.
여기까진 괜찮다.
근데.
문제는.
[등급 : 없음]
등급이 없다.
‘왜? 어째서?’
난 F급도 좋다.
어찌 되었든.
전보다 잘 벌 테니까.
그런데.
‘없음이라니.‘
등급 없는 각성자.
내가 최초인 듯.
정보도 전혀 없다.
느낌상.
꽝 같은데?
불안한 마음으로.
[첫 회 무료 안드로이드 뽑기권 사용]
메시지를 쳐다봤다.
마지막 희망.
뽑기권.
손이 근질근질했다.
당장이라도 누르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그러나.
탑에서만 능력을 쓸 수 있으니까.
탑으로 가야 뽑을 수 있었다.
‘안 되겠다. 당장 탑으로 가서 확인해야지.’
그렇게 결심하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다가.
실수로.
툭-
화면을 가볍게 눌렀는데.
갑자기.
[무료 뽑기권을 사용하셨습니다.]
지이잉-
철컥-
철컥-
무거운 기계음이 들리고.
곧이어.
“부르셨습니까, 지휘관님!”
눈앞에 금발미녀가 나타났다.
매혹적인 빨간 입술.
그에 대비되는 창백한 피부.
아름답다는 생각보다.
이건 뭐지?
의문이 먼저 들었다.
‘탑 밖에서 능력이 발동된다고?’
그렇게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중.
갑자기.
“지휘관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한쪽 무릎을 꿇는 안드로이드.
외모와 달리.
딱딱한 말투.
[지원형 안드로이드]
[식별코드 TEUEKAEW-123196]
[등급 SSR]
무려 SSR 등급이다.
난 없음인데 말이다.
말인즉.
눈앞의 미녀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난 순식간에 저세상으로 가겠지?’
아니다.
여긴 탑이 아니니까.
괜찮을 수도?
그렇게 내가 고민하는 사이.
“지휘관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안드로이드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진짜 제 명령대로 움직여요?”
“네, 지휘관님의 명령에 따라서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 임무 수행이 탑에서만 가능한 거죠···?”
“아닙니다. 안드로이드는 전장을 가리지 않습니다.”
나를 올려다보는 노란 눈동자.
‘... 살벌하네.’
무서웠다.
냉랭한 눈빛.
탑 밖에서 임무 수행이 가능하면.
지금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소리.
안 되겠다.
‘분위기를 좀 환기 시켜야겠다.’
그리 생각하며.
일단.
통성명을 시도했다.
“반가워요. 전 이태수에요.”
“제 식별 코드는 TEUEKAEW-123196입니다.”
이름이 따로 없구나.
복잡한 식별코드.
외우지도 못하겠다.
그냥 내가 이름을 짓는 게 낫겠네.
금발에다 지원형이니까.
”브리깃 어때요?“
”감사합니다. 지휘관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는 브리깃.
나한테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뭔가.
좀 부담스러웠다.
**
천성 엔지니어링.
우리회사.
아니.
이제 너희 회사구나.
이름과 다르게.
탑 부산물을 취급하는 회사다.
주력 상품은.
‘붉은 늑대 코어.’
탑 3층에서 나오는 붉은 늑대의 코어.
용도도 한정적.
수요도 많지 않았다.
중소기업이나 손댈법한.
딱 그 정도의 상품성이다.
그딴 걸.
사업을 확장 시켜 보겠다고.
얼마 전에.
‘대량으로 선매입했다.’
붉은 늑대 코어 독점.
난 말렸다.
시장에 대체품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내 예상대로.
일주일 새에 가격이 소폭 하락했고.
회사가 손실을 보면서.
‘전부 내 책임이 되었지.’
뭐, 그래도 그 덕에 각성을 했으니까.
참 감사한 일이지.
사람 된 도리로.
은혜는 갚아야 하니.
평생에 걸쳐서 갚아 줄 생각이다.
늙어 죽을 때까지.
붉은 늑대만 잡아서.
헐값으로 경쟁업체에 팔 생각.
시장에 물량을 계속 풀면.
시세가 점점 폭락하겠지.
가격이 조금 내려간 거로.
그렇게나 열이 받았는데.
아주 반 토막이 나면.
‘정 상무가 무슨 표정을 지을까.’
웃음이 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지휘관님 괜찮으십니까.”
“어, 네···. 괜찮아요.”
미친놈처럼 웃는 나를 보고.
걱정하는 브리깃.
말투는 로봇 같아도.
감정이 있긴 있구나.
“지휘관님.”
“네?”
“말씀을 편하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전 이게 편한데요···?”
“안 됩니다. 전쟁에서 위계질서가 무너지면, 부대도 같이 무너집니다.”
단호하네.
그래.
뭐.
싸우면 내가 질 것 같으니.
시키는 대로 해야겠지?
“어, 알겠어. 근데 정말 혼자 사냥해도 괜찮아?”
“저는 전쟁에 최적화된 전투 병기입니다.”
“근데, 넌···. 지원형이잖아?”
“보조 무장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보조 무장?”
“네, 탑 하위층에서 전투를 수행하기에, 충분한 화력입니다.”
자신만만한 모습.
명색의 SSR등급 안드로이드.
설마 1층에서 고전하진 않겠지.
그 말을 믿고.
“탑 입장.”
손을 위로 올렸다.
순식간에 풍경이 변하고.
[탑 1층에 입장하셨습니다.]
[임무 : 고블린 20마리를 처지 하세요.]
메시지가 떴다.
긴장되는 순간.
심호흡을 한다.
필드에 무수히 많은 고블린.
좀 무섭긴 했다.
딱 스무 마리만 잡자.
어차피 내 목표는 3층이니까.
빨리 다음 층으로 넘어가야지.
그리 생각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가자! 브리깃 공격.”
뒤에서 숨어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지휘관님의 명령에 따라, 전장에 있는 모든 고블린을 섬멸하겠습니다.”
살벌한 말을 하는 브리깃.
잠깐.
뭐라고?
섬멸?
‘내가 그랬나?’
순간.
고민할 틈도 없이.
브리깃의 눈이 붉게 변했다.
눈동자에 레이저가 모였다.
[시스템 가동.]
[에너지 충전 완료.]
[탐지 거리 추정.]
[목표물포착.]
지이잉-
[발사.]
기계음과 동시에.
브리깃의 눈에서.
여러 갈래로 빔이 뿜어져 나오고.
콰과광-
콰광-
그렇게.
레이저가 훑고 지나간 자리.
남은 것이라고는.
“... 이게 보조 무장이라고?”
피비린내뿐이었다.
시체의 흔적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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