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탑이 생긴 이후.
많은 국가가 소멸했다.
초기진압 실패 시.
나라가 망하는 건.
한순간.
한국 역시 마찬가지.
멸망 직전까지 갔다.
여태껏 살아남은 게.
기적일 정도로.
현재 탑 개수.
[38개.]
대한민국 행정 구역.
77개의 시.
82개의 군.
총합 159개 도시.
그중 38개면 23%.
국토 4분의 1이 날아갔다.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
[한국 랭킹 1위. 이철호.]
[한국 랭킹 2위. 정성훈.]
[한국 랭킹 3위. 정미나.]
현 랭커들.
대부분 사람들은 각성자를 추앙했지만.
실상.
진짜 영웅은 따로 있었다.
[비각성자 김정석 각성국 국장.]
[비각성자 이영웅 각성국 2팀장.]
한국이 멸망을 벗어 난 건.
두 사람의 공의 제일 컸다.
비공개 등록을 원하는 각성자는 중국과 일본으로.
대우를 원하는 최상위 각성자는 미국과 유럽으로.
그나마 남은 각성자는 파업.
반 각성자 단체의 무차별 각성자 사냥.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회유.
감성팔이.
정치권 설득.
국민감정 반영.
강력한 법 개정.
각성자에게 확실한 대우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각성자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
-비공개 등록 의향 있음.
없음을 회유하기 위해서.
2팀장과 국장.
두 사람이 회의를 시작했다.
“우리를 믿지 못하는 눈치지?”
“그렇죠. 그러니까 1년 미만의 신입을 보내라고 한 거겠죠?”
“하아···.”
국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응답을 한 건 좋은 일인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없음’의 조건이 까다로워서?
그건 아니다.
각성을 한 지.
고작 16일이 지났다.
14층을 공략했을 뿐인데.
단순 누적 포인트로.
벌써 300위권에 진입.
만약 50층에 진입한다는 가정하에.
‘없음’ 한 명만 있어도.
이론상, 한국의 탑을 모두 지킬 수 있다.
처음부터.
‘없음’이 무엇을 원하든 다 들어줄 생각.
지금 고민을 하는 이유.
따로 있었다.
“그래서 누굴 보내냐고.”
“그러니까요.”
각성국을 믿지 못해서.
등록도 하지 않는 상황.
이럴 때일수록.
신뢰를 깨선 안 된다.
믿음이 중요했다.
그런데···.
각성국 내.
그것도 1년 미만 신입 중.
타국의 첩자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직원?
솔직히.
없다.
“하아···. 진짜 누굴 보내야 하냐고.”
“그, 확실한 사람이 딱 한 명 있긴 한데요···.”
“누군데?”
“외부 첩자일 가능성 없고, 심지어 몬스터 코어 전문가예요.”
“딱 맞네. 그 친구 보내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1년도 안 된 신입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그것부터 물어봐야죠?”
“그거야, 뭐, 아주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 서 아닐까?”
“그럴 리가요. 그 직원을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정황상 첩자일 수가 없어서 그래요.”
“그니까 왜?”
“3차 재해 피해자니까요. 그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었거든요.”
“아···.”
각성자들이 해외로 이민 간 것도.
3차 재해의 원인 중 하나였으니까.
다른 국가의 각성국에 대해서.
좋은 감정이 있진 않겠지.
그런데.
문제는.
“근데, ‘없음’을 죽일 수도 있어요.”
각성자에게도.
좋은 감정이 없을 것이다.
**
[‘없음’의 응답. 정부의 선택은?]
[원했던 건 비공개 등록. 그렇다면 타국에서도?]
[일본, 미국, 중국 등 12여 개 각성국. 잇따라 성명 발표.]
[각성자 ‘없음’. 과연 어디로 갈까. 각국의 영입 경쟁 치열.]
기사들이 쏟아졌다.
세상이 시끄럽다.
저기나.
여기나.
모두 다.
“해방이다. 이제 코어 거래량 따위, 체크 안 해도 된다고.”
“그래, 때려치워. 이딴 건, 애초에 우리 업무도 아니잖아.”
그럴 리가.
코어 관리.
우리 업무 맞다.
아니.
각성국에서 코어거래를 관리 안 하면.
‘어디서 하는데?’
그렇게 속으로만 생각했다.
다들 너무 좋아하는 모습 때문에.
차마 입 밖에 꺼내진 못하겠다.
광기에 사로잡힌 직원들.
실상.
결정 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일단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켰다.
아직 좋아하면 안 되는데.
만약 나를 지목 안 한다?
바로 읽씹 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게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길 바려며.
모니터를 보는 둥 마는 둥.
가만히 기다리던 그때.
드디어.
“태수 씨, 잠깐 따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올 것이 왔다.
**
이 팀장과 독대.
“들으셨죠? 없음의 제안?”
“네, 뭐, 모를 수가 없죠.”
당연하지.
전 세계가 난린데.
“어때요. 태수 씨가 가실래요?”
“아, 네. 알겠습니다.”
이 팀장의 권유에.
고민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맞지.
몬스터 코어 전문가.
1년 미만의 신입.
최고 적임자.
누구?
바로 나?
그렇게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는데.
그게 겉으로 티가 났는지.
갑자기.
“왜, 좋아하세요?”
“아, 아뇨. 아닙니다.”
“왜요? 없음을 몰래 죽이려고요?”
이 팀장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
네?
제가요?
저를 죽여요?
뜬금없는 질문,
순간 벙 쪘다.
“예?”
“이해해요. 원망스럽겠죠.”
“뭐가요?”
“3차 재해를 겪었으니까, 각성자라면 죽을 만큼 싫겠죠.”
아, 맞다.
여기 각성국이지.
사실상.
국가정보원.
내 개인정보 따위.
거의 공공재겠지?
어쨌든.
무슨 오해를 하는지 알겠다.
근데.
“딱히 원망 안 하는데요?”
“그럴리가요. 각성자 때문에 가족을 잃었는데. 어떻게 원한이 없어요?”
“그것도 맞긴 하는데, 저야 어쨌든 각성자 덕분에 살았으니까요?”
“네?”
“3차 재해 때, 각성자가 구해줬어요. 제가 그래서 현장에서 빠져나온 겁니다만?”
내 말에 깜짝 놀라는 이 팀장.
뭐야?
진짜 몰랐어?
각성국 정보력이 좀···.
그렇다?
“아, 그러면 아무 감정이 없다는 말이죠?”
“네, 별생각 없어요.”
각성자도 사람.
악당만 있는 건 아니니까.
좋은 사람도 많다.
내가 원망했던 건.
각성자 특별법이지.
각성자가 아니었다.
‘물론 그 말은 죽어도 못하지.’
각성자 특별법이 만들어질 당시.
주도한 인물.
바로 이 팀장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태수 씨를 믿을게요.”
“넵, 저 혼자 가면 되는 거죠?”
“아뇨. 제가 몰래 뒤따라갈 겁니다.”
“네?”
“‘없음’이 누군지 확인은 해야 하니까요.”
“한 명만 오라고 하지 않았나요?”
“괜찮아요. 안 들키면 돼요.”
자신만만한 이 팀장.
어라?
뭔가.
일이 좀 꼬였다.
**
[없음. 한국 각성국 등록 완료. 몬스터 코어 30000개 상당. 선 계약금으로 지급.]
아직 계약서도 안 썼는데.
발표부터 먼저 했다.
‘뭐 어쨌든 코어가 들어왔으니까.’
거래소 시스템으로.
코어를 보냈다.
우린 입금했으니.
계약 완료란 뜻.
이제 물건은 받았고.
계약서를 써야 했다.
내 원래 계획.
집에서 대충 사인한 다음.
‘없음을 만났다고 둘러대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작전 변경이다.
“브리깃! 임무다!”
“알겠습니다. 지휘관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경례하는 브리깃.
힐끔.
브리깃을 쳐다봤다.
펑퍼짐한 옷을 입었음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몸매.
누가 봐도.
여자.
천생 여자 사람.
얼굴을 가린다 해도 말이다.
차라리 잘됐다.
브리깃을 보내면.
‘그렇게 하면.’
확실히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없음’이 여자라고 생각할 테니.
쇼를 해야지
연기 시작.
“브리깃 약속장소로 따로 와, 그리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알았지? 그냥 사인만 해.”
“네, 알겠습니다. 지휘관님.”
“절대 입을 열면 안 돼. 알겠지? 명심해.”
신비주의 컨셉의 각성자.
말을 하지 않아도.
뭐, 그러려니 할 것이다.
아마도.
말이다.
**
[고블린 코어 486개.]
[오크 코어 276개.]
거래소를 통해 보낸 소량의 코어.
의미 없는 물건이지만.
이건.
486-276
주소다.
약속장소의.
각성자와 비밀 접견 때.
흔히 쓰는 방식이다.
지도 어플로 확인하면서.
그렇게 약속장소에 도착.
복면을 쓴 브리깃을 향해.
“안녕하세요. 없음 각성자님 맞으시죠?”
어색하게 연기를 했다.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이 팀장.
어디 그뿐일까.
내 몸에 마이크도 달아놨다.
하아···.
브리깃 실수하지 말아라.
“여기 사인 하시면 됩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브리깃.
그렇게 브리깃이 사인하는 사이.
-태수씨,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슬쩍 물어봐요.
이어폰에서 이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각성자님이, 어떤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역시나.
발연기로.
내가 묻자.
절레. 절레.
고개를 젓는 브리깃.
그래.
잘한다.
잘하고 있어.
내가 무슨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않고.
계속 고개만 저었다.
-하아···. 역시 소통을 하지 않네요.
결국.
체념을 하는 이 팀장.
-그래도 여자란 건, 알았으니까. 수확이 없진 않아요. 잘했어요. 태수씨.
그렇게.
브리깃이 내게 계약서를 전달하고.
휙-
등을 돌렸다.
오케이.
다 끝났다.
마지막까지 잘했다.
-수고했어요. 퇴근하시고, 내일 다시 회의를 좀 하죠.
그리고는.
뚝-
팀장과 통신을 끊었다.
‘이제 아무도 안 보겠지?’
두리번. 두리번.
주위를 한 번 둘러 본 다음.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각성자 프로필 창을 열었다.
나를 귀찮게 한 것.
좀 괘씸하니까.
-대한민국 각성국. 이번 한 번은 봐줌. 다음엔 조심하시길.
짧고.
간결하게.
센 척을 한 번 해봤다.
이렇게 하는 게 맞겠지?
아닌가?
뭔가 어색한 것 같기도 하고?
뭐, 갑질을 당해만 보고.
언제 해봤어야지.
그래서.
영 익숙하지 않았다.
**
은밀한 거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럼.
‘자, 이제.’
15층 공략.
들어가기 전에.
선 계약금으로 코어를 당겼으니까.
로망과 꿈을 구매할 차례.
그렇게.
내가 아주 신을 내며.
“플렉스다. 브리깃!”
브리깃을 향해 소리를 쳤지만.
“지휘관님, 코어를 소모하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시큰둥한 반응.
브리깃이 기계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또, 왜?”
“죄송합니다.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
알겠어.
너 비밀이 많은 거.
그래도 말이야.
코어가 이렇게 많으니까.
“그러지 말고, 기동갑옷 한 개만 사자. 추천 좀 해줘.”
딱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명령을 내리신다면 듣겠습니다. 하지만···.”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고.
말끝을 흐리는 브리깃.
그 모습을 보며.
“아니야. 명령이 아니고.”
내가 고개를 저었다.
“브리깃이 나에게 주는 선물로 하자. 로봇을 선물로 받으면 기분이 무려 65% 증가하니까.”
선물이라는 말에 얼굴을 붉히는 브리깃.
마지 못해.
수줍게.
“현재···. 가장···. 효율이 좋은 기동갑옷 파츠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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