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비행시합.
내가 사알짝? 먼저 출발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게 너와 나의 차이다. 브리깃.”
내 승리였다.
내가 먼저 도착지점을 밟자.
깜짝 놀란 브리깃.
노란 눈동자가 커진다.
전함을 얻었을 때보다.
더 크게.
“지휘관님의 장비 운용 능력은, 정말 보면 볼수록 놀랍습니다.”
“에이. 너무 띄워준다.”
“아닙니다. 지휘관님은, 스스로를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니야. 애초에 내가 먼저 출발하기도 했고, 결국 결과도 브리깃이랑 한 끗 차이였잖아.”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저희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달리 모든 장비에 최적화된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그럴 리가.
너희 인공지능.
그 정도 아니야.
내가 아무 말 없이.
뛰놀고 있는 애들을 쳐다봤다.
“지휘관. 혼내. 저거. 싫어. 나빠.”
“몸과 머리를 분리해서 실추된 명예를 드높이겠습니다!! 지휘관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전투에 최적화된 인공지능?
너무 거창하다.
저건 누가 봐도.
그냥 꼬맹이들이다.
“그, 그건 바리안과 쉐도우가 특이 케이스일 뿐입니다.”
“저기요? 확률이 50%인데, 특이 케이스라고?”
예리한 나의 질문.
브리깃도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닫고.
정자세로 그 자리에 대기 했다.
‘쟤는 명령이 없으면, 아예 움직이지를 않는구나.’
뭐, 어쨌든.
쉴 만큼 쉬었으니까.
이제 슬슬 돌아가야지.
“애들아, 그만 놀고, 집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얌전해지는 아이들.
나를 올려다보며.
조그만 눈동자를 깜빡였다.
귀엽긴 참 귀엽다.
“봐줌. 지휘관. 아님. 너죽음. 끝끝.”
“지휘관님이 원치 않으니!! 내 너에게 아량을 베풀어주마!!”
물론.
입만 다물면 말이다.
**
각성국.
아침이 밝았다.
여전히 우중충한 날씨.
그러나.
“좋은 아침입니다!”
이팀장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를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든다.
‘불길하네.’
상사의 기분과 내 기분은 반비례.
직장생활 공식이다.
“태수 씨 이번에 또 한 건 했다면서요?”
“네? 뭐를··· 요?”
“브로커요. 코어 브로커.”
“아, 그거요? 뭐, 운이 좋았죠.”
“겸손이 심하시네요. 혈혈단신으로 코어 브로커 조직을 때려잡았는데. 운이라뇨.”
“...”
진짜 운 맞다.
전 상사의 게으름 덕에.
비밀번호를 쉽게 알아냈으니까.
“현역에 있던 분이라 다르긴 다르네요. 하긴, 현장에서의 경험은 무시 못 하니까.”
아뇨.
경험이 아니라.
그냥 무력으로.
해결했습니다만?
근력 200%로.
“그래요. 이번에 태수 씨가 고생하셨으니까.”
그 순간.
설마.
휴가?
두근두근.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이 팀장의 입이 떨어지길 기다렸는데.
“다들 태수 씨에게, 박수 한 번 주세요.”
“...”
와.
이걸.
박수로 퉁을 치는구나.
역시 냉혈한.
각성국의 미친개답다.
그렇게.
나의 공로를 얼렁뚱땅 박수로 넘긴 다음.
“앞으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코어는, 기본 산업에 필요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없음에게 보낼 겁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연설을 시작하는 이 팀장.
“그러니까 여기 코어 팀이 없음을 서포트 하는 겁니다. 다들 자부심을 가지고. 오늘도 화이팅 해봅시다.”
되게 즐거워 보이네.
다크서클은 여전하지만.
뭔가. 사람이 바뀐 것 같다.
**
중국 각성국.
쾅-
라오칭 국장이 책상을 내리쳤다.
“또 실패라고?”
“죄, 죄송합니다.”
“이철호 귀화도 실패. 이영웅 납치도 실패. 게다가 이번엔 코어 밀수입도 꼬리를 잡히고? 전부 다 실패네?”
“할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와중에 또 한국의 탑포인트는 빠르게 치솟고 있고···. 하아···.”
“이게 전부 없음 때문입니다. 그 자식만 없었어도···.”
없음의 등장 이후.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었다.
“젠장, 한국 정부도 눈치챈 것 같지?”
“네, 이미 없음이 코어로 아이템을 만든다고 선전 하는 중이니, 모를 리 없을 겁니다.”
코어 밀반입.
중국이 그런 무리수를 계획했던 이유.
없음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코어로 아이템을 만들 수 있기 때문.
최근에 연구한 결과.
몬스터코어와 몬스터 사체를 조합하여.
탑 전용 아이템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 이 사실을 아는 건.
중국과 미국.
그리고 한국 정도지만.
“조만간 다른 국가들도 알게 되겠지. 그러면 결국 코어값이 폭등할 테고.”
“게다가 저희와 달리, 한국에서는 이미 효율적인 아이템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 대외적으로는 없음이 만든다고 알려졌지만.”
전부 다 한국 정부의 수작이겠지.
원래 기술력만큼은 뛰어난 나라니까.
“그럼 사체 쪽은? 어때?”
“수상한 낌새를 포착하진 못했습니다. 아마 소수 정예만 보내서 몰래 사체를 수급하는 것 같습니다.”
어째거나.
한국이 몬스터 사체 사용법을 알아냈다.
중국으로서는 골치 아픈 상황이다.
필드는 곧 망한 국가를 의미.
중국과 인접한 국가 중.
망한 나라는 네팔과 부탄.
그리고 북한이다.
네팔과 부탄은 히말라야산맥에 위치.
교통이 불편하고.
접근성이 떨어졌다.
그러므로.
현재 중국은 대부분 몬스터 사체를 북한에서 수급 중이었다.
“그리고 한국 놈들도 조만간 북한을 노리겠지.”
한국 역시 가장 가까운 필드가 북한이니까.
앞으로.
필드에서 각성자들끼리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한국에서 먼저 선수를 치기 전에.
그에 대해 대비를 해야만 했다.
**
한국 각성국.
이 팀장과 국장.
두 사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북한으로?”
“위성확인 결과 각성자로 보이는 자들이 전초기지를 세우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뭐지? 전쟁이라도 할 생각이야?”
“아니요. 군병력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몬스터 사체.
용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규모의 각성자들을 밀어 넣을 정도로.
중요한 물건이냐고 하면.
글쎄?
“각성자들 대다수가 국경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 파악됩니다.”
“아무래도 수상해. 한 번 알아봐.”
“알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그때.
갑자기.
사무실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나 왔다.
“으아아아! 없음이시여! 믿습니다.”
“그래 앞으로 이렇게 쭉쭉 꽃길만 가시 오소서!”
광신도처럼.
없음을 찬양하는 직원들.
아무래도 각성국이다 보니.
직원 중 각성자도 적지 않다.
그래서 야근을 하는 날마다.
이렇게 실시간 중계를 들을 수 있었다.
“28층도 1분 이내인가 보네.”
“네, 보시다시피요. 이제 없음만 잘 서포트 하면, 다시는 한국에서 재앙이 일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이 팀장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굳게 쥐었는데.
여전히.
웅성거림이 잦아들지 않은 사무실.
“제발 원거리 무기! 없음이시여!”
“그래. 검 말고! 제발. 지금 근거리 딜러들만 꿀 빨잖아!”
원거리 각성자들의 간절함.
애원.
한.
기타 등등 때문에.
각성국 건물이 진동했다.
**
28층의 공략이 끝났다.
28층.
필드 초원.
몬스터 엘리트 카우.
보스 몬스터는 킹 카우.
보스 층이지만.
필드 초원이다 보니.
꽤 손쉽게 공략을 할 수 있었다.
시스템 창에는.
[머신 팩토리 – 호신용 소형 입자 빔 제작.]
쓸모없는 것과.
[은폐 모형.]
[SR등급.]
[사용 시 외부에서 인식 불가.]
[은폐 모형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형.]
쓸만한 게 나왔다.
[은폐 모형.]
자유자재로 변경 가능.
어떤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다.
크기가 자유롭게 늘어나는 물건.
사람뿐 아니라.
지형지물도 숨길 수 있다는 소리.
그러나.
‘그딴 건 지금 중요하지 않지.’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지나갔으니까.
“브리깃, 은폐 모형의 열전도율은?”
“430W/mK 입니다.”
“은이랑 비슷하네···. 그래, 탑에서 아이템은 절대 부서지지는 않지?”
“네, 맞습니다.”
“브리깃의 레이저를 맞아도?”
“그렇습니다만···. 대체 무슨 일을 하시려고···?”
내 돌발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브리깃,
일단 무시하고.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화창한 초원 필드.
몬스터는 카우.
그러니까 소다.
“바리안, 쉐도우! 명령이다. 가서 카우 사체 남은 거 모아와.”
“네? 무슨···.”
“소고기 구워 먹을 거야. 브리깃 너도 준비해.”
고기는 너가 구워야 하니까.
[은폐 모형.]
적당한 크기로 변형.
불판 형태로 만들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잠깐만요. 지휘관님 왜 갑자기 함선을···.”
“오랜만에 소고기잖아. 분위기 좀 내보려고.”
자, 드디어 함선을 쓸 차례.
고기를 구워 먹기 위해서.
처음으로 함선에 올라탔다.
“크아. 역시 경치 좋네.”
초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고층 빌딩의 고급레스토랑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뷰.
서울 절반 크기의 초대형함선에서.
SR급 은폐 장비로.
치지직- 치지직-
고기를 구웠다.
누가?
SSR급 안드로이드가.
전장을 초토화하는 레이저의 반사열로.
그래.
이게 바로 플렉스지.
그렇게 상공에서 여유를 느끼며.
느긋하게 아래를 내려다 봤다.
“경치 진짜 좋다. 안 그래?”
“좋긴, 좋습니다만···.”
“그러면 왜? 고기가 입에 안 맞아?”
내가 브리깃에게 묻자.
다른 곳에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맛있. 좋다. 고기. 더줘. 빨리. 구워.”
“맛있습니다!! 전사의 피는 고기로 이뤄져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휘관님!!”
만족하는 듯.
아이들이 조그만 입을 오물거렸다.
“저···. 저도. 마···. 맛있습니다.”
브리깃도 싫지만은 않은 듯.
수줍게 고개를 숙인다.
미노타우르스급 함선.
분위기가 200% 증가하는 옵션.
다들 즐거워 하는 걸 보니.
옵션이 제대로 적용된 듯하다.
뭐, 어쨌든.
이렇게 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으니까.
얼마나···.
응?
잠깐.
모두 다 같이가···.
맞나?
뭔가 한 명이 부족한 것 같은데.
음···.
아닌가.
뭐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잊고.
다시 느긋하게 풍경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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