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미래에는 사람이 탱크를 한 손으로 들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겠죠?”
갓 생산 라인에서 빠져나온 전투 수트를 바라보며 한 청년이 말했다. 그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중년의 사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자네, 의외로 순진한 면도 있군. 뭐, 그렇게 되겠지.”
그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하지만, 반대로 문명이 퇴행할 수도 있고 말이야.”
“퇴행이라뇨? 왜요?”
청년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중년의 사내는 잠시 말을 고르며 고민했다. 자신도 모르게 가볍게 내뱉은 말이었기에 구체적인 답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이내 대답을 미뤘던 것을 포기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예를 들자면 전쟁이라던가, 대지진이라던가··· 뭐, 어떤 날 갑작스럽게 일어날 수도 있겠군.”
현 세상은 전쟁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청년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고대인의 녹취록>
***
무허가 마법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시온이라는 사내의 이명이었다.
마법을 다루는 요정과는 달리, 그는 동쪽 대륙에서 건너온 이방인이었다.
“시온이 동쪽 대륙 출신이었소? 동쪽 대륙에 생명이란 것이 존재했었소?”
가장 나이가 많은 기사가 물었다. 그는 키가 작고 다부진 드웨르그 종족이었다.
“알도모어, 시온을 토벌하려면 서둘러야 하니 우선 하차부터 하시오.”
그는 이번 토벌을 이끄는 대장이었다. 이름은 르너 브란슨, 드웨르그 기사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실력이 출중하여 토벌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하차!!!”
네 명의 기사들이 복창하며 수송장갑차에서 내렸다.
철컹! 철컹! 철컹!
기사들이 입은 파워 아머의 요란한 기계음이 칼람 밀림의 숲을 깨웠다.
아머는 고대, 그러니까 기술이 발달했다고 불리던 시절에 고대인이 만든 유물이었다.
고대에는 파워 아머를 쓰기 위해 전력이라는 에너지를 썼었지만, 요정들이 세상을 지배한 뒤론 마법이란 힘으로 아머를 움직이게 했다.
“잠깐! 지금 우리만으로 시온을 잡으러 간다고요?”
가장 어린 기사가 당황하며 물었다.
“단순 정찰이 아니었어요?”
반란군을 피하기 위한 기밀 사항이었던 탓에 그조차 이곳에 온 이유를 몰랐다.
“아니다. 기밀이었기에 속이게 되어 미안하구나 에이릭. 다른 기사들에게도 미안하오. 반란군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소.”
이유는 납득됐지만, 에이릭의 불안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건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프 요정 출신 기사, 리아도 손을 들어 물었다.
“넷 만으로 될까요? 시온은 마법사잖아요.”
“마법사라고 불리지만, 근거리 마법이다. 근거리 전투라면 할 만할—”
르너가 말끝을 맺으려던 순간, 알도모어가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무슨 일이오?”
르너가 낮게 묻자, 알도모어가 조용히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얼어붙은 거대한 뱀 허물이 일부 드러나 있었다.
“나가의 허물이오.”
알도모어의 설명에 대원들 모두가 얼굴을 굳히며 자신들의 무기를 단단히 쥐었다.
뱀 종족 수인인 나가는 호전적이고 잔혹한 종족으로 악명이 높았다.
“게다가 저 허물···, 오래되지 않은 것 같구려.”
그는 허물의 표면을 손끝으로 살피며 말했다.
나가는 허물을 벗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나가들도 시온을 쫒나보군. 대비 태세를 갖춰.”
르너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사들은 그의 명에 따라 주변을 경계했다.
침묵이 그들 사이를 감돌 무렵.
[나가의 비늘은 마법 저항력이 높아, 마법사들의 천적이기도 한다오.]
낯선 목소리가 에이릭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
“누··· 누구야??!!!”
에이릭뿐만 아니라 다른 대원들도 같은 목소리를 들었는지 모두 당황하며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바스락!!
“!!!!!!!!!”
“거기 있는 거냐!!!”
발소리가 들리자 리아는 본능적으로 총구를 겨누었다. 그리곤 방아쇠를 당기었다.
투타타타타!!
투타타타타타!!!
묵직한 총성 소리와 함께 마력탄이 허공을 갈랐다.
“리아!! 사격 중지!!!”
르너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오스웬은 즉시 사격을 멈춘 다음 먼지가 가라 앉기를 기다리며 사격 지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찾아온 적막.
먼지 사이로 실루엣이 보였다.
드드드드드드
드드드드드드
괴기한 쇠음이 밀림을 매웠다.
시온이 들고다니는 거대한 대검이었다.
“시온이다!! 전투 준비!!”
르너의 말에 알도모어가 방패와 도끼를 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시온은 거대한 대검을 땅에 꼽은 뒤 손으로 땅을 짚었다.
그러자 땅이 요란히 흔들리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읏고 갈라진 땅 사이로 기계로 이루어진 거대한 나무 줄기가 나타났다.
매트릭스라 불리는 기계화된 줄기 덩어리로 고대 인류가 만들었다던 거대 유물이었다.
고대 기계를 다루는 시온의 마법 중 유일한 중거리 마법이기도 했다.
그가 손을 뻗어 알도모어를 가리키자 기계 줄기들은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내리쳤다.
“으윽!!!”
알도모어는 방패를 들어 간신이 막았지만, 저 멀리 튕겨 나갔다.
“알도모어 경!!!!!!”
리아가 줄기를 향해 총을 쏘며 그를 엄호했다. 그사이 르너와 리아, 그리고 에이릭이 달려나갔다.
르너와 에이릭이 매트릭스를 상대하는 사이 리아가 알도모어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군요.”
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를 일으켰다.
그러는 사이 에이릭과 르너가 매트릭스를 상대했다.
투타타타타타
수십 발의 마력탄이 매트릭스에 명중했지만, 알 수 없는 보호막에 막혀 무력화되었다.
“이보시오, 단장 양반! 시온은 근거리 전투를 선호한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근거리보다는 훨씬 넓은 것 같네만.”
알도모어가 합류하며 외쳤다.
하지만 르너는 막아내느라 바빠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리아까지 합류했지만, 기사 다섯 명 중 누구도 시온의 지근거리까지 다가가지 못했다.
[그만 돌아가시오. 당신들을 헤치고 싶지 않으니.]
시온은 매트릭스 위에 서서 말했다.
그리곤 줄기들을 더 불러 그들을 부드럽게 감쌌다. 이후 줄기들은 서서히 움직이며 기사들을 땅속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
“????!!!!!!!!”
“단장님!!!”
기사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소란을 피웠다.
[몸 잘리고 싶지 않으면 진정하시오. 돌려보내드겠소.]
시온은 뛰쳐나가려는 에이릭을 단단히 붙잡으며 말했다.
콰드드드득!!!!
나무 줄기들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몇 차례 작은 충돌이 온몸에 전해지더니, 땅의 흔들림이 멈췄고 눈을 감고도 느껴질 만큼 밝은 빛이 퍼졌다.
기사들은 천천히 눈을 뜨며 주변을 살폈다.
조금 전 봤던 곳과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순식간에 완전히 다른 장소로 전이된 것이다.
“여··· 여긴···?”
리아가 조심스럽게 묻자, 르너가 자신의 방패를 내리며 대답했다.
“밀림 밖으로 쫒겨났군.”
눈 앞에는 그들이 타고 왔던 수송장갑차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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