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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7.12.0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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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5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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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59화. 키큰 유덕화.

DUMMY

“그거 몰라? 사장! 사장님! 나는 노노. 종업원. 종업원도 몰라? 하나도 몰라?!”


분홍은 연이 엄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눈을 뜬다. 식당층인 6층에 있는 분홍의 방에는 봄 햇살이 들어와 온화하게 고여있었다.


'여덟 시는 지났나보다...'


격렬하게 철제 식판을 긁는 소리들이 나지 않는 걸 보면 고시원의 아침 식사 시간은 모두 끝난 것이리라. 연이 엄마의 목소리만 아니라면 조금더 봄햇살에 몸을 살균시키며 게으름을 만끽하고 싶었다. 분홍이 지하 연습실, 캐시 뮤직에서 보내는 시간은 너무 길었다. 그런데 연이 엄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하며 문밖 식당에서 일어나는 일에 온 몸의 신경이 다 쏠리기 시작해 더이상 그대로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좁은 침대 밖으로 쭉 뻗어나와 공중에 혼자 떠있던 왼팔의 팔꿈치가 욱신하다. 오른손으로 그쪽 팔꿈치를 문지르며 몸 쪽으로 가져온다.


분홍은 또 그 젊은 중국인이려니, 생각한다. 그 중국인 남자를 처음 보았을 때 분홍은 그가 홍콩 배우 유덕화 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유덕화보다는 키가 아주 크고 말랐는데 자신이 잘 생긴 걸 스스로 알아서인지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데도 고시원 안에서, 특히 연이 엄마를 상대할 때도 크게 주눅든 느낌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와 연이 엄마가 이야기할 때는 연이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계속 커지곤 했다.


지금도 밖에서는 연이 엄마의 목소리는 높은 데시벨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는 쩔쩔매고 있는 것 같았다.


분홍은 이 플라자 고시텔에서 생활하면서 신조가 하나 있었다. 고시원 식당에서 누굴 만나면 그래도 인사는 하자. 인사를 한다고 해서 식당 분위기가 원하는 만큼 화기애애해지거나, 다른 사람들과 큰 교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안그래도 철제 식판 긁는 소리가 서로에게 시끄러울 것이고, 어차피 연이 엄마가 만든 똑같은 반찬을 먹을 사람들이다. 식당 티비에 재밌는 예능 프로가 켜져 있으면 함께 보면서 몰래몰래 웃을 사이이다. 그렇다면 서로 모른척하고 따로따로의 세계에 머무르고 있는 척해봤자, 그들은 모두 하나의 공간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커다란 욕조에 함께 몸을 담근 목욕탕의 손님들처럼 말이다.


어차피 신경 쓰일 것이고, 어차피 서로의 얼굴을 매일 같이 마주칠 것이고,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연이 엄마 수다에 의해 대충의 호구 조사도 완료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인사를 하자. 그 덕분이 분홍과 중국인 남자는 만날 때마다 눈으로 인사는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유덕화를 닮은 그 남자는 한국말을 못해서 연이 엄마가 궁시렁거릴 때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하곤 했다.


“아니, 한국에 왔으면 기본적으루다가, 뭐, 이건 이렇다, 하고 말을 할수 있게끔 입을 터야지, 무슨 벙어리마냥... 아침에 밥 먹는 시간을 보면은 학교를 다니는 것 같은데 한 마디두 제대로 못하고 뭘 공부하는 거야. 저런 거 가르치는 선생도 속이 터지겠구만...”


연이 엄마는 고시원 식당의 넓직한 싱크대 위에서 시금치에 묻은 흙을 털어내면서, 콩자반을 조리면서, 그렇게 키큰 유덕화에 대한 흉을 보곤 한다. 연이 엄마는 누가 밥 먹으러 6층 식당에 올라오는 소리가 나면 잠시 험담을 멈췄다가 누가 왔는지 확인하고나면 다시 이어가곤 했다. 혼자 보는 흉이라 할지라도 분홍이 밥을 먹고 있으면 먹으면서 다 듣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사실이다. 분홍은 다 들었다.) 사실 분홍이 방 안에 있어도 연이 엄마가 하는 말은 다 들렸다. 플라자 고시텔의 방음재는-방음재를 쓰긴 썼다면-무척 특수한 듯했다. 아무튼 분홍이 어디에 있든 분홍에게 들린다는 것을 알고 저렇게 궁시렁거린다고 그녀는 생각했었다. 정말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데도 저렇게 완벽한 문장을 말하면서 궁시렁거릴 수 있을까 싶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연기 연습을 하는 배우의 시간 같다고 생각했다.


플라자 고시텔엔 두상이 큰 데다가 이발한 지 한참된 듯 머리가 방사형으로 뻗어나가 머리가 검은 무쇠솥을 연상시키는 젊은 남학생이 하나 있다. 연이 엄마가 하는 말을 듣기로 재수생이라고 한다. 그 무쇠솥 머리는 연이 엄마가 하는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계속 밥을 먹곤 했다. 며칠 전 아침에도 그 무쇠솥 학생은 시선을 식판 위에만 고정시킨 채 식사를 하고 잇었다. 잠시 물을 마시러 식당에 나온 분홍은 그 모습을 보며 그가 무언의 몸짓으로 연이 엄마가 하는 말들을 쳐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럼에도 연이 엄마는 빈 식탁에 앉아 그 학생에게 몸을 향한 채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니, 근데 한국 살래믄 한국말을 그래두 어느정도 해갖구 와야 되는거 아니야? 우리 딸은 내가 그냥 영어 하나만 하라고 그래도 중국어도 잘해가지고 그렇게 회사에서 일을 더 시킨대. 그래서 내가 그러지, 왜 그렇게 씰데 없이 공부를 많이 해갖구 너는 일을 버냐, 그냥 영어만 잘해두 먹구는 사는 거거던. 그래도 아냐, 엄마, 요즘엔 계속 공부해야 살아남아. 요래. 에헤헤헤.”


"......"


무쇠솥 머리는 표정의 변화 없이 계속 그 한 곳, 식판 위를 응시했다.


‘참나. 딸 자랑이 아무리 하고 싶어도 왜 재수생한테 딸 자랑이람?’하고 분홍은 속으로 연이 엄마를 나무래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연이 엄마는 플라자 고시텔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상대해야 했지만 그녀의 형편없는 외국어 실력과 상대의 미천한 한국어 실력이 잘 경쟁하고 화합하므로 그런대로 헤쳐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키큰 유덕화의 등장 이후 연이 엄마는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고시원에 사는 사람 절반은 연이 엄마랑 말을 안 하고 지내는 것 같았다. 처음엔 그것이 참으로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한 건물에 살면서, 연이 엄마의 밥을 먹으면서, 서로가 말을 그렇게 안 할 수 있을까...?'


나머지 반의 반은 연이 엄마에게 형식적으로 대꾸만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연이 엄마와 나름의 공생 관계를 형성하면서 친밀하게 지내며 그 만큼 이 고시원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가는 걸로 보였다.


분홍은 키크고 마른 유덕화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해서 애타고 있는 것 같아서 문을 열고나가 도와주고 싶었다. 만국 공통어 영어를 통해. 분홍의 영어는 건물주 황윤희의 남편을 상대로도 통했었다!


그러나 그런 분홍의 친절은 키큰 유덕화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연이 엄마를 도와주는 것이 된다. 이 건물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된다. 그래서 분홍은 망설인다. 또 목을 뻗어 거울에 얼굴을 비춰봐도 잠에서 깬지 얼마 안 돼서 보기 흉한 것 같다. 검지 손가락으로 눈꼽을 떼면서 거울 앞에서 웃는 얼굴을 지었다가 찡그린 얼굴을 지었다가 얼굴 근육을 푼다. 머리를 묶는다. 그리고 체크무늬 남방을 걸친다. 이정도면 이방인 남자 앞에 서도 괜찮을 것 같다.


문을 연 분홍은 말한다.


“캔 아이 헬프 유? Can I help you?"


키큰 유덕화는 식당에 갑자기 등장한 분홍을 보고 조금 놀랜 기색이 되었다. 분홍은 식당층의 방에 살고 있다. 분홍이 벽을 뚫고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엄연히 존재하는 방문으로 나오는 것임에도 고시원생들은 그런 분홍을 보고 종종 놀라곤 했다. 밥먹는 층에 사는 사람,은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존재는 아닌듯했다. 그는 잠시 영문을 살피는 표정이더니 이내 애절한 표정으로 “예스, 예스, 플리즈.”라고 말한다.


“아아이, 해브 투 고우 아웃 애프터 투 데이즈, 앤드 렌트 이즈 스틸... 아이 원투 노우 아이 캔 겟 더 머니 백. I... have to go out after 2 days, and rent is still... I want to know I can get the money back."


돈, 그러니까 고시원 월세 문제였다. 돈 문제는 언제나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산수라는 면에서 가장 쉬운 문제이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내 가장 소중한 것, 시간을 바쳐야 한다는 점에서는 어려운 문제였다. 부모님에게 돈을 타서 고시원비를 냈다면, 부모님이 힘들게 벌어서 준 돈이라는 점에서 죄책감과 미안함을 꼬리에 달고 다니는 고시원생들이었다.


세면대 물이 막혔다, 변기 물이 안 내려간다. 샤워 온수가 안 나온다, 이런 문제는 연이 엄마의 얼굴을 벌개지게 하고 그녀가 하루종일 목소리를 높이면서 검은색 건물을 오르내리게 하였지만, 돈 문제는 좀 달랐다. 연이 엄마와 건물주 황윤희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음침한 분위기의 대화를 나누곤 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1층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면 그 둘 사이에는 긴장과 고통, 저항, 알 수 없는 어떤 분위기들이 흘렀다. 특히 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그랬다. 고시원 월세를 카드로 내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리고 돈을 너무 늦게 내는 고시원생이 있을 때 두 사람의 목소리는 가장 낮게 가라앉았다.


키큰 유덕화의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유는 모르지만 이 플라자 고시텔에서 나가야 되는데 선불로 내놓은 월세가 문제였다. 열흘정도에 해당하는 월세를 돌려받아야 되는데 분홍이 머릿속으로 얼핏 계산해 보니, 약 이십만 원은 돌려받아야 할 형국이다. 그런데 분홍 역시 연이 엄마가 그 돈을 돌려줄지 의문이었다.


“이 분이 내일모레쯤에 나가야 된대요.”


분홍은 표범 무늬를 한 연이 엄마의 고쟁이 바지를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하면서 통역을 수행했다. 연이 엄마는 분홍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키큰 유덕화와의 소통에 도움을 주니, 얼마 간 반가움이 섞인 얼굴로 분홍을 바라보았다. 원래도 분홍보다는 키가 작지만 영어도 모르고, 중국말은 더더욱 몰라서 얼굴이 벌개져 있는 연이 엄마가 오늘은 조금더 작아보였다.


“아이참, 그런 거 있으면 애초에 말을 했어야지, 몇 달 살 것처럼 말해서 받아놨드만 그렇게 약속을 채우지도 못하고 나갈 거면, 내가 그때 방 보러 온 애덜이 많았는데, 그애덜더러 들우와 살라고 했지, 짱깨를 왜 받느냐고.”


'짱깨...?'


분홍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눈동자만 돌려 키큰 유덕화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히 ‘한국말을 몰라 슬픈 짐승’이 되어버린 그는 그 말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약간 낯빛이 어두워지는 것이 좋은 말이 아니란 것정도는 눈치챈 모양이다.


“그런 말 하시면 안 되는데...”


분홍은 그가 못 알아 들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을 얼른 돌렸다. 그를 너무 실망시킬 수는 없어서 “아주머니가 가급적 돈을 돌려줄 것인데 주인이 따로 있어서 그녀와 상의해본 뒤에 알려줄 것 같다” 정도로 통역해 주었다.


너무 절박한 나머지 분홍이 말 하는 한 단어마다 “예스”를 내뱉던 그의 얼굴에 어느정도 안도감이 돌았다. 통역엔 의역과 직역이 있는데 분홍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의역을 하는 바람에 분홍 자신도 이럴 거면 그냥 연이 엄마 말을 안 듣고 아무 말이나 그에게 통역해 줘도 똑같겠구나, 싶어졌다.


“여기가 하루에 삼만삼처넌이야. 하루만 받기도 하거덩. 벌써 이십일 가까이 살았으면 사실은 벌써 돈 낸 거는 다 쓴 거지 머. 사실 우린 안 줘도 돼. 사모님한테 말해도 또옥-같을걸?”


한국말을 모르는 그도 연이 엄마의 억지스러운 음성에서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애절한 눈빛으로 도와달라는 듯 분홍을 쳐다본다. 분홍도 하루만 자면 그정도 돈을 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곳 플라자 고시텔을 모텔이나 호텔처럼 그렇게 하루씩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모, 그래도 이 분이 하루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거의 이십 일 있었다는데, 그렇게 일일 계산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연이 엄마는 분홍에게 버럭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어쨌든 일대일이 아니라 일대이로 전선이 쳐진듯한 식당 상황에 말을 잇지 못하고 “허긴... 뭐... 이십마넌이 아주 작은 돈도 아니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두 유 노우 허 폰 넘버? Do you know her phone number?"

"예스, 예스! yes, yes."


연이 엄마는 이 문제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 분홍은 연이 엄마가 정말로 이런 일을 결정할 수 없을까, 늘 의문이다. 연이 엄마는 힘든 일이 생기면, “이게 내 장사가 아니잖어. 내가 종업원이니까...”라고 하면서 책임에서 비껴선다. 그러다가도 신이 나면, “이 건물이 나 없으면 돌아가지가 않어, 돌아가지를. 이 집은 나 못 그만두게 할라고 아조 난리들이야, 난리가. 할머니도 나만 믿어. 아무도 안 믿어.”라고 하면서 자신이 이곳의 진짜 실세인 듯 말한다. 그 말을 거의다 믿은 결과가 분홍과 송이 이 건물에 살게 된 시작이었을 것이다.


분홍은 키큰 유덕화에게 나중에 연이 엄마와 다시 통화하면 될 것이라고 희망을 갖게 해주고 내려보냈다. 연이 엄마는 나중에 그의 전화를 받으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다시 답답해 할 것이다.


“생큐, 생큐.”


그는 분홍에게 인사를 하고 유리문을 나서기 전에 한 번 더 하고, 유리문 밖에서 한 번 더 인사를 한다. 그는 누군가에게 숙이는 느낌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한국어를 몰라도 크게 주눅들지 않는 것은 중국인들의 본래 특성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극공손한 태도를 취하며 사라졌다.


연이 엄마는 더 이상 분홍과 수다를 떠는 관계는 아니었지만 남자가 내려가고 난 뒤에도 말할 사람이 없으니 계속 분홍에게 이야기를 했다. 연이 엄마나 분홍이나 두 사람 다 식당에 그냥 서 있는 상태였다. 분홍이 더 들어주면 연이 엄마는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 한 잔 마실래?”라고 물을 태세였다. 연이 엄마의 아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밥을 만들어 주는 사람, 나한테 여기 들어와 살라고 했던 사람, 넓은 식당을 집인 것처럼, 너른 독채처럼 살라고 꼬득였던 사람, 책이 많다는 분홍에게 식당에 서재를 꾸며주겠다고 유혹했던 사람, 분홍만 보면 엄마가 딸 찾듯 하소연부터 하던 사람, 연이 엄마.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분홍에게 없지 않았으나, 연이 엄마한테 여러 번 상처를 받은 뒤로는 연이 엄마한테 친절을 베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분홍이 연습실 계약을 하기로 한 마음의 일부는 연이 엄마에 대한 앙심과 무시 당한 것에 대한 복수심도 없지 않았다.


“저 짱깨가 왔을 때 따른 짱깨가 하나 더 있었어. 거의 같은 날 방을 보러 왔었다구. 저 치가 쫌더 얌전해 보이기도 해서 한 놈만 올 거면 이 눔이 와라, 했지. 딴 놈이 쫌 건들건들하고, 얼굴이... 아니야. 또 방도 1층을 꼭 달라고 그러대. 1층 방은 잘 안 나와. 요즘 애덜은 게을러서 1층 달라고 그래. 한 층도 안 올라올라구 한다구.”


분홍은 “네...”라고 대충 대답하고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연이 엄마는 분홍의 등 뒤에 대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더니, “하이고, 오늘도 할 일이 많네.” 하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자기 방이라고 해봤자 분홍과는 벽 하나 사이를 둔 공간이고 서로의 부시럭거리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방음도 안 되는 그런 방이었다.


고시원 입주자의 민원을 하나씩 해결해 주거나 도움을 줄 때 분홍은 기분이 좋아졌다. 이 고시원에서 어떤 사람은 연이 엄마와 대화를 많이 하고 어떤 사람은 연이 엄마와의 대화를 아예 단절하고 살아가는 듯했지만, 이 검은색 건물에 사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모두 같은 반찬을 먹고, 화재 경보벨이 울리면 다 같이 긴장했다가 또 벨이 고장났나 보군, 언제 벨이 멈추려나, 귀찮은 마음을 함께 먹었다. 비오는 날 자기 우산이 사라지면 누가 가져갔느냐고 욕하면서 제일 비슷하게 생긴 다른 사람의 우산을 슬쩍했다.


그래서 분홍은 ‘이 건물의 우리 모두는 운명 공동체’라고 믿기도 했다. 기도를 할 때 검은색 건물에 사는 이들 모두를 위해서 기도하기도 했다.


‘주님, 우리가 사는 이 검은색 건물에 불이 나지 않게 해주시고...’


분홍은 예정에 없던 월세를 낸 것이 억울하고, 앞으로 연습실 월세 낼 것도 걱정이고, 남자친구 송이 보증금을 채워준다는 것도 아직은 확실한 계획이 없으므로 모두 불안했다. 분홍 자신의 인생은 민원 그 자체인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 검은색 건물 공동체 속의 누군가의 민원을 해결해 주면 보람을 느꼈다.


- 리얼리즘 코미디 소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꾸준히 함께해 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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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5화. 두 장의 계약서. 17.07.25 251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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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1화. 오, 양 사장! 17.03.06 425 3 7쪽
60 60화. 현금만 가능합니다. 17.02.03 523 3 15쪽
» 59화. 키큰 유덕화. 17.01.25 571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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