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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7.12.0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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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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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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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0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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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62화. 수사관 연분홍.

DUMMY

분홍은 드물게 자신을 위한 사치를 시작한다. 약속도 없는데 6층 방에 올라가 제일 좋아하는 큐빅이 박힌 분홍색 가방에 그녀의 필수품들을 담아넣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와 지하 연습실 프론트에 앉아 있는 송에게 위엄을 잃지 않고 최대한 냉랭하게 말했다.


“송,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디요?”

“... 생각좀 정리할게요.”

“아, 그래요! 내가 가게는 잘 보고 있을테니 우리 자기는 머리좀 식히고 와요!”


분홍이 감행한 사치는 지하 음악 연습실을 벗어나 저 햇살이 가득한 <커피 앤 아트>로 향하는 것이다. 분홍은 지하에서 장사를 하게 된 이후로 자신이 귀뚜라미 같다고 느껴졌다. 이제 귀뚜라미이므로 자신의 날개를 지상에서, 햇볕 가득한 곳에서 말려야 한다고.


‘근데 귀뚜라미가 날개가 있던가?’


귀뚜라미가 날개가 있든 없든 분홍은 귀뚜라미니깐 날개를 말려야 했다. 봄의 햇살은 여름을 맞기 위해 잘 뜸이 들고 있었고 그 볕을 모르고 지하 구석에서 살아가는 자신과 송이 가련하고 젊은 영혼들이라 생각했다.


송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고 위엄있고 냉랭하게 말하는 분홍을 흔쾌히 보내주었다. 분홍은 송이 그럴 때마다 이상한 느낌이 든다. 송은 본인이 의도했든 안 했든 ‘사고를 쳤다.’ 캐시뮤직 계약이 다가오고 있고 보증금의 절반 가까이를 송이 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송의 커피 사업이 순풍을 타고 있다고 큰 소리를 땅땅 치고 있어, 분홍은 송에게 파이팅을 외쳐주며 혼자서 나름 열심히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제 곧 내 가게가 된다고 생각하니, 손님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도 더 푸근해졌다.


‘내 손님들...!’


그런데 송은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받아야 할 월급을 ‘언젠가’ 대리점 얻는 것과 퉁치고 있었다. 그나마 그 대리점도 이제는 물 건너갔다. 그리고 나중에 사촌형인 대표에게 받으면 된다면서 이곳저곳 미팅과 접대에 자기 돈을 은근히 쓴 모양이었다. 분홍은 이곳저곳 쓴 그 돈의 규모를 물었지만 송은 한 번은 액수가 얼마 안 된다고 했다가, 또 한 번은 남들은 주식해서 돈도 날리는데 사업좀 잘 해보려고 쓴 돈이 뭐가 문제냐며 배째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분홍은 중대 결심을 하는 표정으로 몇 시간의 별거를 선언한 것이다. 그 별거란 곧 자신만의 시간이라는 대사치를 스스로에게 허락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치는 송에 대한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늘 반복되는 문제지만, 송은 분홍이 주려는 벌에 대해서 늘 무감했고 오히려 환영하며 또 격려했다.


“잘 다녀와요! 걱정말고 오랜만에 머리좀 식히다가 와요!”


송은 이 와중에도 웃는 눈으로 분홍을 바라본 것이다. 분홍은 오히려 되치기 당한 심정으로 커피 앤 아트로 향해 아이스 까페라떼를 주문한 뒤 2층 창가 자리를 맡았다. 명남동 커피숍의 창가 자리는 경쟁이 치열하지만 그것도 주말이나 그렇지 평일 낮의 까페는 조용하다. 출판사 사람들인지 작가가 어떻고 표지가 어떻고 떠들면서 중앙의 큰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을뿐 다른 손님은 없었다.


분홍은 커피숍의 중앙에 앉는 것은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분홍은 커피숍의 가장자리에 앉아야 하며, 가급적 창가에 앉아야 한다. 지하에 서식하는 귀뚜라미가 되어버린 분홍이 햇살에 날개를 말려야 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또한 자신만의 고즈넉함과 까페의 음악, 그리고 혼자 일기를 쓸 수 있는 공간, 이런 것이 완성되어야 한다. 소심하고 책임감 강한 분홍에게 장사하다 말고 까페로 뛰쳐나온 이상, 그 시간은 완벽해야 하는 것이다. 좌우에 다른 손님들이 있다는 것은 커피숍이 분홍에게 저지르는 몹쓸짓이라고 생각하는 그녀다.


분홍은 얼마 전에 레슨생에게 선물로 받은 수첩을 가방에서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직 포장지도 벗기지 않은 순결한 학용품이다. 분홍은 오리가 그려진 그 수첩을 비장한 마음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숨을 가다듬으며 껍질 종이를 펴서 곱게 접는다. 아이스 까페라떼를 빨아들인다.


* 내 인생은 왜 꼬였는가


1. 송의 짐작불가 성격

2. 왕경자가 벌인 교통사고

3. 너무나 오래된... 가수의 길 (가수 지망생)

4. 레슨생들의 말썽

5. 연이 엄마 이야기 들어주기...


분홍은 5번을 쓰다가 가슴이 뜨끔해서 의자 등받이에 몸을 떨어뜨린다.


심증이 있어 짐작은 했으나 결정적 증거가 발견된 사건을 조사하다가 숨이 멎은 수사관이 된듯 숨을 헐떡거렸다. 무서웠다.


‘왜, 스스로 고시원에서 남의 밥이나 하는, 팔자 더러운 인간,이라고 말하는 연이 엄마의 말을 내가 들어주기 시작했을까....?’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분명했다. 이 검은색 건물에서 편의를 좀 얻고 싶었다. 그녀에게 잘 보여두면 연습실 시간도 넉넉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습실 손님은 누구나 쓸 수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플라자 고시텔의 특권층인 연이 엄마와 뽀글머리 할머니만 누릴 수 있는 검은색 소파에서 휴식할 수 있는 프리티켓도 얻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잘 보여서 고시원 밥을 무려 2천원이라는 행복한 가격에 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수사관 분홍의 돋보기는 더 깊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고 싶지가 않아 분홍은 딴청을 피우며 창문 밖을 넘겨다 보았다. 평일 낮에 홀로 커피숍에 앉아 있다는 사실은 향그럽기도 했고 조금 슬프기도 했다. 어찌됐건 분홍은 연이 엄마의 이야기를 날이면 날마다, 검은색 건물에 일이 있을 때마다 모두 들어준 이유를 더 알아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탔다.


살면서 은근히 소심한 성격 때문에 당했던 일들, 심지어는 도와줬던 프로듀서로부터 소송까지 당했던 일, 이도저도 아닌 실력 때문일까 밀려나는 오디션들, 이제 서른이 되어버린 야속한 나이, 돈벌이도 시원찮은 일을 한다는 가족들의 가혹한 평가. 분홍의 가슴 속의 아픔들이 치유되지 못하고 머무를 때 분홍은 자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줄 엄마 같은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분홍은 여기까지 수사를 마치고 수사관이면서 동시에 피의자가 된 자신에게 여유를 주면서 다시한번 아이스 까페라떼를 빨았다.


교통사고 이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수고한다’는 말을 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분홍이 아버지 병원에 갈 때 편지를 써갔던 때 이후였다.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


“아빠. 교통사고로 아빠가 가장 힘드시지만, 아빠를 돌보는 가족들도 참 많이 힘들어요. 한번씩 수고많다, 라고 말해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연변 말투의 여자 간병인이 아버지가 그 편지를 머리맡에 두고 여러 번 읽었다는 전언이 있었다.


그리고나서 “수고가 많다.”라고 분홍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외에는 “어디서 오냐?”, “언제 가냐?”, “아빠 물좀 줘라.”, “아빠, 허리가 불편해. 아주 불편해.” 등의 말씀만 하셨다. “엄마는 언제 오냐?”라는 물음도.


분홍의 엄마는 아버지의 간병인이 얼마나 환자에게 무심하며 아버지를 함부러 대하는지 일러바치기 바쁘셨다.


“얘, 분홍아. 엄마가 보고 있는데도 옆의 환자한테 늙으면 빨리 죽으라고 하더라. 내가 있을 때도 그러니, 엄마 없을 때 아빠한테는 어떻게 하겠니? 엄마 나이도 이제 곧 칠십이다. 건망증도 오는 것 같고. 엄마가 먼저 죽기라도 하면 니네 아빠 진짜 어쩌니?”


분홍은 ‘엄마가 먼저 죽기라도 하면’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소리를 지르면서 귀를 막고 싶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나도 이젠 서른 살’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제법 어른 흉내를 내면서, “엄마는 건강한 체질이잖아. 오래 사실 거야. 그런 소리 마요.”라고 하지만 두려움과 짜증, 분노가 솓구친다.


하지만 이상하게 연이 엄마의 푸념과 험담들은 분홍에게 그렇게 치명적으로 괴롭진 않았다. 즉, 엄마를 상대하듯 연민은 느껴지면서도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두려움이나 짜증, 분노를 주는 것 같지 않았다. 거기다가 그녀의 남편의 만행들에 대해서도 적어도 분홍은 제 3자이기 때문에, 크게 복받치는 분노는 아니었다. 그뿐인가, 아버지 사고 이후로 뚝 끊긴 엄마의 밑반찬도 연이 엄마의 고시원 밥이 한동안 해결해 주었다.


분홍은 연이 엄마를, 엄마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벌거벗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놓고는 지금은 그녀를 원수처럼 미워하고 있었다. 송이 연이 엄마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하면, 내 편을 들지 않고 그녀 편을 든다고 송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분홍은 커피 앤 아트에 앉아 마음 속에 비어 있는 엄마의 자리와, 아프신 아버지, 그리고 위태로워진 연습실 계약, 그리고 가수로서 자신의 앞날, 무엇보다 가슴에 크게 나있는 검고 큰 구멍에 대해서 생각했다.


-리얼리즘 코미디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글씨크게_분홍이_밤.jpg


작가의말

그간 사회적으로도, 저 개인적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재를 세 달이나 쉬고 말았답니다.

힘을 내어, 다시 연재를 시작합니다.

싱글벙글 고시원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님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홍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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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66화. 아흐메드와 친구들. 17.07.31 244 2 9쪽
65 65화. 두 장의 계약서. 17.07.25 251 2 8쪽
64 64화. 왕경자를 만나던 날. 17.07.02 298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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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화. 수사관 연분홍. 17.06.07 316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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