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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7.12.09 21:41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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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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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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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1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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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9쪽

63화. 형제끼리는 통한다.

DUMMY

"형, 어디야?”


분홍은 검은색 소파에 앉아 숨소리마저 낮추며 송의 통화 내용을 듣고 있다.


“아니... 이런 좋은 기회를 안 잡는 것도 이상한 거지. 돈이 되는 게 뻔히 보이는데.”


분홍은 듣고 있는 것만으로 공범이 되었다. 송은 형에게 거짓말을 시작한 것이다.


“한 오백만 보내줘.”


송의 입에서 돈의 액수가 나오는 순간, 분홍은 ‘아악!’하고 소리라도 지를 것 같았다. 이제 오백이라는 구체적인 숫자가 나왔으니, 두 사람의 이 범죄는 구체적인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송이 캐시 뮤직을 계약하는 게 아니다. 계약자는 분홍이다. 송의 가족은 그가 고시원에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플라자 고시텔이 아닌 송의 회사 앞 어느 고시원으로 알고 있다. 송은 연애 초기부터 독립해서 사는 분홍을 굉장히 부러워하는 눈치더니, 어느날 자신도 독립을 했었다, 고시원으로. ‘강남 남자’인 송의 고시원 또한 강남에 있었다.


부모님이 귀농하시고 난 뒤 형과 단 둘이 살게된 송이 집에서 독립하려는 그 심리를 분홍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분홍은 지방대를 다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혼자 살기 시작했고 졸업을 해서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자연스럽게 혼자 살게 되었다. 먹는 게 부실하여 허한 느낌이 들 때마다 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가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시도 때도 없는 호통을 듣느니 조용히 혼자 사는 편이 낫다고 결론을 짓곤 했다. 반면 어차피 형과 단 둘이서만 살면서 독립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송이 이해가 잘 안 갔던 것이다. 송은 자신의 형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러든 저러든 송의 강남에서의 고시원 생활은 잠시였다. 연이 엄마는 노련했다. 송도 노련했다. 송은 검은색 건물의 고시원 방을 분홍보다도 더 먼저 차지한 실력있는 선수였다.


분홍은 캐시 뮤직의 참된 주인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으나, 송의 이번 컨설팅은 망했고 그로 인해 캐시 뮤직 계약 시 모자른 보증금이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분홍은 넋이 나간 얼굴로 앉아 있곤 했다. 송만 철석 같이 믿고 있다가 송의 컨설팅 건이 파토가 나면서 분홍은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이다.


“차라리 화를 내, 분홍!”


송은 큰 소리로 말했다. 송의 목소리는 컸지만 그 안에서도 분노는 최대한 제거되어 있었다. 분홍의 모든 감정과 행동, 태도에 대해 항상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언제나 기세등등하던 송은 분홍이 말수가 없어지고 멍해지자,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송의 당황스러움은 머지 않아 정리되었던 모양이다.


“형한테 말하면 돼요. 거, 형제끼리 일이천이 대수야. 그러라고 다 가족이 있는 거지.”


'무슨 일이천... 내가 언제 일이천이랬나. 지금 모자른 게...'


분홍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캐시 뮤직엔 오늘도 손님이 한 명밖에 없다. 손님이 들고온 파란색 우산이 벽에 세워져 있다가 탁- 소리를 내면서 바닥으로 떨어져 부딛쳤다. 웬만한 물품은 갖춰져 있었던 캐시 뮤직이었지만 유독 우산꽂이가 없어 분홍은 <다있소>에서 예쁜 우산꽂이를 사와야겠다,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이젠 모두 귀찮았다. 분홍은 여름이 밀려올 무렵 내리는 비의 청량감을 사랑한다. 그러나 오늘의 그녀에게는 비 때문에 지하는 더욱 축축할 뿐이고 모든 게 다 의미가 없을뿐이었다.


"형제끼리는 통하는 게 있어요."


이 와중에 그 말이 분홍의 귀에 들리지도 않았고, 특히 사촌형 회사에서 이런저런 수모를 당하는 송을 보면서 형제라는 말이라면 더더욱 듣고 싶지도 않았다. 송의 사촌형인 태경은 컨설팅 회사의 대표이면서도, 이제껏 송에게 던져준 아이템들은 모두 시원치 않은 것들뿐이었다. 송도 내심 짐작하는 눈치였지만 아이비 리그 출신이 아닌, 전문대를 나와서 사촌형의 소개, 다른 말로 ‘빽’으로 회사에 들어온 송에 대한 보이지 않는 페널티라는 짐작을 하곤 했다. 다른 직원들에게 사촌동생이라고 특별히 더 잘 해준다는 욕을 먹지 않기 위한 태경의 행동이었겠지만 태경도 은근히 속으로 송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추측이든 오해든 팩트이든 송은 충분히 이용당했고, 이제 버림 받은 것으로 보였다.


송은 고비가 있을 때마다 “형제끼리는 통하는 게 있어요.”라면서, 사촌형을 두둔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친형제쯤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분홍이 보기에 두 사촌 형제 사이에는 별로 통하는 것이 없었고 현재 스코어로 적어도 업무적으로는 둘의 관계가 종착역을 향해가고 있었다.


송은 사촌형 태경이 못 받은 월급이라도 자신에게 챙겨줄 거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분홍은 그마저도 불확실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건물주 부부가 요구한 보증금 액수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고 있었다. 고시원 방값을 내고도 연이 엄마가 미워서 고시원에서 밥을 먹지 않고 밖에서 밥을 사먹었다. 또, 송과 양 사장 둘이서 하하호호하는 분위기를 보면서 사업이 잘 되는 줄 알고 분홍도 평소와 달리 은근히 재정관리를 느슨히 했다. 그러다보니, 보증금으로 나가야 하는 돈이 꽤 많이 모자랐다. 송의 월급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고 송에게 그때그때 준 돈도 다 합치면 백만원은 되는 것 같았다.


분홍은 양 사장 건 이후에 기운이 빠진 송을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인생이 걸린 캐시 뮤직 계약을 앞두고 이게 잘 하는 일인지 무척이나 초조했고 그러다가 송의 커피 컨설팅이 망하자 아예 넋을 놓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송으로 하여금 ‘형제’에게 구조 요청 전화를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구조 요청 전화는 그다지 진실하지 못했다.)


송은 형과 친하지 않았다. 형과 단둘이 지내는 아파트에서 나와 고시원에 간 것만 봐도 두 사람의 관계는 그다지 따땃하지 못함을 느낄 수 있었고, 언니 초록에 대해서 떠들곤 하는 분홍과는 달리 송은 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홍은 사촌형인 태경이 형의 얼굴만 한두 번 봐서 알고 있을뿐이다.


송은 프론트 앞에서 등을 바나나처럼 뒤로 휜 채로 서서 형과 통화를 했다. 송은 심리적으로 작아지려 할 때 오히려 몸을 더 크게 만드는 버릇이 있었다. 분홍은 평소 하지 않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다.


“연습실이 커. 손님도 엄청 많다니까. 사장이 고시원만 아니면 직접 운영하겠지, 삼국대 앞 노른자 장사인데. 근데 고시원도 장사가 워낙 잘 되니깐, 나한테 뚝 떼어내는 거지 뭐. 잘 되면 아버지 소를 내가 좀 사드리고, 봄에도 이것저것 챙겨드린다니까.”


두 형제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오가는 분위기였고, 분홍은 예비 ‘제수씨’로서 송의 저런 호언장담에 대한 뒷감당을 자신이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고 손톱을 더욱 격렬하게 깨물었다.


“응. 그래. 아무때나.”


드디어 송의 전화통화는 끝이 났다. 송은 무표정한 얼굴로 먼 곳을 응시하더니 “흐음-”이라고 말했다.


분홍은 송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흐음...?’


“아휴. 우리 오늘 손님도 많고 고생했는데 나가서 고기라도 좀 먹어요.”

“고...기요?”


오늘 캐시 뮤직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현재는 딱 한 명의 손님뿐이다. 평일 손님이 원래 많지 않거니와, 날이 궂어서 그런지 예약한 팀도 나타나지 않았다.


“......?”


분홍은 뿌옇지만 애절한 눈빛으로 송을 쳐다보았고, 송은 “형제끼리는 다 통해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송의 형이 돈을 빌려주기로 한 것이다.


“한 오십 더 보낼 거예요. 형도 잘 풀릴 때 같으면 한 백만원 더 보낼 텐데, 지금은 자기도 형편이 그렇게 좋지가 않은 모양이예요.”


송은 모든 상황을 둥글려 말하는 사람이었고, 분홍은 송의 둥글려진 말 속에서 뾰족뾰족한 진실을 탐색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어찌되었건 송은 마치 자신이 캐시 뮤직을 계약하는 것처럼 형에게 거짓말을 하였고, 또, 캐시 뮤직에 손님이 넘쳐나서 계약만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며, 시골에 귀농하신 부모님께 모종 구입비를 대드리거나, 소 몇 마리 사드리는 것정도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말한 것이다.


분홍은 돈을 빌려준다는 말에 기뻤지만 거짓말을 한 것 때문에 순수하게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진짜 자기 이름으로 계약할 건 아니죠?”


분홍은 물었다. 그리고는 웬지 찔렸다.


'이 마음은 뭘까, 욕심일까?'


어찌되었건 캐시 뮤직의 계약자는 분홍 자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송은 웃는 눈으로 말했다.


“당연히 캐시 뮤직은 자기 꺼예요. 자기는 가수잖아요. 나는 컨설턴트고요. 가수가 자기 스튜디오를 갖고 있는 건 당연한 거예요. 내가 마음은 항상 있었는데 더 일찍 연습실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죠.”


이제 모든 준비는 다 되었다. 캐시 뮤직은 분홍의 손으로 들어올 것이다.


- 리얼리즘 코미디 소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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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5화. 두 장의 계약서. 17.07.25 251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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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화. 형제끼리는 통한다. +2 17.06.10 701 3 9쪽
62 62화. 수사관 연분홍. 17.06.07 316 3 9쪽
61 61화. 오, 양 사장! 17.03.06 427 3 7쪽
60 60화. 현금만 가능합니다. 17.02.03 525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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