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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7.12.09 21:41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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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18
추천수 :
789
글자수 :
393,947

작성
17.07.02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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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64화. 왕경자를 만나던 날.

DUMMY

분홍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어느 봄날이었다.


아버지 연두식을 중형 승용차로 친 운전자의 이름은 왕경자였다. 그녀는 60세 전후의 얼굴로 보였다. 분홍은 언니 초록과 함께 왕경자를 만나러 나간 적이 있었다. 엄마에게는 그런 자리, 아버지를 다치게 한 사람의 얼굴을 봐야만 하는 자리가 몹시 고통스러울 것 같아 나오지 마시라고 하고, 분홍은 대신 송을 불렀었다.


하지만 분홍은 결혼한 사이도 아닌 남자친구 송을 데리고 그런 자리에 나가면 왕경자가 자신의 가족을 얕볼 것 같았다. 그래서 왕경자를 만나러 가는 길, 송에게 전화를 걸어 전화통화로 작전을 짰다.


“송. 근처에 꼭 있어줘. 근처 다른 까페에서 우리를 보다가 무슨 일 있으면 와줘.”

“걱정마요, 분홍. 알았어요.”

“아니면 그냥, 옆 테이블에 손님인 것처럼 앉아 있을래요?”

“하하. 분홍.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가 띵동 메시지 보내면 바로 올게요. 바로 전화를 해도 되구요.”


송은 분홍보다 조금 먼저 도착하여 약속한 사거리에 나와 있었고 버스에서 내려 다가오는 분홍을 향해 휙휙휙- 손을 흔들었다. 분홍은 그때 길 건너 송의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웃는 눈'일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왕경자와 만나기로 한 시각의 십 분 전쯤 되었다. 분홍은 송의 손을 잡고 왕경자를 만나기로 한 까페 <해피 데이>의 간판을 바라보며 서 있었는데, 겁이 나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심하게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언니 초록에게 다 왔느냐고 문자를 보내니, 설상가상으로 조카가 감기가 심하고 엄마 나가지 말라고 울고불고 해서 약도 먹이고 진정시키고 나와야 해서 좀 늦겠단다.


‘그 여자를 만나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분홍의 뛰기 시작한 심장은 자제가 되지 않았다. 분홍에게 왕경자는 저승사자 또는 괴물, 아니면 괴한 같은 존재였다.


어느 날 밤 갑자기 걸려온 전화,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계신다는 엄마의 전화.


“송. 안 되겠다. 같이 만나줘. 대신, 남자친구라고 하지 말고, 내 남편이라고 해줘.”


송은 깜짝 놀란 듯 눈이 커지더니, 이내 흡족한 듯 싱글벙글한 표정이 되었다.


“뭐, 분홍이 원한다면, 내가 잠시 남편이 되어주지요 뭐.”


왕경자는 키가 작았다. 짙은 문신 눈썹을 하였는데 마사지 크림이라도 바르고 나왔는지 얼굴이 번들번들하였다. 왕경자는 “아휴. 미안하다구요. 뭘 얼마나 더 미안하다고 말해요?”라고 다소 언성을 높였다. 조금 늦게 도착한 초록이 아버지의 위중함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은 직후였다. 그녀의 옆 자리에 야구 모자를 쓰고 앉은 사람은 왕경자의 사위라고 했다. 분홍은 송을 소개할 때 남자친구가 아니라 남편이라고 하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형부는 야근이라 자리에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초록과 남편은 부부싸움을 많이 했다. 그래서 분홍은 '꼭 야근 때문이 아니라도 형부는 이 자리에 안 나왔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때 분홍은 정신이 버뜩 들었다.

‘근데 저 아줌마는 아빠를 차로 쳐놓고선 뭐가 저렇게 당당해?’


“지금 의사가 위험하다고 해서 척추 수술을 다 하지도 못하셨다구요. 팔목 인대도 말을 안 듣는다고 하고... 뇌진탕도 왔어요.”


조카를 재우고 헐레벌떡 나온 초록은 왕경자에게 아버지의 증세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했다. 아버지의 중한 상황을 언니의 입으로 스트레이트로 정리해서 들으니 분홍은 온 몸을 두드려맞는듯 아팠다. 아무튼 분홍도 무언가 언니를 거들어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가 소변줄 때문에 아프시다구요!”


그때 옆자리의 송이 분홍의 허벅지를 꾸욱- 눌렀다. 당시 분홍의 아버지는 수술 이후로 소변줄을 계속 하고 계셨다. 소변줄이 지금은 기저귀로 바뀌었고.


‘소변줄 이야기는 하면 안 되는 건가?’


분홍은 주눅이 들었다.


분홍은 가해자와 합의를 해야 한다고 해서 나오긴 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소변줄 발언 이후로는 우물쭈물 가만히 있었다. 그때 송이 어깨를 펴면서 입을 열었다.


“뭐, 아주머님도 일부러 저희 아버지를 치신 건 아니니까,”

“내가 잠을 못 잔다구요!”


얼굴이 일그러져 있던 왕경자가 갑자기 내질렀다.


“아니, 아까부터 뭘 잘 했다고 그렇게 당당해요?”


언니 초록의 눈이 굉장히 커지더니 역시 내지른다.


“뭐, 내가 당당하면 안 돼요? 그날 이후로 내가 밤에 잠을 못 자요. 정신과 약을 먹는다구!”


“......? 그 얘기를 왜 우리한테 하는 거예요?”


초록은 전혀 왕경자의 불면증을 받아주지 않았다.


말싸움하는 분위기가 되자, 왕경자의 사위가 왕경자를 말렸다.


“저, 어머님. 이쪽 하시는 말을 좀 들어보시죠.”


왕경자의 사위가 거들고나오자 송이 더 어깨를 피면서 말을 이어갔다.


“뭐, 저도 운전을 하지만, 아주머님이 저희 아버지를 일부러 치신 건 아니니,”


송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왕경자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키가 작은 사람이라 벌떡 일어났지만 그렇게 위용있진 않았다. 일동 왕경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녀는 왼손으로 테이블을 짚더니 무릎을 꿇으려 하는 것 같았다.


“뭐, 이렇게 하면 돼요?”


왕경자가 소리를 지르며 무릎을 꿇으려던 찰나 송은 재빠른 몸짓으로, 아이고 아주머님, 일어나세요, 라고 말하며 그를 일어나 앉혔다. 벽 쪽에 앉아 있던 왕경자의 사위는 황망한 얼굴로 자신의 장모 쪽으로 팔을 후적후적 뻗을뿐이었다.


이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면서 분홍은 얼어붙어 가만히 있었고, 분홍보다 열 살이나 나이가 많고 성격도 좀더 똑부러지는 초록은 “허, 참나.”라고 말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죄에-송합니다, 죄송해!”


자리에 다시 앉은 왕경자는 극적인 톤으로 말했다. 왕경자를 노려보며 말이 없던 초록이 마침내 입을 뗐다.


“분홍아, 가자.”

“응?”


분홍은 “으응...”하면서 가방을 챙겨들고 어리바리하게 언니 초록을 따라 나왔고, 송은 멋있는 마무리를 하려는 듯 두 손을 배 앞으로 모으더니, “아버지가 지금 많이 편찮으셔서 처형이 지금 화가 많이 나신 거니깐, 제가 전화를 조만간 한 번 드리겠습니다.”라고 정중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마무리 멘트를 했다. 이번만큼은 왕경자가 송의 말을 끊지 않았다.


분홍은 송이 가해자인 왕경자에게 너무 잘해준다는 느낌을 받아 조금 언짢고 불쾌했다. 특히 초록의 행동에 대해서 양해를 구하는 듯한 마무리 멘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 함께 나와준 것만도 고맙다는 생각에 따지지는 않기로 했다. 까페 <해피 데이>에서 나온 초록, 분홍, 송 세 사람은 버스 정류장 앞에 서서 한동안 서로가 아무말도 없었다.


“엄마 고생하는 거 생각해서라도 좀 이야기를 잘 해 보려고 했는데, 저 집 식구들, 첫날부터 진짜 경우 없드라.”


먼저 입을 뗀 건 초록이었다. 분홍은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병원을 찾았지만, 초록은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병원에 달려갔었다. 그때 왕경자와 사위를 마주친 모양이었다. 초록은 그때의 기억을 이야기할 때마다 “반성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아빠한테 뒤집어 씌우려고 헛소리를 하는데, 한 번 혼좀 나봐야 해.”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날 "죄에-송합니다, 죄송해!"라는 명대사를 낳은 촌극의 제목은 ‘가해자와 형사 합의’라는 것이었다. 분홍의 가족이 맞딱뜨려야 하는 일은 그뿐이 아니었다. 변호사에게 일을 맡길 것이냐, 손해사정인에게 수임해야 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있었다. 가족이 간병을 할 것이냐, 간병인을 고용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도 있었다.


손해사정인. 그들은 교통사고나 산재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그 손해를 돈으로 계산해 주는 사람들이다. 분홍이 아버지의 교통사를 통해서 새로이 알게 된 세계 속에는 새로운 존재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손해사정인이었다.


‘사정...?’


분홍은 그 단어를 말하거나 생각할 때마다 참으로 이상한 이름이라 생각했다. 물론, 검찰과 같은 기관을 ‘사정 기관’이라고 말하는 등, 사정이란 말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언급하여도 괜찮을 단어이긴 하지만, 그래도 늘 어딘가 '불순한' 이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을 살다가 피해를 입게되면 ‘변호사’를 떠올리기 쉽상이지만, 변호사란 존재는 그렇게 떠오르는 것만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비용 문제부터 그랬다. 그래도 웬지 변호사가 법에 대해서 더 잘 알고 힘도 더 셀 것 같았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될 때는 아버지 곁에 검사도 있었고, 변호사도 있었고, 티비 탤런트도 있었고 깡패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사업에 부도가 났고, 이제하는 은퇴하신 그의 곁엔 그럴듯하거나 힘이 있어보이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초록과 분홍은 머리를 맞댄 끝에 아버지의 먼 사촌 가운데 검사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변호사를 좀 소개해 주세요.”


초록의 말에 검사인 아버지의 먼 사촌은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는 바로 변호사 한 명을 소개를 해주었다. 아버지가 입원했던 종합병원의 원무과에서는 엄마에게 손해사정인을 소개해주었다. 그 이름도 불순한 손해'사정'인은 엄마에게 날마다 전화를 하였고, 분홍과 초록은 먼 삼촌 아저씨가 소개해준 변호사를 만날 날만 기다렸다. 한 가족 내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그것도 아버지의 병세 못지 않게 긴장의 소지가 되었다.


초록은 교회 사람들로부터 아버지의 상태가 중하므로, 절대 손해사정인 정도로는 일이 안 된다, 꼭 변호사에게 가라,는 코치를 받았고, 어머니는 교통사고는 오히려 손해사정인이 더 잘 안다면서 자주 연락을 한다 했다. 두 사람은 손해사정인이냐, 변호사냐를 두고 티격태격하더니, 급기야는 언성을 높이면서 싸우기 시작했다.


분홍은 제발, 그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 리얼리즘 코미디 소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

분홍이_창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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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화. 너의 등에 그려진 하트. 17.08.05 257 3 8쪽
66 66화. 아흐메드와 친구들. 17.07.31 244 2 9쪽
65 65화. 두 장의 계약서. 17.07.25 251 2 8쪽
» 64화. 왕경자를 만나던 날. 17.07.02 298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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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수사관 연분홍. 17.06.07 315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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