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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7.12.09 21:41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63,528
추천수 :
789
글자수 :
393,947

작성
17.07.25 19:31
조회
252
추천
2
글자
8쪽

65화. 두 장의 계약서.

DUMMY

분홍은 빵이 든 봉지를 달랑달랑 흔들면서 검은색 건물로 돌아오고 있었다. 혀 끝으로 어금니 주위를 문지르며 눈가를 찌푸리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그 부위의 잇몸이 뚱뚱해지더니 어젯밤부터는 급기야 염증과 피의 맛이 섞인 비릿한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캐시 뮤직 계약이 임박하여 하도 신경을 많이 쓰고 하루에 12시간 넘게 주말도 없이 장사를 하다가 몸이 축난 것이라고, 그래서 잇몸이 부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측은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한 켠으로는 이제 보증금 액수도 다 맞추어졌고 오늘 황윤희 오면 계약서에 도장 찍고 캐시 뮤직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찡하기도 했다. 검은색 건물 앞에 멈춰선 분홍은 5층짜리 건물을 올려다보면서 오늘 계약으로 마치 이 건물을 모두 소유하게 되기라도 한 것처럼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하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데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엇. 황윤희... 벌써 왔나? 황윤희 차 없었던 것 같은데...’


"송, 황윤희가 오전에 오진 않겠지? 우리 밥 먹고 올까?"

"음... 우리 간만에 빵 사다 먹을까? 컵밥 집은 아직 문 안 열었을 것 같고."

"빵? 빵집 빵?"

"좀 그런가?"


컨설팅 대박이 날줄 알고 늘 브런치 집이나 돈까스 전문점에 가자고 하던 송이 요즘 들어 돈을 아끼려는듯 싼 메뉴를 찾는다. 분홍은 그런 송이 대견하여 친절한 목소리로 “아니야. 내가 얼른 갔다올게~!”라고 말하면서 나섰다. 그렇게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침 일찍 황윤희가 도착해 버린 것을 알게 되자 분홍의 가슴은 또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하의 유리문으로 들어서자 황윤희가 뭐라도 훔쳐먹다 걸린 사람처럼 훽 돌아봤다. 송의 얼굴은 웃고 있는데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다.


'...? 아무튼 인사부터. 인사는 기본.'

“안녕하세요.”

“이렇게 일찍 어딜 갔다오나 보네.”


황윤희 말대로 '이렇게 일찍' 나타난 사람은 황윤희 자신이었다. 분홍과의 노래 수업이 없는 날인데도 평일인 오늘 계약하러 오겠다고 하는 황윤희는 뭔가 서두르는 것 같았다. 송이 보증금을 분할납부 하겠다고 하고, 계약을 한두 달 미루자고 하는 등 자기 페이스대로 계약 속도를 리드하자 황윤희는 이제는 더 이상 분홍 커플에게 리드 당하지 않고 자신이 리드하겠다는 의지인 듯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일찍, 오전에 계약을 위해서 나타나리라곤 분홍 커플은 예상하지 못했다.


“저희는 아침을 못 먹어서 빵을 좀 사왔는데, 좀 드실래요 사장님?”


연이 엄마는 황윤희의 오빠를 사장이라고 부르고 황윤희는 '사모'나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분홍은 건물주를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 어색했고 더군다나 ‘사모’는 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끝내 그녀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황윤희를 존중하는 말이라고 여겼다.


“아뇨. 괜찮아. 드세요.”


황윤희는 분홍이 봉지에서 꺼내드는 빵들을 힐끔 보더니 신경질 난 표정으로 사양했다. (신경질 난 표정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다.)


분홍의 머릿속에 황윤희의 놀란 표정 송의 석연치 않은 웃음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진 계약서가 눈에 들어왔다. 계약서 서식을 황이 뽑아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계약서’라고 제목이 쓰여진 종이가 쌍둥이처럼 나란히 있다는 점이었다. 분홍은 눈을 가까이 대고 어떤 게 자기 것인지 찾으려는듯 들여다 보았다.


“분홍. 사장님께서 우리를 걱정해서 계약서를 월세 백사십만원으로 해서 하나를 더 쓰라고 하시네.”

“응? 네?”


분홍은 놀라서 송의 얼굴을 쳐다보고 바로 황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백사십이요?”


황의 미국인 남편이 정해준 월세는 이백팔십만 원이다. 절반인 백사십만 원이 웬 일인가 싶어 황윤희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니, “자기들이 월세를 이백팔십을 낸다고 하면 여기가 장사가 잘 되나 싶어서 세무서에서 엄청나게 들여다 볼거야. 그냥 월세도 싸고 돈도 잘 못 버는 걸로 하면 관심을 안 갖지. 나는 상관 없는데 자기들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고 말한다.


‘우리를 위해서?’


분홍은 이전에 장사를 해본 적도 없고 월셋방이나 원룸 외에는 부동산과 관련된 계약은 해 본 적이 없지만, 건물주가 나타나서 계약서를 두 장 쓰자고 하는데 그것이 세입자인 분홍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계절보다는 조금 빠르게 밝은색 청치마에 주황색 나시를 입고 알이 큰 메탈 목걸이를 한 황윤희에게서 오늘, 변명과 거짓말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


분홍은 송을 다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흐흠! 사장님이 우리 젊은 사람들이 장사 편하게 하라고 생각해 주시는 거니깐... 근데 도장을 찍으려면 인주가 있어야 하는데, 어디 있었던 것 같은데...”


송은 목을 가다듬어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을 한 뒤 인주를 찾는 시늉을 했다. 분홍과 황윤희는 황야의 무법자들처럼 긴장 속에 서 있었다. 그 누구도 검은색 소파 위에 놓인 빵을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기."


책상 위를 뒤지던 송의 눈 앞에 황이 차 키를 내밀었다.


"이게 인주야. 나는 이렇게 가지고 다녀."


황의 차 키에는 깃털 모양의 열쇠 고리와 더불어 동그란 게 달려 있었는데 황은 뚜껑을 열어 보여주었다. 조그만 인주통이었다.


분홍은 얼마나 도장 찍을 일이 많으면 인주통을 열쇠에 끼워서 가지고 다니나 싶어 새삼 황의 재력을 실감했다. 분홍 자신은 인주를 사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늘 집주인이나 부동산, 고용주나 은행 등 '원래 인주가 있는 데'에서 도장을 찍곤 했다.


“난 이모랑 얘기할 게 있어서 잠깐 올라갔다 올게. 거기다가 싸인하고 있으라고.”


황은 도망치듯 뛰어올라갔다.


황이 사라지고나서야 분홍은 두 장의 계약서를 집어들어 보았다.


하나는 월세가 백사십만원이고, 또 하나는 원래 알고 있던대로 이백팔십만원이라고 적혀 있었었다. 보증금 가운데 절반인 천사백만원은 계약시 전달하고 나머지 천사백만원은 내년 1월 1일, 그러니까 정월 초하루에 마저 지불한다고 쓰여있었다.


그런데 계약자 이름은 황윤희가 아니고 ‘아흐메드와 친구들’이었다.


“송, 계약서가 두 장인 건 뭐고, 또 이름이 아흐메드...와... 친구들, 이게 다 뭐야?”


황윤희와 미리 이야기를 하고 있던 송은 뭔가 자신이 없고 당황한 듯 프론트 위의 물건을 정리하고 또 정리했다.


“원래 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계약서를 가짜로 하나 더 써. 세금 덜 내려고 그러는 거겠지. 근데 우리한테 손해 될 일도 없고하니깐,”

“그러니깐 내가 계약서를 둘 다 도장 찍으라고?”

“뭐, 자기 마음이 정 불편하면, 안 해도 되지만, 근데 우리한테 손해가 날 일은 없어요.”


송은 ‘우리’라는 표현을 썼다. 이제 캐시 뮤직은 분홍의 장사일뿐만 아니라, 송의 장사이기도 했다. 송은 이제 회사에는 나가지 않는다.


“근데 아흐메드와 친구들은 뭐래요?”

“아, 그건, 남편 이름이래요.”

“네?”

“좀 피부가 검었잖아, 남편이. 아랍 계통인가봐.”

"미국 사람 아니었어요? 아니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만...."


분홍은 난데 없는 두 장의 계약서 앞에서 혼돈에 빠졌다. 빵을 먹을 마음은 여전히 생기지 않았다. 황윤희가 다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또각또각, 구두 뒷굽이 계단을 찍는 소리였다. 분홍은 자신의 혼란스러워 하는 표정을 황윤희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 리얼리즘 코미디 소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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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74화. 변기로 합시다. 17.08.16 242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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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8화. 뉴 페이스가 온다. 17.08.08 268 3 9쪽
67 67화. 너의 등에 그려진 하트. 17.08.05 259 3 8쪽
66 66화. 아흐메드와 친구들. 17.07.31 246 2 9쪽
» 65화. 두 장의 계약서. 17.07.25 253 2 8쪽
64 64화. 왕경자를 만나던 날. 17.07.02 301 3 10쪽
63 63화. 형제끼리는 통한다. +2 17.06.10 703 3 9쪽
62 62화. 수사관 연분홍. 17.06.07 320 3 9쪽
61 61화. 오, 양 사장! 17.03.06 429 3 7쪽
60 60화. 현금만 가능합니다. 17.02.03 528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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