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7.12.09 21:41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63,286
추천수 :
789
글자수 :
393,947

작성
17.08.05 20:20
조회
257
추천
3
글자
8쪽

67화. 너의 등에 그려진 하트.

DUMMY

캐시 뮤직의 정식 오픈은 조용하게 이루어졌다.


연이 엄마가 두어 차례 커피 믹스며 화장실 휴지며를 분홍에게 안겨준 뒤, 캐시 뮤직엔 그 흔한 화분 선물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송의 예상대로 황윤희는 캐시 뮤직의 사업자 등록을 취소시켰다 했다. 분홍과 송이 카드 손님을 받으려면 사업자 등록부터 해야 했다. 카드 등록기는 프론트 데스크 위에 덜렁 놓여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그래도 분홍이 얻은 것은 정신적인 해방!


'와. 이제 정말 이 건물에서 눈치 안 보고 지내겠구나!'


이젠 장사는 장사대로 하면서도,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데, 매상이 적다는 이유로 ‘빌붙어 사는 식충이’ 정도의 대접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제 분홍은 그야말로 사장님이고 자영업자이다. 명남동 자영업자 협회라도 찾아가 인사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아, 이제 정말 됐다...’


“수고 많았어요, 분홍. 자기는 정말 대단해요.”


검은색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던 송이 분홍의 볼을 양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한다.


“...? 내가 뭐가 대단해요...”

“아니예요! 서른 살에 자기 가게 갖는 사람이 많은 줄 알아요? 다 회사 다니고 그러지. 회사라고 정년까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또 사람들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가잖아요."


분홍은 송이 자신을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말할 때마다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도, 아직 그저 코러스 가수일뿐인 자신을 너무 크게 보는 것 같아 민망해하곤 했다.


"자기는 노래도 잘 하고, 명남동에서 스튜디오도 하고. 그리고 이제 우리가 저 사람들 간섭 안 받고 장사하면 오히려 손님도 정말 많아질 거예요.”

“진짜 손님도 많아질까요?”

“그럼요!”


분홍은 검은색 소파에 앉아 기지개를 켰다. 가슴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고보니, 처음엔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나긴 했다.


‘그래. 내가 사장이 됐어, 사장이!’


분홍은 새삼스럽게 흡족해졌다.


“인테리어도 우리 개성대로 하나씩 바꿔요. 송이 시간이 나면 예쁘게 할게요. 그나저나 이제 고장난 악기도 마음대로 버리고 고치고 해야겠어요. 우리 꺼 아니라 고장난 악기들도 어쩌지 못했는데 손님들한테도 미안하고 그랬어요.”


송은 의욕이 솟는지 눈이 반짝,한다.


그때 정장 바지 위에 반팔 와이셔츠를 타이 없이 입은 젊은 남자가 가게로 들어선다. 한 번에 봐도 회사원인데 이 시간에 올 수 없다 싶어 분홍은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젊은 남자는 의심이 많은지, 조심스러운 성격인지, 옆눈으로 분홍 커플을 쳐다본다.


“저희가 기타를 치는 동아리인데요, 연습 공간이 필요해서요.”

“아, 네. 동아리 인원이 몇 분이세요?”


분홍은 슬리퍼에 발을 끼고 일어나며 묻는다.


“적게 나올 때는 열 명정도 되고요, 제일 많을 때는 이십 명도 와요.”

“이십 명이요? 아... 저희는 방이 좀 작아서.... 그 정도는,”

“네. 이리 오세요. 방부터 보세요.”


분홍이 인원이 많아 거절하려고 하던 차에 송이 와이셔츠 입은 손님을 데리고 제일 안쪽 방으로 들어간다. 안쪽의 제일 큰 방이라고 해도 6~7명이 밴드 합주를 하기에도 벅찬 크기이다. 그런데도 송은 이 손님을 잡으려고 한다.


얼마 후 송과 손님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복도를 걸어나온다. 손님은 의외로 방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동아리 인원이 많은 날은 미리 전화를 주세요. 제가 넓혀놓겠습니다.”

'넓힌다고...? 방을?'


분홍이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손님은 흡족한 얼굴로 잘 부탁한다는 듯이 인사를 하고 떠났다. 송이 메모지에 적어준 캐시 뮤직 전화번호를 바라보면서.


“송. 우리가 방을 어떻게 넓혀줘?”

“내가 생각이 있어. 어차피 바하 방은 드럼도 고장 났고, 또 여기에 밴드 손님만 오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앰프를 쌓아놓을 필요도 없어.”


분홍은 무거운 앰프들을 꺼낸다는 말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렇게까지 하나하나 어떻게 맞춰줘? 지금 셋팅된 상태에 맞게 손님을 받아야 될 거 같아.”

“걱정 말아요. 송이 있잖아요. 송이 다 해요.”


송은 윙크를 찡긋, 하더니, 검은색 소파에 앉아 있는 분홍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더니 다시 프론트 데스크로 가서 앉았다.


송과 장사를 하면서 분홍은 이런 상황을 종종 겪곤 했다. 부부가 애를 키울 때 양육 방식으로 생각 차이를 보인다더니, 분홍 커플은 장사를 하는 방식, 손님을 대하는 방식으로, 이래저래 생각 차이들이 드러나곤 했다. 분홍은 기본적으로 손님들에게 친절하되 손님들이 원하는 요구를 일일이 맞춰주는 것은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었고, 송은, 친절은 기본이고, 손님들이 해달라는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찾아서 해주고 마는 성격이었다.


그날 밤이었다. 손님은 오후에 문의하러 온 손님 한 명, 그리고 단골로 오곤 하는 고등학생 드럼 손님 한 명이 전부였다. 9시가 넘어서니, 더 이상 손님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최소 10시 반까지는 열던 캐시 뮤직이다. 분홍은 한 시간 반만 더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검은색 소파에 신발을 벗어 다리를 올린다. 다리를 쭈욱 편다. 이제 계약도 했고 '검은색 건물의 사람들'로부터 간섭 받을 일이 없으니 밤에는 다리를 뻗고 잘 것 같았다. 그리고 티비를 켠다.


'월세 이백팔십만 원이 만만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티비도 있고, 악기도 있고 하니, 계약하길 잘 한 거야...'라고 생각하며 뉴스를 켠다. 뉴스를 즐겨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장사도 하는 사장님이니 세상 돌아가는 것도 더 잘 알아야 된다는 생각에서다.


“자기는 뉴스 볼 거죠? 좀 쉬어요. 나는 앰프좀 나를게요.”

“네? 진짜로 하게요? 그것도 이 밤에요?”

“내일 되면 또 하기 싫어져요. 내가 남의 가게라 못 했었는데, 꼭 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솔직히 남의 가게일 때는 그렇게 애쓰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리고 송은 안쪽 바하 방의 악기와 앰프를 하나씩 밖으로 날랐다. 에어콘을 켰지만 송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입구엔 분해한 드럼과 앰프들이 하나씩 쌓여갔다. 송의 얼굴에서 주룩주룩 땀이 흘렀다.


분홍은 무리하는 송이 걱정되기도 하거니와 악기들을 왜 다 꺼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가 애쓰는데 불만스런 목소리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힘들지 않아요?”라고 간간이 물을 뿐이었다.


“다 됐어요. 이제 와봐요.”


송이 신호를 주자 분홍은 쪼르르 달려가 들여다 본다.


“우와. 이 방이 이렇게 큰 방이었어?”


분홍의 눈이 커지고 입에서는 감탄사가 쏟아진다. 바하 방이 다른 방보다 좀더 큰 것은 알고 있었지만, 텅 비게 해놓으니, 의자만 몇 개 사다 놓으면 기타 동아리 열 명도 거뜬히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송은 형광등 조명을 껐다. 탁. 포인트 전구만 남아서 머리 위에서 반짝인다. 은은한 스포트 라이트가 그려지니 방의 분위기는 더욱 좋아졌다. 그리고 사람 키에서 30센티정도 모자른 전신 거울이지만, 어쨌거나 전신거울과 보면대... 당장이라도 분홍은 노래를 부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분홍이 이런 기분이 든다면 손님들도 그런 기분이 들 것이다.


“자기야. 조금만 기다려봐요. 이제 정말 우리의 새로운 시작인데, 내가 분위기 낼 것좀 사올게요.”


송이 밖으로 나간다.


'와인이라도 사오려나?'


땀으로 젖은 송의 뒷모습. 그의 분홍색 셔츠가 젖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등쪽 셔츠에 생긴 땀 자국이 하트 모양이었다. 분홍은 그런 송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사진으로 그의 뒷모습을 찍어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리얼리즘 코미디 소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

송.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싱글벙글 고시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8 [최종 화] 88화. 당신과 바다가 나를 도와준다면. +2 17.12.09 263 3 12쪽
87 87화. 떠나야 할 때. 17.12.08 214 3 13쪽
86 86화. 원 퍼슨 원 푸드 One person one food. 17.11.28 216 3 8쪽
85 85화. 아흐메드 씨의 방문. 17.11.27 212 3 9쪽
84 84화. 행복한 캐시 뮤직. 17.10.22 206 3 10쪽
83 83화. 꼬물 냉장고와 고시원 창고. 17.09.19 211 2 8쪽
82 82화. 삶이 되어 버리다. 17.09.14 211 3 9쪽
81 81화. 버튼을 눌러라. 17.09.05 261 3 10쪽
80 80화. 영토를 잃다. 17.09.04 221 3 9쪽
79 79화. 아버지라는 이름의 복지국가. 17.09.03 212 3 6쪽
78 78화. 연두식, 그가 강했을 때. 17.08.31 302 3 9쪽
77 77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래를 불러요. 17.08.28 255 2 9쪽
76 76화. 방 안에 갇히다. 17.08.26 222 3 7쪽
75 75화. 스판 바지와 검은색 소파. 17.08.24 278 2 7쪽
74 74화. 변기로 합시다. 17.08.16 240 2 11쪽
73 73화. 다시, 싹트는 동지애. 17.08.15 475 4 13쪽
72 72화. 허리케인이 그녀에게 남긴 것. 17.08.14 269 4 12쪽
71 71화. 그들이 달려야 하는 이유. 17.08.13 232 5 11쪽
70 70화. 너의 입맞춤은 황홀하였네. 17.08.12 286 2 11쪽
69 69화. 완벽한 아이템. 17.08.11 239 4 14쪽
68 68화. 뉴 페이스가 온다. 17.08.08 266 3 9쪽
» 67화. 너의 등에 그려진 하트. 17.08.05 258 3 8쪽
66 66화. 아흐메드와 친구들. 17.07.31 244 2 9쪽
65 65화. 두 장의 계약서. 17.07.25 251 2 8쪽
64 64화. 왕경자를 만나던 날. 17.07.02 298 3 10쪽
63 63화. 형제끼리는 통한다. +2 17.06.10 702 3 9쪽
62 62화. 수사관 연분홍. 17.06.07 316 3 9쪽
61 61화. 오, 양 사장! 17.03.06 427 3 7쪽
60 60화. 현금만 가능합니다. 17.02.03 526 3 15쪽
59 59화. 키큰 유덕화. 17.01.25 572 3 17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홍차임'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