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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7.12.09 21:41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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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29
추천수 :
789
글자수 :
393,947

작성
17.08.1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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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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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71화. 그들이 달려야 하는 이유.

DUMMY

분홍은 황윤희 부부처럼 건물을 소유하고 있으며 사무실에서도 나른하게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하는 박 사장의 그 여유가 온 몸으로 부러웠다.


“송, 그때 이야기한 서비스 맨 정체성인가 그거, 그건 언제부터야?”


분홍은 물으면서도 이런 공터 같은 상태의 회사에서 그런 걸 물어보기엔 이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응. 우선 동종 제품 마케팅 현황을 분석하고 있고, 판매처가 될 만한 업소의 리스트를 만든 뒤 하나하나 컨택할 거야.”

“컨택한다고? 어떻게?”


분홍은 송의 그런 투지에 놀란다. ‘서비스맨 정체성’이라는 말을 듣고 직접 업소 등에 가서 살충제를 뿌리겠다는 말이라는 것은 알아들었지만, 그 업소마저도 직접 뚫겠다는 송의 의지에 분홍은 새삼 놀란다.


“뭐, 사전에 이메일로 방문하겠다고 동의를 구해도 되고, 아니면 한 군데씩 찾아가는 거지.”

“연락 없이 가면 문전박대할 수도 있어, 송.”

“아휴. 좀 그러면 어때. 브로셔라도 주고 오고 말을 잘 하면, 나중에라도 연락이 올 거야.”


분홍은 경이로움이 섞인 한숨을 내쉰다.


“컨설팅을 하면서 느끼는 건 맨날 앉아서 분석만 하고 도표만 그리고 하니까 안 된다는 거야. 아이템의 특성을 고려해서 움직여야 될 때는 움직어야 되는 거거든. 특히 에코트랩은 체감하지 않으면 확장성이 없어.”


‘컨설팅 얘기만 나오면 말이 더 많아진다니까...’


“자기는 이런 얘기 재미없지?”


분홍의 마음을 읽은 듯 송이 중간에서 알아서 이야기를 끊는다.


“아무튼 업소 방문이 시작되면 에코 트랩 유니폼도 맞춰야 될 것 같아.”

“유니폼? 흐흐흐. 아직 입을 사람도 없잖아. 너랑 박 사장님?”

“자기도 입어요. 자기도 에코트랩의 멤버예요.”


송은 웃는 눈으로 말했다. ‘멤버’라는 말은 참 언제 어디서나 쓰기 편한 말이다. 월급 받는 직원이 아니어도, 가족이 아니어도, 그냥 멤버라고 하면 어떻게든 다 얽혀지는 법이다. 노래를 부르고 강사활동을 하다보니 다소 독립적인 존재인 분홍은 그럼에도 에코 트랩의 ‘멤버’가 되는 일이 싫지는 않았다. 보컬리스트나 강사들은 법적으로는 멋있게 말해 프리랜서였고 때때로 자영업자로 취급되었다.


‘꼭 어딘가에 속할 필요는 없어. 나는 내 자신한테 속하는 거야!’라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 보아도, 프리랜서로서 혼자라는 생각에 대체로 외롭거나 불안하게 느끼곤 했다.


송은 이전의 컨설팅 실패 경험들을 본보기 삼아 상당히 조심히, 체계적으로 일을 진행시키는 듯했다.


송은 분홍이 에코 트랩의 사무실에 나오는 것에 슬슬 정을 붙이자, 박 사장의 방에서 놀고 있던 책상을 하나 끌어다가 분홍의 책상을 꾸며주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새침한 얼굴로 “내가 무슨 책상이 필요해?”라고 말했지만, 이번에 나올 때는 머그 컵 남는 것을 하나 가져다 자신의 새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아무도 먹지 않는 사무실의 다양한 차들을 하나씩 즐겨볼 생각이었다.


그녀는 메밀차 티백을 자신의 하늘색 머그컵에 담아 우려낸다. 한 모금을 마신다. 메밀차는 녹차에 물을 탄 맛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때 지난 밤 꿈이 생각난다. 꿈 속에서 그녀의 윗니가 흔들렸다. 꿈이었지만, 속으로 ‘이렇게 이가 이렇게 많이 흔들려도 괜찮은 걸까? 이러다가 잘못하면 이가 몽땅 빠지겠어.’라고 생각한 것까지 꽤 생생히 기억 난다. 혀로 윗니를 위쪽 방향으로 눌러보면 잇몸이 고무처럼 말랑말랑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눈을 뜨자마자 인터넷에서 꿈 해몽을 검색해 보았다. 이가 흔들리는 것은 가족 중 누가 많이 아프거나 죽는 꿈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분홍의 안색이 계속 어두워졌다. 그리고 한숨을 내쉰다.


“분홍, 왜 그래요? 무슨 생각해요?”


엑셀로 작업을 하던 송이 한숨 소리를 듣고는 분홍의 얼굴을 살피다가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아니... 어젯밤에 꿈이 좀 안 좋았어요.”

“왜요? 악몽 꿨어요?”

“뭐... 아녜요. 꿈은 반대라잖아요.”

“혼자 고민하지 말고 말해봐요. 뭔데요?”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가 떠올라 분홍의 마음이 복잡해진 것이다. 얼마 전 문병을 다녀왔는데 간호사가 한 말과 말하는 태도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병원 밥이 질려서 식사를 잘 안 드시는 아버지 때문에 분홍의 어머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분홍은 그럴 때마다 “병원에서 운동량이 거의 없는데, 식사를 너무 많이 해도 문제예요.”라면서 엄마에게 너무 걱정 말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마음또한 복잡해진다.


그렇게 식사를 잘 안 하시는 아버지도 분홍이 찾아가면 기분이 좋아져서 한 공기를 다 드시곤 한다. 아버지 연두식에겐 딸 둘뿐이지만, 그래도 꼭 분홍을 ‘막내’라고 불렀다. 언니 초록과 10살 차이가 나는 분홍은 연두식 할아버지가 마흔 두 살이었을 때 태어났다. 그 시절로 치면 아버지는 결혼을 매우 늦게 한 편이었고 마흔이 넘어 태어난 분홍을 두고 주변에서는 ‘손주 봤다’며 놀렸다는 이야기를 분홍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날도 ‘막내딸’ 분홍은 아버지가 병원에서 나온 밥을 한 숟가락 뜨면 그 위에다 캔으로 된 장조림 고기를 한 가닥씩 찢어 얹어드리고 있었다. 아버지 연두식은 짭짤한 반찬을 좋아하기 때문에 입맛을 잃은 아버지를 위해 분홍이 자주 사가는 필수 아이템이 장조림 캔이었다.


그때 연보라색 유니폼을 입고 빨간 뿔테 안경을 쓴 간호사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많이 바쁜지 업무용 슬리퍼를 격렬하게 끄는 소리를 내면서 들어왔다. 그녀는 아버지의 침상 옆을 지나가면서, “연두식 할아버지 따님 오셨네. 딸이 오니깐 말을 잘 들으시네.”라고 어딘지 모르게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하더니 다른 환자들을 쓱 한 번 들러보는 시늉을 하고는 나갔다. 분홍이 “안녕하세요”나 “네”라고 말할 틈도 없이 나간 것이다.


분홍의 눈에 비친 간호사들은 대체로 걸으면서 말하고, 걸으면서 링겔 수액을 바꿔주고, 늘 걸으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간호사들이 정말 할 일이 많은가 보다... 하긴 환자가 한둘이 아니니..’라고 이해하면서도 항상 그렇게 걷고 있으면 어떻게 환자들과 교감이 가능하겠나, 그녀는 늘 아쉬웠다.


‘내가 오니까 아버지가 말을 잘 듣는다구?’


플라자 고시텔로 돌아오는 내내 분홍은 마음이 복잡했다.


‘아버지가 간호사 말을 잘 안 들으시는구나. 아니, 근데, 그 여자도 꼭 표현을 그렇게 해야 하나? 아버지가 어린 애도 아니고, 강아지도 아니고, 말을 듣네, 안 듣네, 꼭 그런 식으로 말을 할 필요가 있냔 말이지...’


분홍은 지하철 속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속으로 간호사를 계속 흉보면서, 복잡한 마음을 달랬다.


분홍의 아버지 연두식은 교통사고를 당한 뒤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부위로 따지면 척추 두 군데, 다리뼈, 총 세 부위였다. 그러고나서 어느날 밤이었다.


“아빠, 나 갈게. 며칠 있다가 또 올게.”


분홍은 그날 조금 늦게 병원에 들러 아버지 얼굴을 잠깐 보고 일어섰다. 다른 환자들 자는 데 방해가 될까봐 그날따라 서둘렀다. 아버지가 드신 과일 껍질을 모아 비닐 봉지에 담았고 가방을 찾아들고 일어섰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어딜 가셨지? 나 이제 갈 건데...’하며 분홍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아버지가 “지금 가냐? 어디?”라고 물었다.


“어디긴. 집에 가지.”


그때였다.


“그래, 그럼 나도 같이 가자.”

“응? 어딜... 가?”


아버지는 정말로 신발이라도 찾아 신고 따라나설 기세였다. 다행히 간병인이 들어오면서 “할아버지. 누우세요. 이러다가 또 밤새 잠을 안 자면 내가 피곤해서...”하면서 아버지를 눕혀드렸다.


연두식은 수술 이후로 불면증이 생긴듯 밤에 잠을 통 자지 않았고, 공간을 헷갈려 했다. 송이 문병을 오자, “반찬은 별로 없다. 그래도 밥 먹고 가.”라고 말했다. 병원을 집으로 착각하는 눈치였다.


분홍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가 공간을 구별하지 못하고 자신이 왜 병원에 있는지를 혼동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중국인 간병인은 매일 같이 분홍이나 엄마에게 전화해서 “할아버지가 약을 아이 드실라고 해이요. 밤에 잠 아이 자는 건 어떻게든 맞춰보겠지마이 이렇게 약을 아이 드시면 내가 도온 받고 일하면서 이거 참말로 불편해이요.”라고 하소연했다.


나중에 진단을 받았는데 아버지에겐 ‘섬망’이라는 정신과 질환이 생긴 것이었다. 섬망은 골절 수술을 받은 노인 가운데 상당 수가 걸릴 만큼 빈도가 높고 증세가 심한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보였던 이상한 행동들이 딱 들어맞았다. 아버지가 수술 후 붕대를 풀어달라고 소리쳐서 분홍이 갑자기 병원에 달려왔던 일또한 섬망 증세였다. 이제까지는 아버지가 참을성이 부족하다거나, 병원에 계속 있다보니 너무 답답해서, 라고 치부했던 일들이 점차 해석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냉랭했던 간호사에게 바로 “왜요? 저희 아버지께 좀 문제가 있으신가요?”라고 대놓고 묻지 못한 것은, 분홍이 알고 있는 섬망이라는 것은, 치매처럼 정신질환이며, 사람을 적대적으로 대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분홍은 간호사의 불친절이 불만스러웠지만, 또한 진지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도 겁이 났던 것이다.


분홍의 어머니도 아버지 병수발이 길어지자 점차 쇄약해지셨다. 가해자 왕경자의 보험 회사는 수술비와 병원비는 냈지만 간병비를 내주지 않았다. 분홍은 내심 어머니가 일을 그만두고 아버지를 간병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병원 복도에서 물었었다.


“아니야. 나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너이 아버지가 섬망까지 와서 이 병수발이 언제까지 갈지 알 수가 없어. 이럴 때일수록 한 사람이라도 더 벌어야 해.”라며 거절하셨다. 분홍은 자신이 돈을 다 댈 형편도 안 되면서 더 이상 엄마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보컬 레슨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던 분홍이 캐시뮤직을 찾아 레슨에 올인하기 시작한 것도, 드문드문 있는 코러스 일과 학원 수업이 아버지 간병비를 보탤 정도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분홍의 당시 원룸의 월세가 45만원이었고, 이것저것 생활비를 하고나면, 아버지 간병비는 많이 보태봐야 20~30만원이었고, 어떤 때는 그것마저 어려웠다.


분홍이 송의 컨설팅 사업을 크게 만류하지 못하는 이유도, 어머니 말마따나 ‘한 사람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 리얼리즘 코미디 소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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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3화. 다시, 싹트는 동지애. 17.08.15 472 4 13쪽
72 72화. 허리케인이 그녀에게 남긴 것. 17.08.14 268 4 12쪽
» 71화. 그들이 달려야 하는 이유. 17.08.13 232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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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9화. 완벽한 아이템. 17.08.11 238 4 14쪽
68 68화. 뉴 페이스가 온다. 17.08.08 265 3 9쪽
67 67화. 너의 등에 그려진 하트. 17.08.05 257 3 8쪽
66 66화. 아흐메드와 친구들. 17.07.31 244 2 9쪽
65 65화. 두 장의 계약서. 17.07.25 251 2 8쪽
64 64화. 왕경자를 만나던 날. 17.07.02 298 3 10쪽
63 63화. 형제끼리는 통한다. +2 17.06.10 698 3 9쪽
62 62화. 수사관 연분홍. 17.06.07 315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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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60화. 현금만 가능합니다. 17.02.03 523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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